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세계일주 - 033. 사람 사는 이야기.



대성석가사는 절이기에 아침 공양시간이 6시부터다.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 그 전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으러 간다.

절에 있으면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니 좋은 것 같다.

아침에는 절밥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커드에 바나나까지 나왔다.

아침을 먹고 책을 좀 읽다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차마 한국절에서까지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핑계로 숟가락을 쓴다.
손으로 먹는 것도 재미있지만 수저를 쓰면 위생적이고 편하기도 하니 역시 도구의 발명은 대단하다. 

그래도 인도에 가면 인도의 법을 따라야하니 열심히 손으로 밥을 먹어야겠다.

대성석가사는 한국절이지만 전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는 불교 4대성지 중 하나기에 불교를 믿는 대부분 나라들의 절이 있지만 방문객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절은 흔치 않다.

하지만 대성석가사는 하루에 300루피(한화 3600원)에 숙식을 제공해주니 대부분의 순례객들과 여행객들이 대성석가사로 찾아와 한국인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훨씬 높다.

절은 많은데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는 모습을 부처님이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다.

내가 삐뚫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종교는 모든 것에 우선해서 헌신적인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성석가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완공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데 어서 완공이 됐으면 좋겠다.

대성석가사에는 와이파이도 된다.

혹시나 해서 와이파이를 찾아보니 신호가 잡히길래 무선공유기의 위치를 수소문 해 바로 옆에서 여행기를 올린다.

산에도 올라갔다 오고 그동안 작성하지 못한 여행기가 많은데 숙식도 제공되고 분위기도 좋은 대성석가사에 오래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밥이 엄청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보드가야에서 느꼈듯이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며 먹으면 별로 맛을 따지지 않게 된다.

<오늘의 생각>


남은 네팔루피를 다 쓸 때까지 대성석가사에 머물러야겠다.

밥도 주고 재워 주고 와이파이도 되고 참 좋다.

 

산을 내려오고 휴식기를 가지려 했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포카라에서 편히 쉬지를 못했기에 룸비니에서는 푹 쉰다.

아침 공양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여행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또 책을 읽는다.
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그냥 대충 흘러가는 장기여행이다 보니 내 마음대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정전시간표가 있는데 살펴보면 정전인 시간보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더 적다.

하지만 저 시간표대로 정전이 되는게 아니기에 그냥 전기가 들어오면 들어왔구나 하는게 편하다.

확실히 인도보다 전기사정이 열악한데 전기가 없는 곳을 몇 군데 다녀보니 전기가 없으면 약간 불편하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

오늘까지 빈둥거리며 푹 쉬려고 했는데 왠지 밖을 나가고 싶어 룸비니 나들이에 나섰다.

이 불은 세계평화를 기리는 평화의 불꽃인데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해인 1986년 11월 1일에 점화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건 아닐 것 같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깨우치신 곳, 첫 설법을 하신 곳, 열반하신 곳을 불교의 4대 성지라고 일컫는다.

룸비니는 그 중 태어나신 곳인데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모여있는 성원 구역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한다.

성원 구역,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곳이기에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한다.

더운 나라들만 돌아다니면서 양말 빨기가 귀찮아 샌들을 주로 신었더니 발에 얼룩무늬가 생겼다.

여행의 훈장같기도 하지만 왠지 여행이 끝나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저 건물 안에는 부처님의 발자국 조각이 있는데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아쇼카석주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이라는 현장의 기록에 따라 발자국 조각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부처님은 산통을 느낀 마야부인이 사리수 나무를 붙잡은 상태에서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고 하는데 왕족인 치트리아 계급은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고 믿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왕들에 관한 신화들처럼 왕족에게 특이한 출생의 방법을 부여한 것 같다.

근데 거기 커플들, 어디 신성한 곳에서 부정타게 손 잡고 다니나요. 매번 말하지만 부러워서 그러는 거 맞다.


건물안에 들어가면 4세기경 제작된 돌 조각에 부처님을 낳는 마야부인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금박이 칠해져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고 금박을 붙이길래 나도 따라했다.
아리따운 여성분들, 주근깨 많이 생긴 것은 저도 아는데 사람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제 마음을 봐주세요.
마음만은 훈남입니다. 

이게 아쇼카 석주다.

기원전 249년 아쇼카 대왕이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둥인데 이 기둥으로 인해 부처님의 역사적 실존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석주에는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쇼카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부다가 탄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위대한 분의 탄생지를 기려 이 지역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1/8만 징수케 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어떻게 저기에 딱 맞게 1000원짜리가 들어갔는지 신기하다.

