04. 한 번 주면 정 없다. (~day 08)

전날 잠잘 곳을 찾다 영주시민운동장 구석 위쪽에 정자가 있어 어두운 밤에 몰래 텐트 치느라 힘들었다.

늘 그렇듯이 6시에 일어나 씻으려 하는데 아침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나온 어르신들이 꽤 많아 신경쓰였다.
어제 남은 만두 1판을 다 먹고 럭셔리하게 모닝 오렌지주스를 마셨더니 포만감 100%가 됐다.
텐트를 말리고 씻고 하다보니 8시 40분이 다 되서 정리가 끝났다.  

땅을 협찬해주신 영주시에 감사인사 하고.

어제 그 분들을 다시 뵈러 갔는데 아직 출근을 안하셔서 짧게 편지 써놓고 문경으로 출발.

잠을 잔 체육관 옆쪽에 불상조각이 있어서 세계평화를 기도했다.
문경쪽 길 상황을 잘 몰라서 주유소에 들러 물어보니 점심먹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듣고 활기차게 출발했다. 

처음에는 기차, 그 다음에는 자전거, 이제 다음에는 무엇을 타고 올지 기대하며 영주를 떠난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사랑합시다.

남들 다 찍는 셀카도 한번 찍었는데 사진에 잘 보면 뒤쪽에 태양광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찜질방에 들르는 바람에 사용할 타이밍이 늦춰졌는데 다 쓴 AA충전지 4알이 생겨 처음으로 장착했다. 

포만감이 급속도로 차는만큼 급속도로 배가 꺼지는 만두를 먹었기에 중간에 보급을 한다.
어제 아저씨가 사주신 2400원이지만 589kcal 밖에 안해서 살 엄두도 못 냈던 빵인데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거의 1달이 넘는 유통기한을 가진 빵인데 진공포장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맛은 좀 별로였다. 

앞에 산도 없고 정말 달릴맛 난다.

어느새 문경에 들어왔고 정말로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가지고 있는 비상식량이 많기에 점심은 패스하고 그냥 달리기로 한다.

4대강 길을 찾다가 gps에 물가가 잡히길래 따라 올라갔더니 건너편이 자전거길이라 2km정도 되돌아와 자전거길을 탄다.

이 빨간 아스팔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를거다.
꼭 한강 자전거길이 떠오르고 고향생각이 난다. 

자두를 하나 먹으려고 자전거를 세웠더니 비가 떨어지길래 태양광충전기는 철수시키고 자장구도 방수모드로 전환했다.

안쓰는 국도나 농로를 국토종주 자전거길로 만들어서 차량이 거의 없어 자전거 타기에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는 버스타고 왔었던 문경새재 입구를 자장구로 돌파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해가 너무 쨍쨍해 굴다리 밑에서 프링글스를 먹었다. 이또한 나라면 절대 사먹지 않을 고급과자라 다시 한번 아저씨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행중에 배가 고플 때마다 항상 식량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가정해 일부러 1시간정도 참다가 먹는 훈련을 계속 했는데 나중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난 또 굽이굽이길을 올라갈텐데 저기는 다리가 있네.
에헤라 디야 끌고가자. 남는게 시간인데 촉박해해서 뭐하리. 이리 오너라 자장구야. 천천히 가다보면 올라갈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야 거북이 이 땅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라

우리는 바다에선 조금은 빠르긴 하지만

땅 위에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아

급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죠

그렇게 수 억년을 잘 살아왔죠

뒤집지 말아요 일어 설 수가 없잖아요

그냥 우릴 바라봐 줘요

빨리 가면 시간 남고 할 일도 많은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좋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힘을 내 달려가자

하지만 거북아 토끼를 따라 잡지 못해

거북이 머리는 언제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죠

집 걱정 없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우리는 정말 빠른 거북이랍니다

타카피-거북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고갯길인 이화령을 넘으면서 타카피의 거북이라는 노래를 수십 번은 더 불렀다.
그런데 국토종주 길이 진행될 수록 개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급격한 커브는 물론이고 도로 귀퉁이에 페인트만 칠해 놓아서 노면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이화령을 오르는 경사도 너무 가팔라서 100m 끌고 올라가 한숨 쉬고 다시 100m 전진하는 거북이 행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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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오르다보니 이화령 정상에 다왔다.

