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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2.08.07 [2012.7.29~2012.7.31]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2 (설악산 백담사~설악동 Part.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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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2.04.15 [2012.2.2]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5일차(강릉 소금강)
  11. 2012.04.08 [2012.2.1]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4일차(부산)
  12. 2012.04.05 [2012.1.31]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3일차(여수, 순천)
  13. 2012.04.03 [2012.1.30]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2일차(전주, 남원)
  14. 2012.04.02 [2012.1.29]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1일차(논산)
  15. 2012.01.28 [2011.8.1~2011.8.3]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 Part.2
  16. 2012.01.28 [2011.8.1~2011.8.3]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 Part.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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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0.01.07 [2009.7.28]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열여섯째 날 (제주도-올레길 7-1코스, 외돌개)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 - 001. 경복궁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연재가 끝이 나기 전부터 새로운 주제를 어떻게 정해야할지 고민하다 우선은 내가 관심이 있던 역사와 전공인 건축, 그리고 나와 뗄 수 없는 여행에 대해 써보기로 하고 우선은 서울 근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정했다.

가장 첫 이야기는 우리에게 친숙하며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경복궁을 주제로 정하기로 했다.

경복궁의 정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화문인데 광화문의 뜻은 임금의 교화가 빛처럼 만방에 미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광화문에는 3칸의 문이 있는데 이는 왕의 나라이기에 3개이고 황제의 나라였던 중국의 자금성은 5칸의 문을 가지고 있으며 가운데의 문은 임금만 지나갈 수 있는 문으로 왕세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기 전에는 가운데의 문으로 지나가지 못했었다고 한다.

현재의 광화문은 1990년 시작된 경복궁 1차 복원정비 사업을 마치며 2010년 재건된 것으로 지금은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광화문 가운데 칸의 천장을 보면 음양오행에서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을 통해 궁궐 안으로 들어오면 매표소가 있는데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니 시간대를 맞춰가면 광화문 앞에서 진행되는 수문장 교대식도 볼 수 있다.

입장권을 검사하는 곳은 광화문 다음에 있는 예를 부흥한다는 뜻을 가진 흥례문으로 이 곳부터 경복궁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이야기 할 주제를 정한 뒤, 이야기의 깊이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 학술적인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이야기 위주로 글을 쓰는 것이 내 글을 접한 많은 분들이 우리 주변의 문화유산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적당한 선을 찾아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궁궐도와 여러 건물들의 도면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 볼 생각도 했었는데 자세한 기준은 앞으로 몇 개의 이야기를 더 진행해봐야 알 것 같다.

흥례문을 지나면 바로 앞에는 다리가 보이는데 이는 금천교라 불리는 영제교이다.

금천교에는 풍수지리 사상이 들어있어 나쁜 기운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풍수지리에서 바람은 기운을 흩어지게 만들고 물은 기운을 멈추게 만드는 것을 기본적인 원리로 하고 있다고 한다.

금천교에는 해치처럼 보이는 동물이 있는데 이는 해치가 아니라 천록이라 불리는 상상속의 동물인데 물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천교를 지나면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으로 향하는 근정문이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조선은 왕의 국가이기에 3칸의 문만 만들 수 있었는데 근정문에는 총 5개의 입구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3칸의 문은 근정문에 달린 문이지만 나머지 양 옆의 문은 벽에 달린 문임을 알 수 있는데 평소에는 근정문을 닫아 놓았기에 그 때 사용하던 출입구가 벽에 달린 양 옆의 일화문과 월화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근정문 역시 가운데 칸은 왕만이 지나갈 수 있는 문이었는데 왕세자의 즉위식도 이 근정문 앞에서 이뤄졌었다고 한다.
근정전은 왕의 건물이기에 아무리 왕세자라고 하더라도 근정전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근정문 앞에서 왕의 즉위식을 열고 난 후 근정전으로 향했다고 한다.

근정문을 지나가기 전 왕이 다니던 가운데 칸의 정중앙에 서면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건축을 추구해왔기에 근정전의 처마와 북악산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만들어 냈다.
처음 이 풍경을 알게 된 뒤로 경복궁에 갈때면 항상 이 위치에 서보는데 GPS나 정밀한 측량기계 없이 이러한 건축을 한 조상님들이 정말 대단하다.

근정전은 왕이 정사를 보는 곳으로 부지런하게 정치를 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근정전 주변에는 행각이 있는데 이 곳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행각의 기둥을 보면 기둥 사이를 연결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약탈한 유물들의 박람회를 이 행각에서 하며 이 곳에 있던 건물들을 헐었다고 한다.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역시 어도가 있는데 어도는 다른 길과 구분되어 있으면서 높이도 약간 높게 설치되어 있다.

박석이라 불리는 바닥의 돌들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일부러 투박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녀 그나마 편평해졌지만 복원되었던 초기에는 돌들의 높이가 꽤 높고 생김새도 어울리지 않았었다고 한다.  

어도의 양 옆에는 24개의 품계석이 있어 조회할 때 위치를 나타내주는데 근정전과 가까울수록 높은 품계를 가진 신하들이었다.
특히 우리가 사극에서 자주 들었던 당상관은 고위 관리직으로 대청에 올라 왕과 함께 정사를 논할 수 있다고 해 당상관으로 불렸고 그 아래로 당화관, 참화관이 있었다. 

흔히들 인터넷에서 과거의 조선은 복지국가였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 고리이다.
이 고리는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울 때 천막을 치기 위해 사용하던 고리라고 한다.
또한 겨울이 되어 날이 추우면 신하들을 위해 근정전에서 열리던 조회도 평소보다 줄였었다고 한다.

근정전으로 올라가는 길의 중앙에는 봉황이 새겨진 답도가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 때문인지 이곳은 출입금지 표시를 해 놓았다.

아쉬운대로 신하들이 걷던 계단을 통해 올라오면 근정문부터 흥례문, 광화문을 통해 궁궐 밖이 보인다.
왕세자가 즉위식을 마치고 왕이 되어 처음 근정전에 올라 이 풍경을 보면 그제서야 자신이 왕이 됐음을 실감했을 것 같다.

근정전은 두 개의 단 위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상월대와 하월대로 불린다.
이 또한 중국과 비교했을 때 한 단이 낮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기에 앞에서부터 중국보다 격이 낮게 표현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황제의 권위를 침범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모습이니 너무 안타깝거나 불편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을 하나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궁궐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경복궁이 자금성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경복궁은 1394년에 착공하여 10개월 뒤인 1395년에 완공되었으며 자금성은 1406년 착공하여 1420년에 완공되어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25년 빨리 지어진 건물이다.
또한 자금성에 비해 엄청 작다고 알려진 경복궁은 자금성의 60% 크기인 13만 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니 경복궁을 너무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근정전의 상월대와 하월대에는 12지신과 사방신의 조각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방신은 각자 수호하는 방향에 맞춰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의 위치에 배치되어 있고 12지신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순서에 맞춰 배치되어 있는데 소의 위치만 축시 방향이 아닌 4시 방향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술과 해에 해당하는 개와 돼지의 조각만 존재하지 않는데 이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없어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개와 돼지는 천한 동물이며 주인이 바뀌어도 잘 따르는 동물이기에 임금이 계신 곳에 배치할 수 없어 제외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근정전 내부에는 왕을 상징하는 물건이 3개 있는데 천장에 달린 닫집, 왕이 앉던 용상, 그 뒤에 있는 일월오봉병이 있다.

용상은 당연히 왕을 위한 자리이며 닫집이라 불리는 것은 불교 문화에서 넘어온 것으로 부처님과 같은 귀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월오봉병은 음양으로 이루어진 우주와 유교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기본적인 다섯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을 의미하며 왕을 상징하는 병풍인데 이러한 병풍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지 않았고 오직 조선에서만 썼다고 한다.

그렇기에 왕이 외출을 할 때도 휴대용 일월오봉병을 가지고 다녔으며 왕의 얼굴인 용안은 함부로 그릴 수 없기에 임금의 행차같은 모습을 그린 그림에는 왕 대신 일월오봉병을 그렸다고 한다.
일월오봉도는 우리가 가진 만 원짜리에도 세종대왕님의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또한 근정전 중앙의 천장에는 왕을 상징하는 황룡이 존재한다.

이 황룡의 발톱 개수를 세보면 7개로 황제를 의미하는 칠조룡이다.
이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7조룡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조선은 왕의 지위를 가진 나라였기에 왕이 입고 있던 곤룡포에는 5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수놓아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근정전 옆에 있는 이 솥은 왕권을 상징하는 정이다.
과거 중국 하나라의 왕이었던 우왕이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자신이 통치하던 9개의 주에서 바친 청동으로 솥을 만들고 구정이라 불렀던 것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솥이 생겨났다고 한다.

다른 쪽에는 순우리말인 드므라 불리는 큰 솥같은 그릇이 있는데 이 것은 화마를 막기 위한 장치이다.
과거 사람들은 화마가 불씨를 가져와 불을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화마의 생김새가 엄청 무섭게 생겨 불을 내러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라는 의미에서 드므를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근정전의 왼편에는 과거 자격루가 설치되었던 터를 표시하는 표지석이 있는데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복원된 자격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루각 터 옆에는 수정전이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세종대왕 때 집현전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황제가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집현전이 수정전으로 바뀐 이유는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을 때 집현전 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발했었는데 왕이 된 세조가 왕권에 도전한 자들에게 죄를 물어 집현전을 없애버렸기에 현재는 수정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근정전의 서쪽에는 경복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경회루가 위치하고 있다.

경회루라는 이름은 하륜이라는 신하가 지은 것으로 “대개 어진 임금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 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라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회루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돌 기둥 위에 지어진 2층 누각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기 전에는 기둥에 용이 조각되어 있어 물에 비친 용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고 하는데 고종 황제 때 복원하며 그냥 민무늬 기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경회루의 지붕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옥에서 기와 밑의 공간을 빈 채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적심이라 부르는 나무들과 엄청난 양의 흙을 넣어 건물의 기둥을 지붕이 누르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 구조적인 위험성이 있어 현재 경회루의 지붕에는 흙을 빼고 보강재로 보강해 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지붕 위로 하얀 시멘트 처럼 보이는 것은 마루라 불리는 것으로 기와를 여러장 겹치고 회칠을 해 만든 한옥의 전통 기법이며 특히 중앙부에 위치한 것을 용마루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추녀마루 위에 올려진 조각들은 중국에서 전해진 잡상이라 부르는 것으로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잡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의 모습을 하고 있고 건물의 규모에 따라 최대 11개까지 올리는데 경회루에는 11개의 잡상이 올려져있다.  

또한 연산군이 경회루에서 흥청이라 불리던 기생들과 놀던 것에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경회루의 연못을 파며 나온 흙은 교태전의 뒷동산인 아미산을 만드는데 쓰였다.

현재 일반 관람으로는 경회루에 입장할 수 없는데 1주일 전부터 열리는 사전 예약을 통하면 경회루에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다음에 간 곳은 임금님의 침전인 강녕전으로 임금님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경회루의 지붕을 이야기하며 용마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강녕전 때문이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동물로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에는 임금이 있기 때문에 용마루를 만들지 않고 추녀마루만 만들었다. 

강녕전의 대청은 9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방을 왕이 사용하고 주변 칸에는 지밀상궁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 왕의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강녕전은 월대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의 침전이기에 당연히 온돌과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왕이 머무는 궁궐에서는 연기가 많이 나는 나무대신 숯을 이용해 난방을 했다고 한다. 

강녕전의 뒷 편으로 가면 굴뚝이 보이는데 지하를 통해 연결된 온돌이 굴뚝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굴뚝을 자세히 살펴보면 만수무강이라 써진 글을 볼 수 있는데 모든 부분들에서 왕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굴뚝 위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에 집처럼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연가라고 부른다.
연가는 조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빗물이 들지 않도록 하고 아궁이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연기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강녕전 뒤에는 중전마마의 침전인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은 사귈 교(交)자와 태평할 태(泰)자를 써 왕과 왕비 두 분이 사귀셔서 태평한 세상을 펼칠 훌륭한 세자를 생산하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건물인데 일부 몰지각한 중국의 가이드들은 왕비가 교태를 부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교태전 역시 용마루를 얹지 않았지만 임금님이 계신 강녕전과 격차를 두기 위해 월대를 세우지 않고 건물의 규모도 조금 작게 만들었다. 

교태전의 뒷 편에는 경회루를 건설하며 생긴 흙으로 만든 동산인 아미산이 있다.

이 아미산에는 4개의 굴뚝이 있는데 각 굴뚝의 가장 밑에서부터 사악한 것을 쫓아내는 불가사리, 사군자와 십장생, 길함과 복을 상징하는 학과 박쥐를 새긴 무늬판을 박아놓았고 가장 위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진 무늬판을 박아놓았다.
아름다운 굴뚝들은 현재 보물 81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교태전을 나오면 우리가 대장금에서 보던 수라간이 보이는데 궁궐음식 만들기와 같은 각종 체험행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현재 경복궁은 2차 복원 계획에 따라 복원 중인데 2차 복원이 끝나는 2030년에는 고종 황제시절 재건했던 경복궁의 75% 수준까지 복원이 완료되며 가장 큰 틀은 민속박물관과 주차장 철거, 금천교 물길 복원이 있다.

경복궁을 구경하다 보면 동쪽에 보이는 기괴한 건물은 2차 복원에서 사라질 민속박물관이다.

민속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원래 왕세자가 머물던 동궁이 있던 자리로 처음 민속박물관이 들어설 때부터 건축학계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왔던 건물로 전통양식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궁궐 안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높은 전각은 이질감을 주며 과거 일제강점기 때 박물관,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던 경복궁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기에 2030년 전에 이전 될 계획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연못과 정자가 나오는데 정자의 이름은 향원정으로 향기가 멀수록 맑다는 뜻인 향원익청에서 따왔다고 한다.

향원정의 연못은 땅을 상징하기에 네모나게 만들고 정자가 위치한 섬은 하늘을 상징해 동그랗게 만들었는데 이를 동양사상에서는 천원지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향원정의 서쪽에는 물이 돌아 들어오는 열상진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는 풍수지리에서 명당수로 불리는 서류동입의 원리에 따라 일부러 서쪽에서 물이 흘러와 동쪽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향원정의 뒤로 가면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아픈 역사를 가진 건청궁이 나온다.

맑은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건천궁 안으로 들어가면 옥으로 만든 병 속에 있는 얼음조각과 같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을 가진 옥호루가 나온다.

명성황후는 이 옥호루에서 살해당하고 뒷 산에서 불에 태워졌는데 일본의 악행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졌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게 된 일본은 형식적으로 을미사변을 일으킨 48명을 감옥에 구치하였으나 이들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풀려났고 결국 을미사변을 책임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현재 남겨진 문화유산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하더라도 소화시설은 필요하기에 경복궁 내부에는 곳곳에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소화전 위에 시트지를 붙여놓은 모습이 참 귀여웠다. 

건천궁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경복궁의 북동쪽에 위치한 집옥재가 나온다.

집옥재의 모습은 우리의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데 이는 중국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지어진 건물이기에 그렇다.
가장 큰 특징은 유리로 된 창을 가지고 있고 벽돌을 이용한 점, 지붕의 처마선의 모습이 다른 것을 꼽을 수 있다.

집옥재는 옥처럼 귀중한 것을 모아 놓은 건물이라는 뜻인데 옥 대신 왕실의 도서를 모아놓은 서재로 책을 중히 여기는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집옥재는 궁궐의 다른 건물들처럼 내부가 개방되는 건물이 아닌데 올해에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처럼 꾸며서 개방을 해놓았다. 

내부로 들어갈 때는 앞에 비치된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야하며 서탁이 있어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내부 개방을 한 덕분에 지금까지 항상 밖에서만 보던 집옥재의 천장을 실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청나라 풍의 건물을 지었기에 창의 모양도 우리가 중국영화에서 보던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실내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는 박세당의 장원급제 답안지였는데 한문을 잘 모르니 내용을 알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집옥재 건물의 왼쪽에 위치한 팔각형 건물인 팔우정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책을 습기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땅에서 떨어진 누각형태로 지었는데 이번에 개방하며 카페로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한다는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궁궐 안의 건물에서 커피를 팔아야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옥재를 마지막으로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나서 경복궁의 북서쪽에 있는 신무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신무문을 통해 과거 조선의 왕이 묵던 경복궁 밖으로 나오면 현재의 대통령이 지내는 청와대가 나오는데 과거와 현재의 궁을 보며 경복궁 답사를 마친다.


세계일주 여행기를 쓸 때는 제가 겪은 이야기 위주로 


글을 썼기에 조금은 쉬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려니 글이 잘 써지지 않네요.


계속해서 생각하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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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오....새 글!!! 잘 앍을게요!!!

  2. 여행기를 마치고, 새 글을 시작하셨군요ㅎㅎㅎㅎ
    어디선가 듣기로 박석은 평평하게 만들 기술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빛의 난반사를 통해 서있는 사람이 눈이 부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평평하지 않아서 중심을 잡고 서있어야하기 때문에 졸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들었네요ㅎㅎㅎㅎ

  3. 한국인인데도 한국문화유산에 대해 지식이 박식하지 않은데, 사진으로 보니 더 이해가 잘 가는 것 같아요.
    저도 한번 경복궁 관련해서 포스팅을 했었는데, 정말 글쓰는데 엉첨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ㅎㅎ
    제가 아는 정보외에 새로운 정보를 얻고 가네요.

  4. 경복궁에 대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몇번 갔던 곳인데도 제게 새로운 내용이 참 많네요~

  5. 오랜만에 봅니다.

  6. 경복궁에 대한 자세항 정보 감사합니다. 글도 잘 쓰셨고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한국의 문화에 대해 더 잘 알아간다면 참 보람된 일이 아닐수가 없겠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정보 위주 글이라 세계여행하던 때 글처럼 재미가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는 아쉽습니다. 여기를 방문하는 95% 이상의 사람들이 그때 그런 글이 좋아서 왔던 사람들이었을 거라 저는 100% 확신합니다.

  7. 회사 근처인데도 한번 가기가 어려웠는데
    글을 읽고나니 한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잘 읽었습니다~ 쓰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8. 대전에 사는 나이가 좀 되는 아줌마입니다..^^
    우연히 용민군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접하고..그 재미난 글을 정말 밤새워 읽었답니다..
    그리고...오늘부터 쓰기 시작하신 우리문화유산이야기를 읽고 가슴이 뛰기시작했어요..
    내가 평소에 우리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현장답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곤란한 문제라서.. 더욱더 좋았어요~
    이렿게 글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정말 감사합니다..

    용기있고..정의롭고..유머스럽기도한..푸른 나이의 용민군에게 늘 행운이 함께하기를요..^^

  9. 36년전 미국으로 이민와 뉴욕에 살고있습니다.3년전 23년만에 고국을 나갔다 전여행비용을 소매치기 당하고난뒤 정신 없이 뭔지 모르게 경복궁을 갔다온 기억이나네요.하지만 덕분에 오늘 자세한 경복궁 설명 잘보고갑니다.
    그리고 세계일주 여행 스토리 정말 재밌게 그리고 부럽기도하고 잘봤습니다. 그리고 나중 다시한번 더 볼계흭입니다.
    항상 좋은일만 있으시길....

  10. 정말 생각지도 못한 탁월한 여행 주제예요.
    젊은 친구가 어쩌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알고 있는 내용도, 몰랐던 내용도 다시 보며 잘 배웠습니다.
    대학 졸업한 게 너무 까마득해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공이 역사였다는 것만 가물가물~~ ㅎㅎㅎ )

    어도에 깔린 박석은 임금님이 행차하실 때 용안을 좀 더 환하게 비춰서
    태양에 비유되는 높은 분을 좀 더 빛나게 보이도록 했던
    요즘으로 따지면 연예인들 반사판 효과를 누리도록 했다는데~~

    그 당시 과연 목숨이 너댓개가 아닌 이상
    감히 누가 지존의 용안을 빤히 볼 수가 있었겠어요~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님들의 아이디어가 넘 좋았다 싶네요.