거북이다.

어릴 때 보던 포켓몬이 생각난다.
꼬부기 - 어니부기 - 거북왕. 

근데 난 꼬부기보다 이상해씨가 더 좋았다.

나는요 거북이 
이 땅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라

우리는 바다에선 조금은 빠르긴 하지만

땅 위에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아


급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죠

그렇게 수 억년을 잘 살아왔죠

뒤집지 말아요 일어 설 수가 없잖아요

그냥 우릴 바라봐 줘요


빨리 가면 시간 남고 
할 일도 많은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좋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힘을 내 달려가자

하지만 거북아 토끼를 따라 잡지 못해


거북이 머리는 언제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죠

집 걱정 없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우리는 정말 빠른 거북이랍니다

타카피 - 거북이 


가족끼리 소풍을 왔다.

소풍 온 모습을 보니 김밥이 먹고 싶어졌다.

참치김밥 - 소고기김밥 - 치즈김밥.

제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해주세요.

우리나라에도 옛 사찰들의 터만 남아 있는 곳들이 있는데 역시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람들이 보존하려고 해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조상들의 유적지를 보고 뭔가를 느끼듯이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는 우리가 물려 받은 조상의 흔적들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옆에 사원이 있길래 기도를 하고 나온다.

인도에 철근을 옮길 트레일러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보통 작은 차에 철근을 구부려서 다닌다.

문제는 구부러진 철근을 다시 대충 펴서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안전할지 궁금하다.

참 좋은 말이다.

설마 저 좋은 말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죠.

대성석가사로 돌아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자전거가 보인다.

안장은 브룩스에 투부스렉을 달아놨다.

가슴이 아프다.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부럽다.

멈춰있는 설리를 봐도 다시 달릴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플 때는 당을 먹어야 한다.

포카라에서 소주를 주신 어르신이 꿀도 한통을 주셨었다.

우리들은 VJ특공대 흉내를 내며 삼겹살과 꿀을 조합해 허니삼겹살을 만들어 먹었는데 마마님의 한마디.

'음~ 달콤한 꿀이 삼겹살의 기름기를 확 잡아줘요!'

VJ특공대는 어서 마마님을 섭외하세요.

그때 남은 꿀을 가장 당이 땡기는 내가 가지게 됐는데 미숫가루에 타먹으니까 당연히 꿀맛이 났다.

불교성지순례로 오는 단체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

가방이 무거워 짐을 줄이려고 고추장을 먹었는데 그냥 고추장 맛이었다.

아직까지는 한식이 그립지는 않은데 언제쯤 한식이 그리워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보니 핀을 참 못 맞춘 것 같다.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게 가장 큰 이유고, 그 다음은 리플을 보는 재미다.

그런데 리플을 읽을 수는 있는데 거기에 댓글을 달려면 필요한 확인버튼이 안 생겨 속이 터진다.

속이 터지면 당이 땡긴다.
'곰돌이 푸'가 빙의 된 것처럼 다 먹어 버렸다. 

<오늘의 생각>


ABC 트레킹 도중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났다.

역시 인연은 함부로 무시하면 안되는 건가 보다.

 

매번 똑같아 보이는 음식이지만 맛있게 먹는다.

과일까지 후식으로 나오니 불평할 거리가 없다.

대성석가사에 머무를 최고 기간은 6일로 잡았었다.

6일 안에 같이 바라나시로 떠날 사람이 오면 같이 움직이고 안 오면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어제 ABC 트레킹 도중에 만났던 형님을 다시 만났다.

형님도 바라나시로 간다고 하시길래 같이 떠나기로 했다.
같이 떠날 사람을 만날 줄 알고 어제 룸비니 구경을 하고 싶었나 보다.
이 형님도 세계일주 중인데 파키스탄쪽을 통해 점점 서쪽으로 가실 계획이라고 한다.

룸비니에서 바이라하와로 다시 나와 합승 지프를 타고 조금 가면 네팔과 인도의 국경인 소나울리에 도착한다.

저 국경만 넘어가면 다시 인도다.

<네팔 여행 경비>


여행일  23일 - 지출액 44,000루피 (약 53만원)

산에 올라갈 준비를 할 때 지출이 컸다.

하지만 안나푸르나를 오르는데 든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WELCOME TO INDIA.

인도로 다시 넘어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 다시 떠날 때 인도를 재입국 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다고 본적까지 적고 영문 여행계획서까지 제출하는 등 복잡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고 얼마 뒤에 비자 발급기준이 완화되었다고 하니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난 막차를 잘 타나 보다.


