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씨앙쿠안에서 비엔티엔으로 돌아오는길에 버스기사가 욕심을 부려 자꾸만 승객을 더 태워 내 계획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려 부랴부랴 배낭을 메고 시내버스터미널로 갔지만 이미 시내버스는 운행이 끝났다.
툭툭은 너무 비싸고 썽태우를 잡아탔는데 다른 사람을 먼저내려주느라 돌아간다.
겨우겨우 버스 출발 20분전에 도착해 가방을 실으니 내가 마지막 승객이었는듯 바로 출발하려고 해 5분만 기다려달라하고 저녁거리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슬리핑 버스는 처음 타는거라 기대했지만 사진처럼 그냥 매트리스들을 이용한 침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옆좌석이랑 바로 붙어 있어 베트남 아저씨들의 체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버스 내부에는 작은 tv들이 설치되어 있고 버스 차장 아저씨가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복제 영화 dvd를 틀어준다.
처음 틀어준 영화는 그 유명한 익스펜더블2다. 익스펜더블 1을 기대하며 극장에서 보다가 너무 허접스러워서 실망했었기에 2는 별 관심도 없었는데 공짜로 보여주니 할일도 없어서 보기 시작했다.
근데 베트남 영화는 더빙을 하는데 성우 1명이 혼자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감정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 계속 똑같은 톤으로 말을 한다. 거기다 모든 효과음을 죽이고 성우의 목소리만 들린다.
예를 들면 '아 총맞았어', '조심해', '사랑해', 'I'll kill you.'를 그냥 대본읽듯이 읽는다.
처음에는 언어도 못알아 듣겠고 더빙도 개판이라 이상했는데 어차피 때려부수는 영화이다 보니 적당히 무슨 대사를 했을지 상상이 되서 재밌었다.
결국 끝까지 다보고 다음에 틀어주는 중국 무술영화도 다 봤는데 마음가짐에 따라서 대사를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에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를 몇 번 들렸다가 새벽에 라오스와 베트남의 국경에 도착했다. 비엔티엔에서 제일 빨리 출발하는 버스를 탄 이유가 국경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우리버스 앞에는 수많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저씨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신한다. 그냥 기다리는거다.
그냥 기다리고 있는데 출국심사대쪽에 사람이 바글바글 하길래 가보니 국경은 안열렸지만 출국 심사가 진행중이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여권을 들이 밀길래 나도 여권을 들이 밀었지만 내 여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설마 돈을 달라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어이, 아저씨, 저기요, 에이 등등을 외치며 들이대니 마지막으로 출국도장을 찍어준다. 근데 주말이라 10000킵을 내라는데 가진게 7000킵뿐이라 2달러를 내야만 했다.
출국도장을 받고 국경지대를 한 15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안개가 심하고 이슬비가 내려 차들이 보이지도 않아 조금 위험했다.
여러분 버스는 사람을 태우려고 만들어진게 아니라 매트리스를 싣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편리한 운송수단입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지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며 계속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니 베트남 국경이나온다.
베트남으로 육로입국을 하려면 소지품을 검사받아야하는데 버스가 징그럽게 늦게 온다.
줄서있던 버스가 차례대로 들어와서 짐을 내려주고 후딱후딱 검사를 받고 국경을 통과하면 될텐데 세월아 네월아 유유자적이다. 버스가 와도 짐을 안빼가니 뒤에는 자꾸 밀려서 국경에서만 몇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프니 어제 사 놓은 빵을 먹는데 건포도가 박혀있는 것을 썩은 걸로 착각하고 이걸 도려내고 먹을까 버릴까 고민했었다.
내가 탄 버스에는 다 베트남사람들이고 나만 외국인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해 라오스를 다녀온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의 부차장에게 단체로 여권을 맡기면서 돈을 조금 주면 부차장이 알아서 도장을 받아준다.
