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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다시 인도-Again India

배낭메고 세계일주 - 041. 시크교는 시크하지 않다. (인도 - 암리차르)


밤기차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리쉬께쉬보다 북쪽에 있는 암리차르라는 곳이다.
원래 계획은 리쉬께쉬에서 10일정도 지내다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며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양지로 유명한 마날리를 거쳐 달라이 라마가 있는 맥그로드 간즈를 갔다가 암리차르로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요가가 정말 재미있었기에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로 바로 암리차르로 왔다.

암리차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금사원으로 시크교의 사원이다.
기차역에서 약 30루피(한화 600원)를 내면 황금사원까지 싸이클릭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난 사이클릭샤를 타지 않을 뿐더러 역 앞에 시크교에서 공짜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황금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생각을 하며 줄을 섰더니 줄을 관리하시는 분이 시크교에 방문한 외국인이니까 먼저 태워준다며 옆에 나와있게 한 뒤 제일 먼저 타게 해주셔서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암리차르에 대해 듣기 전까지는 시크교라는 종교가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첫 느낌이 참 좋다.

15분정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찬송가 같은 것을 부르길래 같이 따라 부르다보니 황금사원에 도착했다.

황금 사원 앞에는 스리 구루 람 다스 니와스라 불리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고 그 안에서도 외국인 여행자들만을 위한 방이 따로 있다.
숙소는 기부금제도로 운영중이고 최대 3일까지만 머물 수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선 황금사원으로 들어갔다. 
황금사원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터번이나 모자를 써야한다.
입구에 있는 보관소에 신발을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는데 내 신발이 몇 번에 있는지 모르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밥을 먹으러 갔다.
시크교는 밥도 무료로 준다.
황금사원 안에 있는 구루 카 랑가르라 불리는 식당에 가서 식판을 받고 줄지어 앉아 있으면 짜파티와 커리들을 준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배식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계속해서 주길래 풍족하게 먹었다.


이렇게 무료로 밥을 주는 이유는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락이 평생 탁발을 하며 유랑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다. 
역시 사람은 받은 만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배도 채웠으니 그 유명한 황금사원을 구경하러 갔다.
황금사원이라는 문자 그대로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사원인데 그냥 와 황금이다라는 생각이 들 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황금사원이 엄청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리쉬께쉬에서 마마님도 사진으로 본 황금사원이 엄청 아름답다며 꼭 가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내 미적기준이 특이한지 별로였다.
황금사원의 지붕은 약 400kg의 금을 써서 덧씌웠다고 하는데 1kg만 나한테 주면 참 좋겠다. 
1kg이 과하면 100g만 줘도 좋겠다. 

황금사원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한국말이 들리길래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아침에 나를 봤는데 머리가 길어 일본인처럼 생겨 말을 안 걸었다고 한다.
지현누나와 유리누나가 헤나를 연습하고 있길래 내 피부는 강해서 헤나가 금방지워지니 스케치북처럼 생각해도 된다며 발을 내어줬다.
매번 댓글을 달아주시는 지현누님 이번 편에 등장하시니까 또 댓글 달아주셔야 합니다.

<오늘의 생각>

암리차르는 모든 것이 공짜다.
시크교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공짜밥을 먹고 군것질거리를 사먹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내 동전지갑이 사라졌다.
아마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있을 때 누군가 가져간 것 같은데 다행히 30루피(한화 600원)정도만 들어 있었기에 좋은 곳에 기부했다고 생각했다.
귀중품이 들어있는 복대는 항상 주의를 하고 다니는데 주머니에는 동전지갑밖에 없어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다녔더니 생긴 일 같다.
그래도 싼 값에 경각심을 되살리게 됐으니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라씨는 정말 먹어도 먹어도 맛있다.
내가 바라나시의 블루라씨는 별로였다고 하니 누나들이 나중에 자이뿌르에 가게되면 그 곳의 라씨는 블루라씨와는 비교도 안되니 꼭 먹으라며 추천을 하셨다.
하루에 몇 번씩 먹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할 정도로 맛있다고 하는데 기대된다. 