여담으로 누군가가 인도사람에게 너희는 왜 이렇게 비자를 까다롭게 발급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그 인도사람은 너희 배낭여행자들이 와봤자 인도에서 돈을 얼마나 쓴다고 너희를 쉽게 받아주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근데 그 말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웃음이 나온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갈 때 소나울리를 통해 인도로 들어온 뒤 바라나시로 향한다.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방법은 중간도시인 고락뿌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편한 기차로 갈아타는 방법과 끝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려면 귀찮기에 한번에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인도과자를 먹으니 인도에 온 기분이 난다.
저 정도의 비스킷이 10루피(한화 200원)밖에 안하는데 몸에 얼마나 좋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아예 과자를 먹지 않아야지 과자를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는 것은 욕심같다. 

333km를 이동하는데 256루피(한화 5120)원밖에 안한다.

하지만 버스 상태를 보면 딱 256루피짜리 버스다.

언제부터 금성이 신발도 만들었지.

버스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이 탄다.

뒤를 돌아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차장에게 돈을 내야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돈을 든 손을 뒤로 내밀고 있다.

그러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받아서 건네주면 될텐데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다.

차장도 꿋꿋하게 자리에 앉아서 돈을 달라고만 한다.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해서 돈을 건네주고 싶을 정도였는데 결국엔 중간에 있는 아저씨가 건네준다.

왠지 남자들의 자존심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

물론 남자에게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에서 자존심을 챙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버스는 계속해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점심시간에 고락뿌르에서 차가 멈추길래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밑에 깔린 달콤한 튀김에 라면땅 같은 것을 뿌려주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사진을 찍으니 자신도 찍어달라고 한다.
난 쉬운 남자니까 찍으라면 찍는다.

저것만 먹고는 당연히 배가 고프니 사모사와 튀김 몇개를 샀다.

난 맛있게 먹는데 형님 입맛에는 별로인 것 같았다.

역시 내 입맛에는 길거리 음식이 최고다.

밥을 먹고 오니 버스를 갈아타라고 한다.

우리와 같이 탄 인도인도 따졌지만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1시간 뒤에 떠나니 지금 떠나는 버스로 옮기라고 한다.

원래 종점이 여기인지 진짜 우리를 위해서 옮기라는 건지는 몰라도 우선은 옮겨 탄다.

물론 타면서 표값에 대한 확답은 철저하게 받아야한다.

우리 바로 앞자리에 탄 이 할머니는 대단한 할머니다.

버스비가 26루피(한화 520원)인데 자꾸만 깎으려고 한다.

위에서 봤듯이 기계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요금이 종이에 찍혀 나오는 시스템인데 자꾸만 비싸다고 우긴다.

처음에 15루피 정도 줬다가 차장이 그냥 내리라고 하니 무시하고 계속 탄다.

내릴 곳에 다 와 가자 차장이 다시 돈을 내라고 하니 이번에는 동전으로 20루피 정도를 준다.

화가 난 차장이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만행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돈을 낸다.

난 우리 어머니들이 한 푼을 아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그 돈을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쓸 것이기에 돈을 막 쓰는 내가 부끄러워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들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요금에 대해 따지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미화될 수 없는 행동이라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결론은 우리 어머니들 최고다. 특히 우리 엄마가 최고다.

공중위생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화장실이지만 나도 잘 이용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최대한 현지인처럼 생활하기를 목표로 하니 아무 데나 싸고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잘 버린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길거리에 노상방뇨하는게 더 좋다. 

형님이 자꾸 군것질거리를 사주신다.

인도는 귤에도 씨가 있어서 뱉어야 하는데 그냥 아무 곳에나 뱉으면 되니 참 편하다.
아마 씨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나라였으면 안 먹었을 것 같다. 

저 아저씨는 물건을 파는 아저씨인데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이 겹쳐졌다.

우리나라처럼 신기한 물건을 팔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향신료를 팔기에 그냥 넘어갔다.

내가 예상한 도착시간이 지나고 해가 져도 바라나시에 도착할 기미가 안보인다.

배가 고프니 또 내려 토스트를 한조각 사먹는다.

버스가 바라나시에 도착할 때쯤 차장 아저씨가 형님에게 혹시 잔돈이 필요하냐고 말을 건다.

형님이 조금만 바꿔달라고 500루피짜리를 주자 10루피짜리 50장으로 바꿔준다.

100루피짜리 몇 장을 달라 해도 그냥 10루피짜리로만 준다.