너무 흥분해서 안내소를 뒤엎어 버렸다.

드디어 영남의 관문을 통과해서 충청도에 입성했다.

참 저렇게 뚱뚱한 자장구를 끌고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화령 꼭대기에서 갑자기 오기가 발동해 마지막 훈련으로 집까지 하루만에 가기로 정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는 훼이크고 신나게 내려오니까 소조령이 날 기다리고 있네.

힘들어서 축 내려온 새재로 표지판.
이화령+소조령 콤보가 힘든단 것을 알고 있구나.
내려와서 텐트칠 곳을 찾다가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집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된다고 해서 갔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 지붕이 있는 곳을 찾기로 하고 좀 더 가야겠다고 인사를 드리니 복숭아를 씻어다 주시고 물 2L짜리를 주셔서 다시 한번 식량창고를 채우고 출발했다.
가는데 비가 한두 방울 씩 떨어져 마음이 더 촉박해졌다.
충주 탄금대까지 달려 탄금대 공원에서 자려고 했지만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텐트를 못치고 밖을 배회하는데 자전거 여행자가 보여 인사를 했더니 텐트 칠만한 곳이 없다며 같이 여관에 가자해 저녁을 먹고 돈을 아까워하며 여관에 갔다. 

<오늘의 생각>
옛말에 한 번 주면 정 없다는 말이 있다.
백두대간도 한 번 넘으면 정 없으니 두번 넘자. 
한국인은 정이니까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두번 넘자. 
초코파이도 情 

1인용 코펠에 라면 2개를 끓이려니 넘쳐흐른다. ㅠㅠ

둘이 먹다 둘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생겼다.

나도 내가 못생긴것을 알기에 초점을 배경에 잡았다.

군대가기전에 서울~부산 국토종주 중이라는데 미니벨로로 이화령고개 길을 잘 넘어 갔을지 걱정된다.

세계무술축제 덕분에 좋은 방에서 잤다.

이제 집까지 달려보는거야. 힘내라 자장구.
뒤에 달린 가방은 물 2L와 오렌지 쥬스, 빵, 과자 등이 담긴 식량창고 주머니다.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서울까지 이어져있다면 오늘 목표인 집까지 가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여행하는 동안 그토록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먹는데 적당히 말캉거리는 최고의 복숭아였다.
사실 정신없이 먹다가 인증샷이 떠올라 절반은 먹고 뒤집어서 찍은 사진이다. 

팔당까지 85km만 가면 서울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비가 많이 내려서 사진도 안찍고 그냥 달리기만 했다.
가장 기억나는 코스는 강천보인데 다른 길들은 '그래도 4대강 자전거길이 있어서 편하게 왔네'라고 생각했지만 강천보만큼은 올라가자마자 이명박 카카의 욕을 했다.
비가 내려 사진은 못찍었지만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이 있었고 오르기 쉬우라고 턱이 낮은 계단형식으로 만들어놔서 45kg짜리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다 올라가고 나니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바퀴가 더이상 못가게 하는 스토퍼를 몇줄로 도배를 해놔서 자전거를 들어서 옮기는데 안전상의 이유인 것은 알겠지만 자전거도로라고 이름만 붙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전거가 원활하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4대강 자전거길에서 내가 느낀 불편하고 위험한 부분들이 꽤 되지만 여행기이므로 '소비자고발-4대강자전거길의 위험'을 시청하길 추천한다. 
충주에서 시작해 145km 정도를 달려 팔당에 도착했을 즈음 어깨부터 손목까지의 근육이 안움직여질 정도로 통증이 왔다.
150km정도면 많이 달렸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점프할까라는 생각을 5번정도 했지만 세계일주를 생존력강화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출발한 여행에서 마지막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싶지 않아 근성으로 달렸다.

