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줄을 서서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도 많은데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문도 열어주지 않아 갑갑했지만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겨우 잠에 들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보니 기차는 아직도 기차역에서 대기중이었다.
뭔가 사고나 고장이 난 것 같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선 잠은 자지 않고 상황만 지켜보기로 했다.
기다린지 1시간이 좀 지나니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전날 저녁 8시에 출발 예정이던 기차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온다.
잘 달리던 기차는 4시간 정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다시 멈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을 조합한 손짓발짓 대화를 시도해보니 아마 비때문에 기차가 멈췄다고 하는 것 같다.
비가 별로 오지도 않는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면 먹어야 산다.
원래 계획은 밤 기차를 타고 가다 컵라면정도만 사 먹고 도착해서 뭔가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안에 도착하기는 그른 것 같았다.
사람들을 살펴보니 식당칸에서 도시락을 사오는 것 같아 식당칸을 찾아갔는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많아 30분 정도 기다려 도시락을 살 수 있었다.
도시락의 맛은 괜찮았지만 양이 너무 적어 아쉬웠다.
앞에서 비가 얼마 오지도 않는 것 같다는 말은 취소합니다.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 기차 안에 있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방황하다 외국 형님을 한 명 만나서 상황 설명을 들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 기차의 앞 뒤로 선로가 유실됐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원인을 제대로 알았으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가만히 쉬는 것이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그냥 언젠가 복구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다보니 또 배가 고프길래 식당에 갔는데 큰 도시락 통에 밥을 조금만 담아준다.
아마 남은 그릇이 없어서 이런 것이겠지만 왠지 서운하고 배가 덜 차는 느낌이 든다.
오후 8시가 넘어서야 기차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환호한다.
24시간이 지나서야 기차가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달리던 기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플랫폼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땅을 밟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다.
도시락은 질린다는 동생님의 의견을 반영해 오늘 아침은 컵라면으로 정했다.
세계일주를 할 때는 시간 제약이 없으니 교통편이 연착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걱정이 없었는데 방학에 나온 여행이다보니 기차에서 날리는 하루가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타고 태어난 성격은 어디가지 않는지 그렇게 초조하지는 않다.
기차에 갇힌 사람들이 만드는 쓰레기의 양도 꽤 많을텐데 매번 승무원 분들이 청소를 해 나름 쾌적하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중국이 더럽다는 인식이 강한데 서비스의 향상도 함께 이뤄진다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
이번에도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내려 스트레칭을 하고 바깥 공기를 마신다.
예전에는 50시간을 가만히 이동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늙어서 그런지 몸이 쑤신다.
중국 여행을 계획하며 이동수단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 설마 기차표가 없겠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차표를 끊으러 가니 3~4일 후에 떠나는 기차표도 침대칸은 다 매진이 되었고 딱딱한 좌석만 남았다고 했었다.
12시간 정도는 그냥 앉아서 가도 된다는 생각으로 표를 끊었는데 그게 이틀짜리 좌석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도착한 목적지는 시안이다.
중국은 기차역에서 나올 때도 기차표를 검사하기에 기차역에서 나올때까지 표를 가지고 있어야 무임승차로 오해받지 않는다.
표를 확인해보니 출발 예정시각인 8시부터 45시간이 지나시안에 도착했다.
시안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인 '장안의 화제'에서 장안을 부르는 말로 과거 당나라 때의 수도였던 곳이다.
보존이 잘된 고성이 시내에 남아 있어 유명한데 당나라 말기에 파괴된 성벽을 명나라 때 복구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역에서 나와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로 가는데 어디서 공기를 찢는 채찍질 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거대한 팽이를 채찍으로 돌리고 계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런데 이게 시안의 트렌드인지 주변에 다른 할아버지들도 채찍으로 팽이를 돌리고 계셨는데 대륙의 기상이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시내로 향했는데 식당을 찾으러 다닐 기력도 없어서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플 때는 무조건 쌀밥을 먹어야하는데 내가 배고픈 것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고봉밥을 주셨다.
역시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도 먹었으니 맛있는 후식도 먹는다.
특산품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소소한 먹거리들을 찾아 다니는 여행도 좋다.
시안의 중심가에는 쇼핑몰과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말로만 듣던 화웨이 매장도 있었다.
베이징보다 남쪽으로 왔다고 날씨가 더워진 것이 느껴져 걷다가 지치면 매장에 들어가 에어컨을 쐬고 나왔다.
시안의 중앙에는 종루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동대문처럼 로타리로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대문과는 다르게 지하도를 이용해 종루 내부로 들어가볼 수 있다.
물론 세상은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기에 여기도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시안의 랜드마크이니 돈을 내고 올라가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문화재 보존과 시민들의 통행을 위해 지하도를 이용해 교통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큰 전광판에 한글지도까지 보여주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우리 나라의 관광관련자 분들께서도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그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호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베이징에서 시안까지 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기에 발마사지를 받으려고 마사지샵을 찾아다녔는데 잘 보이질 않는다.
다음에 가게가 보이면 가보기로 하고 다시 시안의 중심으로 오니 종루에 불이 켜졌다.
이대로 시안의 밤을 보내기 아쉬워 야경을 더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시안 고성 밖으로 나가면 대안탑과 대당부용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의 야경이 좋다고 한다.
우리가 시안을 여행할 때는 대안탑은 보수공사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부용원으로 향했는데 관람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찾아오는데 1시간 정도 걸린 것이 억울해 정문 사진이라도 찍으러 갔는데 입장료가 120위안(한화 21,600원)이나 한다.
문이 안 닫았더라면 억울해서라도 들어갔었을텐데 문이 닫혀서 다행이라 해야할지 아쉬워해야할지 모르겠다.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만난 한국인 유학생분들과 간단하게 양꼬치와 맥주를 마셨다.
양꼬치가 개당 1위안(한화 180원), 맥주가 병당 5위안(한화 900원)이니 아무리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입장료만 저렴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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