이동을 시작한지 17시간이 지나서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에 다시 방을 잡으니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다.

<오늘의 생각>


하루 종일 이동만 했는데 버스에서 인도인의 많은 면을 볼 수 있었다.

 




  1. 숙소 내부의 모습을 보니 대충 어떤 분위기인 줄 알겠습니다. ㅋㅋ
    333km를 가는 버스도, 화장실도 인상적이군요.

  2. 매번 재밌게 읽고 가는데 한번도 댓글을 단적이 없네요...재밌는 여행담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답니다~^^ 지금도 여행중일 텐데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글이 올라오길 기다릴께요~!!()

  3. 이제사 글이 올라왔네요.
    여행에 많은 관심이 있다보니
    뒤지다 넘 재밌고 알차서 계속 기다리게 되네요.
    항상 건강한 여행하길 빌며 화이팅!

  4. 오늘도 잘보고 갑니당

    항상 포스팅 글에 절반은 먹는사진이라
    먹는거하난 걱정이 안되는구만ㅋㅋㅋㅋㅋ

    용민군 사진도 자주자주 올려용
    보기좋구만^_^

  5. 항상 위트있는 멘트와 명랑한 여행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글에서 댓글 보는 것이 재미라고 하여 오랫동안 봐왔지만 처음으로 립흘다네요 ㄷㄷ
    즐여행 하세요

  6. 안나푸르나는 저희 이모님이 가보시고 늘 가보라고는 하시는데, 절대 튼튼하질 않은 몸이라 가보지는 못하고...대신 대리만족을 느껴봅니다. 20대 초반에 중국을 한달 동안 베낭여행다녀본 이후로 절대 후진국은 베낭여행을 하지 않으리라!!!라고 맹세를 했으나, 세월이 지나 님의 여행을 보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그런데요, 제발, 부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음식 가려드세요 ㅠㅠ 제가 다 가슴이 조마조마 해요!!!!

    • 더 늦기전에 배낭여행 한번 더 가시죠~
      많은 분들이 잘 챙겨 먹으라고 걱정해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가려먹는다고 먹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먹나보네요. ㅠ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7. 이제서야 글을 봤어요
    나도 여행중이라 과거처럼 챙겨볼순 없었네요
    지금 바로셀로나 에서 일주일째 묵는 중이랍니다
    일단 건강해 보여서 좋네요^^
    썬크림 잘 챙겨 바르세요^^
    근데 ....보통 포스팅 하면 사진의 화질이 많이 나빠지는데
    군의 사진은 뽀샾을 해서 올리나요?
    전혀 손 안댄 사진이라면 엄청 좋은데요??

    다음 여행기 기다릴께요

    • 제가 들고 다니는 넷북은 절대 포토샾을 돌릴 수 있는 사양이 안됩니다.
      그냥 리사이즈만 해서 올렸는데 조명빨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어서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습니다. ㅎㅎ

  8. SLR클럽에서 예전에 보고 한동안 안들어오다

    함 들어와서 보고 일사천리로 정독해 버렸습니다.ㅠㅠ(감동의 눈물)

    시크한 글귀들과 오로지 먹는것에 대한 포스팅 너무 좋네요 물론 여행정보도 있지만

    한국의 뜨거운 여름에 널러가고 싶었는데 엄청 힐링이 되는 느낌입니다.

    배낭여행 함 가볼라고 했는데 나이처먹고 어딜가냐고 부모님에게 욕바가지로 먹었었는데.....걍 갈걸 그랬네요 ㅠㅠ

    남자나이 20먹으면 부모님말 별로 안듣는게 좋다는데......

    힘내시고 항상 자주 들어와서 리플 달아드릴게요

    • 부모님 말씀은 안듣는게 맞는 건가요? ㅎㅎㅎ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고 애독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니 앞으로도 자주 리플 달아주셔야합니다.

  9. 지난 번에 왔을 때 글이 없어서 오랜만에 왔더니 세 편이나 올라왔네요~
    중학생 때 류시화 작가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는 참 신비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인도에 도착하셨군요~
    인도 여행 역시 별 탈 없이 보내셨으면합니다^^

  10. 우와 정말 힘든곳인데도 현지에 잘적응하며 이곳저곳 잘다녀오신 님이 정말 멋져보여요
    아아 저도 해외한번가보는게 꿈인데요 건강이허락치않아 멀리갈수가없어요
    7년전엔 돈이없어서 못갔더니 돈을 조금손에 쥐고나니 건강이 말할수없이 파탄나서 병원쇼핑만해요
    지금처럼 다닐수있는 튼튼한 두다리가있을때 가고싶은데 많이다니세요 언제나 홧팅입니다 님처럼 멋진분이 아직 여자칭구가없다는게
    믿기지가않아요 ㅎㅎㅎㅎ 곧 좋은인연만나실거라 믿어요