결국 충주~팔당까지는 평속 18km/h정도로 달리다가 중랑천에 다다라서는 페달만 굴리면 집에 도착한다는 안도감때문에 10km/h 정도의 속도로 달렸고 집에 도착하니 8시였다.
총 173km를 11시간에 걸쳐 달렸는데 점심, 저녁은 안먹고 꿀호떡 8조각+과자 1개+복숭아 2개만 먹고 비를 맞으며 하루 최대치를 달려보았는데 하루에 보통 100km정도씩 달려 누적된 피로에 계속해서 내리는 비, 최소한의 식량으로 달린 마지막 날은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동안 물을 많이 마실 줄 알고 중간 보급을 안하기 위해 5L의 물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빗물을 마시고 피부로 빗물을 흡수해서인지 500ml밖에 안 먹는 신기로운 일이 발생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배가 터지도록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사진을 한 번 보여주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오늘의 생각>
외국에서 물 구하기 힘들 때 빗물을 받아 먹으면 어떨까?
그 해답은 서울대 빗물연구소장 한무영 교수의 '빗물과 당신'이라는 책에...

그래도 내 몸은 보물 1호니까 될 수 있으면 얻어먹거나 사먹어야지. 

처음에는 2주정도 예상을 하고 출발한 여행이 이런 저런 일들도 많이 겪었고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기에나머지는 실전에서 겪기로 하고 8일만에 끝났다.
이 글을 쓴 현재 중국으로 출발하기까지 21일이 남아 있는데 여행을 하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우고 마지막까지 준비해서 10월 13일에 출발한 다음에는 직접 부딪히고 즐기는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03.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day 06)

주로 빵만 먹는다길래 아침은 내가 대접하기로 했다.
6시에 일어나 씻고 밥하고 3분짜장과 미트볼을 데우고 식사 시작. 

별로 맛 없어 보이지만 밥을 충분히 한다 했지만 조금 부족한 기분이 들 정도로 셋이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잠들었던 신라비전시관 왼쪽의 정자.
밥을 다 해먹고 나니 직원분께서 여기서 취사하면 안된다고 누가 물어보면 밥 안했다고 말하라고 해주셨다.
6시에 일어났는데 텐트 말리고 밥먹고 밍기적대다보니까 10시가 다 돼서 출발. 

1시간 정도 달려 부산으로 가는 7번국도와 영주로 가는 36번국도 갈림길에 도착했다.
자기들끼리 찍은 사진이 없다 해 설정샷을 한번 찍어주고 내 카메라로도 한번 더 찍었다. 

난 당연히 없으니 나도 한방 찍고

500일 뒤에 체코가면 체코술 사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기다려라 필스너 우르켈과 알코올들... 

36번 국도가 어떤 국도인지 모른다.
그냥 내륙인 영주로 들어가는 도로인 것 밖에 모른다.
앞을 보면 평지인데 뒤를 보면 업힐인 그런 안보이는 업힐을 넘어가는데 이정도는 괜찮지 하며 올라간다.
근데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보이고 산들을 굽이굽이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정상이라 할만한 곳에 도착했는데 사랑바위라니.
꼭대기에 평화가 있어야지 왜 사랑이 있냐며 구경을 갔다. 

아놔.. 잘 보니 둘이 껴안고 뽀뽀하고 있네.
굴삭기로 부시고 싶을 정도로 정열적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 꿀호떡을 또다시 먹는다.
560g에 1775kcal이라는 저 아름다운 칼로리.

근데 가도가도 업힐이다.
기어비를 최고로 하고 달려도 점점 힘에 부친다. 

이 높은 산 꼭대기에 다리를 놓고 있다.
지형을 돌아가는 것이 아닌 개척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의 위대함을 더욱 크게 느끼며 난 자전거를 끈다. 

