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도착한 곳은 바로 호주, 멜버른이다.
자전거 여행을 했다면 한국에서 번 돈으로 스페인까지는 갈 수 있었을텐데 배낭여행으로 바꿨더니 예산이 많이 부족하게 됐다 .
그래서 언제쯤 호주로 돈을 벌러 가야하나 생각하다 대략적인 아시아여행을 끝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 시작하는 지역을 고를 때도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하던데 나는 어딜 가든 똑같을 것이라는 속 편한 생각을 하며 비행기 티켓이 가장 싼 멜버른으로 왔다.
앞으로 다가 올 앞날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여행이 아닌 삶으로 돌아온 다는 생각에 설레기만 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우선은 공항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공항을 둘러보니 의외로 공항 크기가 작았다.
하지만 의자에 손걸이가 없어 침낭을 펼 수 있고 무료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는 노숙하기 최고로 좋은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노숙만 하기 좋으면 뭐하나.
아무리 공항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코카콜라 600ml짜리 한 병에 4달러(한화 4000원)이나 한다.
이거 무서워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
잠을 자기전에 카톡을 켜고 친척 누나에게 호주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니 공항에서 자지말고 그냥 택시를 타고 누나네 집에 가서 자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가려했는데 집에 사람이 안 자고 있다고 하니 집에 가서 쉬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누나가 말하길 택시비가 한 30달러 정도 나올거라고 했고 야간할증을 붙여도 40달러면 될 것을 택시기사가 도로공사 중이라며 뱅뱅 돌아 55달러가 나왔는데 싸워서 50달러만 내고 내렸다.
제대로 싸웠으면 더 깎았을텐데 내가 지리를 아예 알지도 못 했고 제대로 된 영어로 빨리 말하니 겁을 먹어 버렸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 50%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겁까지 먹었으니 비참하게 져버렸다.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보다.
호주는 선진국이라서 사기도 잘 안친다고 하던데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
호주에서의 첫 아침은 누나네 집에 있던 쌀로 밥을 하고 여행하며 받았던 청정원 소고기고추장만 뿌려 먹었다.
친척 누나는 몇 년 전에 결혼해 호주로 와서 살고 있는데 내가 멜버른에 도착하기 1주일 전쯤, 한국으로 1달간 휴가를 떠나 비어있는 누나네 집을 쓸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무엇이 있나 보고 우선 기본적인 스파게티재료와 달걀만 샀다.
가장 싼 기본 토마토소스에 면만 넣고 단백질을 생각해 달걀후라이를 얹어 먹었는데 아무런 맛이 없고 그냥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 그 자체였다.
호주가 고기는 싸다고 들었는데 그 고기마저도 나에게는 비싸길래 우선은 생략했는데 다시보니 정말 찌질하게 먹었다.
다음날, 이번에는 제대로 살 것을 정하고 다시 장을 보러 갔다.
아무리 고기가 비싸더라도 먹긴 해야 할 것 같아 소고기 민스도 한 팩 샀다.
기본적인 것들만 샀는데 10달러가 금방 넘어간다.
어서 일을 구해야할텐데 걱정이다.
요리라고 부르기도 뭐한 요리를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소고기가 양이 많길래 미트볼을 여러개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었고 볶음밥도 엄마가 재료를 손질해 놓으면 밥과 볶는 정도만 했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있었고 저녁에는 어떤 음식을 먹자고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져 나왔기에 요리의 '요'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넙죽넙죽 받아만 먹는 불효자인 것은 알지만 엄마밥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니 돌아가서도 엄마밥을 주로 먹게 되겠지.
난 육식성 잡식동물이기에 고기를 먹기 위해 다시 마트를 갔는데 역시나 고기값은 비싸다.
고기 코너를 샅샅히 뒤진 결과22개짜리 소시지가 한 팩에 7달러(한화 7000원)밖에 안 하길래 구입했다.
한끼에 2개씩 구워먹으면 11끼나 먹을 수 있다.
한끼에 대충 60센트 정도이니 가난한 나에게는 최고의 반찬이다.
내가 이번 화에서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겠다.
약 2주간 백수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계속 달걀과 소시지, 파스타만 먹고 있는데 과자가 정말 미칠듯이 먹고 싶었다.
돈을 쓰다보면 자꾸 더 쓰게 될까봐 술도 안 먹고, 군것질도 한 번도 안 하고 지내는 것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마트에 가서 과자를 보니 보통 2달러 이상인데 11끼를 먹을 수 있는 소시지가 7달러인 것을 생각하니 한 번의 즐거움만 남겨놓고 사라질 과자를 살 엄두가 안 났다.