  11. 룸비니를 가셨네요?
    여행기를 읽을수록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책으로 보던 곳을 직접 가보는 느낌을 저도 알고는 있지만
    매번 읽을수록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그 나무에 걸려있는 '참 좋은 말'... ㅠㅠ
    그러다가 금성 운동화를 보고 빵 터졌네요.
    그나저나 울다가 웃으면 큰일나는데... 쩝~

배낭메고 세계일주 - 032. 안나푸르나, 진짜로 안녕.


히말라야 롯지의 채소 카레는 정말 맛있다.

밥도 많이 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행복한 하산길이다. 

어제 내 손으로 만졌던 설산이 이제는 다른 산들 사이로 빼꼼하게 보인다.

마마님의 은총은 계속된다. 당이 최고다.

여러분 어서 펠라스(FELLAS) 음악 들어 보세요.

저번편에서 이미 들으셨어도 두 번 들으세요.

산속에서 전기를 얻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태양열발전과 수력발전이다.

이 작은 건물 안에서 수력발전을 해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니 신기하면서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가 소비하는 전력소비량과 비교를 해보게 된다.

그런데 요새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 중국 발전회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공산품은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오는데 중국은 네팔을 지원해주면서 국경지역의 도로를 확장해 수출시장을 확대시키고 있다.

하지만 네팔은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인도와도 인접해 있는 나라라 인도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네팔은 오래전부터 중국과 인도 사이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중립외교를 잘 해오고 있다고 한다.

왠지 광해군이 생각나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역사공부도 더 해야겠다.
참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네팔의 정치적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담으로 주워들은 이야기를 몇마디 더하자면 네팔의 인터넷시장을 두고 중국회사와 우리나라의 SK텔레콤이 경쟁했다고 한다.

결과는 중국회사의 승리였는데 요새는 순위가 밀리고 있다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SK가 진 이유 중 하나가 로비에서 밀렸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정부에서 네팔 아이들을 위한 기아대책기금을 책정해서 도와준다고 했지만 정작 당사국인 네팔에서는 우리가 얻는 이득이 있으니 네팔의 아이들을 먹이는 것 아니냐며 뇌물을 달라고 해 아직도 못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현재는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 어느 정도 실권을 잡은 마오군이 반란군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마오군이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을 하던 사람들을 습격하는 산적질을 했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실종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혼자 트레킹을 하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웃긴 점은 당시 반군들이 트레커들의 금품을 갈취하면서 차용증을 써줬다고 한다.

당신들이 기부한 후원금은 마오군이 정권을 잡는 날 모두 돌려줄 것이라는 차용증을 써줬는데 실권을 잡은 현재, 아직 그 돈을 돌려받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한, 그 차용증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내려가는 트레커가 다른 반군을 만났을 때 이미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 통과시켜주라는 영수증 역할도 했다고 한다. 

네팔의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제 내려갑시다.

앞서 말했듯이 위 이야기는 주워들은 것이라 정확하지 않으니 잘못된 내용은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밥 시간이 돼서 볶음밥을 시켰는데 겉보기에는 화려한데 맛은 없었다.

쌀은 뻥튀기 맛이 났고 전체적으로 맛이 이상했다.

내가 맛이 이상하다고 하자 마마님들꼐서 볶음밥을 한 입씩 드셔보시더니 맛있는데 내 입맛이 특이하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맛이 없다고 했던 음식들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여행기의 주인공은 나니까 앞으로도 내가 맛없으면 맛없는 거라고 하기로 했다.

어차피 100가지 음식을 먹어도 1가지 정도만 맛 없는 싸구려 입맛을 가진 나니까 별 상관도 없을 것 같다.

ABC를 향해 올라갈 때 만났었던 내리막 계단이 죽음의 계단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도가 조금 높아지니 마차푸차르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약간의 고도가 변할뿐인데 산의 모습이 계속해서 변한다. 

계단을 오르느라 수고했으니까 음료수 한 캔씩을 사먹었다.

내가 알기에는 코카콜라 공장이 네팔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스프라이트는 베트남에서 제조됐다고 쓰여있고 베트남어도 적혀 있었다.

정식 수입을 한 것인지 밀수를 한건지 모르겠지만 스프라이트가 밀수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설산은 가슴속에 묻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즐기며 간다.