시멘트를 공수하기 힘드니까 산 중간중간에 시멘트 적차장도 있고 자갈 산도 있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공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왜 왔냐면서 앞으로 가도가도 고바위길이라며 내 희망을 꺾어 놓으셨다. 

근데 왜 경상돈데 산이 이렇게 많은 거지.
이런 곳을 끌고 올라오는 나도 대단하다.
힘들게 자장구를 끌고 올라가다 쉬고 있는데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간다.
같은 이륜차인 오토바이에게 내가 업힐에 굴복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지나가며 응원해주신 오토바이 커플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내려서 끌바를 했다. 

높아서 그런가 해바라기 같은 애들이 하늘을 보고있는데 무섭다.

아싸 정상에 도착했으니까 드디어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답이 없는 이운재. 오늘부터 안티팬해야지.

아싸 내려간다. 내가 한 20km정도 오르막길 왔으니 10km는 내려가겠지.

훼이크고 잠깐 내려가니까 다시 오르막이라 사진찍을 생각도 안들고 그냥 뒷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여서 다시 끌바를 했다.
꼬치비재. 꽃이 보이재? 그래 눈앞에 꽃이 보인다. 

지금까지 잘했어. 이제 다시 내려가자. 정말 내려가는 거야.

긴장 풀지 말랬지.
저 밑에 있는 마을까지 잠깐 내려갔다 다시 올라간다.
멀리서 업힐이 보이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아 강원도 아니고 경상도라며!'

얼라 마을이 더 작아지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마을인줄 알았는데 

끌고가는 내 자전거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업힐은 다시 돌아오지만 

흘러내린 내 침들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업힐인줄 알았는데 

또 하나 멀어져 간다  

김광석 님 죄송합니다. 

엄마 트럭이 쫓아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Jerry.K 님 죄송합니다. 

위에 나온 2곡은 업힐에 정신나간 누군가가 자전거를 끌며 내는 소리입니다. 

저거 분명히 내리막 10%맞지.
이제 내려가는거 맞구나. 

회고개? 회를 쳐주마.
이제 기대 안할거야. 또 뒷통수 칠거니까 내리막길이라고 신나하지 않을거야. 

그래. 역시 또 오르막이지.
물이 다 떨어졌는데 왠지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같아서 아주머니께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약수라고 하신다.
세수도 하고 물도 다 채우고 다시 오르막길. 오늘 누가 죽나 한번 해보자.
이 때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밖에 안떠올랐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산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할아버지가 산 때문에 화가나서 삽질을 해다가 산을 없애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어느세월에 옮길 것이냐며 뭐라 하자
할아버지 曰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이, 자식의 자식이 언젠가는 옮길것이다.'
그러자 산신령이 무서워서 옥황상제한테 이르고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줬다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본 뜻은 쉬지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 뜻을 이룬다는 아주 뜻깊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놈의 산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만 들고
우공이산 이야기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다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요것이 손등.

요것이 손바닥.
뽀얗던 내 손이 깜쉬깜쉬가 됐다.

내가 살면서 터널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배추를 가득 싣은 트럭들이 지나가도 산을 관통해서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처음 알았다.
진짜 인간문명 만세다. 사랑합니다. 터널
근데 경상북도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하는건가? 

터널을 지나오니 내리막길이 시작이다.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앞에 산들이 안보이긴 하는데... 

원래 영주까지 가려했지만 너무 힘이 들고 시간도 늦어서 봉화에서 잠자기로 결정. 8km만 가자.

내리막길에 짧은 터널이라 후미등 안키고 논스톱으로 가려다가 방심하는 사이에 훅가니까 후미등을 켜고 달렸다.

봉화에서 자려다가 도로도 계속 내리막길이고 마을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업힐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냥 영주까지 달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업힐만 탔으니 진짜 징그럽다. 
알고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백두대간을 넘어온 길이였는데 솔직히 서울~강릉보다 힘들었던 것 같고 삼척~울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힘들었다.
영주에 도착해 텐트 칠 곳을 찾다가 둑방길을 발견하고 취사는 안된다기에 슈퍼에 빵을 사러갔다.
가면서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 딸기잼 듬뿍 든 고급빵과 바나나 우유를 마셔야지' 했는데 빵이 다 나가고 운명처럼 꿀호떡만 남아있길래 그냥 '내팔자가 그렇지 뭐.'하면서 당연하게 쿨피스도 집고 나왔다.  