결국 세일하는 씨리얼을 사다가 입이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먹었다.
여행기를 다시 쓰며 보니 내가 정말 찌질했구나.
자꾸 찌질하게 살다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앞으로 여행을 1년정도 더 하려면 무조건 공장에 들어가야하는데 150곳을 넘는 공장에 지원해봤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하긴 내가 공장에서 일 해본 경력이라고는 핸드폰 무선중계기 조립경력밖에 없었고 어줍잖은 영어실력으로 만든 이력서에 내세울 것이라고는 세계일주 중이라는 타이틀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나는 잘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도 지쳤다.
예상대로라면 6개월정도 일을 한 뒤 다시 여행을 시작해 2014년 연말에 한국에 돌아가야하는데 도무지 일이 구해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다고 키친핸드 같은 일을 하자니 돈이 벌리는 액수가 적어 호주에 1년 가까이 있어야하니 계획이 꼬여버린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만 하다보니 '호주에서 공장들어가기도 이렇게 힘들고 한국에서 제대로 취업하려면 더 힘들텐데 나도 남들처럼 그냥 지금부터 스펙을 쌓으러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한국에 있는 동생과 대화를 하다보니 동생이 여름방학때 인도나 동남아로 여행을 간다길래 같이 여행이나 하고 한국에 돌아가려는 마음이 50%이상 들어 비행기표의 가격도 알아봤다.
하지만 이런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응원의 카톡이 몇 개 날아왔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배우고 한국인들과 일하고 있는 후에핑이 정말 멋있다며 힘을 내라고 해줬고 홍콩에 계신 깡미님, 호주에 계신 tea님 등등 여러분들이 힘을 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응원의 메시지들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고, 여행기간이 줄어들어 애매한 여행을 하느니 중간에 포기하는게 낫다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나를 꺼내주었다.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정해진 길이 아닌 길을 걸어도 된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서 떠난 내가 똑같이 세상에 굴복하려 했다니 멋있다고 응원을 받은 것이 부끄러워졌다.
죽더라도 호주에서 죽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진짜 죽지는 않고 제대로 살아 남아주마.
호주의 동네는 참 이쁘다.
하지만 내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니 이 아름다운 동네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안 든다.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니 호주에 대한 안 좋은 감정만 생긴다.
'무식하게 땅덩어리만 커서 넘치는 자원으로 먹고 사는 나라 주제에 나를 무시하느냐.'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혼자 화를 삭인다.
그러다보니 여행을 다닐 때는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카메라를 집에 넣어두고 아무런 사진도 안 찍었다.
호주에 온 지 20일이 지나 하늘을 봤는데 왜 이 좋은 하늘을 두고 꿀꿀하게만 지내고 있냐는 생각에 핸드폰 카메라로 한 장 찍어봤다.
아래에 올린 크라잉 넛의 '5분 세탁'은 호주에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노래 중 하나이니 꼭 들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 항상 힘내세요.
니가 취하고 비틀대고 방황하고 실수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아 누구나 한번쯤은 바닥치니
죽는단 말대신 웃는단 얘길해봐
고장난 시계도 시간은 흘러가지
앙상한 가지도 봄이오면 꽃이피지
청소해 더럽게 어지러운 니방부터
청소해 축축히 우울해진 머릿속을
괜찮아 괜찮아 잘 될거야
오늘은 살아있네
고장난 시계가 멈췄어도
오늘은 살아있네
같이걷고 같이널어 햇볕에
우울한 빨래를 짜내버려
단 한번만이라도 내 인생을
선택해 세탁해 삶은
삶은 세탁이다
크라잉 넛 - 5분 세탁
일을 구할 때까지 최대절전모드로 지내면서 술도 안 마시려했지만 누나네 집에서 같이 지내는 쉐어생과 술 한잔을 하면서 그냥 몇 병 더 샀다.
원래 계획은 누나가 한국에서 돌아오기 전에 일을 구한 뒤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해서 나가는 것이었는데 결국 누나가 호주로 돌아올 때까지 일을 못 구했다.
결국 백수인 채로 방을 구하고 누나네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나온다.
괜찮아~ 괜찮아~ 잘 될거야.
오늘은 살아있네~
기분이 우울해도 블로그는 매일 확인하는데 갑자기 방문자 수가 늘어났길래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니 다음 view에 채택이 되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포탈사이트의 메인에 노출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다음 view에 채택이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지금 이야기는 52화인데 26화 때 채택이 됐었으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안경알의 코팅이 벗겨지길래 누나를 통해 한국에서 안경을 공수받았다.