내 뒷자리에 앉은 애들인데 이제 20살로 라오스에서 돈을 벌고 집에 잠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서로 베트남과 한국에 대해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 하며 베트남어 강의도 받았다.
그리고 1만동짜리 지폐를 주면서 가지라길래 나도 가지고 있던 100원짜리를 줬다. 근데 500원 받고 100원을 주자니 마음에 걸렸지만 가진게 100원뿐이었다.
먹어보라고 주길래 받아 보니까 깨로 만든 엿이다.
오물오물 잘 먹으니 애들이 좋아한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 밥을 시키는데 다른건 다 6만동인데 이것만 4만동이길래 시켰더니 죽이 나온다. 배고픈데 실수했다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양이 꽤 많았다.
애들이 맥주도 먹자고 해서 먹는데 미지근한 맥주를 얼음컵에 담아 먹는 방식이었다.
내가 맥주값을 낸다고 하니 자기들은 돈 벌고 오는 길이라며 100달러짜리를 꺼내들며 걱정말라고 맥주를 계산한다.
밥을 먹고 하노이를 향해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청년 2명이서 드라이버로 짐칸의 벽을 뜯어내더니 술을 꺼내는데 쉼없이 나온다.
영화에서 보면 비밀창고 같은 곳을 이용해 밀수입을 하는데 꼭 그 장면 같아서 계속 쳐다봤다.
확실히 육로국경이 허술하긴 허술하다. 아니면 뒷 돈을 줬겠지.
9시 30분쯤 하노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나를 태우려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가격을 들어보니 보통 5만동을 부르길래 3만동으로 타려다가 다들 5만동에 담합을 해 그냥 4만동을 주고 호안끼엠 호수 근처로 갔다.
하노이에 늦게 도착할 것 같아 라오스에서 미리 숙소정보를 찾아봤는데 아침 뷔페 포함에 6달러짜리 도미토리가 있다길래 찾아갔더니 크리스마스라 7.5달러라고 한다.
그럼 원래 얼마냐니까 9달러라길래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가 알고보니 크리스마스 특별할인이었다. 숙박업소가 성수기에 세일을 하다니 처음 듣는 일이라 우선 방을 잡고 밥을 먹으려는데 식당이 잘 안보여 그냥 또 샌드위치를 먹었다.
하노이에 왔으니 당연히 비어 하노이도 먹어야지.
배가 안불러 숙소에서 파는 감자칩을 하나 샀는데 6000동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1만동에 판다.
<오늘의 생각>
베트남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이라길래 기대했는데 도로사정을 보니 라오스와 똑같다.
그래도 베트남 사람들이 사기를 많이 친다는데 시작부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다.
어제 아침에 먹은 빵이 잘못된건지 버스에서부터 살살 배가 아팠는데 결국 새벽에 한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갔다.
근데 내가 묵고 있는 방은 혼숙 도미토리 6인실인데 나만 남자고 5명이 다 여자라 배아파 죽을 것 같은데도 새벽에 설사하는 소리가 퍼질까봐 물을 틀고 쌌다. 같은 숙소에 묵은 누나들 죄송합니다. ㅠㅠ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좀 괜찮은데 또 설사가 나와 굶으려다가 다른 5달러짜리 도미토리도 있는데 밥 값을 냈다고 생각하니 이번엔 다른 배가 아파 식당으로 갔다.
‘위장아, 넌 이겨낼 수 있다. 넌 그저그런 평범한 위장이 아니라고 난 믿는다.’
이왕 먹는거 배터지도록 뽕을 뽑아야하니까 샌드위치도 하나 만들어 먹는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누가 이기나 해보자.
어제 저녁에 내가 10시쯤 체크인을 하고 11시쯤 누가 들어왔는데 그냥 잠을 잤었다.