  11.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하고 애국심이 절로 묻어나는 글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12.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 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세계여행 글을 보고 보니 글 스타일이나 성격이 너무 다르고, 그리고 내용이 너무 고리타분하네요. 마치 백과사전 같은거 읽는 느낌? 블로그 여행 글을 본다기 보단 공부를 하는 느낌이 드네요. 일단 재미가 너무 없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04. 한 번 주면 정 없다. (~day 08)

전날 잠잘 곳을 찾다 영주시민운동장 구석 위쪽에 정자가 있어 어두운 밤에 몰래 텐트 치느라 힘들었다.

늘 그렇듯이 6시에 일어나 씻으려 하는데 아침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나온 어르신들이 꽤 많아 신경쓰였다.
어제 남은 만두 1판을 다 먹고 럭셔리하게 모닝 오렌지주스를 마셨더니 포만감 100%가 됐다.
텐트를 말리고 씻고 하다보니 8시 40분이 다 되서 정리가 끝났다.  

땅을 협찬해주신 영주시에 감사인사 하고.

어제 그 분들을 다시 뵈러 갔는데 아직 출근을 안하셔서 짧게 편지 써놓고 문경으로 출발.

잠을 잔 체육관 옆쪽에 불상조각이 있어서 세계평화를 기도했다.
문경쪽 길 상황을 잘 몰라서 주유소에 들러 물어보니 점심먹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듣고 활기차게 출발했다. 

처음에는 기차, 그 다음에는 자전거, 이제 다음에는 무엇을 타고 올지 기대하며 영주를 떠난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사랑합시다.

남들 다 찍는 셀카도 한번 찍었는데 사진에 잘 보면 뒤쪽에 태양광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찜질방에 들르는 바람에 사용할 타이밍이 늦춰졌는데 다 쓴 AA충전지 4알이 생겨 처음으로 장착했다. 

포만감이 급속도로 차는만큼 급속도로 배가 꺼지는 만두를 먹었기에 중간에 보급을 한다.
어제 아저씨가 사주신 2400원이지만 589kcal 밖에 안해서 살 엄두도 못 냈던 빵인데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거의 1달이 넘는 유통기한을 가진 빵인데 진공포장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맛은 좀 별로였다. 

앞에 산도 없고 정말 달릴맛 난다.

어느새 문경에 들어왔고 정말로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가지고 있는 비상식량이 많기에 점심은 패스하고 그냥 달리기로 한다.

4대강 길을 찾다가 gps에 물가가 잡히길래 따라 올라갔더니 건너편이 자전거길이라 2km정도 되돌아와 자전거길을 탄다.

이 빨간 아스팔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를거다.
꼭 한강 자전거길이 떠오르고 고향생각이 난다. 

자두를 하나 먹으려고 자전거를 세웠더니 비가 떨어지길래 태양광충전기는 철수시키고 자장구도 방수모드로 전환했다.

안쓰는 국도나 농로를 국토종주 자전거길로 만들어서 차량이 거의 없어 자전거 타기에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는 버스타고 왔었던 문경새재 입구를 자장구로 돌파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해가 너무 쨍쨍해 굴다리 밑에서 프링글스를 먹었다. 이또한 나라면 절대 사먹지 않을 고급과자라 다시 한번 아저씨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행중에 배가 고플 때마다 항상 식량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가정해 일부러 1시간정도 참다가 먹는 훈련을 계속 했는데 나중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난 또 굽이굽이길을 올라갈텐데 저기는 다리가 있네.
에헤라 디야 끌고가자. 남는게 시간인데 촉박해해서 뭐하리. 이리 오너라 자장구야. 천천히 가다보면 올라갈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야 거북이 이 땅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라

우리는 바다에선 조금은 빠르긴 하지만

땅 위에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아

급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죠

그렇게 수 억년을 잘 살아왔죠

뒤집지 말아요 일어 설 수가 없잖아요

그냥 우릴 바라봐 줘요

빨리 가면 시간 남고 할 일도 많은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좋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힘을 내 달려가자

하지만 거북아 토끼를 따라 잡지 못해

거북이 머리는 언제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죠

집 걱정 없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우리는 정말 빠른 거북이랍니다

타카피-거북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고갯길인 이화령을 넘으면서 타카피의 거북이라는 노래를 수십 번은 더 불렀다.
그런데 국토종주 길이 진행될 수록 개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급격한 커브는 물론이고 도로 귀퉁이에 페인트만 칠해 놓아서 노면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이화령을 오르는 경사도 너무 가팔라서 100m 끌고 올라가 한숨 쉬고 다시 100m 전진하는 거북이 행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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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오르다보니 이화령 정상에 다왔다.

너무 흥분해서 안내소를 뒤엎어 버렸다.

드디어 영남의 관문을 통과해서 충청도에 입성했다.

참 저렇게 뚱뚱한 자장구를 끌고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화령 꼭대기에서 갑자기 오기가 발동해 마지막 훈련으로 집까지 하루만에 가기로 정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는 훼이크고 신나게 내려오니까 소조령이 날 기다리고 있네.

힘들어서 축 내려온 새재로 표지판.
이화령+소조령 콤보가 힘든단 것을 알고 있구나.
내려와서 텐트칠 곳을 찾다가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집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된다고 해서 갔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 지붕이 있는 곳을 찾기로 하고 좀 더 가야겠다고 인사를 드리니 복숭아를 씻어다 주시고 물 2L짜리를 주셔서 다시 한번 식량창고를 채우고 출발했다.
가는데 비가 한두 방울 씩 떨어져 마음이 더 촉박해졌다.
충주 탄금대까지 달려 탄금대 공원에서 자려고 했지만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텐트를 못치고 밖을 배회하는데 자전거 여행자가 보여 인사를 했더니 텐트 칠만한 곳이 없다며 같이 여관에 가자해 저녁을 먹고 돈을 아까워하며 여관에 갔다. 

<오늘의 생각>
옛말에 한 번 주면 정 없다는 말이 있다.
백두대간도 한 번 넘으면 정 없으니 두번 넘자. 
한국인은 정이니까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두번 넘자. 
초코파이도 情 

1인용 코펠에 라면 2개를 끓이려니 넘쳐흐른다. ㅠㅠ

둘이 먹다 둘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생겼다.

나도 내가 못생긴것을 알기에 초점을 배경에 잡았다.

군대가기전에 서울~부산 국토종주 중이라는데 미니벨로로 이화령고개 길을 잘 넘어 갔을지 걱정된다.

세계무술축제 덕분에 좋은 방에서 잤다.

이제 집까지 달려보는거야. 힘내라 자장구.
뒤에 달린 가방은 물 2L와 오렌지 쥬스, 빵, 과자 등이 담긴 식량창고 주머니다.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서울까지 이어져있다면 오늘 목표인 집까지 가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여행하는 동안 그토록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먹는데 적당히 말캉거리는 최고의 복숭아였다.
사실 정신없이 먹다가 인증샷이 떠올라 절반은 먹고 뒤집어서 찍은 사진이다. 

팔당까지 85km만 가면 서울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비가 많이 내려서 사진도 안찍고 그냥 달리기만 했다.
가장 기억나는 코스는 강천보인데 다른 길들은 '그래도 4대강 자전거길이 있어서 편하게 왔네'라고 생각했지만 강천보만큼은 올라가자마자 이명박 카카의 욕을 했다.
비가 내려 사진은 못찍었지만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이 있었고 오르기 쉬우라고 턱이 낮은 계단형식으로 만들어놔서 45kg짜리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다 올라가고 나니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바퀴가 더이상 못가게 하는 스토퍼를 몇줄로 도배를 해놔서 자전거를 들어서 옮기는데 안전상의 이유인 것은 알겠지만 자전거도로라고 이름만 붙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전거가 원활하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4대강 자전거길에서 내가 느낀 불편하고 위험한 부분들이 꽤 되지만 여행기이므로 '소비자고발-4대강자전거길의 위험'을 시청하길 추천한다. 
충주에서 시작해 145km 정도를 달려 팔당에 도착했을 즈음 어깨부터 손목까지의 근육이 안움직여질 정도로 통증이 왔다.
150km정도면 많이 달렸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점프할까라는 생각을 5번정도 했지만 세계일주를 생존력강화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출발한 여행에서 마지막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싶지 않아 근성으로 달렸다.

결국 충주~팔당까지는 평속 18km/h정도로 달리다가 중랑천에 다다라서는 페달만 굴리면 집에 도착한다는 안도감때문에 10km/h 정도의 속도로 달렸고 집에 도착하니 8시였다.
총 173km를 11시간에 걸쳐 달렸는데 점심, 저녁은 안먹고 꿀호떡 8조각+과자 1개+복숭아 2개만 먹고 비를 맞으며 하루 최대치를 달려보았는데 하루에 보통 100km정도씩 달려 누적된 피로에 계속해서 내리는 비, 최소한의 식량으로 달린 마지막 날은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동안 물을 많이 마실 줄 알고 중간 보급을 안하기 위해 5L의 물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빗물을 마시고 피부로 빗물을 흡수해서인지 500ml밖에 안 먹는 신기로운 일이 발생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배가 터지도록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사진을 한 번 보여주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오늘의 생각>
외국에서 물 구하기 힘들 때 빗물을 받아 먹으면 어떨까?
그 해답은 서울대 빗물연구소장 한무영 교수의 '빗물과 당신'이라는 책에...

그래도 내 몸은 보물 1호니까 될 수 있으면 얻어먹거나 사먹어야지. 

처음에는 2주정도 예상을 하고 출발한 여행이 이런 저런 일들도 많이 겪었고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기에나머지는 실전에서 겪기로 하고 8일만에 끝났다.
이 글을 쓴 현재 중국으로 출발하기까지 21일이 남아 있는데 여행을 하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우고 마지막까지 준비해서 10월 13일에 출발한 다음에는 직접 부딪히고 즐기는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03.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day 06)

주로 빵만 먹는다길래 아침은 내가 대접하기로 했다.
6시에 일어나 씻고 밥하고 3분짜장과 미트볼을 데우고 식사 시작. 

별로 맛 없어 보이지만 밥을 충분히 한다 했지만 조금 부족한 기분이 들 정도로 셋이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잠들었던 신라비전시관 왼쪽의 정자.
밥을 다 해먹고 나니 직원분께서 여기서 취사하면 안된다고 누가 물어보면 밥 안했다고 말하라고 해주셨다.
6시에 일어났는데 텐트 말리고 밥먹고 밍기적대다보니까 10시가 다 돼서 출발. 

1시간 정도 달려 부산으로 가는 7번국도와 영주로 가는 36번국도 갈림길에 도착했다.
자기들끼리 찍은 사진이 없다 해 설정샷을 한번 찍어주고 내 카메라로도 한번 더 찍었다. 

난 당연히 없으니 나도 한방 찍고

500일 뒤에 체코가면 체코술 사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기다려라 필스너 우르켈과 알코올들... 

36번 국도가 어떤 국도인지 모른다.
그냥 내륙인 영주로 들어가는 도로인 것 밖에 모른다.
앞을 보면 평지인데 뒤를 보면 업힐인 그런 안보이는 업힐을 넘어가는데 이정도는 괜찮지 하며 올라간다.
근데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보이고 산들을 굽이굽이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정상이라 할만한 곳에 도착했는데 사랑바위라니.
꼭대기에 평화가 있어야지 왜 사랑이 있냐며 구경을 갔다. 

아놔.. 잘 보니 둘이 껴안고 뽀뽀하고 있네.
굴삭기로 부시고 싶을 정도로 정열적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 꿀호떡을 또다시 먹는다.
560g에 1775kcal이라는 저 아름다운 칼로리.

근데 가도가도 업힐이다.
기어비를 최고로 하고 달려도 점점 힘에 부친다. 

이 높은 산 꼭대기에 다리를 놓고 있다.
지형을 돌아가는 것이 아닌 개척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의 위대함을 더욱 크게 느끼며 난 자전거를 끈다. 

시멘트를 공수하기 힘드니까 산 중간중간에 시멘트 적차장도 있고 자갈 산도 있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공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왜 왔냐면서 앞으로 가도가도 고바위길이라며 내 희망을 꺾어 놓으셨다. 

근데 왜 경상돈데 산이 이렇게 많은 거지.
이런 곳을 끌고 올라오는 나도 대단하다.
힘들게 자장구를 끌고 올라가다 쉬고 있는데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간다.
같은 이륜차인 오토바이에게 내가 업힐에 굴복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지나가며 응원해주신 오토바이 커플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내려서 끌바를 했다. 

높아서 그런가 해바라기 같은 애들이 하늘을 보고있는데 무섭다.

아싸 정상에 도착했으니까 드디어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답이 없는 이운재. 오늘부터 안티팬해야지.

아싸 내려간다. 내가 한 20km정도 오르막길 왔으니 10km는 내려가겠지.

훼이크고 잠깐 내려가니까 다시 오르막이라 사진찍을 생각도 안들고 그냥 뒷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여서 다시 끌바를 했다.
꼬치비재. 꽃이 보이재? 그래 눈앞에 꽃이 보인다. 

지금까지 잘했어. 이제 다시 내려가자. 정말 내려가는 거야.

긴장 풀지 말랬지.
저 밑에 있는 마을까지 잠깐 내려갔다 다시 올라간다.
멀리서 업힐이 보이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아 강원도 아니고 경상도라며!'

얼라 마을이 더 작아지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마을인줄 알았는데 

끌고가는 내 자전거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업힐은 다시 돌아오지만 

흘러내린 내 침들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업힐인줄 알았는데 

또 하나 멀어져 간다  

김광석 님 죄송합니다. 

엄마 트럭이 쫓아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Jerry.K 님 죄송합니다. 

위에 나온 2곡은 업힐에 정신나간 누군가가 자전거를 끌며 내는 소리입니다. 

저거 분명히 내리막 10%맞지.
이제 내려가는거 맞구나. 

회고개? 회를 쳐주마.
이제 기대 안할거야. 또 뒷통수 칠거니까 내리막길이라고 신나하지 않을거야. 

그래. 역시 또 오르막이지.
물이 다 떨어졌는데 왠지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같아서 아주머니께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약수라고 하신다.
세수도 하고 물도 다 채우고 다시 오르막길. 오늘 누가 죽나 한번 해보자.
이 때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밖에 안떠올랐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산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할아버지가 산 때문에 화가나서 삽질을 해다가 산을 없애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어느세월에 옮길 것이냐며 뭐라 하자
할아버지 曰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이, 자식의 자식이 언젠가는 옮길것이다.'
그러자 산신령이 무서워서 옥황상제한테 이르고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줬다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본 뜻은 쉬지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 뜻을 이룬다는 아주 뜻깊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놈의 산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만 들고
우공이산 이야기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다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요것이 손등.

요것이 손바닥.
뽀얗던 내 손이 깜쉬깜쉬가 됐다.

내가 살면서 터널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배추를 가득 싣은 트럭들이 지나가도 산을 관통해서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처음 알았다.
진짜 인간문명 만세다. 사랑합니다. 터널
근데 경상북도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하는건가? 

터널을 지나오니 내리막길이 시작이다.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앞에 산들이 안보이긴 하는데... 

원래 영주까지 가려했지만 너무 힘이 들고 시간도 늦어서 봉화에서 잠자기로 결정. 8km만 가자.

내리막길에 짧은 터널이라 후미등 안키고 논스톱으로 가려다가 방심하는 사이에 훅가니까 후미등을 켜고 달렸다.

봉화에서 자려다가 도로도 계속 내리막길이고 마을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업힐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냥 영주까지 달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업힐만 탔으니 진짜 징그럽다. 
알고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백두대간을 넘어온 길이였는데 솔직히 서울~강릉보다 힘들었던 것 같고 삼척~울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힘들었다.
영주에 도착해 텐트 칠 곳을 찾다가 둑방길을 발견하고 취사는 안된다기에 슈퍼에 빵을 사러갔다.
가면서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 딸기잼 듬뿍 든 고급빵과 바나나 우유를 마셔야지' 했는데 빵이 다 나가고 운명처럼 꿀호떡만 남아있길래 그냥 '내팔자가 그렇지 뭐.'하면서 당연하게 쿨피스도 집고 나왔다.  

그런데 옆 가게에 계신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하나로 또다시 인연이 시작됐다.
'너 누군데 나한테 인사하냐. 나 아냐?'
'아니요. 그냥 눈 마주쳐서 인사했어요.'
'너 그래가지고 어디가냐?'
'저기 둑방길에 텐트치고 자려구요.'
'혼자 여행다니는 거냐? 밥은 먹었냐?'
'취사 안된다기에 그냥 빵 사다 먹으려구요.'
'아저씨가 빵 사줄게 안에 들어와서 쉬다 가라.'
'이미 빵 사서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밥 사줄테니 들어와서 먹고 가라.'
'감사합니다.' 하며 냉큼 들어 갔더니 뭐 먹을거냐고 물으셔서 아무거나 괜찮다니까 그럼 만두랑 라면이랑 먹으라며 직접 김치넣어서 라면을 2개나 끓여 주시고 만두도 2판이나 까주시며 다 먹고 남는거 싸가라고 하시는데 정말 인사 하나로 밥도 얻어 먹다니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얼었던 몸에 따뜻한 라면이 들어가니 몸이 쏴 풀리는데 정말 최고였다.
밥을 먹는 동안 아저씨가 슈퍼에 가셔서 비싸서 내가 안샀던 빵, 오렌지 쥬스 1.5L, 프링글스 등등을 사다 주시며 챙겨 먹으라고 하시는데 감동이었다. 

다 먹어갈 때 쯤 도착하신 사장님.
내가 무전여행은 아니고 거지여행을 한다고 하니 여행하는 애들이 더 잘 챙겨먹어야 한다며 자두 한봉지, 햇반, 라면 등등을 챙겨주시고 남은 만두 1팩을 싸주시는데 받는 내가 얼떨떨할 정도로 고마웠다. 

옆에 계시던 직원분.
사진 찍자 하니까 에이 뭐 하시더니 포즈 잡으신다.ㅋㅋㅋ 

다른 직원분.
지금까지 영주 하면 예전에 영주역앞에서 먹은 굴국밥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이분들이 떠오를 것 같다.
백두대간 넘는 내내 욕도 하고 뒷통수만 친다고 뭐라 했는데 이런 선물로 다시 뒷통수를 치다니 한 없는 오르막도, 한 없는 내리막도 없는게 사람 사는 것이 맞는가 보다.
다음날 아침에 영주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기로 하고 나와 내가 원래 자려던 곳에 가니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계셨다.
30분정도 돌아다녀도 그 자리가 최적의 자리기에 돌아갔는데 3명이던 아주머니들이 10여명으로 불어나 있어 다른 곳을 찾다 종합체육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들었다.

<오늘의 생각>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도와주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다.
누군가가 선뜻 손을 내밀었을 때 선뜻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가고 있다.
그 사람의 속마음을 의심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믿고 고마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 착하네요 어른한테 예의바르게 하면 좋은인ㅂ 많이 생길거예요 요즘 젊은이들 예의가없잖아요 하기야 다 기성세대들이 모범을 더보여야하는데 서로 위하고 사는 세상이 되길바래요

  2. 재밌게 잘 봤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열정 한아름 안고 출근하네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지 참 잘 할 청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3. 우연히 들어 와서 자전거 여행기 보는데 참 재밌고 흐믓하네요.

    아. 그리고 사랑바위는 남녀 사이 아니에요. 남매지간 입니다.

    굴삭기로 부수지 마세요. ㅋ

02. 고기를 구울 땐 쿠킹호일을 깔고 구워야 설거지가 편하다. (~day 05)

잠을 자는데 12시쯤에 텐트가 많이 흔들려 잠에서 깼다.
처음엔 누가 텐트를 흔드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옆 하천이 넘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어제 둑방길을 추천해 주신 아저씨께서 '대한민국이 망하기 전까지는 안넘친다'라 하셨기에 안심하고 핸드폰을 보니 엄마에게서 '강원도는 비 안온대. 잘자' 라고 문자가 와 있는데 12시가 아니였으면 전화해서 빗소리를 들려줄 뻔했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5시 30분에 일어났는데도 비가 오길래 그냥 더 자야지 하고 잠들었다가 6시쯤 되니 비가 그쳐있었다.