평소라면 카메라로 정성스럽게 찍었겠지만 아직도 우울한 백수라 그냥 핸드폰으로 대충 찍었다.
그래도 핸드폰으로라도 찍은 사진이 있으니 백수로 지낼 때의 이야기거리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구글 맵을 켜고 위성사진에서 공장이 보이는 지역으로 가 무조건 이력서를 돌린다.
제발 저 좀 뽑아주세요.
한국에서 별명이 노예였어요.
온라인 지원 약 350회, 오프라인 지원 약 40회.
연락 온 곳 단 3곳.
하지만 그 3곳 모두 워킹홀리데이 비자라고 하니 인터뷰도 안 보고 거절.
외국인노동자이니 몸 쓰는 일은 구하기가 쉬울줄 알았는데 정말 힘들다.
호주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다.
왜 사람들이 멜번을 '헬번'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잘 될거야.
정말 잘 되겠지?
죽더라도 호주에서 죽기로 했으니 공장에 한 우물만 파는 것은 그만두고 우선 시티로 나와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지만 그냥 얼굴에 철판을 딱 깔고 들어가 쉐프나 매니저를 만나고 싶다고 말을 한다.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이 레스토랑의 쉐프가 마침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자긴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다음 주에 트라이얼 날짜를 정해 연락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한껏 기대하게 해 놓고서 연락을 안 주길래 다시 찾아가니 다음에 연락을 준다고만 하면서 돌려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는데 역시나 슬픈 예감은 이번에도 맞았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레스토랑들만 들어가서 이력서를 돌렸더니 생각보다 금방 일이 구해졌다.
포지션은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그렇듯이 하루종일 설거지만 하는 키친핸드인데 드디어 백수를 탈출했다는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트라이얼이라고 일을 2시간정도 시켜보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일 할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식당에서 일을 하니 밥은 주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밥은 안 주니 2시간 쉬는 시간 동안 집에가서 밥을 먹고 오라고 한다.
난 공장에 들어갈 생각으로 멜버른 외곽지역에 집을 구했기 때문에 집에서 밥만 먹고 바로 나와도 2시간이 걸려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반찬은 역시나 소시지 2개와 치즈가 전부다.
저녁식사를 한 손님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자 직원들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다.
10시부터 2시 30분까지 일하는 런치타임에는 점심을 안 주지만 5시부터 12시까지 일하는 디너타임에는 저녁은 준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히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했을텐데 세계일주 중이라고 하니 놀라는 건 왜일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기소개를 한 커버레터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대충 보고 아무나 뽑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찌됐건 일을 구했으니 생활비는 벌 수 있다.
일은 구한 것은 좋았고 설거지 하는 것은 허리 아픈 것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복병이 숨겨져 있었다.
세제를 푼 물에 하루 11시간 동안 손을 담그고 설거지를 하니 일을 한지 이틀만에 손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일을 한다고 손톱도 깨끗하게 깎은 상태라 하얗게 나온 부분은 손톱이 아니라 손톱이 들린 부분이다.
고무장갑을 주기는 하지만 설거지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금세 고무장갑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손톱 사이로 물이 닿으면 당연히 아프고 뭔가를 집을 때도 고통이 따라온다.
차라리 근육이 아프면 어떻게 참기라도 쓰겠지만 손톱이 아프니 미칠 것 같다.
왜 예전에 손톱 밑에 바늘을 넣는 고문이 있었는지 알겠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왔고 특별한 경력이 없으니 몸을 쓰는 일 밖에 못 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삶이 서럽다,
서러울 때는 술이나 한 잔 해야지.
매번 맥주를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워 12달러에 파는 4리터짜리 박스 와인을 사 놓고 한 잔씩 홀짝인다.
여행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이 배우는데 호주에 와서는 직업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나 자신만의 전공을 가지고 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됐다.
백수생활과 구인생활을 하면서 경력과 전공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첫 주급을 받았다.
호주는 월급이 아닌 주급제라서 매주 돈을 받는다.
시급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낮은 15불(한화 15000원)밖에 안 되지만 3일간 30시간 정도 일하고 430달러(한화 43만원)을 벌었다.
손톱이 빠질 것 같지만 돈을 받으니 기분 좋다.
인터넷에서 워홀을 하는데 주급을 받고 주머니에 넣어 놓은 채로 일을하다가 봉투를 흘렸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웃었었는데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 났다.
설거지를 하다가 기분이 이상해 바닥을 보니 내 주급 봉투를 내가 밟고 있었다.
덕분에 처음 받은 주급은 깨끗한 봉투 그대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는데 엉망진창인 봉투를 찍게됐다.
만약 잃어버렸었다면 내 자신이 엄청 한심해서 미쳐버렸을 것 같다.