그런데 옆 가게에 계신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하나로 또다시 인연이 시작됐다.
'너 누군데 나한테 인사하냐. 나 아냐?'
'아니요. 그냥 눈 마주쳐서 인사했어요.'
'너 그래가지고 어디가냐?'
'저기 둑방길에 텐트치고 자려구요.'
'혼자 여행다니는 거냐? 밥은 먹었냐?'
'취사 안된다기에 그냥 빵 사다 먹으려구요.'
'아저씨가 빵 사줄게 안에 들어와서 쉬다 가라.'
'이미 빵 사서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밥 사줄테니 들어와서 먹고 가라.'
'감사합니다.' 하며 냉큼 들어 갔더니 뭐 먹을거냐고 물으셔서 아무거나 괜찮다니까 그럼 만두랑 라면이랑 먹으라며 직접 김치넣어서 라면을 2개나 끓여 주시고 만두도 2판이나 까주시며 다 먹고 남는거 싸가라고 하시는데 정말 인사 하나로 밥도 얻어 먹다니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얼었던 몸에 따뜻한 라면이 들어가니 몸이 쏴 풀리는데 정말 최고였다.
밥을 먹는 동안 아저씨가 슈퍼에 가셔서 비싸서 내가 안샀던 빵, 오렌지 쥬스 1.5L, 프링글스 등등을 사다 주시며 챙겨 먹으라고 하시는데 감동이었다. 

다 먹어갈 때 쯤 도착하신 사장님.
내가 무전여행은 아니고 거지여행을 한다고 하니 여행하는 애들이 더 잘 챙겨먹어야 한다며 자두 한봉지, 햇반, 라면 등등을 챙겨주시고 남은 만두 1팩을 싸주시는데 받는 내가 얼떨떨할 정도로 고마웠다. 

옆에 계시던 직원분.
사진 찍자 하니까 에이 뭐 하시더니 포즈 잡으신다.ㅋㅋㅋ 

다른 직원분.
지금까지 영주 하면 예전에 영주역앞에서 먹은 굴국밥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이분들이 떠오를 것 같다.
백두대간 넘는 내내 욕도 하고 뒷통수만 친다고 뭐라 했는데 이런 선물로 다시 뒷통수를 치다니 한 없는 오르막도, 한 없는 내리막도 없는게 사람 사는 것이 맞는가 보다.
다음날 아침에 영주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기로 하고 나와 내가 원래 자려던 곳에 가니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계셨다.
30분정도 돌아다녀도 그 자리가 최적의 자리기에 돌아갔는데 3명이던 아주머니들이 10여명으로 불어나 있어 다른 곳을 찾다 종합체육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들었다.

<오늘의 생각>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도와주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다.
누군가가 선뜻 손을 내밀었을 때 선뜻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가고 있다.
그 사람의 속마음을 의심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믿고 고마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 착하네요 어른한테 예의바르게 하면 좋은인ㅂ 많이 생길거예요 요즘 젊은이들 예의가없잖아요 하기야 다 기성세대들이 모범을 더보여야하는데 서로 위하고 사는 세상이 되길바래요

  2. 재밌게 잘 봤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열정 한아름 안고 출근하네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지 참 잘 할 청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3. 우연히 들어 와서 자전거 여행기 보는데 참 재밌고 흐믓하네요.

    아. 그리고 사랑바위는 남녀 사이 아니에요. 남매지간 입니다.

    굴삭기로 부수지 마세요. ㅋ

01.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day 02)

원래는 아침 8시 30분이 출발예정시각이었지만 짐을 장착하고 휘발유통을 고정한 스텐밴드를 자르고 하다보니 9시가 넘어서 집에서 나왔다.
집앞 중랑천 자전거길에서 간단히 체인오일 한번 치고 9시 30분쯤 제대로 출발했다.

