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시티로 놀러를 나왔는데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정장차림이고 여자들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참 이쁜 누나들이 많았다.
수 백명의 누나들이 지나가는데 다행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이 호강했다.
단언컨데 선글라스는 최고의 아이템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11월 첫째주 화요일에 열리는 경마대회인 멜버른컵의 식전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멜번컵이 열리는 날은 빅토리아주의 공휴일인데 경마대회가 열린다고 공휴일로 지정하다니 신기하다.
호주는 휴가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공휴일이 많지 않은데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주의 경우에는 6월에 있는 여왕님 생신이후로는 11월에 열리는 멜버른컵까지 공휴일이 하루도 없다.
약 4달정도 일을 하면서 공휴일이 하루도 없어 멜버른컵을 기다렸는데 막상 다가오니 이번 주에 들어오는 주급이 확 줄었다.
'바짝 벌고 떠나야하는데'라는 생각도 잠시 든다.
호주는 땅이 커 인구밀도가 낮기에 고층건물이 별로 없어 시티 정중앙부분에만 몇 개의 고층빌딩이 있다.
땅이 넓다보니 고층건물의 필요성도 별로 없고 거리에 녹지도 많이 조성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난 여유로운 호주도 좋지만 서울에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빌딩의 멋도 좋은데 확실히 공기는 한국보다 호주가 좋다.
오늘 내가 시티로 나온 이유는 바로 이 빌딩 때문이다.
빌딩의 이름은 유레카타워로 높이는 297m이다.
63빌딩은 249m이니 약 50m정도 더 높다.
유레카타워에는 285m에 스카이덱이라는 남반구 최고 높이의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다.
남반구라고 해봤자 남미, 아프리카, 남극, 호주 뿐이니 남반구에서 최고라는 수식어를 얻기 참 쉬운 것 같다.
한국인들이 많이 들리는지 한국어 팜플렛도 있다.
영어를 할 줄 안다지만 외국에서 한글로 써진 팜플렛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송혜교씨가 상해임시정부에도 한국어 안내서를 제공하는 것을 후원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얼굴도 이쁘고 마음도 이쁘시니 천사인가 보다.
그리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 정말 감사합니다.
스카이덱은 88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올라간다.
스카이덱에는 엣지라 불리는 방이 있어 안에 들어가면 그 방이 밖으로 돌출돼 전경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다.
밖으로 조금 나가는데 12달러(한화 12000원)을 추가로 내야하길래 그냥 밖에서 구경만 했다.
어차피 한층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어 어디를 봐도 다 보인다.
일부러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서 일몰을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길래 난 그런 사람들을 찍는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너도 나도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물론 너도 나도에는 나도 포함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멜버른은 고층빌딩이 별로 없어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그나마 이쪽 방향이 가장 이쁜 곳인데 실제로는 그저 그랬었지만 사진으로 보니 더 이뻐보인다.
이래서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나보다.
이 곳도 실제로 본 풍경은 넓은 벌판에 주황색 불들이 켜져있는 풍경인데 사진으로 보니 이쁘다.
실제보다 사진이 10배는 더 아름답다니 정말 신기하다.
삼각대가 없기에 노출시간이 길어지면 주변지물을 이용해 찍는데 카메라가 한번 좌우로 휘청거렸더니 사진이 이렇게 찍혔다.
그런데 동그란 모양이 보면 볼수록 이쁘다.
역시 세상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하는 건가 보다.
생각보다 별로인 야경에 실망하며 내려오니 출구에 '감사합니다'가 있다.
세종대왕님 만세.
로고 모양은 버거킹인데 왜 헝그리잭스라고 써있을까요.
버거킹이 처음 호주에 들어올 때, 이미 호주에는 버거킹이라는 상표가 등록되어 있어 사장의 이름인 잭을 따다 헝그리잭스로 지었다고 한다.
이름 한번 귀엽게 지은 것 같다.
이번에 고른 메뉴는 앵그리와퍼라는 버거인데 한국에서는 잠깐동안만 팔고 사라진 비운의 메뉴이다.
사람들이 앵그리와퍼, 앵그리와퍼 하길래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얼마나 맛있냐면 신혼부부가 호주에 여행을 와 여러가지 비싼 음식들을 먹어봤는데 떠날 때 남편이 호주에서 먹은 음식 중에 뭐가 가장 기억에 남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앵그리와퍼라고 대답했다는 전설이 있다.