오늘은 누님들과 같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마을인 와가를 가기로 했다.
릭샤를 타기전에 흥정을 하는 내 모습을 본 누님들께서 오빠라 불러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 글을 읽으시는 아리따우신 여성분들, 전 아무거나 잘 먹고 지구 어디다 떨궈 놓아도 바가지는 안 쓸 자신 있으니 혹시나 제가 마음에 드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됩니다.
아... 어필할 수 있는게 이런 것 밖에 없다니 슬프다. 
나도 원빈처럼 CG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 트럭들이 줄을 서있는데 끝이 없길래 트럭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 30대 정도 지나간 뒤부터 세기 시작했는데 내가 센 것만 373대였다. 

약 1시간정도 오토릭샤를 타고 가면 와가 마을에 도착하는데 국경쪽으로 가려면 소지품을 검사 받아야한다.
또 원칙적으로 가방은 못 가지고 가고 맡겨야하는데 길거리에 있는 가게에 맡기기에는 미심쩍으니 눈치껏 요령껏 잘 통과하면 된다. 
내 복대는 지갑이라 하고 누나들의 작은 가방도 진짜 중요한 것이라 말하고 통과했다.
어딜가든 적당한 요령과 유도리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운만 있으면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이 폐쇄될 때 국기를 하강하면서 양측의 군인들이 벌이는 퍼포먼스때문에 와가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도 많이 오기때문에 일찍 가지 않으면 좋은자리 잡기가 힘들다.
다행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VIP석 쪽으로 자리를 할당해 줘 인도인들 보다 조금 더 앞에서 볼 수 있게 배려를 해준다.  

이쁜 누나들의 행군으로 국기하강식이 시작된다.
그런데 누나들 팔동작이 안 맞았어요.

동작들이 절도있기는 한데 딱히 멋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들 때문에 야구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나도 요가를 한 1년 배우면 저렇게 다리를 높이 들 수 있을까.
뒤 쪽에 계신 할아버지도 신기하신가 보다. 

아무래도 인원수가 적어서 그런지 멋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재밌다는 느낌만 든다.
한 명씩 국경까지 진격했다 발차기만 하고 돌아오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군인 아저씨의 포즈가 멋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결과물은 별로다.
역시 순간을 포착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진가들은 대단한 것 같다.

이제 국기를 내리기 시작한다.
서로 먼저 내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끝까지 퍼포먼스를 한다. 

국기가 내려가자마자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한다.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돌아올 때도 뒤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멋진 석양을 보며 올 수 있었다.
앞만 보며 달려가면 못 보는 것들이 있으니 가끔은 뒤도 바라보며 살아야한다.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거의 똑같으니 식당의 모습을 찍었는데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식기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세븐일레븐도 아니고 24시간 1년 365일 내내 돌아가는 공짜 식당이라니 정말 최고다. 

저녁에 밥을 먹고 황금사원을 가봤는데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운 곳 같다.
빛나는 모습을 보니 황금 사원이라는 이름이 참 잘어울린다.
야경을 보지 않고 황금사원이 별로였다고 평가하고 다녔으면 큰 일 날뻔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헤나 연습장이 됐다.
외부물질에 대한 내 피부의 저항력이 강하니까 뭔가 강한 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의 생각>

 더워 죽겠는데 중국애가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선풍기를 자꾸 끈다.
도미토리에서 냉난방처럼 공동으로 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도 모르나보다.
밤에는 또 더운지 아무 말도 없이 켜길래 나도 더웠지만 괘씸해서 그냥 꺼버렸다.

그런데 문득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에서 내가 아프니 다른 사람들이 선풍기를 끄길 바랐던 것이 떠올랐다.
공동생활에서 어디까지 남을 배려해줘야 하는 것일까.
아직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은 아닌데 잘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내려오던 도중에 조리장 앞을 지나가다 할 말을 잃었다.
군대에서도 큰 솥을 쓴다지만 이정도로 큰 솥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숙소에 있는 독일애가 식당에서 공짜 짜이도 준다는 정보를 알려줘 마시러 갔는데 수돗가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짜이가 나온다.
맛은 좀 밍밍하기는 했지만 많이 먹으면 뱃 속에서 농축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한 사발을 마셨다. 

