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석가사는 절이기에 아침 공양시간이 6시부터다.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 그 전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으러 간다.
절에 있으면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니 좋은 것 같다.
아침에는 절밥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커드에 바나나까지 나왔다.
아침을 먹고 책을 좀 읽다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차마 한국절에서까지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핑계로 숟가락을 쓴다.
손으로 먹는 것도 재미있지만 수저를 쓰면 위생적이고 편하기도 하니 역시 도구의 발명은 대단하다.
그래도 인도에 가면 인도의 법을 따라야하니 열심히 손으로 밥을 먹어야겠다.
대성석가사는 한국절이지만 전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는 불교 4대성지 중 하나기에 불교를 믿는 대부분 나라들의 절이 있지만 방문객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절은 흔치 않다.
하지만 대성석가사는 하루에 300루피(한화 3600원)에 숙식을 제공해주니 대부분의 순례객들과 여행객들이 대성석가사로 찾아와 한국인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훨씬 높다.
절은 많은데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는 모습을 부처님이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다.
내가 삐뚫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종교는 모든 것에 우선해서 헌신적인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성석가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완공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데 어서 완공이 됐으면 좋겠다.
대성석가사에는 와이파이도 된다.
혹시나 해서 와이파이를 찾아보니 신호가 잡히길래 무선공유기의 위치를 수소문 해 바로 옆에서 여행기를 올린다.
산에도 올라갔다 오고 그동안 작성하지 못한 여행기가 많은데 숙식도 제공되고 분위기도 좋은 대성석가사에 오래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밥이 엄청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보드가야에서 느꼈듯이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며 먹으면 별로 맛을 따지지 않게 된다.
<오늘의 생각>
남은 네팔루피를 다 쓸 때까지 대성석가사에 머물러야겠다.
밥도 주고 재워 주고 와이파이도 되고 참 좋다.
산을 내려오고 휴식기를 가지려 했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포카라에서 편히 쉬지를 못했기에 룸비니에서는 푹 쉰다.
아침 공양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여행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또 책을 읽는다.
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그냥 대충 흘러가는 장기여행이다 보니 내 마음대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정전시간표가 있는데 살펴보면 정전인 시간보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더 적다.
하지만 저 시간표대로 정전이 되는게 아니기에 그냥 전기가 들어오면 들어왔구나 하는게 편하다.
확실히 인도보다 전기사정이 열악한데 전기가 없는 곳을 몇 군데 다녀보니 전기가 없으면 약간 불편하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
오늘까지 빈둥거리며 푹 쉬려고 했는데 왠지 밖을 나가고 싶어 룸비니 나들이에 나섰다.
이 불은 세계평화를 기리는 평화의 불꽃인데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해인 1986년 11월 1일에 점화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건 아닐 것 같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깨우치신 곳, 첫 설법을 하신 곳, 열반하신 곳을 불교의 4대 성지라고 일컫는다.
룸비니는 그 중 태어나신 곳인데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모여있는 성원 구역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한다.
성원 구역,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곳이기에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한다.
더운 나라들만 돌아다니면서 양말 빨기가 귀찮아 샌들을 주로 신었더니 발에 얼룩무늬가 생겼다.
여행의 훈장같기도 하지만 왠지 여행이 끝나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저 건물 안에는 부처님의 발자국 조각이 있는데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아쇼카석주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이라는 현장의 기록에 따라 발자국 조각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부처님은 산통을 느낀 마야부인이 사리수 나무를 붙잡은 상태에서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고 하는데 왕족인 치트리아 계급은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고 믿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왕들에 관한 신화들처럼 왕족에게 특이한 출생의 방법을 부여한 것 같다.
근데 거기 커플들, 어디 신성한 곳에서 부정타게 손 잡고 다니나요. 매번 말하지만 부러워서 그러는 거 맞다.
건물안에 들어가면 4세기경 제작된 돌 조각에 부처님을 낳는 마야부인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금박이 칠해져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고 금박을 붙이길래 나도 따라했다.
아리따운 여성분들, 주근깨 많이 생긴 것은 저도 아는데 사람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제 마음을 봐주세요.
마음만은 훈남입니다.
이게 아쇼카 석주다.
기원전 249년 아쇼카 대왕이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둥인데 이 기둥으로 인해 부처님의 역사적 실존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석주에는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쇼카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부다가 탄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위대한 분의 탄생지를 기려 이 지역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1/8만 징수케 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어떻게 저기에 딱 맞게 1000원짜리가 들어갔는지 신기하다.
