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수크레에 도착하니 비가 내려 사진도 못 찍고 그냥 호스텔에 들어와 잠을 잤었다.
아침으로 빵을 주는데 이번에도 빵 두 조각과 커피, 주스를 준다.
제발 나에게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주세요.
수크레는 마을이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마을인데 마을 전체가 하얀색이다.
숙소를 옮기기 위해 다른 호스텔을 찾아보다가 공원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비둘기가 분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비둘기는 더러운 동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수크레의 비둘기는 다른가 보다.
어제 우연히 들어간 호스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에서 이미 묵고 있는 다른 한국인 2명이 있다고 한다.
내가 '치코(남자)? 치까(여자)?'라고 물어보니 남자와 여자라고 하길래 커플은 관심이 없다고 하며 방에 들어갔더니 우유니에서 만났던 부미 누님과 민영 형님이 계셨다.
여기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반가웠는데 우유니에서 만났던 요한씨도 여기 있다길래 다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요한씨가 괜찮은 식당이 있다길래 따라 갔는데 우선 기본적으로 샐러드를 원하는 만큼 담아 먹는다.
샐러드를 다 먹고 나면 수프가 나오고 메인 요리가 나온다.
각 요리를 다 먹고 그릇을 치우면 알아서 다음 요리를 가져다 주는데 볼리비아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요리를 다 먹으면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나오는데 가격은 25볼(한화 4,000원)밖에 안 한다.
요한씨가 묵었던 숙소가 싼 가격에 독방을 준다길래 그 곳으로 방을 옮겼다.
수크레의 건물들은 예전 스페인의 식민지배 시절 지어진 건물들을 그대로 써서 그런지 중앙에 정원이 있는 양식이다.
입구는 작은데 정작 안에 들어가면 정원이 있고 규모가 꽤 커서 비밀의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배가 출출해져 저녁을 먹으러 길가를 어슬렁 거리다 수크레에서 곱창을 만났다.
먹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손으로 먹길래 나도 손으로 먹었는데 소주가 당기는 맛이었다.
아, 처음처럼 마시고 싶다.
곱창으로는 배가 안 불러 햄버거를 하나 사 먹는데 옆 집에서는 신기한 음료를 팔길래 같이 먹었다.
햄버거는 맛있었는데 이상한 음료는 10% 정도 식혜의 맛이 나긴 하는데 90%의 이상한 맛이 나는데다 따뜻하고 걸쭉해서 억지로 겨우 다 마셨다.
이렇게 마시기 힘든 음료수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새로 옮긴 숙소는 빵을 1개만 준다.
진짜 싸구려 빵인데 좀 넉넉하게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이번에도 빵을 더 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크레는 마을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기에 항상 하얀색을 유지해야한다고 한다.
유네스코 덕분에 관광업이 발전했겠지만 신경도 많이 쓰일 것 같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마을을 돌아보는데 골목길들이 이쁘다.
하긴 아름다우니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겠구나.
그런데 정말 할 일이 없어 음식이나 하나 사 먹는다.
햄버거인데 2볼(한화 360원)밖에 안 하니 천국에 온 기분이다.
물가가 싼 볼리비아에 들어오니 인도가 떠오르는데 이 세상에 인도보다 싼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옷이 소금범벅이 됐기에 어제 빨래를 맡겼는데 빨래방이 문을 닫았다.
분명 11시에 오라고 해놓고 문을 닫다니 역시 남미스럽다.
물가가 싸니 빨래값도 싼데 1kg에 8볼(한화 1,280원)만 내면 건조까지 해준다.
숙소로 돌아와 민영형님네를 다시 만나 밥을 먹으러 시장(메르까도)로 갔다.
시장에서는 10~15볼이면 밥 한끼를 먹을 수 있다.
이 음식은 피칸테 데 뽀요라는 것인데 닭고기에 매운 소스를 묻힌 요리다.