다른 자전거여행자들을 보면 자전거에 이름도 지어주고 하는데 난 도저히 이름이 안떠올라 그냥 '자장구'라 지었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자장구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가방들이 너무 깨끗하고 예쁘게 찍혔다. 

모든 짐을 싣고는 처음 달리는 거라 걱정했는데 핸들이 엄청 무거울뿐 그럭저럭 달릴만했다.
팔당가는길에 보스몹인 고갯길이 나왔지만 끌바로 극복했다. 침흘리며 끌었기에 부끄러워 사진은 안찍었다. 

평소 자전거를 타면 최소 팔당까지는 탔기에 친숙한 팔당대교도 지나고

팔당댐도 지나가는데 도로가 좋으니 속도가 쭉쭉나온다.
출발할 때만 다르지 평지에서는 속도가 평소와 똑같이 나오고 탄력이 붙으니 더 재미있다. 

시원한 자전거 터널도 지나는데 태양아래를 달리다 들어가는 터널은 천국이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주먹밥으로 해결했는데....

밥값이 공짜라고 대가를 치뤘다. (빨간거 김치국물 흘린거 아님. 빨간약임.)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내리는데 무거운 자전거가 처음이라 내리다가 자빠져 상처가 났다. 

안다치면 좋겠지만 사람일이 뜻대로 되는게 아니기에 직접 채운 응급키트로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다.

북한강철교도 지났지만 몇번을 와본 길이기에 아직까지 별로 설레이지는 않았다.
오빈역까지는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라이딩오신 동호회분들이 앞에 공사중이라고 알려주셔서 같이 국도를 '역주행'하는데 무서웠다.
무서웠으니 당연히 사진은 없다. 

여기가 바로 사탄이 있는 사탄천. 착하게 삽시다.

드디어 오빈역이 나오고 6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로 간다. 

첫 터널을 지나는데 앞으로도 지킬 자전거 여행에서의 원칙을 하나 세웠다.
꼭 정차한 뒤 후미등을 켜고 터널 사진찍기.

터널을 다 빠져 나와서 '터널 별거없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도로 옆에 있는 턱에 프론트페니어 가방이 쓸리며 마찰로 구멍이 났다.
순간 머릿속으로 별에별 욕이 다 떠오르고 용문터널에 저주를 퍼붓고 패니어 가격이 떠오르고 내 방수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내가 무슨 좋은 꼴을 보자고 여행을 시작했나. 등등 온갖 마이너스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사진을 찍을 정신이 아니여서 결국 집에 돌아온 뒤 사진을 찍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첫날부터 패니어는 빵구났지, 물도 다 떨어져가니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이미 말을 뱉어 놓은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어 머리도 식힐겸 휴게소에 들어 갔다.
하지만 휴게소에 들어가자마자 생존본능이 솟아나며 비싼 건 못사겠고 게토레이 캔 1개를 사고 물 좀 떠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승낙해주셔서 얼른 물을 뜨고 나와 화장실에서 세수한번 하고 어차피 언젠간 고장날 가방이었다며 달리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강원도로 가고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아무리 가도가도 계속 양평이어서 달릴 맛이 안났는데 드디어 양평과 인사를 했다.
서울과 강원도 사이가 다 양평이니 길긴 길다.

반갑다. 강원도~

해발 300m정도야 뭐 간단하게 올라간다.
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고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내려서 끌고 올라가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냥 계속 업힐이다.

횡성으로 가는 길에 잠잘 곳이 없어 걱정하다가 하나로마트 옆에 정자가 있길래 사장님께 허락을 구하고 텐트를 치고 잤다.
텐트를 치기전에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하나 사서 먹고 집에서 싸온 주먹밥을 다 해치우고 씻기도 귀찮아 그냥 잠이 들었다.

<오늘의 생각>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전기의 문인서예가. 