우리 집앞 전경.

2일간의 끌바로 인해 물집이 잡혔다.
새살이 솔솔 마데카솔과 상처엔 후시딘 둘 중에 고민하다 마데카솔을 바르고 텐트를 정리하고 어제 사온 꿀호떡과 남은 쿨피스를 먹었다.
텐트를 말리려 했지만 도저히 해가 안 떠 그냥 대충 털고 대관령을 향해 출발했다.

조금(?) 끌고 올라가니 진부가 나오고 happy 700은 아마 평균고도가 700m라는 뜻 같다.
올라가는 길에 하이브리드자전거+배낭 조합으로 강릉가는 분을 만났는데 뒤쳐지면 창피할까봐 인사만하고 열심히 올라갔는데 그 뒤로 보이질 않았다. 

고도가 781m인데 배터리효율 문제로 기압식고도계를 안썼으니 오차가 있다해도 750m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난 진부령을 넘어왔다고 뿌듯해하며 대관령은 832m니까 100m만 더 올라가면 되네 하며 기고만장했었다.
근데 알고보니 진부령은 강원 인제군 북면(北面)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태백산맥의 고개로 높이 529m밖에 안된다더라.

신나게 끌고 올라온 당신, 내려가라.

비가 솔솔 내리길래 버스정류장에 잠시 세우고 꿀호떡 섭취. 참 아름다운 칼로리의 빵이다.

gps를 보니 815m로 나와 의아했지만 옆에 자동차전용도로에 '대관령구간 안개조심'이라고 써있길래 '대관령도 별거 없구나'하며 즐거워했다.
근데 진부령과 대관령 둘 다 표지석이 없어 많이 실망했다. 

왜 대관령을 넘었는데 오르막이 계속되는지 궁금해하며 아름다운 하늘을 쳐다보며 대관령 옛길을 따라간다.

저번 겨울에 대관령 삼양목장을 갔다왔기에 양떼목장엔 관심이 없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보니 좀 작긴 작았다.
풍력발전기도 안돌아가는 전시용이고 그러니까 여러분 삼양목장 가세요. 삼양목장은 저 삼양라면 협찬 좀 해주시고요. 

얼라? 왜 여기에 해발 832m가 써있지...
저쪽에 표지석엔 대관령이라 써있고... 오늘 헛물 여러번 켜고 다닌다. 

어쨌든 대관령에 왔으니 된거라 생각하며 진짜 대관령 인증샷.

저~~~ 끝에 보이는게 바다인데 계속 산만 타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니 목적지에 다 온 기분이었다.

대관령 셀프 인증샷.
대관령에서 강릉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비도 오고 급경사에 커브길이라 사진도 못찍고 오로지 생존을 외치며 내려왔다.
하도 브레이크를 잡았더니 손바닥이 너무 아프고 브레이크 패드도 갈아야 할 것 같다. 
내려와서 길가에서 못말린 텐트를 말리고 동해로 출발. 

동해 1,2 터널을 지나는데 덤프트럭이 슝슝지나가는 2차선도로+터널+업힐이 만나면 정신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터널 지나갈 때는 후미등을 켜고 대낮에 술먹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며 겁먹지 말고 지나가는 방법뿐이다. 

강릉에서 동해쪽으로 달리다보니 드디어 옆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 땐 철조망이 그저 북한군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드디어 동해시에 입장하는 순간.
첫 목적지를 동해로 잡고 동생면회가는 것만 정하고 떠났기에 가슴이 벅찼다.
해군 1함대 사령부앞을 지나며 위치를 확인하고 주위에 텐트칠 곳이 없어 해수욕장에 갔더니 8시부터는 해수욕장에 민간인은 못 있는다며 군인들이 쫓아냈다.
군대 있을 때도 북한 욕을 별로 안했는데 이날은 정말 많이 했다. 북한만 없었으면 캠핑을 할텐데 하며 주위를 둘러봐도 시내라 텐트 칠만한 곳이 없어 울며겨자먹기 반, 깨끗히 씻고 쉴 수 있다는 마음 반으로 찜질방으로 향했다.
아침 점심을 꿀호떡으로 때웠더니 배가 너무 고파 국밥집을 찾다찾다 못찾아 짜장면 곱배기를 시켜먹고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내가 잔 찜질방인데 사람도 별로 없고 꽤 좋았지만 요금이 8000원이라 가슴이 아팠다.

<오늘의 생각> 
빨리 통일이 되서 동해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캠핑하고 싶다. 

동생을 면회외출로 부르는데 안에 있는 간부가 애인은 되지만 형이 면회온 건 인정이 안된다는 개소리를 시전해 1시간정도 기다리다 국방부에 연락하려니 내보내줬다. 내가 복무할 때는 친구도 되던게 왜 피를 나눈 형제도 안되는지 모르겠지만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은 해변가에서 코펠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1조각 익으면 반으로 갈라먹고 다시 1조각 구웠지만 최고의 맛이었다.
이날은 그냥 놀고 먹고 마셨으니 이 한장으로 끝.

<오늘의 생각>
 고기를 구울 땐 쿠킹호일을 깔고 구워야 설거지가 편하다.

어제 사놓은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울진을 목표로 잡고 달리다가 체인에 오일을 치고 있는데 외쿡횽아 2명이 'HI~'하고 지나갔다가 다시 올라와 'May I help you?'라 하며 인연이 시작됐다.
이 친구들은 체코에서 서울로 비행기타고 와서 임진각, 춘천, 설악산에서 대청봉 등반, 강릉, 속초를 찍고 부산으로 가고 있는 스탠(우)과 프랭크(좌)인데 같이 울진까지 가기로 했다. 

나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프랭크도 잘 못해 내가 스탠에게 말하면 스탠이 체코어로 번역을 해주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도 체코어를 모르니 졸지에 스탠이 통역사가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토요일 저녁에 동해에 도착해야한다는 생각만으로 달렸으니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유명한 해신당에 왔는데 사방이 다 거시기라 거시기했다. 

크고 아름답고 거기에 황금빛이야....


이건 까만데 크고 움직여....

컬쳐쇼크중인 스탠.

하지만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니 외설스러운 것도 없었고 스탠과 프랭크에게도 짧은 영어로 전설을 설명하느라 혼났다.

(전설의 내용)
옛날 이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총각이 있었다. 어느 봄날 처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 가게 되었다. 한낮이 되었을 무렵에 바다에는 강한 바람이 불면서 집채같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심한 풍랑 때문에 총각은 배를 띄울 수가 없었고, 처녀는 파도에 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이 바다에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마을 북쪽의 바닷가 벼랑에 있는 큰 나무를 해신당으로 모시고 음식을 장만하여 고사를 지냈으나 고기는 잡히지 않고 마을은 점점 피폐해져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각이 고기가 안 잡혀 화가 나 술을 마신 뒤 해신당 나무에 오줌을 갈겼다. 그날 밤 총각의 꿈에 처녀가 나타나서는 제사음식을 잘 받았다고 하였고, 바다에서는 예전처럼 고기가 잘 잡히게 되었다. 그 후 이 마을에서는 처녀의 원혼을 해신으로 모시고 남근을 깎아서 바치는 풍습이 생겼으며, 정월 보름과 시월의 오일(午日)에 제사를 지냈다. 정월 보름에 지내는 제사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고, 시월의 오일에 지내는 제사는 동물 중에서 말의 남근이 가장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처녀가 총각을 기다리며 애를 태우다 죽은 바위섬을 마을 사람들은 `애바우'라 부르는데 해신당에서 북서쪽으로 1킬로 정도 떨어진 검푸른 바다 위에 외롭게 떠있는 하얀 바위가 그것이다.

프랭크는 이런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동해바다를 제대로 놀러 온 것은 처음인데 해신당공원의 전망은 참 마음에 들었다.

12지신도 거시기하게 만들어놨다.

물도 맑고 풍경도 좋아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음에는 제주도도 가보라고 추천했다. 

태어나서 오므라이스를 처음보는 체코인의 표정.
그동안 말이 안통해 한국식당에 못 가고 매번 빵이나 라면을 먹었다기에 식당을 가려는데 굴국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생선구이 등은 못 먹는다고 해 그냥 중국집으로 갔다.
밥이랑 면중에 뭐 먹을꺼냐니까 밥에 도전한다고 해 오므라이스를 시켜줬는데 젓가락질도 어느정도 하고 양파와 단무지를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다먹고 물을 좀 떠간다고 하니까 삼다수 2L짜리 한 통을 주신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구름도 한번 보고

드디어 강원도와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더이상 산은 없는 거라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자전거가 너무 무거워요....

7번국도에 있는 도화동산이라는 곳인데 전망도 좋고 강원도와 경상북도 사이에 있어 의미도 특별하다.

내 옆에 있는 한국인친구는 20여일간 무전여행을 하고 있는 친군데 도화동산에서 만났다. 

풍경이 너무 좋아 파노라마로 한 컷 찍으니 스탠과 프랭크는 WOW를 연발한다.

매번 마을회관, 교회 같은데서 자고 점심은 굶는다는 대단한분...
난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어서 거지여행을 즐기지만 나중에 여행기가 올라오면 꼭 보고싶다. 

왼쪽이 스탠의 자전거로 앞,뒤 패니어를 다 달고 다니고 오른쪽 프랭크의 자전거는 리어패니어만 단 대신 물을 4L씩 들고 다니고 있다.
자전거도 스탠이 좀 더 잘 타는 것을 고려해 저런 짐 분배를 하고 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프랭크를 따라가기에도 힘이 들지만 악으로 깡으로 쫓아간다.
대한민국 국도 중 악명 높은 국도 1위는 서울~강릉 6번 국도고 2위는 삼척~울진 7번 국도라는데 계속되는 업힐과 다운힐은 정말 힘들었다. 

울진에 도착하니 원자력 발전소가 보여 설명해주니 한국에 총 원자력 발전소가 2개가 다냐고 물어 최소 15개 이상일 것이라 했더니 놀라워했다.
찾아보니 23개가 있는데 여러분 전기를 아껴씁시다.
도화공원에서 아저씨 한분을 만났는데 울진에서 저녁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얻어먹고 텐트를 치고나니 캔맥주를 또 사주셔서 포식을 하고 잠이 들었다.

<오늘의 생각>
다 좆이구나 다 좆이구나 다
다 좆이구나 다 좆이구나 다
다 좆이구나 다 좆이구나 다
다 좆이구나
다 좆같구나
UMC 2집 - 다 # 

  1. 고기 구울 때 쿠킹 호일 깔면 몸에 안 좋아요~환경호르몬이 마구마구...그리고 양은 냄비도 안좋구요~몸에 축적되면 알츠하이머 유발물질이 나온다네요~몸에 좋은 건강한 여행되시라고 지나치다 못해 글 남기네요~건강식도 꼭 챙겨드시길^^

  2. 원래 여행을 좋아하셨군요..그 용기와 기백에 감탼과 찬사를 보냅니다.

01.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day 02)

원래는 아침 8시 30분이 출발예정시각이었지만 짐을 장착하고 휘발유통을 고정한 스텐밴드를 자르고 하다보니 9시가 넘어서 집에서 나왔다.
집앞 중랑천 자전거길에서 간단히 체인오일 한번 치고 9시 30분쯤 제대로 출발했다.

다른 자전거여행자들을 보면 자전거에 이름도 지어주고 하는데 난 도저히 이름이 안떠올라 그냥 '자장구'라 지었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자장구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가방들이 너무 깨끗하고 예쁘게 찍혔다. 

모든 짐을 싣고는 처음 달리는 거라 걱정했는데 핸들이 엄청 무거울뿐 그럭저럭 달릴만했다.
팔당가는길에 보스몹인 고갯길이 나왔지만 끌바로 극복했다. 침흘리며 끌었기에 부끄러워 사진은 안찍었다. 

평소 자전거를 타면 최소 팔당까지는 탔기에 친숙한 팔당대교도 지나고

팔당댐도 지나가는데 도로가 좋으니 속도가 쭉쭉나온다.
출발할 때만 다르지 평지에서는 속도가 평소와 똑같이 나오고 탄력이 붙으니 더 재미있다. 

시원한 자전거 터널도 지나는데 태양아래를 달리다 들어가는 터널은 천국이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주먹밥으로 해결했는데....

밥값이 공짜라고 대가를 치뤘다. (빨간거 김치국물 흘린거 아님. 빨간약임.)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내리는데 무거운 자전거가 처음이라 내리다가 자빠져 상처가 났다. 

안다치면 좋겠지만 사람일이 뜻대로 되는게 아니기에 직접 채운 응급키트로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다.

북한강철교도 지났지만 몇번을 와본 길이기에 아직까지 별로 설레이지는 않았다.
오빈역까지는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라이딩오신 동호회분들이 앞에 공사중이라고 알려주셔서 같이 국도를 '역주행'하는데 무서웠다.
무서웠으니 당연히 사진은 없다. 

여기가 바로 사탄이 있는 사탄천. 착하게 삽시다.

드디어 오빈역이 나오고 6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로 간다. 

첫 터널을 지나는데 앞으로도 지킬 자전거 여행에서의 원칙을 하나 세웠다.
꼭 정차한 뒤 후미등을 켜고 터널 사진찍기.

터널을 다 빠져 나와서 '터널 별거없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도로 옆에 있는 턱에 프론트페니어 가방이 쓸리며 마찰로 구멍이 났다.
순간 머릿속으로 별에별 욕이 다 떠오르고 용문터널에 저주를 퍼붓고 패니어 가격이 떠오르고 내 방수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내가 무슨 좋은 꼴을 보자고 여행을 시작했나. 등등 온갖 마이너스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사진을 찍을 정신이 아니여서 결국 집에 돌아온 뒤 사진을 찍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첫날부터 패니어는 빵구났지, 물도 다 떨어져가니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이미 말을 뱉어 놓은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어 머리도 식힐겸 휴게소에 들어 갔다.
하지만 휴게소에 들어가자마자 생존본능이 솟아나며 비싼 건 못사겠고 게토레이 캔 1개를 사고 물 좀 떠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승낙해주셔서 얼른 물을 뜨고 나와 화장실에서 세수한번 하고 어차피 언젠간 고장날 가방이었다며 달리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강원도로 가고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아무리 가도가도 계속 양평이어서 달릴 맛이 안났는데 드디어 양평과 인사를 했다.
서울과 강원도 사이가 다 양평이니 길긴 길다.

반갑다. 강원도~

해발 300m정도야 뭐 간단하게 올라간다.
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고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내려서 끌고 올라가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냥 계속 업힐이다.

횡성으로 가는 길에 잠잘 곳이 없어 걱정하다가 하나로마트 옆에 정자가 있길래 사장님께 허락을 구하고 텐트를 치고 잤다.
텐트를 치기전에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하나 사서 먹고 집에서 싸온 주먹밥을 다 해치우고 씻기도 귀찮아 그냥 잠이 들었다.

<오늘의 생각>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전기의 문인서예가. 

楊士彦(양사언), 1517~1584

양사언 싸우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는 무슨 산은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다. 

텐트치고 잔 첫날 밤이라 중간에 몇번을 깼지만 침낭이 좋아 춥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쌀을 씻어 놓고 세수와 머리도 감고 밥을 한다.
처음 해보는 코펠 밥인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예술이었는데 양이 조금 많았지만 점심을 생각해 볶음김치와 같이 억지로 다 먹었다.

왼쪽에 보이는 정자가 어젯밤의 내 집이었다.

횡성터널도 지나고.

고작(?) 45kg정도 밖에 안되는 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도 힘든데 저 굴삭기를 싣고가는 트럭의 위대함을 느끼며 끌바를 했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이만큼이나 올라왔구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주 뒤돌아보면 의지가 약해진다. 

그래 어디까지 올라가나 한 번 가보자.

다른 자전거여행자들이 오르막차로 끝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면 엄청 반가워 하던게 떠오른다.
이제 나도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행복해 했는데...

훼이크였다. 오르막차로는 끝났지만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것인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서 체력도 급고갈되고 근성으로 끌고 올라간다. 

나에게 굴욕과 좌절을 안겨준 황재. 절대 잊지 않겠다. 

알았어. 오빠가 달릴 수 있게 제발 적당한 경사의 길만 나와주렴.

점심은 둔내로 가서 먹기로 했는데 둔내가 둔내 안나와서 둔내 힘들었지만 달리다보니 둔내가 나왔다.
산들을 넘으며 점심은 무조건 국밥을 먹을거라 생각했기에 사진속의 황태해장국집에 들어갔다.
배가 너무 고팠기에 밑반찬까지 싹 다 긁어먹고 공기밥 반 그릇을 더 먹고 물도 채우고 삶은 달걀도 주길래 나중에 먹으려고 챙겨 나왔다.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속도에 나를 맡기는게 무서워 24살 먹도록 스키장에 한번도 안갔었는데 이번기회에 지나간다. 

배도 채웠으니 오르막길따윈 가뿐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얼마 못가 다시 끌바를 시작한다.

횡성을 지나 평창군에 들어서자 끝없는 내리막이라 앞으로 올라갈 것을 걱정하며 내려가는데 바퀴에 토마토 씨같은 노란게 묻어서 '난 토마토를 밟은 적이 없는데?' 생각하며 달리다가 이상해서 멈춰섰다.

알고보니까 아까 챙겨둔 달걀이 삶은게 아니라 날달걀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속이 차 있었던거 같았는데 황태해장국에 넣어 먹으라고 준 계란을 고이 품고 오다가 진동에 의해 깨진 것이었다.
옆에 농수로에서 계속 물을 퍼다 닦고 물티슈로 닦았지만 향긋한 비린내가 계속나 그냥 달렸다.

해발 500m면 동네 뒷산보다는 높은 높이인데 어느새 올라왔다.

장평으로 향하다 아저씨들과 잠시 대화를 하고 재산재를 오르고 나니 장평에 도착했다.
자여사에서 둔내를 거쳐서 장평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해줘서 따라왔더니 20km정도 돌아 왔지만 길은 괜찮았다고 자기위안을 한다. 

장평 슈퍼에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가격대 칼로리가 가장 높은 꿀호떡과 쿨피스를 사고 옆 하천 둑방길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먹는데 어두워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텐트치고 홀로 끓여먹는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
내일은 대관령을 넘어서 한 100km 정도 가야하니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든다.

<오늘의 생각>
티끌모아 태산.
작은 언덕이 모여 사람의 의지와 근성을 시험하는 태산이 된다.
업힐 좀 그만 나와라. 내가 자전거를 타는지. 자전거가 나를 타는지 모르겠다. 
 

  1. 대단하시네요~~~

  2. 요즘 자전거에 푹 빠져서 자전거 여행을 꿈꾸며 여행기들을 찾아 보고 있는데 이번
    님의 여행기를 보면서도 꼭 하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00. 자전거 전국일주 준비물

이번 여행의 컨셉은 바람따라 흘러가는 것이지만 목표는 실전같은 훈련으로 생존력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세계일주용 준비물과 거의 비슷한 양의 짐을 싣고 가기로 했다.
사진을 찍은 뒤 짐의 분배가 약간 바뀌어 설명은 바뀐 짐을 기준으로 하겠다.

먼저 리어패니어 우측에는 의류가 들어가는데 긴바지 2벌, 패드바지 1벌, 반바지 2벌, 싸구려 기능성 티 1벌,  긴팔 티 1벌, 바람막이 1벌, 구급가방, 버너 받침대, 쿨토시 2개, 버프 2개, 무릎보호대 2개가 들어가는데 패니어가 꽉 찰 정도로 부피가 크다.