한국에서 팔았던 앵그리와퍼가 이와 똑같은 맛이었다면 망할 이유가 없었을텐데 왜 사라졌을까.
한국의 겨울이 시작될 무렵 호주는 더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살고 있는 멜버른은 호주에서도 날씨가 오락가락하기로 유명하다.
여름은 예전에 시작됐는데 1주일에 2일은 덥고, 3일은 춥고, 2일은 비가 온다.
너무 더워 입맛이 없길래 오이냉국을 만들어봤는데 입맛이 확 살아난다.
진짜 장금이를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지하철덕후이니 이번에도 지하철을 타고 나간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 같은데 실상은 일하느라 힘들었다고 주말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느라 2~3주에 한번 밖으로 나간다.
이번에 간 곳은 단데농 마운틴이다.
공장에서 일을하는 1주일 내내 이아립씨의 '등산'이라는 노래가 머릿속을 멤돌았다.
그래서 주말에 산을 오르기로 하고 가장 가까운 산인 단데농 마운틴을 오르기로 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2시간거리에 있다.
우리나라는 둘러보면 사방이 산인데 호주는 땅이 커서 그런지 산을 찾기도 힘들다.
이 노래 정말 좋아요.
이아립씨 사... 사랑합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신 여길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한동안 너무나 지쳐
작은 일상의 틈조차 찾을 수가 없었어
야 호 야호야호
야호 세 번에 다 날아간 피로
야- 야호 다시 돌아온 대답
언제나 여기에서 너를 기다렸다고
커피가 이렇게나 맛있을 줄
카페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었어
카페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었어
공기가 이렇게 꿀맛일 줄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미처 몰랐던 사실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미처 몰랐던 사실
야 호 야호야호
야호 세 번에 다 날아간 고민
야 야호 다시 돌아온 대답
언제나 여기에서 널 기다릴거라고
야아 호 야 호 정말 오랜만이다
뭐 하고 사느라고 이 좋은 걸 잊고
뭐 먹고 사느라고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나
다음에 또 올게
이번엔 '진짜'
이아립 - 등산
이아립 - 등산
차를 타고 입구까지 올 수도 있지만 뚜벅이인 나는 내 두 다리를 믿는다.
트레인 역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으면 입구가 나온다.
산에는 이쁜 누나들이 많아 참 좋다.
아, 이게 아니고 푸르른 나무를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참 좋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보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자연보다는 선조들의 이름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같다.
이런 낙서들이 선사시대 동굴의 낙서처럼 값어치가 있어질 날이 올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노래를 부르며 오른다.
그런데 끝까지 올라갔는데 내가 바라던 전망대가 보이지 않길래 잔디깎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더 가야한다고 한다.
어차피 오랜만에 실컷 걸어보고 싶었으니 계속 걷는다.
걷다보니 대저택도 보이는데 저런 집에서 살면 무슨 기분이 들까.
그래도 인터넷은 느리겠지.
등산로는 진작에 끊기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걸을 때는 무서우니 차를 마주보며 걷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위험하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차를 마주보고 걸으라고 걱정해 주신다.
그런데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인다.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잔디깎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어보니 8km정도를 더 가야한다고 한다.
최소 2시간은 더 걸어야할 것 같아 걸을만큼 걸었으니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호주의 대중교통은 비싼데 주말에는 3.5달러(한화 3500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멜버른 내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전망대에 가면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버스를 기다리며 그냥 맥주를 마신다.
역시 산에서는 술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살았던 외국인들을 가끔씩 만나는데 한국은 산이 많아 좋고 정상에 올라가서 먹는 막걸리가 환상적이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락으로 싸온 햄버거도 하나 먹는다.
그런데 이제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맥도날드는 미국에서만 먹을 수 있을텐데 어떡하지.
넓은 초원에 말들을 키우는데 한 마리 잡아서 타고 싶었지만 승마를 할 줄 모르니 그냥 구경만 했다.
버스를 10분정도 타고 오니 전망대인 스카이 하이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1시간 뒤에 있다길래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내 다리는 참 튼튼하다.
40분 정도 걸어가니 전망대 주차장이 나온다.
호주에서 생활하려면 차가 거의 필수품인데 뚜벅이족으로도 살아갈만 하다.
커피가 이렇게나 맛있을 줄은 카페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었어.