거북이다.
어릴 때 보던 포켓몬이 생각난다.
꼬부기 - 어니부기 - 거북왕.
근데 난 꼬부기보다 이상해씨가 더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라
우리는 바다에선 조금은 빠르긴 하지만
땅 위에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아
급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죠
그렇게 수 억년을 잘 살아왔죠
뒤집지 말아요 일어 설 수가 없잖아요
그냥 우릴 바라봐 줘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힘을 내 달려가자
하지만 거북아 토끼를 따라 잡지 못해
거북이 머리는 언제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죠
집 걱정 없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가족끼리 소풍을 왔다.
소풍 온 모습을 보니 김밥이 먹고 싶어졌다.
참치김밥 - 소고기김밥 - 치즈김밥.
제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해주세요.
우리나라에도 옛 사찰들의 터만 남아 있는 곳들이 있는데 역시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람들이 보존하려고 해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조상들의 유적지를 보고 뭔가를 느끼듯이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는 우리가 물려 받은 조상의 흔적들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옆에 사원이 있길래 기도를 하고 나온다.
인도에 철근을 옮길 트레일러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보통 작은 차에 철근을 구부려서 다닌다.
문제는 구부러진 철근을 다시 대충 펴서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안전할지 궁금하다.
참 좋은 말이다.
설마 저 좋은 말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죠.
대성석가사로 돌아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자전거가 보인다.
안장은 브룩스에 투부스렉을 달아놨다.
가슴이 아프다.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부럽다.
멈춰있는 설리를 봐도 다시 달릴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플 때는 당을 먹어야 한다.
포카라에서 소주를 주신 어르신이 꿀도 한통을 주셨었다.
우리들은 VJ특공대 흉내를 내며 삼겹살과 꿀을 조합해 허니삼겹살을 만들어 먹었는데 마마님의 한마디.
'음~ 달콤한 꿀이 삼겹살의 기름기를 확 잡아줘요!'
VJ특공대는 어서 마마님을 섭외하세요.
그때 남은 꿀을 가장 당이 땡기는 내가 가지게 됐는데 미숫가루에 타먹으니까 당연히 꿀맛이 났다.
불교성지순례로 오는 단체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
가방이 무거워 짐을 줄이려고 고추장을 먹었는데 그냥 고추장 맛이었다.
아직까지는 한식이 그립지는 않은데 언제쯤 한식이 그리워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보니 핀을 참 못 맞춘 것 같다.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게 가장 큰 이유고, 그 다음은 리플을 보는 재미다.
그런데 리플을 읽을 수는 있는데 거기에 댓글을 달려면 필요한 확인버튼이 안 생겨 속이 터진다.
속이 터지면 당이 땡긴다.
'곰돌이 푸'가 빙의 된 것처럼 다 먹어 버렸다.
<오늘의 생각>
ABC 트레킹 도중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났다.
역시 인연은 함부로 무시하면 안되는 건가 보다.
매번 똑같아 보이는 음식이지만 맛있게 먹는다.
과일까지 후식으로 나오니 불평할 거리가 없다.
대성석가사에 머무를 최고 기간은 6일로 잡았었다.
6일 안에 같이 바라나시로 떠날 사람이 오면 같이 움직이고 안 오면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어제 ABC 트레킹 도중에 만났던 형님을 다시 만났다.
형님도 바라나시로 간다고 하시길래 같이 떠나기로 했다.
같이 떠날 사람을 만날 줄 알고 어제 룸비니 구경을 하고 싶었나 보다.
이 형님도 세계일주 중인데 파키스탄쪽을 통해 점점 서쪽으로 가실 계획이라고 한다.
룸비니에서 바이라하와로 다시 나와 합승 지프를 타고 조금 가면 네팔과 인도의 국경인 소나울리에 도착한다.
저 국경만 넘어가면 다시 인도다.
<네팔 여행 경비>
여행일 23일 - 지출액 44,000루피 (약 53만원)
산에 올라갈 준비를 할 때 지출이 컸다.
WELCOME TO INDIA.
인도로 다시 넘어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 다시 떠날 때 인도를 재입국 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다고 본적까지 적고 영문 여행계획서까지 제출하는 등 복잡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고 얼마 뒤에 비자 발급기준이 완화되었다고 하니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난 막차를 잘 타나 보다.