리어패니어 좌측에는 코펠, 우의, 세면낭, 화이트가솔린 1병, 에어매트,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책(요리를 전혀 못해서 하나 샀다), 저글링 연습용 공, 작은 화엄경이 들어간다.

그리고 랙팩대신 사용하는 59L짜리 드라이 백에는 절반의 크기를 차지하는 1500g 구스다운 침낭, 텐트, 그라운드 시트, 미니방석, 휴지 2개, 예비 스포크가 들어간다.

프론트 패니어 왼쪽에는 완충역할을 해주는 깔깔이와 넷북, 외장하드, 각종 충전기들이 들어간다. 

프론트 패니어 우측에는 공구들과 예비 부품들, 자물쇠, 버너, 건전지들이 들어가는데 꽤 무겁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자전거 앞바퀴 쪽에 식량 창고와 드라이백 위에 쌀창고를 덧 댈 예정인데 여행 출발하고 전체적인 사진을 한 번 찍어야겠다.
 
앞으로 7시간정도 뒤면 출발예정인데 실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여행기도 여행도중에 쓸 생각인데 우선 고래 잡으러 동해로 출발하고 그 다음엔 바람따라 흘러갑니다.
 

[2012.7.29~2012.7.31]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2 (설악산 백담사~설악동 Part.2)

원래 시끄러운 곳에서도 잠을 잘 자는 체질이지만 전 날 산행이 꽤 피곤했는지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 20분까지 푹 잤다.
일출이 5시 26분이었기에 카메라 가방만 메고 밖으로 나왔는데 구름때문에 하늘이 보이지도 않고 약한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어차피 일출을 못본다며 아침먹고 해뜨고 올라간다고 했지만 나는 못보더라도 올라는 가봐야한다고 말하며 대청봉으로 향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15분정도 올라가자 GPS의 고도계가 1600대에서 조금씩 올라가더니 1708m를 가리켰고 대청봉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떴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구름이 잠시 흩어진 1초동안만 보여줬다.
결국 5시 50분까지 기다리다가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길보다 더 위험해 앞으로 하산하는 것이 걱정이 됐다.

다시 중청대피소로 돌아와 가방을 챙기고 내려오는데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기분이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구름은 걷히기 시작했고 어제 본 풍경이 꿈이 아니라는 듯 또다시 멋진 설악산의 모습을 보여줬다.

희운각 대피소까지 내려오는데 길도 험하고 신고 간 등산화가 아부지가 사놓고 신지 않은지 10년도 넘은 등산화라 발이 너무 아팠다.
설악동에서 강릉까지 1시 40분까지 가야 광주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에 시간에 쫓기니 쉴 수가 없어 더 아팠다.

발가락은 물론이고 발바닥, 발목까지 아프니 이 신발을 신고 가라고 한 엄마에게 짜증도 냈는데 죄송하다.
하지만 정말로 신발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중간에 냇물에서 냉수로 머리를 감으며 정신도 차리고

다람쥐한테 초콜릿도 먹였다.
잘 보면 손에 초콧릿을 들고 있다.

올라가는 길은 옆에 항상 물이 있어서 시원했는데 내려오는 길은 그냥 골짜기만 있어 웅장했지만 더웠다. 

끝 없이 펼쳐진 계단을 따라 내려올수록 설악산이 결코 쉬운 산이 아니고 길이 없었다면 다니기도 무서운 산이란 것을 알게됐다.

이런 암석들과 계곡들은 멋있으면서도 혼자 남겨진다 상상해보니 무서웠다.

발목이 너무 아파 왼쪽은 두꺼운 양말로 갈아도 신어봤지만 효과가 없어 그냥 신발을 벗고 걸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을 내려와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로 내려왔다.
불상에 기도도 한번 하고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난 걸어서 대청봉을 갔다왔다고 자부심도 느꼈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 강릉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데 5분전에 이미 갔다고 해 30분을 기다려 12시 25분에 버스를 탔다. 
강릉에서 광주가는 버스는 1시 40분 다음에 6시 40분에 있기에 출발전에 도착할 수 있기를 빌었는데 다행히 1시 35분에 도착해 바로 광주로 갈 수 있었다.
5월 26일 종범신 은퇴식때 광주터미널에 왔었기에 별로 낯설지 않았는데 서울 살면서 기아를 좋아하니 전라도를 자주 오는 것 같다. 

우리도 여수 엑스포를 보러 가지만 여수에서 잠자기엔 숙박비가 부담 돼 순천에서 자고 첫차를 타고 여수로 가기로 계획했다.
순천에 오자마자 다이소에서 슬리퍼를 하나 사고 등산화는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려오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이 저 등산화를 알고 계셨는데 접지력도 안 좋아 요새는 안신는 등산화라기에 가차없이 버렸다.
등산화를 버리고 이번 여행 처음으로 밥을 사먹었는데 밥이 꿀맛이라 공기밥 2개를 먹었다.
생각해보니 전날에는 주먹밥과 빵으로 때우고 오늘은 빵 몇개만 먹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핫도그 하나 사먹은게 전부였다.
잠은 저번 효도 관광때도 잔 순천 지오스파 찜질방에서 잤는데 너무 더워서 잠이 안와 얼음방에 들어갔지만 새벽 1시가 지나자 냉각기가 고장났는지 얼음이 녹으면서 물바다가 됐다. 

[2012.7.29~2012.7.31]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2 (설악산 백담사~설악동 Part.1)

2011년에는 혼자만 놀러 다닌 내가 불효자 같아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을 기획했었다.

시간이 흘러 2012년이 벌써 반 이상 지나갔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2년에도 휴가철이 찾아왔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엄마의 평생소원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에 대해 짧게 이야기 하자면 젊었을 때 산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대한민국의 산 중 안 가본 산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하신다.

여행과 산을 좋아하셨기에 집안의 장남인 내가 제대 하자마자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지만 "얘는 이미 가기로 마음 먹었기에 반대를 해도 갈 애다. 많이 보고 오고 부럽다."라며 찬성하셨다.

이런 엄마의 평생소원은 아들들 데리고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이라 지리산을 가자고 했더니 '1박2일'프로그램에 나온 설악산 백담사 코스가 가고 싶다고 하셔서 설악산으로 정했다.


출발 10일 전부터 인터넷으로 중청대피소를 예약해놓고 7월 29일 새벽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6시 35분 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 정류장에서 내려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백담사 셔틀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첫차를 타고 왔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버스를 타고 굽은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면 백담사에 도착하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서 하산하는 사람들의 발냄새가 너무 심해 토하는 줄 알았다.

백담사 입구에는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쌓여져 있는데 나도 가족의 건강과 내 여행의 안전함을 빌며 돌을 하나 올리고 출발한다.


벌써부터 해가 내리쬐기 시작하는데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다행히 나무가 많아 그늘을 따라 산행이 가능하다.

 

물이 있는 곳에는 항상 돌탑이 있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기도를 했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물이 정말 맑아 한번 마셔보고 싶지만 참고 집에서 싸온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깨끗한 물에서 우리 어무이 사진 한방 찍고

 

다람쥐도 한방 찍고 계속해서 올라간다.


등산로 바로 옆에 계곡이 흐르니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하다.

게다가 아직 초입이니 아무렇지도 않게 산을 오른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효도관광이니 본분에 충실하게 엄마의 사진을 최대한 자주 찍기로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경치가 예술이다.

감탄사 한번 내고 사진 한번 찍고 쉬엄쉬엄 올라가니 별로 힘들지도 않고 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지 알 것만 같다.


발 밑에는 계곡이 흐르고


앞에는 기암괴석이 맞이 해주고


위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지난 태풍의 흔적을 지나

나름 설정샷도 한 장 찍고

나는 자연 풍경 중에서도 하늘, 맑은 하늘이 아닌 구름이 적당히 있는 아름다운 하늘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런 하늘을 원 없이 봐서 정말 행복했다.


그냥 찍기만 하면 예술작품이다.

 

오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봉정암에 도착했다.

중청대피소를 예약하지 못한 사람들은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데 샤워시설도 있고 식사까지 제공되는데 하루 1만원이니 추천한다.

 휴식 시간을 가지고 아버지와 가족의 안녕을 바라며 기와불사를 하고 대청봉 바로 아래인 중청대피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봉정암은 한창 증축공사 중인데 이 깊고 높은 산골짜기에서 일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다.

 봉정암에서 소청봉까지 길이 험하다는데 험할수록 이렇게 멋진 풍경들이 날 기다리고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다.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수고했다고 힘내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 신축중인 소청대피소인데 정말 잠잘 맛 나겠다.

 하늘에선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지고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본 광경에 말 없이 사진만 찍는다.
 
a55를 사놓고 파노라마 기능을 쓸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원 없이 썼다. 사진 실력이 부족하지만 이런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술력이 대단하다.
 
고도가 높아서 금새 구름이 모이고 어두워진다.


하늘은 푸르고 그냥 좋다.


빛내림…..


내일 내려갈 설악동 소공원쪽 길인데 바다까지 보인다.


소청에서 중청까지는 돌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별로 험하지도 않고 하늘을 발 아래에 두고 걷는 기분이다.


높은 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맛에 등산을 한다.

산을 정복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단함을 느낀다고 할까.


설악산에도 이렇게 많은 봉우리가 있는데 금강산의 1만2천 봉은 얼마나 멋있을지 상상이 안된다.


하루 종일 감탄하며 쉬엄쉬엄 산을 오르니 8시간 정도 걸려서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해발 1708m의 대청봉인데 다음날 일출을 위해 아껴둔다.

사람들은 이미 저녁을 해먹는데 고기도 굽고 여러가지 음식들을 해 먹는다.

나도 자전거 세계일주에 가져가려고 버너는 샀지만 중청대피소에서 라면을 판다기에 라면에 말아먹을 햇반만 가져왔는데 생라면만 팔기에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참치 한 캔을 사고 원래는 안되지만 부탁을 해 가져간 햇반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데 시장이 반찬이니 밥 맛이 꿀 맛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취사도구와 음식을 가져간다면 더 재미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물론 가져간 모든 것은 그대로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대피소는 9시부터 소등이지만 짐을 풀고 엄마와 대화 몇 마디 하다가 8시도 안 돼 잠이 들었다.

  1. 지금은 소청대피소가 완공되어 산객을 받는데,설악에서 가장 전망 좋은 대피소는 소청이죠~
    아마 모름지기 소청일몰이 설악 제1경이지 싶어요~

[2012.2.3]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6일차(정동진, 삼양목장)

강릉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정동진에 가서 일출을 보러 갔다.
도착하니 해가 뜨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어 아침으로 라면을 먹었다.
여행기를 쓰며 되짚어보니 돈을 아끼려고 자꾸 면만 먹였는데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멀리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데 해가 뜨기 전 모습도 아름답다.

하지만 예전에 물리 공부하면서 배운 내용으로는 이미 해는 떠있지만 각도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김성재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저번에 왔을 때는 해무때문에 일출을 못봤었는데 이번에는 멀리서 해가 솟아오르는게 보인다.

뜬다. 뜬다. 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떠버린 햇님.

이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돌아가 삼양목장으로 출발.

강릉에서 횡계터미널까지 버스비가 3000원정도, 횡계터미널에서 삼양목장까지 택시비가 12000원, 입장료가 7000원이니 좀 비싸긴 하다.

유명한 목장으로는 양떼목장과 삼양목장이 있다.

나는 목장 크기가 삼양목장이 더 크다기에 남자라면 무조건 큰 것을 골라야하고 크면 볼게 더 많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삼양목장을 골랐다.

택시를 탈 때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네이버카페 바이트레인에 택시 카풀할 팀을 구해서 4명이 타고 삼양목장까지 왔다.

여기가 대관령 삼양목장이래요.

입구에서 조금 들어오면 보이는 하얀 건물이 관리소인데 가방을 맡길 수 있다.

입구부터 눈이 있지만 나무에 눈이 없어서 조금 실망했었다.

올라가다보면 양떼가 나오는데 쌓여있는 건초더미에서 건초를 덜어내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다.

먹어~ 계속 먹어~

실제로 양을 본건 처음인것 같은데 정말 귀엽다.

대관령이니 920m정도는 가뿐하지.

조금 더 올라가면 타조들도 나온다.

No.2의 가방을 자꾸 탐내는 타조 No.1

손가락이 물리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No.2의 반응속도는 빨랐다.

앞에가는 2명이 우리랑 같이 택시 탄 사람들인데 우리가 일부러 느리게 갔다.

아직까지는 바람도 괜찮고 별로 춥지도 않아 그저 감탄하며 올라간다.

도대체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는지 신기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24살이나 먹고 찾아오다니 입대 전 겨울여행 때 포기한 것이 후회된다.

여긴 어딘가. 한국이 맞는가.

거대한 풍력발전기이 위엄.

이때부터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다.

풍력발전기가 귀엽게 보일까봐 비교샷.

이 위부터는 폭풍이 불기때문에 사진찍기가 불가능했다.

동해전망대라고 동해가 보이는 곳이 나오는데 진짜 바람이 장난아니게 분다.

부산에서 장갑을 잃어버리고 느낌이 안좋아서 강릉에서 두꺼운 걸로 샀는데 원래 쓰던 가죽장갑이었으면 손이 얼어도 진작 얼었을 추위였다.

날은 맑아 동해가 보이긴 하는데 카메라 배터리가 인식이 안될 정도로 추웠다.

100%충전된 건전지가 사진 한장 찍으면 전원부족이라고 나와 한장찍고 배터리 뺏다 다시 넣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장갑을 벗고 꺼내려니 손이 너무 시려워 결국에는 입으로 배터리 커버를 열고 닿을수 있는 신공을 배웠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바람이 부는 것을 견디느라 이마에는 주름이 생겼다.

내려오는 길에 '아,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곳은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낀 표정...

태양과 절묘하게 맞춰서 찍었는데 괜찮게 나온 것 같다.

굽이 굽이 올라갔던 길을 다시 걸어서 내려오는데 꼭대기에서 에너지를 다 써 힘이 없었지만 풍경하나는 최고였다.

No.2 신발에 눈이 들어가 벗었더니 피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추위에 발이 마비 돼 신발을 안 벗었으면 모르고 내려갈뻔 했다.

진짜 눈구경 제대로 했다.

올라갈 땐 지나쳤던 소도 한방 찍고.

얼굴이 팅팅 부은 상태로 목장 휴게소에 들어와 삼양라면과 찐만두를 사먹었는데 4시간이 넘게 추위와 싸우고 먹는 라면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때마다 장갑을 벗어야 했기에 힘들었을 No.2

그저 생수를 가지고 올라갔는데 얼어서 내려왔다.

휴게소 옆에는 매점도 있는데 삼양제품뿐이다.
뽀빠이가 삼양제품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새로 알게됐다.

원래 강릉으로 돌아가 카페거리도 가고 경포대도 간 뒤 다음날 태백에서 바람의언덕을 경유해서 집에 돌아가려했는데 일이생겨서 횡계에서 바로 동서울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혼자만의 여행을 하면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과 그 때의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면 장소보다는 일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
혼자 떠나든지 같이 떠나든지 어쨋든 여행은 좋다.

ps. 가난하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잘 따라와준 잉여 No.1과 No.2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보너스로 풍력발전기의 위엄.


  1. 발에 상처가 나면서 찍은사진
    잘 봤어요. 앞으로도 더 좋은
    여행기 기대할게요

[2012.2.2]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5일차(강릉 소금강)

강릉으로 가기위해 부산에서 청량리로 야간기차를 타고 왔는데 잉여 No.1이 부산에서부터 집간다고 하더니 결국 청량리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잉여 No.2와 청량리역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라도 사먹으려했는데 이날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쳐 컵라면 정수기의 물이 얼었다고 한다.

No.2는 춥다고 강원도 가면 죽는다 했지만 난 눈이 많이 오고 추울수록 멋지다고 좋아하며 둘이서 강릉으로 향했다.

강원도에 와간다는 것을 알려주듯 멀리 설산이 보이는데 꿈에 그리던 눈꽃여행이 현실로 다가오자 신이 났다.

흥전역-나한정역 스위치백구간을 지나며 저번엔 못찍었던 동영상도 찍었다.

근데 2009년에 듣기로는 곧 사라진다던데 아직도 운행중이다.

곧 솔안터널이 개통되면 스위치백 구간은 기차가 다니지는 않지만 강원랜드의 지원으로 '하이원스위치백리조트'를 운영해 스위치백 체험 및 철도박물관을 개관한다고 한다.

강릉역에 도착해 혼자가 된 외로움을 컨셉으로 No.2의 설정샷

강릉역 안내센터에는 버스 안내가 다 붙어있으니 참고하면 좋고 강릉에서 갈 수 있는 관광지로 향하는 버스의 시간표도 나눠준다.

버스터미널쪽으로 쭉 직진하다 사거리 건너고 직진하면 대한민국 5대짬뽕으로 손꼽힌다는 교동반점.

가게가 좁아 기다리다가 먹은 짬뽕의 맛은 국물이 진한데 질리지 않는 맛이다.

평소에 짬뽕을 별로 즐겨먹지 않고 식도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평가할 수는 없지만 밥까지 시켜서 비벼먹을 정도로 맛있다.

왜 자꾸 면종류(컵라면, 밀면)만 먹이냐며 투덜대던 평소 짬뽕 좀 먹어본 No.2도 아주 맛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버스시간표를 보니 아슬아슬하게 소금강행 버스 시간이 맞을 것 같아 택시를 잡고 터미널로 향했는데 버스가 출발해버려 다음정거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소금강은 강릉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한다.

처음에는 소금강이 그냥 아름다운 계곡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타고 온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작은 금강산처럼 아름다운 곳이라 소금강이라면서 어떻게 서울 사는 청년들이 소금강까지 찾아오냐며 칭찬해주셨다.

물론 No.2는 그런 산골짜기를 왜 들어가냐고 투덜댔다는 후문이...

원래는 버스가 소금강 입구까지 들어가는데 길이 얼어 버스가 못 들어간다고 앞부분에서 내려주신다고 해 그냥 걸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내리려는데 같이 탄 아주머니께서 청학동까지는 태워다 준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탔다.

타고 가다보니 산을 하나 넘는데 길이 다 빙판이라 걸어갔으면 소금강 구경도 못하고 산만 탈뻔했다.

하지만 남은 길도 멀긴 멀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걷는데 뒤에서 차가 오기에 히치하이킹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먼저 멈추시더니 길 험한데 어떻게 가냐고 차타고 가라며 차를 세워주셨다. 역시 인심좋기로 두번째라면 서럽다는 강원도 같아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알고보니 오대산 국립공원 관리소의 직원이신데 얼굴도 훈남이고 마음도 따듯하시다.

산이라 해가 빨리지니 1시간정도 올라가다가 나오라며 6시쯤 퇴근하신다고 내려가는 길도 태워주신다고 하시며 아이젠같은 것은 없냐고 하셔서 그냥 간다고 하니 걱정해 주셨지만 당사자인 우리들은 별 걱정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가는데 No.2는 성큼성큼 잘도 간다.

아름다운 설경을 보며 남정네 둘이서 감탄을 하며 산길을 걸어갔다.

사진사가 초보라 아름다운 설경을 다 못 담아냈지만 실제로 본 겨울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누군가가 만든 눈사람도 보고

역시 도시보다는 자연이 좋다며 계속해서 걸었다.

한시간정도 걸려서 구룡폭포에 도착했는데.....

물이 얼어서 구룡폭포가 초라해졌다.....

하지만 소금강 자체가 아름다웠으니 괜찮다.

구룡폭포에 왔으니 당연히 인증샷을 찍고 왔던길을 돌아간다.

원래 한번 간 길로 되돌아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갈 때의 시각과 올 때의 시각이 다르니 이것또한 좋은 것 같다.

너도 나도 소원 한번 빌어보고.

고즈넉한 금강사의 대웅전도 한번 찍고

소금강분소에 다와갈 무렵...