한국의 닭도리탕과 아주 조금 비슷한데 고기 속에 양념이 스며들지 않아 밥과 고기와 양념이 다 따로 도는 맛이었다.
시장에서 처음 보는 과일을 팔길래 골랐는데 껍질을 벗기면 과육이 나온다.
맛은 배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씨가 너무 크고 딱딱해 먹기가 힘들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점프샷을 많이 찍었더니 다시 무릎 근육이 아파 파스를 붙였다.
푸콘 트래킹 이후로 무릎이 자꾸 신경쓰인다.
오랜만에 모자도 빨았는데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그냥 정원에 말린다.
깔라마에서 산 스파게티를 드디어 다 처리했다.
물가가 싼 볼리비아에서는 음식을 해 먹을 필요가 없지만 재료들을 계속 들고다니려니 귀찮아서 먹기로 했다.
어차피 수크레에서 빈둥거리기로 작정했기에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날이 개었다.
오늘은 수크레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진짜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주는 건지 모르겠다.
날씨 한 번 정말 좋다.
파란 하늘에 새하얀 건물들이 정말 잘 어울린다.
이 정도는 먹어야 밥 좀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밥 위에 뿌려진 풀은 고수인데 중국에서부터 먹어왔기에 거부감은 안 든다.
디저트로 레몬에이드를 한 봉지 마시면서 길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뒤를 돌아보니 부미누님이다.
마을이 작으니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자주 만나게 된다.
수크레 마을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 호텔이 있는데 안에서 풍경을 보는 것은 무료라길래 들어가 봤는데 전망이 정말 좋다.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잘 찍었다고 소문이 날지를 고민하면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데 일이 터졌다.
카메라의 전원이 갑자기 나가더니 작동이 되지 않는다.
배터리를 갈아끼워도 작동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는데 5분 정도 지나자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배터리를 바꾸며 관찰해보니 정품배터리는 인식이 안 되고 호환배터리만 인식이 된다.
다행히 카메라 자체의 문제는 아니니 배터리의 접촉이 불량인 것 같았다.
3시간 동안 카메라를 붙잡고 씨름을 하며 배터리의 완벽한 위치를 찾아내서 반창고와 테이프를 이용해 두께를 맞췄고 드디어 정상 작동이 된다.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어도 전원이 나가지 않는다.
건축공학도 공대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카메라가 고장나니 호주에 있을 때, 돈을 조금 더 벌어서 더 좋은 카메라를 사려고 했던 나를 반성했다.
사랑스러운 카메라님, 세계일주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할테니 절대 앞으로는 아프지 말아주세요.
갑자기 마추픽추가 떠올라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하루 400명 제한인 와이나픽추의 표가 좀 남아있었다.
대충 일정을 생각하고 미리 와이나픽추의 표를 끊으려다가 일정에 얽매이게 될까봐 결제직전에 취소했다.
카메라를 고치고 나니 배가 고파 밖으로 나왔는데 성당이 아름답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카메님 무사히 작동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딱히 먹을거리가 없어 치느님을 골랐다.
남미에서는 보통 닭고기를 팔 때, 8분의 1조각부터 4분의 1조각, 반 마리, 한 마리로 판다.
그리고 닭만 파는 것이 아니라 밥과 감자를 같이 넣어주기에 4분의 1조각 정도면 배가 부른다.
맛은 물론 맛있다.
더 이상 말하기도 지친다.
공짜니까 먹는다.
아침을 먹고 거리 구경을 하러 나왔는데 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기다려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볼리비아의 학교는 낮 12시가 되기 전에 끝난다고 한다.
오전 학교와 오후 학교로 나누어져 있다고도 하는데 오전 수업만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야자를 10시까지 하거나 학원을 12시까지 다니는 것 보다는 낫겠지.
수크레는 원래 볼리비아의 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법부와 행정부가 라파즈로 옮겨가고 최고재판소만 남으면서 이름뿐인 수도로 남아버렸다.