그런데 필터를 빼지 않았더니 플레어 현상이 일어났다.

역시 게으르면 사진을 망친다.

한참을 올라왔는데 다시 한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고 또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하산길은 내려가기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죽어라 오르기만 하다가 계속해서 내리막만 있다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누군가가 똥을 밟았다.
만약 똥이 깨끗했다면 똥을 피하지 않고 다녔을까.
아, 똥이 깨끗하다면 똥이 똥이 아니겠구나. 

끝없는 계단이 펼쳐졌는데 이상하게 뛰고 싶어졌다.
쉬지 않고 한 번에 뛰어 올라가기는 무리겠고 딱 한 번만 쉬고 뛰어 올라가기로 했다.

중간 정도까지 올라가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내 뛰어올랐지만, 끝에서 한 10여 개의 계단을 남기고 한 번 더 쉬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체력도 길러야겠다.

소야,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사실 마마님의 용안에 탈이 났다.
어제 마마님을 위해서는 못 구할게 없다며 당당하게 구해 온 감자가 문제였다.
얼굴에 약한 화상을 입었을 때에는 감자팩을 하면 독이 올라 상태가 더 심해진다는 것도 모르고 웃으면서 팩을 하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마마님의 용안이 팅팅 부으셨다.
아름다운 마마님의 얼굴에 탈이 나서 우리 팀에 비상이 걸렸다. 

내 가방에 화상에 붙이는 패치가 있긴했지만 부위가 얼굴이라 차마 도전을 못하고 계속 내려오기만 했다.

그러다 혹시나 식염수라도 있을까 해서 촘롱의 약국에 갔는데 식염수는 없고 토마토만 있길래 서리를 했다.

겉 부분은 떫었지만 알맹이 부분은 약간 토마토 맛이 나기는 했다.

혹시나 해서 한 개 더 먹어봤는데 똑같은 맛이었다.

해가 지면서 마차푸차르의 정상부분에만 빛을 뿌려주는 모습은 황홀경이었다.

해는 지고 구름이 산을 점점 뒤덮는다.

해가 완전히 졌지만 내일이면 이 아름다운 설산을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바라봤다.

저녁은 역시나 달밧이다.

내가 달밧을 좋아하는 모습을 본 네팔 사람인 기아누나 주방장들은 즐거워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즐거운 것과 같은 이치다.

산에서는 물이 차가워서 손으로 먹고 손 씻기가 싫어 매번 숟가락을 쓰다가 한번쯤은 손으로 먹어 기아누를 놀라게 하려 했는데 결국은 기회가 없었다.
역시 생각나는 일은 바로바로 해야겠다.

<오늘의 생각>


일행 중에 환자가 생겨 최대한 빨리 하산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사람들의 체력 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했는데 바보처럼 굴었다.

 

이제 안나푸르나는 사라지고 다시 불암산으로 돌아왔다.

마마님의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오늘은 최대한 빨리 내려가기로 한다.

강을 건너가려고 준비하는 당나귀들을 보니 소금을 지고가던 게으른 당나귀가 강물에 일부러 빠졌다는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실제로 강에 빠지나 기대를 하고 봤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도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내 동심이 상처받았다.

설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꼭 다시보자.

우리 팀의 기본적인 진행순서는 기아누가 제일 앞에 서고 진형씨와 마마님이 따라간다.

그 뒤에 내가 붙고 제일 뒤는 마마님의 포터인 샴이 맡는다.

내가 사진을 찍다가 샴보다 뒤로 처지면 열심히 달려서 따라잡는다.

거의 다 내려왔으니 스프라이트 한 병을 상으로 준다.
난 탄산음료는 맥주만 좋아하는데 콜라보다는 사이다가 좋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 마지막으로 힘을 낸다.

포카라로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배보다 술이 고파 과자와 에베레스트 맥주를 시켰는데 쓰레기 인도 맥주와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인도에서는 맥주가 너무 맛이 없고 네팔에 들어와서는 산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먹으려고 참다보니 간이 한참을 쉬었는데 이제 다시 가동을 한다.

마마님은 얼굴이 따가워 계속해서 손수건에 물을 적셔 대고 내려오느라 고생하셨다. 

택시는 작아 지프를 타고 내려가야하는데 지프 기사 아저씨들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밥을 먹기 전에 살짝 떠봤는데 비싸길래 점심을 먹고나서 결정한다며 다시 돌아왔다.
술기운이 살짝 돌기 시작해 흥겨운 기분으로 흥정을 하러 갔는데 잘 안깎아 주려고 해 결국 3600루피에 지프를 빌렸다.