楊士彦(양사언), 1517~1584

양사언 싸우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는 무슨 산은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다. 

텐트치고 잔 첫날 밤이라 중간에 몇번을 깼지만 침낭이 좋아 춥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쌀을 씻어 놓고 세수와 머리도 감고 밥을 한다.
처음 해보는 코펠 밥인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예술이었는데 양이 조금 많았지만 점심을 생각해 볶음김치와 같이 억지로 다 먹었다.

왼쪽에 보이는 정자가 어젯밤의 내 집이었다.

횡성터널도 지나고.

고작(?) 45kg정도 밖에 안되는 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도 힘든데 저 굴삭기를 싣고가는 트럭의 위대함을 느끼며 끌바를 했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이만큼이나 올라왔구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주 뒤돌아보면 의지가 약해진다. 

그래 어디까지 올라가나 한 번 가보자.

다른 자전거여행자들이 오르막차로 끝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면 엄청 반가워 하던게 떠오른다.
이제 나도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행복해 했는데...

훼이크였다. 오르막차로는 끝났지만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것인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서 체력도 급고갈되고 근성으로 끌고 올라간다. 

나에게 굴욕과 좌절을 안겨준 황재. 절대 잊지 않겠다. 

알았어. 오빠가 달릴 수 있게 제발 적당한 경사의 길만 나와주렴.

점심은 둔내로 가서 먹기로 했는데 둔내가 둔내 안나와서 둔내 힘들었지만 달리다보니 둔내가 나왔다.
산들을 넘으며 점심은 무조건 국밥을 먹을거라 생각했기에 사진속의 황태해장국집에 들어갔다.
배가 너무 고팠기에 밑반찬까지 싹 다 긁어먹고 공기밥 반 그릇을 더 먹고 물도 채우고 삶은 달걀도 주길래 나중에 먹으려고 챙겨 나왔다.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속도에 나를 맡기는게 무서워 24살 먹도록 스키장에 한번도 안갔었는데 이번기회에 지나간다. 

배도 채웠으니 오르막길따윈 가뿐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얼마 못가 다시 끌바를 시작한다.

횡성을 지나 평창군에 들어서자 끝없는 내리막이라 앞으로 올라갈 것을 걱정하며 내려가는데 바퀴에 토마토 씨같은 노란게 묻어서 '난 토마토를 밟은 적이 없는데?' 생각하며 달리다가 이상해서 멈춰섰다.

알고보니까 아까 챙겨둔 달걀이 삶은게 아니라 날달걀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속이 차 있었던거 같았는데 황태해장국에 넣어 먹으라고 준 계란을 고이 품고 오다가 진동에 의해 깨진 것이었다.
옆에 농수로에서 계속 물을 퍼다 닦고 물티슈로 닦았지만 향긋한 비린내가 계속나 그냥 달렸다.

해발 500m면 동네 뒷산보다는 높은 높이인데 어느새 올라왔다.

장평으로 향하다 아저씨들과 잠시 대화를 하고 재산재를 오르고 나니 장평에 도착했다.
자여사에서 둔내를 거쳐서 장평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해줘서 따라왔더니 20km정도 돌아 왔지만 길은 괜찮았다고 자기위안을 한다. 

장평 슈퍼에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가격대 칼로리가 가장 높은 꿀호떡과 쿨피스를 사고 옆 하천 둑방길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먹는데 어두워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텐트치고 홀로 끓여먹는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
내일은 대관령을 넘어서 한 100km 정도 가야하니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든다.

<오늘의 생각>
티끌모아 태산.
작은 언덕이 모여 사람의 의지와 근성을 시험하는 태산이 된다.
업힐 좀 그만 나와라. 내가 자전거를 타는지. 자전거가 나를 타는지 모르겠다. 
 

  1. 대단하시네요~~~

  2. 요즘 자전거에 푹 빠져서 자전거 여행을 꿈꾸며 여행기들을 찾아 보고 있는데 이번
    님의 여행기를 보면서도 꼭 하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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