알고보니 태국으로 가는데 잠깐 베트남을 거친 한국 누나였다. 이야기를 하다가 배아프다고 했더니 그럼 아침을 굶었겠다며 걱정을 하는데 차마 ‘제 위장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그냥 참고 먹었어요.’라는 말이 안나와서 굶었다고 해버렸다.
그러니까 체리랑 두유를 줬는데 고맙고 죄송합니다. 누님.
점심때가 되니 좀 살만 한 것 같아 시내로 나왔다.
오토바이 무리를 보니까 진짜 베트남에 온 것이 실감난다.
태국에서는 환전해간 바트를 쓰고 라오스에서는 가지고 간 달러와 위안화를 환전해서 써서 시티은행을 이용할 일이 없었는데 드디어 시티은행을 이용했다.
근데 베트남 돈이 한화 500원에 약 1만동이라 얼마를 뽑을지 고민하다 3백만동을 뽑았다. 순식간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게 호안끼엠 호수인데 별로 볼거리는 없다. 그냥 그 주위에 여행자 거리와 시장들이 들어서서 유명한 것 같다.
산타모자는 라오스에서부터 하나 사고 싶었는데 드디어 베트남에 와서 하나 샀다.
차마 한국 돌아가면 못 쓸거니까 외국에서라도 써봐야지.
배가 아파 얼굴이 초췌하게 느껴져 안쓰러운 것은 내 기분 탓인가.
근데 위에 있는 내 셀카를 보면 반팔을 입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패딩이나 점퍼를 입고 다닌다.
난 반팔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산타모자를 쓰고 돌아다녔는데 아마 사람들이 미친놈인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신기해서 돌아다니며 반팔 반바지 입은 사람을 찾아봤는데 진짜로 이날 하루종일 딱 1명 봤다.
누가 중국만 스케일이 크다고 했는가.
꿇어라. 이게 바로 베트남의 스케일이다. 마트에 그냥 컨테이너 통째로 세워두고 물건을 판다.
베트남 왔으니 쌀국수를 먹어야지.
양도 꽤 많이 주고 값도 나름 괜찮다. 맛은 당연히 맛있다.
아줌마들이 지게를 지고 다니며 도너츠를 팔길래 종류별로 하나씩 샀는데 너무 달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호아루 수용소를 가기로 했다.
호아루 수용소는 미군과 베트남 정치범들을 가둔 수용소였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
실제 수용소 문.
에효... 같은 사람끼리 적이라고 목에 칼을 채워놨다.
감방에 들어가 있을 때는 발에다 차꼬를 채워놓는다.
실제로 사용한 단두대라고 한다.
위령비를 세워놓고 조각을 해놨는데 목이 없는 조각이 사형수를 의미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나와서 성당을 갔는데 운이 좋았는지 미사시간이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이것저것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조심스럽게 제일 뒤에서 사진만 찍고 그냥 나왔다.
원래는 이렇게 밖에서 성당만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말 하기 쑥스럽지만 이 사진은 진짜 베트남을 잘 표현한 사진 같다.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잘 찍었다. 마음에 든다.
배가고파 돌아다니는데 길가에서 찹쌀밥을 파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가서 가격을 물어보고 똑같은 것을 달라고 했는데 그냥 닭고기에 간장뿐인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도 채우고 그냥 발길가는대로 가다보니 야시장이 나왔다.
근데 별로 볼 것은 없고 사람구경하는 재미로 돌아 다녔다.
밤에도 오토바이의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겐 GPS가 있으니까.
몇 달동안 컴퓨터를 혹사시켜 받은 구글맵이 들어있기에 켜고 위성을 잡기만 하면 어디에 있든 내 위치를 알 수 있어 어디를 가도 길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다.
자전거여행에서 도보여행으로 전환할 때 팔려고 했었는데 안팔기를 참 잘했다.
신기하게 생긴 과일들을 팔길래 샀는데 장아찌다. 짜고 씁쓸한 맛밖에 안나는데 도저히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생각>
내 위장은 병균따위에게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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