환자가 있어 최대한 빨리 내려가야해 아쉬운 것은 우리니 적당히 흥정을 하고 출발한다.


포카라에 도착해 약국에 가보니 연고를 하나 주며 바르면 괜찮아질거라고 했다. 

마마님의 용안 문제도 해결됐고 1주일동안 산을 타느라 고생했으니 마무리 파티는 하기로 했다.


네팔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한국인식당에서 삼겹살도 파는데 제대로 된 삼겹살은 아니지만 고기다.

난 육식성 잡식주의자기에 고기면 무조건 맛있고 행복하다.

원래 외국에서는 기본 상차림에 물을 주는 일이 없는데 한식당이라 물이 공짜다.

고기를 다 먹어가니 옆자리에 계시던 분이 아가씨 3명이 수고 많았다며 소주와 염소내장을 주셨다.

아저씨, 전 머리가 긴 남자라 죄송합니다.

근데 언제쯤 다시 삼겹살을 먹을 기회가 올까.

<오늘의 생각>


산에서 내려와 마시는 술은 꿀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발을 팔러갔다.

어제 산에서 내려와 숙소를 잡자마자 신발을 팔러 갔더니 2시간 뒤에 오라고 하고 2시간 뒤에 가니 주인이 없다고 다시 1시간 뒤에 오라고 해 다시 갔는데도 주인이 없었다.

제대로 진상짓을 한번 부리려다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마님들을 생각해 알았다하고 나왔었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사장이 있는데 자기가 나한테 팔아 놓고 기억을 못한다.

이건 빌려주는거지 파는게 아니니 자기 신발을 돌려달라며 영수증을 달라길래 헛소리말고 1천루피에 판다고 했다.

계속해서 흥정을 하다가 결국 700루피에 팔았다.

1000루피에서 사서 2주동안 신고 다시 700루피에 팔았으니 결국 사용료로 300루피(한화 3600원)를 썼다.
오랜만에 하는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물론 신발의 질은 최악이었으니 혹시나 한국에서 바로 네팔로 가실 분들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등산화를 챙겨가시기를 추천합니다.

돈도 생겼으니 밥을 먹으러 간다.

난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아침에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한데 여행자거리 주변이라 달밧을 안 판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뚝바를 먹으러 갔다.

사람들은 맛있다는데 나에게는 그저 밀가루 맛이 겉돌 뿐이다.

배가 안부르니 만두도 한 판 시켜먹는다.

포카라에서 휴식을 좀 취하려고 했는데 먹을 것이 마땅치 않으니 어서 떠야겠다.

정상적인 여행자라면 그냥 아침에는 브런치로 토스트 먹고, 점심에는 한국식당을 가고,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썰으면 될텐데 참 여행을 복잡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여행이 음식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고 먹는 것으로라도 그 나라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돈도 없으니 서민들의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점도 참 좋다.


한국식당에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빌려와 읽었는데 시인과 철학자들을 엮은 발상은 정말 대단하다.

시를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한지가 얼마 안됐고 철학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여행을 하는 도중에 스쳐지나가듯이 읽기에는 아쉬운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천대받고 있는 인문학과 기초과학 분야가 제대로 평가되는 날이 다가오기를 바란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학생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데 사회적으로도 천대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안 좋다는 점이 안타깝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빵만으로는 안되고 책도 읽어야하며,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사랑도 하고, 대화도 하는 등, 빵 이외의 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술도 먹어야 한다.

근데 피같은 술을 쏟았다.

가슴이 찢어진다.

네팔에도 맥주의 종류가 다양한데 에베레스트가 맛있었으니 다 먹어봐야한다.

저 치즈는 야크의 젖으로 만든 치즈라는데 꽤 맛있었다.

샌드위치는 포카라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써있길래 사봤는데 양도 많고 맛있었다.

네팔의 산에 올라가려면 입장권과 팀스 퍼밋이 필요하다.

입장권은 말 그대로 입장료고 팀스 퍼밋은 산에서 있는 트레커들을 확인하기 위한 허가증인데 일회용이다.

난 2번 올라갔으니 2번을 발급받았는데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팀스 퍼밋을 1,750루피 정도에 발급받았다.

그런데 대행으로 하면 1,100루피면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다시 올라갈 때는 대행을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똑같은 것을 사도 가격이 다를 때가 있어 남의 가격과 비교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라 여기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내가 잘 샀으면 뿌듯하지만 내가 실수했을 때는 가슴이 찢어진다.