돈을 받은 기념으로 전기장판도 하나 샀다.
호주는 남반구기에 한국과 계절이 정 반대여서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겨울이었다.
날씨가 춥기는 했지만 견딜만은 해 이불로 버티고 있었는데 몸을 생각해서 장만했다.
저번에 산 박스 와인은 다 마셨으니 이번에는 레드와인 하나와 화이트와인 하나를 샀다.
이번에는 5리터짜리라 두 개를 합치면 10리터다.
언제 다 먹을까.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면서 첫 주급을 받으면 꼭 슈퍼맨을 보러 가겠다고 생각했었다.
호주는 영화값도 비싸 보통 15불 이상 하지만 화요일에는 무비데이라며 티켓 가격을 많이 할인해준다.
그리고 영화관에 좌석이 정해져 있는 곳도 있지만 그냥 입구에서 입장권만 확인하고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 곳이 많다.
무비데이라서 영화관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았는데 별로 없어 한 가운데에 앉아서 봤다.
기대가 커서 그런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맨 오브 스틸'은 좀 지루했다.
호주의 바로 옆에는 뉴질랜드가 있고 뉴질랜드에는 키위가 넘쳐흐른다.
8개에 2달러정도 하니 한개에 150원이면 먹을 수 있어 자주 사다 먹었다.
여행기를 SLR클럽에도 올리는데 정도령님께서 남긴 댓글이 날 웃프게 만들었다.
웃다가 울면 엉덩이에 뿔 난다던데 큰 일이다.
그런데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딸래미를 원하는 것이 그렇게 큰 소원은 아니지 않나요.
안 되면 어디 산 속에 암자나 짓고 혼자 살아야겠다.
알로누나님은 Love가 안 보인다고 뭐라 하셨는데 나도 좀 Love가 보이면 좋겠다.
드디어 네이버 메인에도 떴다.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여행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총 6번 메인에 올라갔다.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올라간 날은 방문자 수가 1000명이 넘어가기에 기분이 정말 좋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면 다시 원래 방문자 수로 돌아간다는 것은 함정.
멜버른의 겨울날 실외온도는 13도이고 실내 온도는 17도였다.
그런데 가스비가 많이 나왔다고 집주인이 히터를 꺼버렸다.
다시 침낭을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집사람들과 돈을 조금씩 더 내기로 하고 히터를 다시 켰다.
여름이 되면 선풍기를 돌리니 전기세가 많이 나올텐데 그 때도 돈을 더 내야하는 것일까.
드디어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호주 최저시급을 보장 받고 하루 8시간 이상 일할시 오버타임수당으로 1.5배를 지급해준다.
일도 키친핸드보다 쉽고 무엇보다 손톱처럼 애매한 곳이 안 아프다.
공장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내가 이력서를 돌린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은 아니고 같은 집에 사는 사람에게 소개비를 내고 소개를 받고 들어갔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인 사장이 하는 식당이나 소개비를 내고 들어가는 곳에는 절대로 안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백수생활이 길어질수록 앞으로 남은 여행이 불확실해지니 결국 500달러를 내고 소개를 받았다.
어린 아이가 아니기에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갈 수만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20대의 젊음이라면,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열망하는 청춘이라면, 정직하려고 노력하고 돈보다 더 큰 것을 좇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떠났고 내가 여행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희망의 불씨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내가 소개비를 내고 일을 구한 것은 정직을 버리고 편법을 추구해 현실과 타협한 것이니 남들에게 젊음과 청춘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되는가 고민 했었다.
그래서 아무런 설명없이 공장에 취직했다고만 하고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 모든 것을 그대로 적기로 했다.
대신, 내가 이 공장에서 나갈 때는 나처럼 일에 목말라 있는 사람에게 그냥 넘겨주기로 했다.
그 사람도 자신이 도움 받은 것을 잊지 않고 남들을 도와준다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워킹홀리데이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는 변명도 해본다.
결국 꿈이니 뭐니 허울 좋게 말하더니 나도 평범한 사람처럼 편법을 추구하는 놈이었다고 욕한다면 할 말은 없다.
어차피 나도 25살이나 먹었고, 순수하기 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만큼은 다 알고 살아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춘과 젊음에 대해 말한 것들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최대한 정직하고 올바르며 멋있는 청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소개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절대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선택을 한 것이고 덕분에 여행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줬으니 고마울 뿐이다.
그저 초창기에 이런 소개비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사람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여기기보다 고마워 하며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는 모습이 언젠가는 정착될 거라 믿고 싶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가격을 매기는 것이 당연하게 된 세상은 참 재미없지 않을까.