여담으로 누군가가 인도사람에게 너희는 왜 이렇게 비자를 까다롭게 발급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그 인도사람은 너희 배낭여행자들이 와봤자 인도에서 돈을 얼마나 쓴다고 너희를 쉽게 받아주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근데 그 말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웃음이 나온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갈 때 소나울리를 통해 인도로 들어온 뒤 바라나시로 향한다.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방법은 중간도시인 고락뿌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편한 기차로 갈아타는 방법과 끝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려면 귀찮기에 한번에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인도과자를 먹으니 인도에 온 기분이 난다.
저 정도의 비스킷이 10루피(한화 200원)밖에 안하는데 몸에 얼마나 좋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아예 과자를 먹지 않아야지 과자를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는 것은 욕심같다.
333km를 이동하는데 256루피(한화 5120)원밖에 안한다.
하지만 버스 상태를 보면 딱 256루피짜리 버스다.
언제부터 금성이 신발도 만들었지.
버스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이 탄다.
뒤를 돌아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차장에게 돈을 내야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돈을 든 손을 뒤로 내밀고 있다.
그러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받아서 건네주면 될텐데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다.
차장도 꿋꿋하게 자리에 앉아서 돈을 달라고만 한다.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해서 돈을 건네주고 싶을 정도였는데 결국엔 중간에 있는 아저씨가 건네준다.
왠지 남자들의 자존심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
물론 남자에게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에서 자존심을 챙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버스는 계속해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점심시간에 고락뿌르에서 차가 멈추길래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밑에 깔린 달콤한 튀김에 라면땅 같은 것을 뿌려주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사진을 찍으니 자신도 찍어달라고 한다.
난 쉬운 남자니까 찍으라면 찍는다.
저것만 먹고는 당연히 배가 고프니 사모사와 튀김 몇개를 샀다.
난 맛있게 먹는데 형님 입맛에는 별로인 것 같았다.
역시 내 입맛에는 길거리 음식이 최고다.
밥을 먹고 오니 버스를 갈아타라고 한다.
우리와 같이 탄 인도인도 따졌지만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1시간 뒤에 떠나니 지금 떠나는 버스로 옮기라고 한다.
원래 종점이 여기인지 진짜 우리를 위해서 옮기라는 건지는 몰라도 우선은 옮겨 탄다.
물론 타면서 표값에 대한 확답은 철저하게 받아야한다.
우리 바로 앞자리에 탄 이 할머니는 대단한 할머니다.
버스비가 26루피(한화 520원)인데 자꾸만 깎으려고 한다.
위에서 봤듯이 기계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요금이 종이에 찍혀 나오는 시스템인데 자꾸만 비싸다고 우긴다.
처음에 15루피 정도 줬다가 차장이 그냥 내리라고 하니 무시하고 계속 탄다.
내릴 곳에 다 와 가자 차장이 다시 돈을 내라고 하니 이번에는 동전으로 20루피 정도를 준다.
화가 난 차장이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만행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돈을 낸다.
난 우리 어머니들이 한 푼을 아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그 돈을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쓸 것이기에 돈을 막 쓰는 내가 부끄러워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들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요금에 대해 따지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미화될 수 없는 행동이라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결론은 우리 어머니들 최고다. 특히 우리 엄마가 최고다.
공중위생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화장실이지만 나도 잘 이용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최대한 현지인처럼 생활하기를 목표로 하니 아무 데나 싸고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잘 버린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길거리에 노상방뇨하는게 더 좋다.
형님이 자꾸 군것질거리를 사주신다.
인도는 귤에도 씨가 있어서 뱉어야 하는데 그냥 아무 곳에나 뱉으면 되니 참 편하다.
아마 씨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나라였으면 안 먹었을 것 같다.
저 아저씨는 물건을 파는 아저씨인데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이 겹쳐졌다.
우리나라처럼 신기한 물건을 팔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향신료를 팔기에 그냥 넘어갔다.
내가 예상한 도착시간이 지나고 해가 져도 바라나시에 도착할 기미가 안보인다.
배가 고프니 또 내려 토스트를 한조각 사먹는다.
버스가 바라나시에 도착할 때쯤 차장 아저씨가 형님에게 혹시 잔돈이 필요하냐고 말을 건다.
형님이 조금만 바꿔달라고 500루피짜리를 주자 10루피짜리 50장으로 바꿔준다.
100루피짜리 몇 장을 달라 해도 그냥 10루피짜리로만 준다.
이동을 시작한지 17시간이 지나서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에 다시 방을 잡으니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다.
<오늘의 생각>
하루 종일 이동만 했는데 버스에서 인도인의 많은 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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