넘어져서 손이 찢어졌다... 역시 겨울 산행은 아이젠을 끼고 해야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명승 제1호라는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소금강과 우릴 도와주신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강원도에 대한 좋은 추억이 또 늘어났다.
소금강분소 직원분이 태워다 주신 덕분에 강릉시내로 돌아와 강릉황실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인터넷에서 콘센트를 못 꼽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는 제재하지도 않고 조용한 수면실이 따로 있어 최고였다.

[2012.2.1]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4일차(부산)

전날 순천에서 잠을 자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부전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죽은듯이 자고 배터리 충전하다보니 부전역에 도착했는데 스케쥴을 급 변경해서 우선 해운대로 가기로 했다.

내리면서 두고 내린 짐이 없나 체크했는데 내리고 보니 장갑을 두고 내렸다.

역시 기차에서는 뭐든지 하나 잃어버려야 제맛.

해운대역 근처에 있는 세이브존에 가방을 맡기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겨울 바다를 보니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사람이 꽤 많아서 놀랐다.

하긴 부산살면 심심하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을 것 같지만 지하철이 불편한 점은 않좋을 것 같다.

분명히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지말라고 써있지만 하지말라면 더 하는게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 주는 한 남자.

덕분에 갈매기 쇼 잘봤습니다.

얘들아 출격 준비해.

바다가 그냥 예술이다.

포토존에서 누리마루도 찍고.

확실히 겨울이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동백섬이니까 동백꽃도 있어야지.

지하철 1일권을 사서 점심먹으러 출발.

예전에 혼자 부산에서 먹었던 밀면 맛을 못 잊어 가장 유명하다는 개금밀면집을 찾아왔다.

흔들렸다...

배가 고팠기에 물밀면 곱빼기. 양이 정말 많다.

하지만 폭풍 흡입 후 잉여들과 서로 웃으며 맛은 있는데 너무 빨리 먹은거 아니냐고 두리번 두리번.

부산에 왔으니 유명한 자갈치 시장도 한번 둘러보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니 회는 패스하고 눈요기만.

국제시장도 갔는데 그냥 남대문시장 느낌?

보수동 책방거리도 갔는데 별로 와닿지는 않고 역시 난 자연이 좋다.

바닥에는 시인, 작가들의 이름과 대표작이 박혀있다.

부산에서 제일 가보고 싶던 감천동 문화마을.

처음에는 걸어서 가보려 했는데 잉여 No.1이 다리가 아프다 해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내려오는 길에 내려 걸어서 올라갔다.

그냥 보면 참 이쁘장한 마을이다. 할텐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저기서 사는 분들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달동네 구경을 하며 이쁘다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좀 씁쓸했다.

정말 그림같은 마을이다.

걸어서 올라갔기에 사진찍기 좋은 장소도 찾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저녁으로는 다른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을 먹기로 했다.

지하철을 1시간정도 타고 신평역에 있는 영진국밥 본점을 찾아 갔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지만 본점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낄정도로 맛있었던 돼지국밥.

부산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광안대교 야경을 보기위해 광안역으로 왔다.

지하철 1일권을 사서 뽕을 뽑았다고 생각한다.

광안대교에 가니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꽃놀이를 터트려줘서 이쁜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미니 삼각대뿐이라 화각이 안나오길래 a55의 손으로 야경찍기 모드를 이용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제 눈의 천국 강원도로 가기 위해 밤 10시 50분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향했다.

[2012.1.31]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3일차(여수, 순천)

다행히 알람은 맞춰놨기에 오전 7시에 일어나 잉여들을 깨웠다.

잉여들은 너무 하드코어한 여행사라며 환불 요구를 하며 10시 넘어서 출발하자고 했지만 잉여들을 많이 겪어봤기에 어르고 달래서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고 20분 정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이름도 이쁜 감동마을을 뒤로 하고 남원역에서 기차를 탔다.

물론 KTX를 타고 오진 않았고 내일로기에 느릿 느릿 무궁화호를 타고 왔다.

여수역에 도착했으니 인증샷 한방 찍고.

작년 여름에 엄마와 함께 왔던 등가게장으로 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간장게장의 참 맛을 모르던 나에게 간장게장 맛을 알려준 여수의 게장맛은 그대로였다.

밑반찬은 간간히 먹으며 게장만 리필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점심을 먹고 순천가는 기차 시간이 2시간정도 남아 벽화골목을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아저씨께서 벽화골목을 모르셔서 급하게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진남관앞에서 내렸다.

내 기억력을 믿으며 벽화골목 입구를 찾고 인증.

벽화 골목은 골목골목에 벽화를 그려놓고 여수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1004개의 벽화를 그려 1004마을이라고도 부르지만 작년에는 한창 그리는 중이라 몇개밖에 못봤었다.

이번에는 1004개의 벽화를 다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하지만 골목길을 잘못들었는지 벽화골목이 아닌 그냥 골목만 나온다.

고소대도 들어갔다가

설정 좋아하는 잉여 No.2의 설정샷도 찍고

여차저차 해서 다시 벽화가 있는 곳으로 왔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고 싶지만 쉬지 않고 날개짓을 하려면 많이 힘들 것 같기에 패스.

모닥불을 쬐고 있는 잉여들을 데리고 여수역으로 향했다.

아마 높으신 분이 여수로 오는 듯 경찰들이 역 근처에 배치되고 안에서는 여수엑스포 홍보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다른 곳에서 여수로 온사람에게만 주길래 나도 여행자니 하나 달라고 해서 받았는데 핀이 나갔다.(감성핀임...)

순천에 도착했는데 중부지방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하늘일 흐려 내릴 것 같아 기상청에서 날씨를 알아보니 저녁까지 흐림만 예보 되어 있기에 구라청을 믿었다.

이마트에 짐을 맡긴 뒤 '이번에는 순천만에서 일몰도 보고 천문대에서 별도 꼭 봐야지'라 다짐하며 버스를 탔다.

혹시 순천에서 순천만,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에 가실 분들은 버스 시간표 참고하세요.

위에서 말했다시피 구라청을 믿었기에 피를 봤다.

버스에 타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무조건 전망대에는 올라야했기에 이슬비를 맞으며 앞만 보고 올라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도착하고 보니 도저히 일몰을 볼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여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다.

이로써 순천만 일몰 도전 3전 3패...

결국 순천만천문대도 2전 2패...
전망대에서 내려와 예정보다 일찍 하루를 마감하고 지오스파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2012.1.30]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2일차(전주, 남원)

기차여행을 해보면 코스가 어느정도 정형화 되어있는데 논산에서 전라도쪽으로 내려가는데 있는 경유지는 전주,남원 뿐이다.
어제 같이 지낸 남자3 파티는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다니고 있다며 내가 전주-순천-여수 코스를 추천해 줘 우리를 따라 전주로 왔다.
내가 예전에 무계획으로 다닐 때에는 밤에 다음날 갈 곳이라도 정했지만 이 형들은 아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닌다.
여자2 파티는 원래 전주 게스트하우스로 갈 예정이었기에 8명이서 뭉쳐서 전주역으로 향했다.

전주역에 도착했는데 예전에는 공사중이던 역이 깔끔하게 변신완료.

전주는 유명한 곳이 한 곳에 모여있기에 휘리릭 보고 지나갈 수 있다.

예전에 와봤었기에 교통편도 안 알아보고 기억을 따라 전주역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7명의 사람들이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혹시나 틀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노선은 변하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전동성당으로 향했다.

우선 사람들이 최대한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사진 한방 찍고.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됐다는 전동성당에서 나와 옆에 붙어있는 경기전으로 향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라는데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날씨도 겨울이라 그런지 하늘이 정말 맑아 예전에 왔을 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왔으니 이성계님의 영정도 한번 찍고

뻥 뚫린 하늘을 보며 경기전을 한 바퀴 돌았다.

무슨 박물관이 있었지만 휴장이라기에 밖으로 나와 한옥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옥마을은 파리바게트도 한옥임.

또다시 설정샷. 잉여 No.2는 셀카와 설정샷을 아주 좋아한다.

맑은 하늘에 까만 기와집이 참 좋았다.

골목길을 굽이 굽이 따라서

전주에서 안먹어보면 후회한다는 왱이콩나물국밥집에 도착.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다는 간판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원래는 음식 사진을 잘 안찍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좀 찍으면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콩나물 국밥을 먹기전에 김을 수란에 넣고 국물을 3숟갈 정도 넣고 섞어 먹으면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콩나물 국밥의 맛은 보통의 콩나물 국밥이지만 모주를 같이 마시면 그 맛이 예술로 변한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전주 바로 밑의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에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광한루가 있다.

물이 얼면 쌀쌀해서 운치있고 비가 내리면 고즈넉해서 운치있고 하늘이 맑으면 맑아서 운치있는 광한루.

그림을 잘 그린다면 꼭 한번 그려보고 싶은 광한루를 다시 찾았다.

잉어가 밥 먹는 순간포착! 잉어잉어 먹어먹어

둘이 모여 다시한번 역적모의 중.

사방 팔방이 아름다운 광한루를 한 바퀴 돌았는데 정말 춘향이와 이몽룡이 뛰놀다가 뺨칠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은 춘향이&이몽룡 대신 잉여 No.1,2.....

사내자식 2명이서 그네타고 노는데 무서워서 얼마 올라가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무서워서 안탔다.

넌 좀 맞아야 돼.

잉여No.2의 시골이 남원이기에 무료숙박하기로 하고 이마트에서 이마트 피자와 과자를 사서 버스타고 들어갔는데 시골집 바닥이 따뜻해 놀기는 커녕 잉여No.1이 잠들자 나도 따라 죽은듯이 잠들어버렸다.
잉여No.2는 다 잠들자 따라 잠들었다는 후문이....

보너스 샷으로 '6시내고향'같은 프로그램 촬영중인 성춘향과 이몽룡.

[2012.1.29] 잉여갱생프로젝트 윈터캠프 - 1일차(논산)

예전부터 눈이 펑펑 내린 강원도를 가고 싶었고 친구들 중에 잉여가 많기에 잉여들을 사회로 환원시키기 위한 잉여갱생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

원래 말년휴가때 7일간 다녀 오려다가 주최측인 나에게 개인적인 일이 생겨 못 가겠다고 펑크를 냈었다.

하지만 사람이 한번 일을 추진했으면 끝을 봐야하기에 제대하고 1주일만에 다시 떠나기로 하고 잉여들에게 '내 말이 법이다'라는 단 1개의 규칙을 알려준 뒤 논산가는 기차에 올랐다.

권력은 돈에서 나오기에 내일로 티켓 가격을 포함한 회비로 21만원씩 걷어 내가 관리했다.

절대권력을 가진 나에게 대항하기 위해 쑥덕이는 잉여 2마리.

하지만 나에겐 잉여갱생의 사명이 있기에 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기차를 탔다.

잉여 No.2로 그나마 갱생의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처음이니까 초보답게 카페열차에서 자리를 지켰지만 난 허리가 아파 그냥 구석 바닥에 앉아서 잠들었다.

드디어 논산역에 도착했는데 잉여 No.1은 훈련소를 논산으로 왔었기에 논산역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논산역 주변이 허허벌판이라는 사실이었지만...

첫 목적지로 논산을 정한 이유는 전라도로 내려가는 중간지점이고 내일로플러스라고 각 역마다 내일로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논산역에서는 숙식제공(물론 돈을 내야함-5천원)에 딸기수확 체험(이것도 돈을 내야함-1만원)이 있어서 딸기 먹을 생각에 논산역으로 왔다.

논산역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이미 와 있던 여자2, 남자 3, 우리 3 합쳐서 8명이서 봉고차를 타고 숙소에 짐을 풀고 딸기 하우스로 향했다.

딸기 하우스는 그냥 별거 없이 그냥 따서 먹으면 되는데 꽤 달달하고 맛있었다.

1월 말에 따먹은 딸기가 현재 4월 초에 사다 먹은 딸기보다 달았다.

새빨간 딸기. 체험비로 낸 만원어치는 뽕을 뽑기 위해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딸기가 이렇게 배가 부른 식물일 줄은 몰랐는데 30개정도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아 그만 먹었다.

이게 딸기꽃인데 하우스 안에 벌통이 있어 벌들이 수분을 해주고 있었다.

잉여 1,2도 열심히 따먹었다.

잉여 2는 DSLR로 셀카를 찍으니 잘 나온다고 계속해서 셀카 모드.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저녁먹기 전까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남자의 정열을 불태우기 위한 자!장!구!를 타기로 했다.

정열을 불태워도 언덕은 끌바....

자전거 도로가 잘 깔려 있으니 그냥 달리는 거다.

하지만 바로 울퉁불퉁 비포장에 진흙길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2인승 자전거도 번갈아가며 타고

하늘이 정말 맑았다.

비포장 길은 타다 타다 안되겠으면 남자기에 끌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잉여들의 설정샷.

오른쪽 위에 보이는 나무가 우리의 목적지인 옥녀봉이다.

계속 되는 설정샷.

폐가에 총각귀신 있어요.

그치지 않는 설정샷.

하늘이 뻥 뚫린 것 처럼 좋아서 계속 찍게된다.

올라올 때는 너무 높아서 끌바!

내려갈 때는 경사가 심하니 역시나 끌바!

계속해서 이어진 자전거 도로.

한적해서 우리밖에 없기에 더 좋았다.

어느덧 햇님은 잠자러 가고...

우리 모두 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삽시다.

특히 잉여들은 갱생합시다.

여기가 우리가 묶을 숙소인데 방도 따뜻하고 시설도 깨끗해서 좋았다.

캠프 파이어! 가 아닌 고구마 구워먹을 시간.

신 나게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뭘 먹어도 꿀 맛이었는데 고구마를 1명당 1개밖에 안줬다.

고구마를 다 먹고 밥을 먹는데 쌀이 그냥 예술이었다. 백반이었지만 반찬도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이것도 인연이라며 다같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계속해서 게임을 하다가 잠들었다.

친구들과 놀러는 좀 다녀봤어도 이렇게 왁자지껄하게 여행은 처음인데 같이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너스 샷은 내 카메라가 10연사 된다고 하니 잉여 No.2가 움짤 만들어 달라기에 만든 움짤 ㅋㅋㅋ (클릭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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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 | 논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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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1~2011.8.3]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 Part.2

낙안읍성을 보고 중간경유지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순천만으로 향했다.

순천만 용산전망대에 오르기전에 천문대 신청을 미리하려고 6시까지 기다렸지만 기상악화로 천체관측은 취소.

시간만 날리고 전망대를 향해 고고싱.

순천만은 언제와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한국이라는 나라안에 이런 슾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걷는다.

게야 싸우지 말거라. 우리의 몸뚱인 무기가 아니란다.

하늘에 구름이 끼는게 아무래도 일몰은 못 볼 것 같지만 일몰이 전부가 아니기에 계속 걷는다.

저번에 왔을 때는 없던 길이 생기고 흔들다리가 생겼는데 새로운 길이라 생각하니 설레인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용산전망대에 오를 수 있게 길을 닦아 놓았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결혼해서 애데리고 오면 남자들만 죽어 나갈 길로 예상된다.

물론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은 이해하지만 실질적으로 올라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2012년에는 엑스포를 보러 여수를 가고 2013년에는 정원박람회를 보러 순천으로 와야겠다.

용산전망대에 도착했지만 하늘에는 빈틈없이 구름이 끼어있어 미련을 가지고 기다려봤지만 일몰은 보이지 않는다.

일몰은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보니 멀리 빛이 보이는데 우리 햇님이라고 믿으며 사진을 찍었다.

날은 어느순간 깜깜해지고 사람들이 순천역으로 돌아가기위해 버스줄을 수십미터를 서 있는데 다 기다리다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한정거장 앞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한 10분정도 걸어서 한정거장 앞으로 가니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10여명 있었는데 노동의 댓가라고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돌아왔다.

이마트로 가 맡겨뒀던 짐을 찾고 안주 조금을 사서 벤치에 앉아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먹고 순천 지오스파랜드로 잠을 자러 갔는데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2009년에는 최악의 찜질방으로 평가받던 찜질방이 지금은 내일로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며 세상은 돌고 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여행 마지막 날이 오고 이웃 도시인 여수로 향했다.

여수에도 크게 구경할 것이 몇개 없어 우선 진남관으로 갔는데 엄청 길었다.

혼자온 내일로 여행자께서 사진을 찍어 달라해서 dslr을 만져봤는데 화각이 정말 넓어 신기했다.

같은 위치에서 찍는데도 내 똑딱이는 들어오지 않는 진남관 건물을 가볍게 담는 dslr을 보고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진남관은 조선시대 수군의 본거지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중심 건물로 삼았던 곳인데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는 최장길이라는데 정말 길고 웅장하다.

시간이 흘러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옛날의 건축기술이 어땠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진남관을 나와 바로옆에 있는 이순신장군 박물관 같은 곳을 들어갔는데 안에 계신 큐레이터께서 자세히 설명해줘 재미있었다.

우리 母子는 걷기를 참 좋아하기에 여수에서도 계속 걸어다녔다.

진남관에서 바닷가를 따라 별화골목으로 갔는데 날이 더웠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을 가려면 위 사진에 보이는 간판을 찾아 그 옆 골목길로 올라가면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늘색 일색이라 정말 좋았다.

그냥 그림만 그리는 것보다 원래 있는 지물을 가지고 만든 벽화가 더 재미있는건 당연하다.

제일 좋았던 벽화.

아기의 모습과 옆에 계단에 그려놓은 그림은 정말 예뻤다.

고래도 꿈이 있는데 나도 꿈이 있어야지. 당신도 꿈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벽화마을을 나와 길가에 핀 꽃으로 아웃포커스 놀이를 하며 오동도를 향해 또다시 걷기 시작.

여수세계박람회 홍보관이 있는데 실내가 시원해서 좋았고 둘러보면 꼭 2012 여수 세계박람회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오동도를 향해서 걸어간다.

예전에 왔을 때는 안 올라갔던 뒷 동산에 올라가는데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로 내려가면 용굴로 갈 수 있는데 확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가 용굴인데 남자 3명이서 놀러와서 저 안에 들어가 노는데 재미있어 보였지만 무서워서 보기만 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음악분수를 보러왔는데 낮에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역시 밤에 조명밑에서 봐야 더 멋있는 것 같다.
오동도를 빠져나와 다시 여수역으로 돌아와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는데 황소식당은 별로라길래 등가게장집을 찾아갔다.
갔는데 주문을 안받길래 물어보니 그냥 사람 수대로 게장이 나온다고 해 기다리니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한 바구니씩 나왔다.
2명이서 먹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배가 터지게 먹고 간장게장만 한번 더 리필했는데 환상적인 맛이었다.
서대회와 게장중 고민하다 갔는데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맛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취지는 효도관광이었기에 내가 느낀 만족도보다는 엄마의 만족도가 중요했는데 다행히 엄마도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거창한 효도를 하는 것보다는 부모님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같이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단기 여행으로는 볼거리가 많은 전라도가 최고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제 밀린 여행기도 다 썼으니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여행을 기대해야겠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2011.8.1~2011.8.3] 엄마와 함께 떠난 효도관광 Part.1

이것도 예전에 다녀온 여행이지만 군대 있을 때 떠난 여행이라는 핑계로 이제야 쓴다.

모든게 군대때문이다. 군대 군대 군대


2009년에 혼자 전국을 떠돌았을 때, 다녀온 나를 보고 엄마는 부럽다고 하셨었다.

엄마는 전라도에서 태어났는데 정작 전라도는 잘 못 다녀봤다고 하셨던 말이 떠올라 여름에 휴가나온 시간동안 효도관광을 가기로했다.

컨셉자체가 효도관광이기에 갈 곳은 모두 엄마가 못가본 곳으로 정했다.

담양-순천-여수로 해서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기획하고 휴가 나온 날 바로 출발했다.

용산에서 아침기차를 타고 광주에 내려 담양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담양에 가려면 말바우시장에서 버스를 탔는데 이제 광주역앞에서도 탈 수 있으니 한방에 갔다.

저번에 죽녹원 왔을 때는 '그냥 대나무만 울창한 습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하지만 효도관광이므로 엄마와 대화를 하며 돌아다녔다.