그래도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산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대학이 있어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 교육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한다.
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울 수 없으니 옥수수 잎에 싸여진 음식을 하나 먹는데 오묘한 맛이 났다.
길을 가는 학생들이 아이스께끼를 하나씩 물고 있길래 나도 하나 먹었는데 코코넛 가루가 뿌려져있어 달달하니 맛있었다.
난 1989년 생이라 아이스께끼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옛날에 팔았던 아이스께끼의 맛이 딱 이럴 것 같았다.
저번에 카메라가 고장 났던 전망대를 향해 다시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이름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파는 빵처럼 생긴 것을 판다.
속에는 아무 것도 안 들어있지만 시럽을 뿌려먹으니 꽤 맛있다.
한량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군것질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한량이 맞다.
오늘은 저번보다 날씨가 별로지만 그래도 다시 올라간다.
수크레는 해발 2,800m 정도에 위치했기에 오르막을 올라가면 약간 숨이 차다.
볼리비아 자체가 고지대이기에 웬만한 지역은 다 높은데 아직까지 고산증상은 안 겪어서 다행이다.
수크레의 아르마스 광장 앞에 있는 사진관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다는데 김치도 팔고 있었다.
이제 엄마가 만든 김치를 먹을 날이 1년도 안 남았다.
오늘은 내가 수크레를 떠나는 날이기에 민영형님께 인사를 하러 갔다.
민영형님과 부미누님은 여행을 하다가 만나서 결혼하시고 한국에서 생활하시다가 다시 남미여행을 오셨다고 하는데 부러울 뿐이다.
난 그냥 자연과 벗삼아 살아야겠다.
그런데 내 뱃살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온 것 같다.
시장에서 마지막 밥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백숙이 나왔다.
이름에 까르네가 들어가면 고기, 뽀요가 들어가면 닭고기라는 것만 알고 음식을 시키니 매번 새로운 음식을 먹게 된다.
입맛이 까다로웠으면 스페인어를 한 글자라도 더 배웠을 것 같은데 아무 음식이나 잘 먹으니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물가 싸고 군것질거리가 많은 수크레를 떠나려니 아쉽다.
곧 있으면 페루로 들어가야하는데 페루의 ATM출금 수수료가 칠레와 맞먹는다길래 수수료가 없는 볼리비아에서 미리 인출을 했다.
현지에서 나가는 수수료는 없다지만 한국에서 떼어가는 1%의 수수료는 어쩔 수 없이 내야한다.
600달러의 1%인 6달러와 기본 수수료를 합치면 볼리비아에서 하루를 지낼 수 있으니 아깝긴 아깝다.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는데 뒤에 앉은 아저씨가 자꾸 내 가방을 쳐다본다.
느낌이 이상해 나도 계속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으니 버스기사가 나를 옆자리로 불러 앉히고 조용히 저 아저씨를 조심하라고 이야기 해준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 아저씨를 견제하다가 가방을 완벽하게 멘채로 버스에서 내렸다.
역시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
버스를 타러갔더니 짐의 무게를 재길래 혹시 돈을 추가로 걷는건지 걱정했지만 짐의 분실방지를 위해 재는 거라고 한다.
내 몸무게를 재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줘서 오랜만에 몸무게를 재봤다.
남자의 몸무게는 비밀이라지만 여러분에게만 공개하자면 78kg이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못 먹어서 살이 빠진다던데 난 왜 안 빠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알 것 같기도 하다.
보통은 버스를 타러가서 직접 짐을 건네주는데 수크레에서는 매표소에 짐을 맡기라고 한다.
짐을 맡겨놓으면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짐을 2층에서 1층으로 내린다.
내 배낭도 줄을 타고 내려오는데 왜 이런 방식을 쓰는지 모르겠어서 생각해보니 짐의 무게를 재 놓은 상태에서 주인이 물건을 꺼내고 분실신고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
수크레에서 푹 쉬었으니 이제 다시 이동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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