공기가 이렇게 꿀맛일 줄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미처 몰랐던 사실.
옆에는 미로공원도 있는데 제주도에서 가봤으니 그냥 지나친다.
날이 맑을 때는 멜버른 시티의 고층건물이 보이는데 안개가 껴 희미하게 보였다.
바람도 좋고 구름도 아름다운데 한국에서 산 정상에 올라갔던 기분은 들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설산을 다시 보고 싶다.
나는 걸어서 왔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니 부럽다.
자전거 여행자들을 보면 부럽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데 손가락이 우선이니 마음 속으로 부러워만 한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가벼운 로드바이크를 사서 마실이나 다녀야겠다.
전망대 구경을 다하고 돌아가려는데 눈 앞에 버스가 지나간다.
달려가봤지만 이미 한번 떠난 버스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만 하고 돌아오는데 아저씨가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들어보니 중국어길래 생존스킬을 발동해 대화를 했다.
쥐똥만큼 아는 중국어로 자전거 여행이야기를 하다보니 북한 이야기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댜오위다오 이야기도 했다.
결론은 중국과 한국 최고, 일본 나쁜 놈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언어문제가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데 중국은 한자를 써서 그런지 더 쉬운 것 같다.
그런데 독도랑 이어도는 우리 거임.
다시 시내로 돌아와 멜버른 시티에 있는 빅토리아 마켓을 갔는데 문을 닫았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호주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려면 많은 부위를 팔지 않아 아시아인이 주인으로 있는 빅토리아 마켓에 가서 사는 것이 편하다.
내가 주로 가던 곳도 청소를 하고 있길래 부탁을 해 돈까스용 돼지고기를 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돈까스를 만들고 근처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다 먹는데 한 판에 9달러(한화 9000원)밖에 안 한다.
호주물가를 생각했을 때, 싼 음식 중에 하나가 피자인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싼 피자를 호주에 온지 7달만에 처음으로 사 먹는다.
공장에서 일을 하니 장갑을 써야하는데 담당자가 장갑을 주면서 이번 장갑은 별로 안 좋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메이드 인 코리아라서 그렇다며 농담을 하는데 진짜 한국에서 만든 장갑이길래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공장의 출근시간은 6시라 10시에 점심시간을 가지는데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매일 빵을 엄청 맛있게 먹는다.
처음에는 프랑스인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맛잇게 먹었는데 알아보니 터키사람이라고 한다.
매번 아보카도와 치즈, 올리브를 먹길래 나도 따라서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다.
아보카도는 느끼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나한테는 꿀 맛이다.
이렇게 먹으면 10달러(한화 10,000원)정도 들어 밥 먹는 것보다 비싼데 맛있어서 주말마다 먹는다.
호주에 왔으면 캥거루 고기도 먹어봐야지.
마트에서 세일하길래 구워먹어 봤는데 부드러웠지만 마리네이드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단 맛이 나면서 거북한 맛이 나 다 못 먹고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하긴 캥거루가 맛있었으면 호주사람들이 다 잡아먹었겠지.
약 6개월동안 아침에 일어나 계란후라이, 참치와 밥을 먹었었는데 갑자기 밥이 안 넘어간다.
매일 똑같은 반찬을 먹었더니 물린 것 같아 1달 정도는 씨리얼을 먹기로 했다.
나는 음식에 실증이 안 나는 줄 알았는데 한계가 6달인가 보다.
그런데 소시지는 매일 먹은지 7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먹을만 하다.
공장 출근 시간은 6시인데 아침을 먹으려고 4시 30분에 일어나니 피곤하긴 하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아침은 꼭 먹는 것이라 배워서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휴대폰 USB충전선을 의자로 밟아버렸다.
새 것을 사려니 정품은 20달러(한화 20,000원)이나 달라고 해 눈물을 머금고 바보같은 나를 욕하면서 샀다.
USB 케이블도 비품이 아닌 정품으로 사보고 여행은 참 재밌는 것 같다.
마트에서 메론을 싸게 팔길래 2.5달러(한화 2,500원)을 주고 샀다.
어떤 메론이 맛있는지 몰라서 냄새를 맡아보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을 골랐는데 정말 달았다.
한국에서 먹던 메론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길래 다음에 또 사봤는데 이번 메론같은 맛은 안 났다.
난 상남자니까 메론도 그냥 막 퍼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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