예전에 쓰던 똑딱이는 태백산에서 생을 마감했기에 집에 굴러다니던 삼성 똑딱이를 썼는데 건전지가 aa건전지인데 사진이 전기를 이렇게 잡아먹는지 처음 알게됐다.

날짜가 프린팅되는 것도 멋 모르고 설정했다가 피봤다.

떨어져 죽은 잎들 사이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역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1박 2일에서 이승기가 나왔다는 곳도 봤지만 푸르름 일색이라 눈이 흥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삼림욕이라기도 애매한 죽녹원 구경을 마치고 바로 옆의 관방제림으로 갔다.

내가 엄마를 닮아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母子는 계속 걸었다.

메타쉐콰이어길도 걷고 담양은 역시 계속 걷는 트래킹코스다.

버스기사 아저씨께 환승노선을 물어 광주송정리로 가 떡갈비골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집에서 떡갈비정식을 먹었다.

저번에 광주에 왔을 때는 담양에서 대통밥 정식만 먹었기에 엄청 기대했지만 별로 맛은 없었다. 그저 그런정도의 맛.

잠은 황금사우나에서 잤는데 황금욕탕은 언제봐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일찍 일어나 김밥을 사서 순천가는 기차안에서 아침을 때우고 순천에 도착해 드라마세트장으로 갔다.

예전에 엄마가 예덴의동쪽을 재밌게 봤기에 왔는데 자이언트, 제빵왕김탁구, 사랑과 야망도 보셨다며 좋아하셨다.

나도 드라마세트장은 처음 와봐서 신기했는데 엄마는 여기가 누구네 집이었고 어디서 나왔다고 신기해하셨다.

나도 에덴의동쪽은 띄엄띄엄 봤기에 기억나는 곳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왜 촬영지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

버스 정류소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려도 보고

한적한 옛 마을을 걷는 기분이다.

내가 제일 기대했던 달동네.

서울에도 달동네가 남아있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가보지 못했는데 세트장이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오밀조밀 모여있고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달동네가 귀엽게 느껴지긴 했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씁쓸했다.

사진을 둘러보다보니 요새 한창 유행하는 '미니어쳐모드'처럼 찍힌 사진이 나왔는데 귀엽게 찍혔다.

물론 내가 지금 쓰는 카메라 a55에서는 지원 안하지만...

달동네 꼭대기에는 교회가 있는데 다른 집들과 같이 엄청 작았다.

세트장이라 배경으로 쓰는 건물들이라 tv에서 볼 때는 커보였지만 실제로 옆에 서보면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작아 신기하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흑백으로 한번 찍어봤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달동네 꼭대기에서 좀 쉬다가 다시 내려온다.

우미관 상회를 뒤로 하고 순천역으로 돌아와 낙안읍성으로 갔다.

예전에 순천에 왔을 때는 교통이 많이 불편하게 느껴졌었는데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리면 장승이 낙안읍성을 알려준다.

개울가를 지나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주위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한옥마을 같은 곳과는 달리 진짜 그 시대로 온 기분이다.

흙길을 따라 초가집들이 늘어서 있고 하늘은 푸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그냥 경치가 죽여준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돌담길을 걷다보면

대장간이나 염색소 같은 곳들이 나오는데 시간대가 맞으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똑딱이로는 담기지도 않는 커다란 나무도 보고

한적한 곳에서 쉬기도 한다.

수세미가 자라는 모습도 처음 봤는데 예전에 tv에서 본 수세미 달인 물이 떠올라 먹어보고 싶었다.

낙안읍성을 시계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돌면 외곽쪽에 성곽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계단 경사가 가파르긴하지만 꼭 올라가보길 추천한다.

올라가면 낙안읍성이 한눈에 보이는데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최고다.

예전에 순천에 왔을 때는 낙안읍성을 안보고 지나갔는데 이제라도 와서 본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었다.
순천으로 여행을 온다면 순천만 전에 꼭 낙안읍성에 들르기를 추천한다.
  1. 참 효자시네요..모든 가본곳이긴 하지만..다시보니..새로워요...
    낙안읍성의 아름답던 골목이 문들 그립네요...넘..마음에 들던 그곳...
    전라남도는 어딜가나...그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아늑하여 꼭 고향같단 생각이 듭니다.
    중국 여강 여행기도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여강을 가보고 싶어던 차라...^^ 감사해요~

[2010.1.25~2010.1.29] 망해버린 입대기념 겨울여행 Part.2

기억도 좀 사라지고 여행도 알차지도 못하고 사진도 망해서 part.2가 끝이 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그 유명하기로 소문난 왱이집을 찾아갔다.

찜질방 바로 옆인데 그걸 못보고 멀리가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돌아온 왱이집.

내가 잠자고 있던 지난밤 팔팔 끓은 육수를 기대하며 입장.

가면 우선 반숙달걀이 나오는데 그냥 후루룩 먹었다.

가게 곳곳에 모주에 대한 말이 써있으니 당연히 술한잔 걸쳐야지 하며 모주도 1잔 시키고 소심하게 카메라를 꺼내 한방 찍어봤다.

맛은 꽤 맛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2년이 넘었으니 기억이 날리가 없다.

전주왔으면 한옥마을을 가봐야하니 가는 길에 있는 경기전도 들어가보는데 산책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라는 전동성당을 갔는데 성당을 제대로 구경해본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절에 가면 기와불사가 있고 성당에 가면 벽돌봉헌이 있다.

성당 내부도 처음들어가봤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안에 미사드리는 분 2~3명만 계셔서 조용히 구경했다.

절에 가면 나무가 대부분인데 성당은 돌로 만든 오래된 건물이라 색달랐다.

성당구경도 끝내고 메인 코스인 한옥마을을 둘러보는데 딱히 와닿지는 않는다.

외국인의 눈이었다면 좀 더 새로웠겠지만 한적함은 좋지만 아름다움으로는 와닿지 않는다.

곱게 포장된 길보다는 흙길이 더 좋은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흙길 싫어하는 사람 있으랴.

뒷 동산 같은 곳이 있는데 올라가서 보면 옹기종기 기와집이 귀엽긴하다.

하지만 북촌한옥마을처럼 뒤에 있는 빌딩들이 부조화스럽다.

어떻게 생각하면 빌딩 숲속에 있는 한국의 멋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부조화로도 보인다.

물론 다 밀고 개발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한옥마을이 되어 한옥집으로 쭉 늘어진 곳이 있다면 좋겠다.

근처에 풍남문이 있길래 가봤는데 로터리로 이용되고 있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 같은 느낌.

이렇게 도로에 있으면 오가며 볼수있어 좋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다시 전주역으로 돌아와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강원도쪽으로 가기로 하고 제천으로 출발했다.

여름에도 제천역은 그냥 경유만 했기에 뭔가 보고싶어 사람들에게 볼 것이 뭐가 있는지 물어봤다.

딱히 볼 것은 없다하고 의림지를 추천하기에 버스를 타고 의림지로 갔다.

멀리서부터 호수가 보이길래 시작부분에서 내려서 둘러보기로 했다.

절대 들어가지 말란다고 안들어가면 사람이 아니지.

나도 살짝 돌아가녀봤지만 얼음이 깨질까봐 무서워 바로 올라왔다.

날이 지기 시작하고 순간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찍으면 이쁘겠다고 생각해 추워 죽을 것 같지만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해는 넘어가는데 사진찍는 사람이 허접해서 원하는 사진이 안나왔다.

이래서 사진을 많이 보고 많이 찍어봐야한다는 것을 여행기를 쓰며 다시한번 느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여름에 나이가 안된다고 쫓겨난 강원랜드로 출발했다.

고한역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카지노로 향했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물어물어 카지노로 입장하는데 카메라는 반입 금지라 안에 사진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가보니 즐기러 간 사람들도 많지만 돈에 미친 사람들도 많았다.

입장료는 5천원인데 안에 있는 음료수 무한제공이라 뽕을 뽑기 위해 알로에와 오렌지 주스를 계속 마셨다.

즐기다 보면 빠지니 적당히 즐겨야하는데 5만원권으로 20장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거지라 만원만 쓰기로 했다.

슬롯머신에 현금이 바로 들어가 깨작깨작 100원짜리로 놀다가 뭔가가 터져 4만원 정도로 불어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려는데 공짜로 생긴 돈이라는 생각에 계속 넣다 보니 남은 돈은 100원이었다.

역시 내인생은 도박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고 주사위 홀짝 맞추는 게임에 5천원짜리 3번을 했지만 다 꽝이라 미련없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은 셔틀버스가 끊긴 시간이라 걸어서 내려오는데 전당포에서 차를 받아주는 모습은 다시봐도 신기했다.

우리모두 도박은 적당히 즐기기만 합시다.

여름에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에 가봤으니 이번에는 묵호역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묵호 등대가 있는 곳으로 열심히 올라갔다.

하늘문은 있는데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속세에 살기로 했다.

도착하니 커플들 몇이 보이는데 무시하고 사진찍을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동이 터오르기 시작하고

수평선 너머로 해가 솟는 건 정말 장관이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다 보니 어둑어둑하던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참 잘어울리는 곳에 새겼다는 생각을 하며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음미하고 내려온다.

200kg 넘어야만 버티는 신기한 곳. 혹시 200kg이 넘는 사람은 꼭 도전해보시길.

나도 자화상 보고 싶었는데 뽑아가지 말라는데 뽑아가는 사람은 뭔지.

들어가지 말라는 곳은 들어가서 사고가 나면 자기 손해지만 이건 남이 볼 기회를 뺏어가는 거 아닌가.

우리 좋은 건 다 같이 보고 보전합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지 신기했던 빨랫줄.

이런 창의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벽화 골목을 뒤로하고 다시 묵호역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는 눈꽃축제가 열리는 태백!

서울 사는 나도 들어본 눈꽃축제. 축제라니까 엄청 재밌을거라 기대감 3000%를 가지고 태백역에 내렸다.

행사장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는데 산 입구에서 내려주고 걸어서 올라가라기에 축제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현실은 넓따란 공터에 눈 조각 몇개 있는게 전부.

눈꽃축제라는 말을 붙인 사람의 이빨을 위 조각처럼 만들어주고 싶었다.

참 재밋는 눈꽃축제. 눈 조각상보다 미끄러질까봐 바닥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 눈꽃축제.

한 20분 둘러보고 마음속으로 있는욕, 없는 욕을 다하며 태백산이나 올라가볼까 하고 뒤돌아 나오다가 미끄러졌다.

넘어지다 카메라를 떨어뜨렸고 똑딱이 카메라라 튀어나온 렌즈부분이 부러졌다. 팔도 다쳤지만 카메라가 더 신경쓰여 아프지도 않았다.

다행히 작동은 하는데 무서워서 태백산은 포기하고 그냥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여러분 마음속으로 욕해도 산신령님은 다 듣고 계셔서 저처럼 벌받습니다. 착하게 삽시다.

강릉역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지프에 우루루 타길래 '태양을 등진 모습을 찍으면 멋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도촬을 하는 순간 카메라가 맛이갔다.
손으로 렌즈부분을 댕겨도 보고 별 짓을 다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내 올림푸스 똑딱이.
괜히 군인을 찍으려고 했다가 재수없다고 욕을 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며 캔맥주를 바리바리 사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왔다.

2년전에 이 여행을 끝내고 무계획으로 다니는 여행도 재미는 있지만 혼자 무계획으로 1달이상 다니기에는 한국이 조금 좁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다시 여행기를 쓰며 느낀 것은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것. 아무리 추억으로 남겨도 된다하지만 사진이 있으면 기억이 더 잘난다는 것.
그래서 사진을 배워야한다는 것.
과거의 내 모습이 부족하게 보이지만 나라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것을 느낀다.

재미있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1. 우왕ㅋㅋ뭔가 대충쓴거같은데 잘썼어요ㅋㅋ 재밌게 읽었어요 다른 글도 다 읽어볼게요!!

    • 헉... 역시 독자의 눈은 정확합니다.
      입대 전에 다녀온 여행을 제대 후에 쓰려니 잘 기억이 안나는 부분이 있어 대충썼었는데 콕 집어 내시다니.
      현재 하고 있는 세계일주는 절대 밀리지 않고 써야겠습니다.

[2010.1.25~2010.1.29] 망해버린 입대기념 겨울여행 Part.1

사진도 엉망이고 여행도 엉망이여서 이 여행기를 써야하나 고민했다.
사실... 2년전에 썼어야했는데 입대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번에 다시 써보려고 사진을 추려내는데 정말 사진을 이렇게도 못찍을수도 있구나를 느꼈다.
그럼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다 지워버리기전에 지금이라도 시작!

첫 시작부터 흔들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입대하면 시골에 못갈것 같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첫 행선지는 완도로 정했다.

처음은 완도, 그다음은 땅끝마을. 두가지만 정하고 이번에도 역시나 무계획으로 떠났다.

기차가 더 좋지만 전라도는 교통이 불편하니 어쩔수 없이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해남으로 가는 버스 정보를 확인한 뒤

시골집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고 앞으로 2년동안 못 볼 신지도를 한방 찍어주고 해남으로 떠났다.

땅끝마을을 가려면 해남에서 버스를 한번 더 타야한다.

해남에서 광주나 목포로 가는 버스는 꽤 자주 있다. 역시 무계획이니 시간표는 미리 확인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며 찍은 사진인데 꽤 괜찮은 것 같다.

똑딱이로도 이정도를 찍어내다니 감은 좋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본다.

전망대에 가기위해선 모노레일을 타야하는데 여름에 정선에서 타봤어서 별로 신기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땅끝전망대에도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에 패스.

해가지기 시작하고 달이 보인다.

구름이 끼어있고 노을이 지는 모습은 언제봐도 이쁘다.

땅끝마을에서 해가 지는 것을 봤으니 다음에는 독도에서 해뜨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하며 광주로 향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전국에 2009년 여름에 자본 찜질방이 전국에 널려있고 광주는 역시나 빛고을랜드!

다음날 날이 밝고 광주역에서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익산으로 왔다.

익산에서 딱히 볼 건 없지만 보석박물관과 미륵사지가 유명하다길래 국사시간에 들어본 미륵사지로 버스를 타고 왔는데 기대했던 나를 비웃듯이 전시관은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하지만 굴하지않고 입장.

난 굴하지 않았지만 미륵사지는 나를 한번 더 좌절시켰다.

미륵사는 어차피 터밖에 안남아있고 미륵사지석탑이 유명하지만 그것마저도 보수정비사업을 하는데...

허탈하고 더러워서 그냥 나가려다 보수정비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다.

그 유명한 미륵사지석탑은 갈기갈기 해체되어 돌덩이가 돼있었고 인절미가 떠오를 뿐이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다른 탑을 보고 텅 빈 미륵사지를 한바퀴 돌았는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곳이지만 그냥 공터였다.

나오다 보인 안내문구. '관람료를 받지 않습니다.' 당연히 받으면 안되는거다.

뭉게뭉게 구름.

다시 버스를 타고 40분정도 달려 익산역에 도착했는데 허무하다.

키스하고 있는 기차를 타고 홀로 증기기관차를 타러 곡성역으로 갔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진짜 증기기관차가 있는 기차마을로 고고싱.

저쪽에서 기관차가 와서 설레였는데....

여기 지미짚 카메라가 뭔가를 찍고있네?

그냥 다큐 찍나? 어쨋는 난 기관차만 타면 되니 표를 끊으러 갔는데...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있고 안쪽에는 이창명이 있고, 경호원들은 오늘 증기기관차 운영 취소됐다고 사람들을 막고있었다.

무계획인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는 곳마다 뭔가가 틀어진다.

그저 주위 풍경이나 둘러보며 철길을 따라 걸었다.

한바퀴를 돌고 오니 '출발 드림팀'세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난 연예인에 관심도 없고 남자연예인은 더더욱 관심이 없기에 증기기관차를 운행중단시킨 드림팀을 욕하며 곡성역으로 향했다.

비나 많이 오라며 하늘에 빌며 돌아왔다.

곡성역으로 돌아와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에 도착해 광한루쪽으로 가다보니 추어탕집이 골목에 몇군데 있는데 돌솥밥 주는 곳에 가서 먹었다.

추어탕을 시키니 추어튀김도 같이 나오는데 원래 추어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배가 고프니 역시나 꿀맛이었다.

이때도 먹는 음식앞에서 사진찍는것을 부끄러웠기에 음식 사진이 없다.

남원에 가게 된 이유는 그저 남원 추어탕이 떠올랐기에 왔는데 와서 보니 춘향테마파크가 있었다.

입장료를 몇천원(?) 냈는데 얼만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비가 내려서 춘향이와 몽룡이 외에는 커플이 별로 안보였다.

나라에서 인정한 커플이라지만 곳곳에 커플이라고 껴안고 있는데 눈꼴시린다.

하지만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데 비가 내리니 길이 미끄러워지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동산 같은 곳이 있는데 올라가면 전투기가 두둥!

커플은 좀 맞아야하니 춘향누나가 좀 참아주세요.

딱히 재미는 없어서 또 올지는 모르겠다.

남원역에서 춘향테마파크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광한루로 왔는데 정말 좋았다.

물에 살얼음이 있고 그 위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라 좀 오래 둘러보다가 나왔는데 여기는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원 시내에도 루미나리에가 있는데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불은 안들어 왔다.

루미나리에가 이쁘기도 하지만 뭔가 전통등으로 새빨갛게 물들인 곳도 가보고 싶다.

다시 남원역으로 돌아와 전주로 고고싱.

전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전동성당쪽으로 와서 찜질방을 찾았다.

사람들이 전주한옥스파를 찾아가려면 그냥 레이저빛을 따라가면 된다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다.

옥상에서 레이져를 쏘는 저 위용.

건물 한채가 찜질방으로 사람이 엄청 바글바글거렸다.


2년전 일이라 기억이 좀 가물가물해서 사진을 보고 그때를 떠올리며 여행기를 쓰고있는데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고 있다.

원래는 하루동안 일어난 일로 한편을 써야하지만 내용이 없어 2파트정도로 나눌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써야겠다.


2년전의 여행기를 읽으시고 계신 여러분,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꺼내보세요. 그리고 웃읍시다.

[2009.7.13~2009.8.7]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Epilogue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나홀로여행이라 많은 기대를 안고 떠났었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길 바라며 떠난 여행이었는데 많은 것을 본 것은 확실한데 많은 것을 생각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로도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만의 여행테마가 존재했었는데 굳이 내 여행의 테마를 말하자면 '내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우리나라의 명소들을 직접 느껴보자.' 정도 일 것이다.
약 10%의 계획으로 떠났기에 머릿속에 있는 명소들을 즉흥적으로 찾아 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 말이 통하고 인터넷이 있으며 길이 뚫려 있으니 무계획이라도 괜찮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렸던 기차역마다 스탬프를 모으다보니 30개를 모았는데 스탬프가 없는 역도 많았으니 엄청 많이 돌아다닌 것이 실감이 난다. 처음 서울역에서 출발할 때 급한 마음에 도장을 못찍어 비워뒀는데 다음 여행에서는 꼭 찍어야겠다. 전국철도노선도를 보면 타고 지나간 구간이 약 90%가 넘는데 내일로티켓을 알차게 이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을 떠난지 1주일이 됐을 때는 '대한민국도 엄청 넓구나'라고 느꼈었고 제주도에 가서는 대한민국에도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며 감탄을 금치못했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돌아와 26일째가 되던 날에는 '우리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게 너무 없구나'라고 느꼈었다.
전국 방방 곡곡에 아름다운 곳이 더 있겠지만 내가 상식으로 알고 있고 네이버 기차여행 카페인 '바이트레인'에도 대부분 유명한 관광지들만 다녀와 글을 쓰는게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유명한 관광지는 외국인들이 가이드북만 봐도 나오는 것이기에 차가 생기면 유명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랬듯이 대학생의 로망이 유럽여행인데 우리나라부터 알고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여름에 쓰기 시작한 여행기를 겨울이 다 지나가서야 겨우 끝을 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닌 유명한 곳들만 돌아다녔지만 돈이 없다, 무섭다와 같은 핑계로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여행기를 보며 돈이 없고 혼자여도 잘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떠났으면 좋겠다.