네팔에서는 팀스 퍼밋 외에도 환전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1번 더 잘못 열었다.

네팔루피는 인도루피의 1.6배의 고정환율을 가진다.

그런데 포카라에 먼저 간 팀이 1만 인도루피를 네팔루피로 바꿀 때 400 네팔루피(한화 4,800원)을 수수료로 뗀다길래 카트만두에서 1만 인도루피당 200 네팔루피의 수수료를 떼고 바꿨는데 포카라에 와보니 그냥 바꿔줬었다.

역시 판도라의 상자는 아예 안 여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항상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나서 후회를 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고 술판은 여는 것이 낫다.

전기가 나가 양초를 켰더니 분위기도 산다.
 

오후에 안줏거리와 술을 사오다 마마님들을 만났었다.

혼자 술을 먹으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하셨는데 마마님들은 혼자 술 마시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르신다.

술은 같이 먹어도 맛있고 혼자 먹어도 맛있어서 술이다.

<오늘의 생각>


얼마 만에 가지는 혼자 술 마시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이 좋은 시간을 인도로 들어가면 못 가진다니 아쉽다.

 

아침일찍 일어나 오랜만에 배낭을 다시 싼다.

룸비니로 가는 버스가 8시에 출발한다기에 어제 먹은 샌드위치를 포장해 버스정류장에서 먹는다.

난 상도덕을 아는 남자니까 테이블 이용료로 홍차 한 잔을 시켜서 같이 먹었다.

매번 안녕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설산과 안녕이다.

중간에 버스가 잠시 정차했는데 버스 위를 보니 염소가 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버스 위에서 균형을 잡는 염소도 걱정됐지만 버스 위에 올려놓은 내 배낭에 똥을 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90도는 아니고 100도 정도로 고정된 의자에 앉아 7시간정도 가니 룸비니로 들어가는 관문인 바이라하와에 도착했다.

같이 온 서양 가족은 그냥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나에게 쉐어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봐 가격을 물어보니 내가 300루피를 내야한다길래 당연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앞에 가던 버스가 길가에 뒤집어져 있고 경찰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만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지만 버스가 뒤집어진 모습을 보니 움찔했다.

버스가 룸비니에 도착하고 한 30분정도 걸어가니 Korean Temple인 대성석가사가 보인다.

날도 더운데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이동했더니 힘이 들었는지 사진의 수평이 완전히 틀어졌다.

방을 잡고 씻은 뒤 저녁 공양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네팔식과 한식이 섞인 밥인데 점심을 걸렀더니 꿀맛이었다.

하긴 내 입맛에 안 맞는 음식 찾기가 어렵긴 하지.

<오늘의 생각>


오랜만에 배낭을 다시 멨더니 무겁다.

 



  1. 점점 아시아와 멀어지시는 것 같네요~
    DJL님의 앞으로 여정도 굉장히 궁금해집니다^^
    블로그에 두 번 와봤지만 여행기를 볼 때마다 작지만 저도 무언가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드네요.
    몸 조심하시고, 좋은 여행기 기대하겠습니다.

    • 저도 제 여행이 앞으로도 재미있고 즐거운 여행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이 두번째시면 한 번 더 오셔야 삼세판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부터는 정이 있으니 더 자주 오셔야해요.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니 꼭 도전해보세요~
      도전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2. 현재 나도 여행중 이라 오늘에서야 읽었어요
    하산이 무척 아쉬웠겠네요
    다시 가기가 쉽지 않은 산들인데 ....

    인도를 다시 들어가는군요~?!
    좋은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난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답니다
    7월11일에 도착했어요
    8월14일날 서울에 도착하는데..
    이번 여행은 바로셀로나 베네치아 그리고 크로아티아 의 두개정도 도시와
    바르샤바 를 들린후 돌아갑니다

    건강하시길 .....

    • 그 넓은 인도를 조금만 훑고 지나갈 수는 없죠.
      전 노르웨이는 모르겠지만 크로아티아는 꼭 갈거에요.
      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크로아티아 출신이건든요. ㅎㅎ

      여행 즐겁게 하시고 여행중에도 리플 달아주셔야 합니다.

  3. 용민군 덕분에 히말라야 설산을 보면서 안구정화
    제대로 했습니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오겠네요.
    그 전에 사진을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으네요.
    저에게 겨울은 죽음이거든요. ㅜㅜ
    사진과 글 정말 잘 봤어요.

  4. 자세하고 생생한 히말라야 등반기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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