누나들은 암리차르보다 북쪽인 맥그로드 간즈로 떠나고 나는 암리차르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는데 빨리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
누님들, 저 한국 돌아가서 새 광주구장인 뉴등이 보러 갈테니 그 때 꼭 만나요.

암리차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금사원이고, 그 다음은 와가마을이다.
그리고 황금사원 가까이에는 질리안왈라 박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오늘은 그 공원을 가기로 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인도에게 전쟁이 끝나면 자치권을 줄테니 전비를 내게 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영국은 인도의 식민지배를 그만 두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인도인들은 전국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영국은 이에 맞서 집회금지법을 발효했다.
집회금지법의 발효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으로 인도인들은 더욱 거세게 항의했고 영국군의 다이어 장군은 비무장으로 시위 중이던 인도인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발포명령을 내려 2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 이 질리안왈라 박이다. 

그 당시 총탄이 박힌 곳들을 보존해놨는데 예전에 광주에 갔을 때 가본 구 전남도청이 떠올랐다. 

영국군이 발포를 시작하자 놀란 인도인들이 이 우물로 뛰어들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120여 구의 시체가 나왔었다고 한다.

스도쿠를 시작했다.
3면이라 어려울 것 같았지만 차근차근 풀어가니 다른 스도쿠들과 똑같았다. 

오늘은 양파를 까는 날이다.
이렇게 많은 양파를 까도 금세 다 먹을 것 같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내가 암리차르에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화장실이다.
델리 공항 이후로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은 처음봤는데 매일 제대로 청소를 한다.
왠지 신세계로 온 기분이 들어 사진을 찍고 싶은데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 기다리다가 사진을 찍었다.
역시 사진은 기다림인가 보다. 

숙소에서 빈둥거리다가 머리를 가리고 밥 먹으러 갈 준비를 한다.
이렇게 보니 일본인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노을 속의 황금사원을 찍고 싶은데 오늘은 노을이 별로 안 이쁘게 진다.

하얀 것이 코코넛 죽같은 것인데 정말 진짜 레알로 맛있다.
약간 달달하면서 술술 넘어가 매번 더 달라고 해 기본 2그릇은 먹는다. 

난 밥 먹을 때 물을 안 마시는데 입구에서 식판을 주면서 항상 물 그릇을 같이 줘 들고 올라와 물을 따르지 말라해도 걱정말라며 따라준다.
참 자상한 시크교 사람들이다. 

도미토리에 에어컨도 있는데 내가 나오는 날부터 에어컨도 켜주기 시작했다.
진짜 시크교가 최고인 것 같다.

어제 저녁에 본 황금사원이 정말 아름다워 또 갔다.
들어가는데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니 계속 가는거다. 

황금사원 안에는 시크교의 경전이자 성물인 그랜드 사힙이 모셔져있다.
낮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에 줄을 서서 보러 갔는데 비단 같은 것으로 감싸져 있어 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밤에는 다른 탑으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는데 그냥 옮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절을 하며 옮긴다.

<오늘의 생각>

인도의 주 종교가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아니라 시크교였다면 천국이었을까? 

 

식당에 출입할 때는 계단을 만지며 기도를 하는 시크교인들이 많다.
종교에 관련된 곳에 가면 그 종교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나도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계단을 만지며 감사하다고 기도를 했다.

숙소 바로 옆에는 망고주스 작은 병을 5루피(한화 100원)에 파는 가게가 있는데 사람들이 금방 다 사가기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마실 수 있다.
매일 함께하던 5루피의 행복과도 이제는 안녕이다.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아 있어 영화를 한 편 봤다.
불법 다운로드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내가 참 나쁘다.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니 난 정말 나쁜 놈인가 보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이제 다시 움직여야하니 마지막으로 배를 채우러 갔다.
나오면서 적은 돈이지만 기부를 하긴 했는데 낸 것보다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또다시 공짜 버스를 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차역으로 돌아간다.

온도가 벌써 32.1도다.
더운 것은 정말 싫은데 어떻게 하지. 

어떡하긴 우선 떠나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