젊으면 열정으로 늙으면 연륜으로라도 극복할 수 있는게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고민하지 말고 바로 떠나길 바란다.
  1. 많은 스템프 다 어디서 받은 거지? 돈이없다. 무섭다. 라기 보다는 나 같은 경우 먹고 살기위해 살았다라고 하면 핑계가 되겠다. 하여튼 용민님은 돈이 많다라고는 안 하겠다. 대신 여유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오랜 시간동안 여행을 다닐 수 있겠는가!

[2009.8.5]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여섯째 날 (안동-통리-청량리)


아침에 일어나 내일로 티켓을 1주일 더 연장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한 1시간정도 고민을 했는데 바이트레인의 내일로 후기나 지도를 곰곰이 살펴봐도 더이상 갈 곳이 안떠오르기에 (이래서 계획적인 여행이 중요하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안동구경에 나섰다.
처음으로 정한 곳은 어제 삘이 꽂힌 안동소주 박물관이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박물관 앞에는 커다란 돌에 민속주 안동소주라 써있고 입장료는 없었다.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였지만 우선 들어갔다.
전통음식박물관과 안동소주박물관은 이어져 있었는데 전통음식박물관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아 하나하나 설명을 읽으며 맛을 상상해봤다. 안동소주 박물관은 안동소주의 전통과 주조방법이 설명되어 있어 증류주의 주조방법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안동소주 박물관의 마지막 코스는 안동소주 체험이었는데 공짜라 한잔을 가득 채워 마셨더니 향긋한 향기와 함께 속이 뜨거워지며 맛있길래 가격을 물어봤더니 주조장에서 파는거라 안동시내보다 10%정도 더 싸다하셔서 2병을 구입했다.
돌아가려니까 버스잡기가 힘들다며 경비아저씨께서 손수 택시를 잡아서 기본료로 안동역까지 가달라고 흥정까지 해주셔서 편히 안동역으로 돌아왔다.
안동역에 돌아와 바로 집에 가기 아쉬워서 안타본 노선인 안동에서 통리까지 올라가는 노선을 타보기로 하고 남는 시간에 안동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인 전통문화콘텐츠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3천원을 내고 들어가면 RFID카드를 주는데 이 카드를 이용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설명은 다 컴퓨터로 재미있게 해놓아서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위에보이는 다리는 구슬을 발로 차서 주머니에 넣는 빛을 인식하는 기계였고 뒤에보이는 스크린은 2명이 하는 윷놀이 비슷한 게임이었다. 난 혼자 가서 못할줄 알았는데 안내하시는 직원께서 같이 해준다고 하셔서 안에 있는 2인용 체험도구는 모두 해볼 수 있었는데 혼자 온 사람은 같이 해주신다고 하셨다. 또 요즘 아바타로 널리 알려진 4D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내가 입장했을 때 상영이 끝나가고 있어 시간이 안맞았는데 관리 하시는 아저씨께서 서울에서 왔으니 틀어주신다고 해 특별 상영으로 태조왕건 최고의 결전인 고창전투를 관람할 수 있었다.
안동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맘모스제과에서 밀크쉐이크와 기차에서 점심으로 먹을 빵들을 샀는데 그 날 구운 빵중 안팔린 빵은 어려운사람들에게 준다고 해 더욱 정감이 갔다. 안동에서는 나름 유명한 빵집인 것 같았는데 밀크쉐이크가 고소해서 맛있었고 안동에 가면 한번쯤 들리길 추천한다.
안동은 좋은 점이 관광안내소에서 버스시간표와 지도를 나눠주는데 아주 요긴하게 잘 이용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달려 통리역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으려 했지만 통리역은 스탬프가 없다고 해 그냥 청량리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안개가 멋있어 선로사진을 찍으며 놀다보니 기차가 도착했고 집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서울로 입성해 회기역도 지나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청량리역의 열차안내판은 아날로그 방식이라 신기했었다.
청량리역을 나와 역간판을 찍는데 서울에 갓 상경한 차림으로 신기한듯이 청량리역 사진을 찍으려니 살짝 부끄럽기도 했는데 사진이 자꾸 흔들려 5번정도 도전끝에 겨우 찍고 26일간의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1.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면서 읽어서 그런가 26일간의 여행에서는 어디서 숙박을 했나? 한국의 숙박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ㅡ 비용걱정을 하면 여행 못한다 꾸지람 듣겠다.

  2. 스템프를 기차역 매표소에서 받는 모양이군. ^^

[2009.8.5]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다섯째 날 (영주-부석사-안동-하회마을)


침실객차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고 부석사를 가기로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 천도복숭아 한 소쿠리를 3000원에 파시길래 2천원어치만 달라했더니 절반을 덜으시길래 그냥 3천원어치 사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부석사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폭포와 분수들이 있었지만 커플들이 많아서 위에서 찍고 부석사로 향했다. 부석사 매표소를 오르기전에 꼬마애가 풋사과를 3개에 2천원에 팔길래 3개를 사고 매표소로 갔다.
입장권을 끊고 부석사를 오르는데 '풋사과 5개에 2천원'이라는 푯말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아이에게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길을 올랐다.
천왕문안의 4대천왕님들을 구경하다 부석사로 들어갔다.
천왕문을 지나자 아름다운 길이 펼쳐져있었는데 왜 부석사가 유명한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며 그저 감탄하며 올라갔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멋있지만 우리나라의 건물들도 충분히 멋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을 보는데 옆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길래 몰래 스며들어 같이 들었다.
거기서 석룡이 무량수전 본존의 대좌 밑에 머리를 두고 꼬리가 위 사진의 무량수전 앞 석등에 배치되어 있는데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조선의 지맥을 끊으려고 칼로 용을 잘랐고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확인해보니 잘려져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관상이나 풍수지리를 믿기에 그 잘린 용을 복구해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지길 바라며 무량수전을 나왔다.
무량수전 뒷편의 길을 따라 오르면 부석사의 전경이 보이는데 푸른 하늘 밑의 부석사는 소설속에서나 나오는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후 도를 깨치고 서역 천축국(인도)으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한 나무인 선비화는 500년이 지났다는데 사람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만지고 잎을 따 철책으로 보호중이여서 씁쓸했다.
아름다운 부석사에 빠져있다 부석사의 유래가 된 부석을 보러갔다.
부석사를 다 둘러보니 버스시간이 다 되가 버스를 타고 영주역으로 향했다.
저번에 비가 와 못갔었던 안동을 가기로 하고 안동역으로 갔다.
하회마을로 가는 버스도 배차간격이 길어 계획을 세울 때 잘 세워야 할 것 같았지만 난 무계획이였으므로 상관없이 가장 빨리 오는 버스를 탔다.
하회마을은 입구에서 내려 표를 입장권을 끊고 버스를 다시 타서 입장하는 방식이었다. 영주에서 산 천도복숭아중에 맛있어 보이는 것들은 아껴뒀다 가져왔었는데 잠을자다 입장권을 사려고 깼더니 버스 바닥에 천도복숭아들이 굴러다니고 있어 '아끼다 똥된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한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혼자 오신 형이 보이길래 말을 걸어 같이 하회마을을 구경하기로 하고 서로 여행담을 이야기하며 하회마을 구경에 나섰다.
2만원에 가훈을 두루말이에 직접 써주시길래 고민하다가 기념품으로 하나 사기로 결정하고 각 성씨마다 내려오는 가훈이 있다길래 초계 최씨의 가훈인 '심여금석'으로 결정했다.
그냥 화선지에 쓰는 것은 무료라길래 고민하다 '경세제민'을 써달라고 하니 보통 사람은 그런 말을 안써가는데 정치인이 될거냐고 물어보셔서 허허 웃으며 다시 하회마을 구경을 시작했다. 구경을 하려는데 옆에 신한은행 홍보여행단이 있어 구경해보니 명찰에 우리학교이름이 써있길래 아는척을 하고 인터뷰를 마친뒤 구경하던 형에게 물어보니 홍보단은 신한은행에서 돈을 대주는데 경쟁률이 쎄다고 알려주셨다.
운치있는 돌담길을 지나
소원을 비는 나무에 소원도 2개나 적었는데 동생 대학합격과 하나는 무엇을 적었는지 까먹어버렸다.
유성룡 생가에서 너무 친숙하게 생기신 유성룡 할아버지도 보고
하회마을은 민속촌처럼 꾸며 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사는 마을이라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옛 집에서 민박처럼 하룻밤 자는데 100만원이 넘는 방도 있다고 한다. 가장 비산 방이 150만원인가 한다던데 배용준이 묵은 방은 80만원짜리라고 했다.
비가 와서 구름이 꼈었는데 그 또한 운치가 있었다.
어릴때 기억도 잘 안나고 도시에서 자라 시골집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아담한 마을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정겨운 모습이었다.
낙동강 물줄기도 구경하는데 맞은편의 산에서 하회마을을 휘어 내려가는 모습도 한번 보고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 건너 산에서 소리가 나길래 올려보니 사람들이 있었는데 너무 부러웠지만 부러우면 지는거라 생각하며 가슴을 달랬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장승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진비용 500원을 내라고 했지만 가난하기에 그냥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버스를 타러 돌아가던길에 안동소주를 보고 삘이 꽂혀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버스를 탔다.
다시 안동역으로 돌아와 형과 함께 찜닭을 먹기로 하고 찜닭골목에 들어가 찜닭을 시켰는데 매콤하면서 달달한 맛이 일품이었다. 양도 푸짐했지만 국물에 밥을 비벼먹어보고 싶어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켰다가 두명이서 겨우 다 먹고 나와 형과 헤어진 뒤 이제는 집보다 편하게 느껴지는 찜질방으로 가 잠들었다.

  1. 숙박에 찜질방을 이용했군요. ^^ PC방도 싸고 좋은데 담배연기가 무지 싫다.

[2009.8.5]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넷째 날 (김천-점촌-문경새재-영주)


김천에서 점촌으로 가는 기차시간이 좀 늦기에 잠을 푹자고 일어나 역시나 김밥(김밥천국 할렐루야)을 샀다.
8시 30분쯤 김천역에 도착해 문경새재를 향해 출발.
맨발로 문경새재를 걸을 것이기에 운동화는 가방에 넣고 쪼리를 신은 뒤 점촌역에 가방을 맡기고 문경새재 가는 길을 물어 물어 농협앞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배차간격이 긴편으로 10시 30분쯤 점촌역에 도착해 빨리 걷는다면 바로 버스에 탈 수 있다.
점촌에서 문경가는 버스시간표와 문경에서 점촌가는 버스시간표인데 문경새재를 둘러보고 나가서 기차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운행시간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문경새재 입구쪽에 옛길박물관이 있었지만 그저 무언가를 배우려고 아무 박물관이나 들어가서는 배울게 없다는 것을 여행하며 느꼈기에 별로 끌리지 않아 바로 패스했다.
여기서부터 문경새재입구인줄 알고 '맨발로 다녀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려오는 분께 여쭤보니 좀 더 올라가야 입구라 하셔 그냥 걷기 시작했다.
문경새재 과거길이 나오고 제1관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1관문 옆으로는 잔디밭이 있어서 누워있고 싶었지만 문경새재가 더 끌렸기에 잠시 머물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각 관문마다이름이 있는데 1관문의 이름은 주흘관이다.
주흘관을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당연히 1관문~3관문을 왕복하기로 했다.
흙길을 좀 걷다 쪼리를 크로스백에 고리로 걸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보면 색소폰 라이브 카페가 나오는데 입구에 있는 글귀는 너무 인상적이여서 한참을 서서 읽고 또 읽었다.
문경새재길은 숲에 고운 흙길이 깔려 있어서 맨발로 걸으며 산림욕을 하기에도 좋았다.
길을 걷다보면 시를 새겨둔 돌이 많이 보이는데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신기하게 생긴 교귀정소나무를 지나
궁예의 최후촬영장이 나왔다. 태조 왕건을 재밌게 봐서 궁예의 마지막도 기억을 하고 있었기에 '아, 여기가 거기구나.'라며 신기해했었다.
조금 더 걷다보면 쭈구리 바위가 나오는데 전설도 전설이지만 물이 너무 맑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 그냥 감탄만 하고 다시 걸었다.
돌탑을 쌓으며 소원도 빌고
원래도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딱딱한 흙길이 아닌 물을 머금은 젤리로 된 흙길을 밟는 기분이여서 기분도 좋았고 흙길이라 걷기 편했다.
가다보면 조곡폭포라고 깨끗한 폭포가 나온다. 문경새재라 해서 그냥 길만 이어졌다면 살짝 지루할수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구경거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제 2관문의 이정표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니 푸른 하늘 아래 제2관문인 조곡관이 나왔다. 2관문에서는 3관문을 안가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2관문을 지나니 한적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흙길의 모래 알갱이가 굵고 뭐가 막 떨어져있어 발이 엄청 아파 쪼리를 신을까 고민하다가 포기하는게 싫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르막에다 길이 좋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드디어 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다.
힘들게 올라왔지만 맑은 하늘의 구름을 보니 상쾌했고 성취감도 느껴졌다.
고사리주차장쪽으로 내려가보고 싶었지만 짐이 점촌역에 있어 아쉬웠다.
아쉬움과 3관문을 뒤로하고 다시 1관문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에 널린 염소똥만한 것들이 발을 아프게하며 신발을 신으라고 유혹했지만 지압이라 생각하며 내려오는데 수녀님들과 아줌마들은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내려가시길래 '나는 젊다'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내려왔다.
올라갈 때 까먹고 안찍은 궁예의 마지막 촬영장소이다.
고생한 발사진을 찍어보니 흑과 백의 대조가 극명하게 나타나 신기했다.
내려오다보니 사극을 찍으려고 말도 있었고 연예인들도 있었는데 멀어서 누군지 구분은 못했었다.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온다며 1관문에게 약속하고 점촌역으로 향했다.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명예역장도 보고
삶의 의미라는 아주 좋은 시도 보고
증기기관차를 보며 영주역으로 향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영주역에서는 내일로 이벤트가 없었는데 영주역에 도착하자 침대객차가 보였다.
원래는 전에 묵은 찜질방에서 자려했지만 침대객차에서 자보고 싶어 여쭤보니 자리가 빈다고 자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샤워장에서 씻고 침실객차에 올랐다.
난 당연히 2층을 선택하고 생각해보니 옛 말에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해 임금들이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나도 바보라고 생각하며 처음 타본 침실객차를 이리저리 구경하다 잠들었다.

  1. 저도 아직 타 보지 못한 침대객차 ㅎㄷㄷ........부럽습니다...

  2. 여행전문가로 말해야 할 거 같다. 국내든 해외든 살아있는 여행을 하고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말 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2009.8.4]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셋째 날 (여수-전주-김천)


우리는 오동도에서 향일암이 가까울줄 알고 버스가 없으면 택시를 탈 계획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1시간정도 가야 향일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향일암에 도착해 버스시간표를 보니 여름에는 아무리 첫 버스를 타고 와도 해가 뜬 뒤에 도착할 수 있어 향일암에서 노숙하기로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나 있었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헥헥대며 올라 향일암 입구에 자리를 잡았는데 긴팔 남방을 입어도 너무 추워 향일암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니 경비겸 기념품판매소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기도안할거면 대웅전에 들어가지도 말라며 뭐라하시고 절에도 못 있게해 일출을 보는 곳에서 우비를 덮어쓰고 '부처님을 생각해 절을 아끼는 마음인지는 몰라도 과연 부처님께서 추운 곳에 사람을 두고 대웅전을 지키길 원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선잠을 잤다.
추워서 30분정도밖에 못자고 멀뚱히 있다보니 일출시간이 다 되어가고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5시 10분쯤 되자 동이 터오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구름때문에 태양을 구경하지도 못하고 그저 허탈한 마음을 안고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찍은 향일암의 입구쪽에 있는 통로인데 바람이 불지않아 새벽에 통로에서 잠을 잘까 하다가 무서워서 뛰어 나왔었다.
향일암을 올라가는 언덕인데 밤에 올라갈 땐 어두워서 겨우 올라갔지만 밝은 아침에 보니 두번 다시 오르지 못할정도의 경사였다. 잠을 못 자 정신이 오락가락해 사진도 흔들린 것이 보인다.
밑에 있는 마트에서 돌산갓김치를 얻어 컵라면을 먹었는데 얼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은 천국에 온 것 같았다.
향일암에 처음 올랐을 때 운치있는 모습이 멋있었고 개인적으로 무교지만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웅전에 절을 하러 들어갔다가 큰 실망을 했었다. 물론 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대웅전 전체를 금박으로 도배해놓고 절 안에 금박을 입히는데 돈을 낸 사람들의 명찰과 그들을 위한 작은 불상들은 살짝 역겹기까지 했다. 때문에 금으로 화려하게 도배된 향일암의 거지같은 모습은 찍지 않았다.
내가 무슨 고승도 아니고 물질에 초연한 사람도 물론 아니지만 과연 부처님께서 대웅전을 금박으로 도배를 하는 돈지랄을 원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2009년 12월에 향일암이 전소됐다는 뉴스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출로 유명한 곳이라 안타까웠지만 금으로 떡칠된 대웅전이 전소된것은 하늘이 땡중들에게 내린 경고라 생각했다. 땡중뿐만이 아닌 종교로 사람을 현혹시켜 자신의 배를 채우는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결국 정동진, 성산일출봉에 이어 향일암에서도 일출을 못보고 여수역으로 돌아와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제주도에서 함께한 친구가 입대하는 날이라 전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주역에서 친구를 만나 친구 부모님께서 한정식을 사주셨는데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는 반찬은 신기하고 엄청 맛있었다.
입소식이 끝나고 친구는 군인이 되었고 나는 전주역으로 돌아와 전주구경을 하려했지만 팜플렛을 봐도 딱히 갈 곳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갑자기 떠오른 문경새재에 가기로 결정하고 동생에게 전화로 정보를 입수한뒤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문경새재는 점촌역에서 가야하는데 점촌역으로 가는 열차는 시간이 안맞아 다음날 김천에서 첫 열차를 타고 가기로 하고 통로에 앉아서 매일 기차로 통근하시는 아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한가지 노하우를 배웠는데 여름에 기차통로에 있어야 한다면 위 사진에서 방석이 있는 자리에 앉으면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진에 찍힌 구멍으로 찬바람이 나오는데 오래 앉아 있으면 추울정도로 시원하게 나오니 내일로 여러분들은 많이 애용하길 바란다.
그저 멍하니 기차를 타고 구름을 보고 사진을 찍다보니 김천에 도착했다. 김천하면 내 여행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전국의 김밥천국들이 떠올라 왠지 더 정감이 갔다.
스펀지에 나온 240m짜리 초대형 육교를 건너 문구점에서 수명이 다한 이어폰연장선을 새로 구입하고 찜질방으로 들어가 할 일 없이 빈둥대다가 잠에 들었다.

  1. 향일암의 일출은 꽤 보기 힘들지만 한번 보게되면 계속 향일암만 찾게되는 마력이 있지요.

    최근 화재가 너무 안타깝네요.

    • 3번의 일출도전이 실패했지만
      이틀전에 다녀온 여행에서는 묵호등대에서 일출보는데 성공했습니다 ㅎㅎ
      여름 여행기를 빨리 다 쓰고 망한 겨울여행기도 올릴테니 기대해주세요.
      하지만 말 그대로 '망한'여행입니다 ㅠㅠ

  2. 저도 이번에 여수에 가는데, 일출을 보려는 미리 항일암에 가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군요 ㅠㅠ 아, 그런데 여수역에서 오동도로 몇번버스타고 가셨는지 기억나세요?