어차피 별로 인기도 없는 블로근데 괜히 혼자 심각하게 주절거린 것 같다.
기분도 전환할 겸 음악 한 곡 듣고 갑시다.
마음을 넓게 가지고 야망을 품고
세상을 바라봐 볼까
어느정도 생활에 여유가 뒷받쳐 주면 좋겠지
역시 돈이 좀 필요해
나는 정신적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한사람
정신만으론 먹을 순 없더라고
조금은 돈이 필요해
말 잘 해야돼 키도 커야돼 빽 있어야돼
어찌 내가 할일은 이다지도 없는지
오늘도 마음이 갑갑하네
돈도 다 떨어졌어 나는 등골 브레이커
생활은 무너지고 그녀는 멀리 떠나가네 (이런 젠장)
용기도 없는 나는 오늘도 방구석에 숨어있네
다 필요없어
말 잘 해야돼 키도 커야돼 빽 있어야돼
난 난 돈이 필요해 now
크라잉 넛 - Give me the money
호주에서 돈에 대해 한참 생각하던 때에 크라잉 넛의 새 앨범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이 Give me the money라는 노래는 꼭 나를 두고 쓴 것처럼 어쩜 그렇게 내 상황에 딱 맞는지 신기했다.
한 달이 넘도록 날마다 위에서 소개한 5분 세탁과 Give me the money를 들었다.
신발이라고는 샌들과 트래킹화뿐이라 취직한 기념으로 외출용 신발도 한 켤레 샀다.
매장에서 재고처리 떨이로 3달러에 파는 것을 주워 온 것은 여러분과 나만 아는 비밀이에요.
한국에서 동전은 100원, 500원밖에 안 하지만 호주 동전은 1달러, 2달러라 하나를 잃어버리면 타격이 크다.
작은 동전이 2달러 짜리라 더 조심해야한다.
마트에 갔는데 젤리가 먹고 싶어 이제는 돈도 버니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를 골라 들었다.
'Licorice'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그저 까만색이니 초코맛이겠지 하고 집었다.
집에 돌아와서 기대를 하며 뜯어 먹었는데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맛과 냄새가 났다.
바로 사전에 'Licorice'를 검색해보니 '약방에 감초'라는 말에 있는 단 맛을 내는 감초다.
2달러 정도 주고 샀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고 방에 두기만 해도 냄새가 더러워 바로 버렸다.
역시 이래서 영어 공부를 해야한다.
이제서야 하늘이 아름답게 보인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시간이 참 평화롭다.
난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먹는 정도였는데 박스로 사면 싸다길래 그냥 한 박스를 사버렸다.
술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다 마실 수 있겠지만 이건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일을 구했어도 내 주식은 소시지다.
최대한 돈을 빨리 모아 하루라도 빨리 호주를 뜨는 게 제 1목표다.
그래도 이제 돈을 버니 디저트정도는 먹여줄 수 있다.
브라우니를 먹었는데 맛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리얼브라우니가 더 맛있다.
이제야 마음이 놓여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마음도 생겼다.
집 앞의 풍경인데 이렇게 한적하고 좋은 곳을 매일 지나면서도 아무 감흥을 못 느꼈었던 내가 떠오른다.
역시 내가 심란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 법인가 보다.
바람을 쐬러 시티로 나왔다.
호주는 각종 시설이 몰려있는 시티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는 멜버른 도서관인데 레스토랑에서 키친핸드를 할 때 런치타임이 끝나고 쉬는시간이 오면 밥을 먹고 열람실에 들어가 잠을 자곤 했었다.
레스토랑은 10시 출근, 12시 퇴근이었는데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라 잠이 부족해 도서관에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잠이나 잤었다.
멜버른의 지하철은 트레인이라고 부르는데 기차가 아니라 전철이다.
문은 반자동이라 내리거나 탈 역에서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밀어야 열린다.
처음 탔을 때는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 손잡이를 밀어야할지 몰라서 걱정했었는데 역에 정차하면 기압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에 밀면 된다.
이번 이야기는 우울하고 찌질함으로 범벅된 이야기였는데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제가 여행하면서 겪은 시간 중 가장 암흑기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라 저도 글을 쓰는데 평소보다 2배의 시간이 들었네요.
하지만 이제 암흑기가 끝나고 다음 이야기부터는 찌질이가 그나마 사람답게 사는 이야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특히 이번 편을 본 우리 어무이, 아부지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암흑기는 끝났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이번에 브리즈번에서 살해 당한 한국인 여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재미있으셨다면 즐거우니 손가락을 눌러주시고
별로였으면 댓글에 욕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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