[2009.8.3]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둘째 날 (벌교-보성-순천-여수)


또다시 편의점에서 아침을 때우고 보성가는 열차를 탔다.
보성역에서 내리니 사람이 내일로로 오신분들이 몇 명 보여 그 분들을 따라 긴 육교를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전국각지에서 온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숲처럼 생긴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대한다원이 나온다.
입구를 지나가면 맛보기로 녹차밭이 나오기 시작한다. 초록색 물결이 밀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녹차밭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장권을 사고 올라가면 본격적인 녹차밭이 시작되는데 녹차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 2개나 먹고 싶어진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보았기에 녹차아이스크림 한 컵을 사서 올라갔는데 녹차를 보며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진한 녹차맛이 느껴졌다.
길을따라 올라가면 양 옆으로 장대한 녹차밭이 펼쳐져있다.
생녹찻잎은 어떤 맛일지 몰래 따서 혀에 올려보고 씹어보기도 했는데 그저 풀맛만 나 왠지 모르게 실망했다.
이 많은 것들을 손으로 따고 말려 차를 만든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감탄을 하며 계속 올라가는데 산이기 때문에 살짝 힘이 들기 시작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보성 녹차밭이 유명한 것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지만 꼭대기인 바다전망대를 향해 계속해서 올라갔다.
하지만 산은 올라온 만큼만 보여준다 했듯이 바다 전망대에 오르고 밑을 보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길을따라 늘어진 녹차밭은 입이 벌어질만큼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니 펜션같은 스위스풍의 아름다운 집들이 있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최신기술이 적용된 집이 더 좋아 그냥 '이쁘다'밖에 못 느꼈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전망대라길래 엄청 기대하고 올랐지만 산너머에 보이는 바다는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다. 처음엔 바다가 어딨는지도 몰라 옆 아저씨께 물어보니 구름밑에 약간 진한 색이 바다라고 알려주셔서 겨우 찾아냈다.
줌을 당기지 않은 상태의 사진인데 저기서 어떻게 바다를 찾으란건지 작명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것보다 중간에 있는 한반도(?)모양의 숲이 더 신기했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와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하다보니 여러가지 종류의 녹차가 있길래 곡우전에 가장 어린순을 따서 만든다는 녹차 1통을 사고 역으로 돌아왔다.
철도위를 지나는 육교에서 사진도 한방찍고
시계를 찬 부분만 안탄 사진도 찍으며 순천역으로 향했다.
순천역에 도착해 여행기간동안 한번도 못 먹은 맥도날드 런치세트를 먹으려고 20분동안 맥도날드를 수소문했지만 없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이마트에 가면 뭔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이마트를 갔지만 순천 이마트에는 푸트코너가 없어 이마트 100원짜리 보관함에 가방을 맡긴 뒤 순천역으로 돌아왔다. 순천역 인근에 있는 시장구경에서 먹을 것을 찾아 보았지만 죄다 과일밖에 없어 그냥 시장국밥을 먹고 순천만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완전히 꼬이기로 작정했는지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의 배차간격이 30분~1시간 30분인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순천만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특이해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길을따라 가자 오리 한쌍이 보이는데 가만히 서있길래 로봇인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오리란다.
입구인 무진교를 따라 순천만 탐사를 시작했다.
원래는 순천만을 따라 가는 배도 타보려 했지만 월요일은 정기휴무여서 가슴은 아팠지만 돈은 굳었다.
여름이라 푸른 갈대밭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자연에 한발 다가간 느낌이 든다.
뻘에 게도 있지만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많이 본거라 양념게장을 먹고싶다는 삭막한 생각만 들었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갈대밭이 파여있는게 보이는데 무슨 문양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라 그냥 무시하고 걸었다.
길을 걷다보니 용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하지만 난 계단을 만든사람을 증오할정도로 계단을 싫어하기에 10초정도 고민하다 눈물을 머금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단이 끝이 아니였고 20분정도 산을 타고 올라가니 용산전망대가 나왔다.
하지만 용산전망대에서 밑을 보는 순간 10초간 고민한 내 자신이 싫어질 정도의 멋진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천만 사진의 단골 메뉴인 S자형 물길과 탁트인 경관은 못봤다면 정말 후회할 풍경이었다.
전망대에서 얻은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여행 오신 분을 만난 것이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와 자연생태관에 들어갔다.
거금 2000원을 내고 들어갔지만 초등학생이나 볼 생태계 관련된 전시관이라 실망하며 나왔다. 전망대에서 만난분과는 여수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헤어지고 순천역으로 돌아와 이마트에서 가방을 찾고 과자와 1L짜리 쿨피스로 배를 채웠다.
다음목적지인 여수를 향해 또다시 출발했다.
여수역에 도착해 전망대에서 만난 분께 연락하니 오동도에 있다고 하셔서 오동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동도에 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야하는데 사람 수가 3~4명정도 되면 택시비가 싸다고 해 사람을 모아 택시를 타려하는 순간 버스가 와 버스를 타고 오동도로 출발.
오동도에 도착했더니 전망대에서 만난 분이 오동도에서 만났다며 여자 1분을 소개시켜 주셨다. 사연을 들어보니 나보다 1살 어린데 떠나고 싶어서 친구와 같이 떠났다가 친구랑 헤어지고 혼자 오셨다길래 여자 혼자 돌아다니시는 것에 감탄을 했다. 캔맥주를 마시며 셋이서 여행이야기를 하다보니 음악분수대가 시작해 달려가 삼각대로 동영상 촬영을하며 분수쇼를 감상했다. 음악분수대는 처음 보는거라 신기해서 감탄하고 내가 좋아하는 Bond나 Maksim의 곡이 나와 더더욱 흥겨웠다.
음악분수가 끝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찜질방에서 잠을 자면 향일암에서 일출을 못 본다며 향일암에서 날을 새고 일출을 보기로 하고 오동도를 나가기로 했다.
야경을 찍을 때마다 느끼지만 다나와에서 산 1000원짜리 미니삼각대의 힘은 위대했다. 여행자라면 꼭 사서 다니길 추천한다. 오동도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기사님께서 향일암가는 버스는 이미 끊겼을거라며 우선 타라고 하셨다. 버스에 타니 중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타면 갈 수도 있겠다며 총알처럼 달려주신 결과 겨우겨우 막차를 타고 향일암에 갈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2009년 8월 2일 오동도에서 출발한 삼일버스 61번 전남 70 아 5115를 몰아주신 버스기사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동영상은 음악분수 동영상인데 꼭 한번 직접가서 보기를 권한다.
  1. 제 1다원이군요. 가신김에 제 2다원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제 2다원만의 매력이 또 있거든요. 오동도 음악분수는 낮에만 봐서 몰랐는데..

    밤에도 색다른 매력이 있군요.

[2009.8.2]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하루째 날 (진해-봉하마을-벌교)


아침에 일어나보니 진해에 있는 친구에게서 부재중전화가 5번정도 와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씻고 찜질방에서 나오는데 전화가 다시 와 받아보니 신종플루때문에 전날부터 비상이 걸려 면회가 안된다며 빨리 와서 빌어보라고 말을 하길래 택시를 타고 해군의 집으로 갔다.
그녀석은 안에서 빌고 나는 밖에서 서울에서 왔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결국 안된다고 10시가 넘어 통보를 받았다. 재수없게도 진해에서 나가는 기차는 오전 10시다음에 오후 3시에 있어 오후 3시까지 진해에 박혀 있어야 해 어쩔 수 없이 마산역 가는 버스를 타고 마산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봉하마을을 가기로 하고 아이팟으로 마산역 기차 시간을 보니 아슬아슬 할 것 같았다.
마산역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기차를 타고 진영역으로 향했다.
진영역에 도착하니 거리는 약 5km정도고 택시를 타면 7천원정도 나온다고 해 진영역에 가방을 맡기고 걷기로 했다.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봉하마을을 찾아 갔다. 한여름이라 너무 더워 중간에 편의점에서 음료수 2병을 그자리에서 다 마시니 주인 아저씨가 걸어서 걸어서 가기 힘들다며 응원을 해주셨다. 봉하마을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가 나오자 차들이 꽉 막힌 것을 보며 걸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10초정도 하고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멀리서 부엉이 바위를 보자 저기서 떨어지셨을 대통령님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작은 비석 앞에서 참배하고 나니 또 소름이 돋았다. 비석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놓은 국화들과 편지들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보니 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념관같은 곳도 있었는데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받은 돼지저금통들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멋진 시구도 봤다.
돌아 오는 길인데도 역시나 차들은 꽉 막혀있어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뙤약볕에 우산을 양산삼아 진영역으로 힘들게 돌아와 다시 기차를 기다렸다. 다음날 원래 가려했던 보성 녹차밭을 가기 위해 벌교에 새로 생긴 찜질방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기차를 계속 타고 벌교역에 도착해 유명한 꼬막정식을 먹어보려고 내일로로 여행온 사람이 있나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어 그냥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4군데의 식당을 들어가 본 결과 모두 1인분은 팔지 않아 국밥집을 찾다보니 찜질방에 도착해버려 찜질방 앞에 있는 식당에서 추어탕을 시켜먹었는데 아침먹은 뒤로 굶다가 7시에 처음 먹은 밥인데도 맛이 없어 돈을 생각하며 겨우 다 먹었다.
찜질방에 들어가니 귀중품은 쇼핑백에 넣어서 카운터에서 보관해주고 탕은 동네 목욕탕 보다 작았고 찜질방은 가동도 안되고 있었다. 많이 움직여 피곤했기에 평상에 누워 잠이 들었다.

[2009.8.1]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스물째 날 (광주송정리-진주-진해)


새벽에 일어나도 항상 문을 연 김밥집들에 감사하며 역시나 김밥과 음료수를 사고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원래 보성을 가려다 주말이 걸려 친구들 생각이 나서 순간적인 feel로 '군부대 방문 특집'을 하기로 했다.
우선 진주 공군교육사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 어머니께 연락을 해 부대위치를 알아내 보성을 지나 진주를 향하기 시작했다.
진주역에 도착해 면회 신청을 했더니 친구가 깜짝 놀란 얼굴로 면회를 나왔는데 얼굴이 수척해져 마음이 짠했다. 핸드폰을 빌려줘 엄마랑 통화하더니 울먹이길래 가슴이 아파 음식을 막 먹이고 4시 30분이 지나 면회를 끝내고 진주역으로 돌아와 진해에 해군으로 복무중인 친구를 만나러 진해역으로 향했다.
진해역에 도착해 찜질방 위치를 물어보니 30여분 가야한다고 해 걷다보니 엄청 웃긴 핸드폰가게가 나왔는데 사장이 센스가 넘치는 것 같았다.
30분정도 걸어 찜질방에 도착했는데 찜질방 입구부터 물이 좋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물이 좋아야 얼마나 좋겠냐며 탕에 들어갔는데 몸이 매끈매끈해지길래 탕을 둘러보니 옛부터 임금님이 찾아 오던 물 좋은 곳에 찜질방을 세웠다고 해 신기해하며 목욕을 즐기고 잠들었다.

[2009.7.31]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열아홉째 날 (광주-무등경기장)


전날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광주에 볼거리가 없었다.
아무데나 돌아다닐까 생각하다 그냥 다음날 갈 곳을 생각하다 좋은 자리에 앉기위해 4시쯤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해 걱정됐지만 맥주와 간식거리를 사서 버스를 타고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 제주도에서부터 예매하고 기대한 '광주에서 KIA경기 보기'가 물거품이 될까봐 기도도 하고 허경영에게 빌기도 하며 무등야구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우신건지 무등야구장 도착 100m전까지만 비가 내리고 야구장에는 비가 한방울도 안와 기분좋게 자리를 잡으러 갔는데 역시나 광주 아저씨들께서 응원단상 부분을 점거하고 계셨다.
여차저차 겨우 꼽사리로 응원단상쪽에 자리를 틀고 뒷자리 아저씨께서 주시는 술과 안주를 먹으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최악의 시설이라고 인터넷에서 듣던바와 같이 무등구장은 잠실이나 문학과 비교해 너무 질이 떨어졌다.
의자도 좁고 야구장 벽도 금이 가있고 화장실은 갈 엄두도 안날정도였다.
응원봉을 안사와 자리를 맡아놓고 응원봉을 사러갔다가 엄청 덩치가 큰 선수를 보고 쫓아갔더니 국민노예 '정현욱'선수길래 악수 한번 하고 돌아와 선수들 연습하는 것을 구경했다.
삼성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라인업이 뜨고 종범신이 1번타자로 나온 것을 보고 환호했다.
시작전에 코코마들의 율동도 보고
철망으로 내려가 기아 선수들 연습도 구경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에 윤석민이 1점을 내줬지만 윤석민이라 1점은 줘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봤고 기아는 0-1로 뒤진 4회말 무사 2루에서 김상현의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홍세완의 연이은 2루타로 역전에 성공해 5:2로 승리했다.
윤석민 선수가 MVP로 선정돼 인터뷰를 하는동안
오늘의 타자로 뽑힌 홍세완 선수가 응원단상에 올라와 인사도 하고 사인볼도 던져줬다.
인터뷰가 끝난 윤석민 선수도 응원단상에 올라와 인사를 해줬는데 잠실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여서 즐거웠다.
경기장에 나와 작은엄마네로 돌아와 다음날 보성을 가기위해 첫차 시간을 알아보니 첫차를 타도 제시간에 광주송정리역까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어 인사를 드리고 광주송정리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버스 막차를 탈수 있어 지하철역까지 잘 갈 수 있었다.
광주 버스를 탈 때마다 요금통이 자판기에 돈 넣는 것처럼 생겨 돈을 지폐와 동전 넣는곳이 따로 있는데 넣은 돈을 알아서 정산해주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었다.
대구지하철과 같이 광주지하철도 표가 동그란 모양으로 되어 나올때 자판기에 돈 넣듯이 표를 넣고 나온다.
광주송정리역에 도착해 찜질방에 갔더니 황금찜질방이여서 욕탕이 황금 천지여서 신기해하다 잠들었다.

[2009.7.30]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열여덟째 날 (광주-담양)

편한 곳에서 자서 역시나 늦게 일어났다. 작은엄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담양으로 향했다. 말바우시장에서 버스를 타면 담양까지 가는데 나는 관방제림-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죽녹원 순으로 구경했다.
관방제림은 홍수피해를 막기위해 선조들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인공림이다. 관방제림에는 나무에 번호가 붙어져 있는데  두번째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나무가 1번이다.
관방제림의 옆에는 담양천이 흐르고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른쪽에 조각공원이 있었다. 작품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둘러보며 산책하기에는 좋았다.
햇볕이 쨍쨍했지만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줘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쉬어가라고 만든 팔각정과 마루도 있는데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여행을 다니며 무언가 느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자연을 즐길줄 알게 된 것 같다.
잠에서 깨 다시 걸어가니 마지막 177번 나무가 나왔다.
관방제림을 지나면 장승들이 세워져 있는데 장승을 지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이 나온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이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는데 난 이야기만 듣고 가서 처음보고 엄청 놀랐었다. 길을 따라 메타세콰이아가 심어져 있는데 나무가 엄청 높고 길도 길어 신기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커플들이나 가족들이여서 혼자 와서 사진찍고 구경하는 내가 좀 처량해 보였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가 돌아서서 다시 관방제림을 통해 죽녹원에 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국궁장이 보여서 활 쏘는 것을 구경했는데 엄청 재미있어 보여 군대 갔다 와서 배워보고 싶었다.
입장료 천원을 내고 죽녹원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 갔을 때는 '에게 이게 뭐야. 너무 기대가 컸나?' 하는 정도로 실망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맑은 하늘 아래 곧게 뻗은 대나무들사이로 난 길은 장관이었다.
죽녹원에는 운수대통길, 철학자의 길, 죽마고우길 등 8가지 테마의 길이 있이 있는데 테마에 따라 걷는 것도 재미있다.
역시나 죽녹원에도 커플들과 가족들이 많았는데 커플끼리 사랑하는 것은 알겠어도 저렇게 나무에 이름을 파 놓는 것은 좀 무식하다고 생각된다. 죽녹원을 한바퀴 돌고 고깃집에서 파는 가짜 죽통주가 아닌 원조 죽통주를 사러 기념품가게에 갔더니 비가 많이 와 대나무 질이 나빠 죽통주를 못만들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담양 구경을 하고나니 배가 고파 죽통밥정식을 먹기로 했다. 처음엔 1인분이 될까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1인분 주문을 받아 주셨다. 죽통밥은 잡곡밥이고 갈비와 찌개, 나물등이 나오는데 갈비 옆에 있는 처음먹어본 죽순무침은 엄청 맛있었다. 참고로 죽통밥을 먹고 죽통을 달라고 하면 준다는데 짐이 늘어날까봐 난 그냥 나왔다.
밥을 먹고 주위 기념품판매장들을 돌며 죽통주를 구했지만 파는 곳이 아무 곳도 없었다.
장마철에 여행을 다녔지만 내가 지나간 뒤에 비가 내렸기에 비를 원망한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비를 원망했었다.
다시 광주로 돌아와 어디를 갈까 지도를 보며 고민하다 구 전남도청을 가기로 했다.
도청 앞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플랜카드들과 518 민주항쟁때의 잔인한 사진들이 있었는데 너무 참혹해 민주화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했다.
민주화의 역사가 있는 도청을 허물고 문화전당의 입구를 세운다는게 어이없지만 일부라도 보존하기 위해 오월의 문이라는 형식으로 도청 중간에 문을 만드는 형식을 제안했다는데 이마저도 안 받아들여 질 수 있다고 한다.
안에 계신분께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학교 건물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옥상에 올라 구경을 차가 지나 가는 것을 구경하다 내려왔다.
내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개략적인 것뿐이었다. 하지만 강풀이 그린 26년이라는 웹툰을 보고 나니 그 때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검색도 해봤다. 그리고 전남도청에 들어가 그 때 상황을 상상하니 가슴이 아팠고 절대 허무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되는 분들이 아직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모른다면 강풀의 26년을 꼭 보시길 추천한다.

작은 엄마네 집에 돌아와 잠시 쉬다가 광주에 있는 친구와 전남대앞에서 술을 한잔 했는데 서울에 있는 우리 학교 앞보다 엄청난 번화가라 부러워 하며 친구와 회포를 풀었다.

[2009.7.29] 26일간의 전국일주 이야기 - 열일곱째 날 (제주도-목포-광주)

한라산을 오른 다음날 비를 맞으며 올레길을 걸어 피곤할줄 알고 오후 배를 타려했는데 혹시나 하고 5시 30분쯤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버렸다. 살짝 피곤하긴 했지만 목포행 배에서 다시 자기로 하고 찜질방에서 나와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제주도의 아침바다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다를 보며 여객선 터미널로 가다가 맥도날드가 보여 맥모닝이라는 걸 먹어보려다가 간에 기별로 가지않을 것 같아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고 티켓을 끊었다.
올 때는 비수기 요금을 내고 왔지만 돌아갈때는 성수기 요금을 내고 돌아왔다.
완도에서 올 때보다 더 큰배를 타고 목포로 출발했다.
원래는 오후배를 타고 목포에 밤에 도착해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목포시티투어를 하려 했지만 이왕 도착한김에 목포 구경을 하기로 하고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목포역까지 걸었는데 죄다 홍어만 팔아서 별로 구경할 것은 없었다. 목포역에 도착해 유명한 유달콩물에 가서 콩국수를 먹었는데 엄청난 양과 고소한 맛은 일품이였다. 난 부모님이 전라도분들이셔서 콩국수에 설탕을 뿌려먹는게 익숙했지만 옆테이블의 강원도에서 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신기하게 보셔서 전라도 특색이라며 설탕을 추천해 드렸더니 맛있게 드셨다.
힘들어서 사진찍을 정신도 없이 구경만 하다가 국도 1,2호선 기점에 가서야 정신을 차렸다.
도로라 차가 계속 다녀 여러번의 시도끝에 자동차 없는 사진을 찍고 어르신들께 물어물어 목포의눈물 비석이 있는 노적봉으로 향했다.
더워서 헥헥대며 노적봉에 오르다 다산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