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빵만 먹는다길래 아침은 내가 대접하기로 했다.
6시에 일어나 씻고 밥하고 3분짜장과 미트볼을 데우고 식사 시작.
밥을 다 해먹고 나니 직원분께서 여기서 취사하면 안된다고 누가 물어보면 밥 안했다고 말하라고 해주셨다.
6시에 일어났는데 텐트 말리고 밥먹고 밍기적대다보니까 10시가 다 돼서 출발. 1시간 정도 달려 부산으로 가는 7번국도와 영주로 가는 36번국도 갈림길에 도착했다.
자기들끼리 찍은 사진이 없다 해 설정샷을 한번 찍어주고 내 카메라로도 한번 더 찍었다. 난 당연히 없으니 나도 한방 찍고 500일 뒤에 체코가면 체코술 사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기다려라 필스너 우르켈과 알코올들... 36번 국도가 어떤 국도인지 모른다.
그냥 내륙인 영주로 들어가는 도로인 것 밖에 모른다.
앞을 보면 평지인데 뒤를 보면 업힐인 그런 안보이는 업힐을 넘어가는데 이정도는 괜찮지 하며 올라간다.
근데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보이고 산들을 굽이굽이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정상이라 할만한 곳에 도착했는데 사랑바위라니.
꼭대기에 평화가 있어야지 왜 사랑이 있냐며 구경을 갔다. 아놔.. 잘 보니 둘이 껴안고 뽀뽀하고 있네.
굴삭기로 부시고 싶을 정도로 정열적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 꿀호떡을 또다시 먹는다.
560g에 1775kcal이라는 저 아름다운 칼로리.
기어비를 최고로 하고 달려도 점점 힘에 부친다. 이 높은 산 꼭대기에 다리를 놓고 있다.
지형을 돌아가는 것이 아닌 개척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의 위대함을 더욱 크게 느끼며 난 자전거를 끈다. 시멘트를 공수하기 힘드니까 산 중간중간에 시멘트 적차장도 있고 자갈 산도 있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공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왜 왔냐면서 앞으로 가도가도 고바위길이라며 내 희망을 꺾어 놓으셨다. 근데 왜 경상돈데 산이 이렇게 많은 거지.
이런 곳을 끌고 올라오는 나도 대단하다.
힘들게 자장구를 끌고 올라가다 쉬고 있는데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간다.
같은 이륜차인 오토바이에게 내가 업힐에 굴복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지나가며 응원해주신 오토바이 커플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내려서 끌바를 했다. 높아서 그런가 해바라기 같은 애들이 하늘을 보고있는데 무섭다. 아싸 정상에 도착했으니까 드디어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답이 없는 이운재. 오늘부터 안티팬해야지. 아싸 내려간다. 내가 한 20km정도 오르막길 왔으니 10km는 내려가겠지.
훼이크고 잠깐 내려가니까 다시 오르막이라 사진찍을 생각도 안들고 그냥 뒷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여서 다시 끌바를 했다.
꼬치비재. 꽃이 보이재? 그래 눈앞에 꽃이 보인다. 지금까지 잘했어. 이제 다시 내려가자. 정말 내려가는 거야. 긴장 풀지 말랬지.
저 밑에 있는 마을까지 잠깐 내려갔다 다시 올라간다.
멀리서 업힐이 보이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아 강원도 아니고 경상도라며!' 얼라 마을이 더 작아지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마을인줄 알았는데
끌고가는 내 자전거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업힐은 다시 돌아오지만
흘러내린 내 침들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업힐인줄 알았는데
김광석 님 죄송합니다.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 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 엄마, 트럭이 날 따라와요
Jerry.K 님 죄송합니다.
위에 나온 2곡은 업힐에 정신나간 누군가가 자전거를 끌며 내는 소리입니다.
이제 내려가는거 맞구나. 회고개? 회를 쳐주마.
이제 기대 안할거야. 또 뒷통수 칠거니까 내리막길이라고 신나하지 않을거야. 그래. 역시 또 오르막이지.
물이 다 떨어졌는데 왠지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같아서 아주머니께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약수라고 하신다.
세수도 하고 물도 다 채우고 다시 오르막길. 오늘 누가 죽나 한번 해보자.
이 때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밖에 안떠올랐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산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할아버지가 산 때문에 화가나서 삽질을 해다가 산을 없애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어느세월에 옮길 것이냐며 뭐라 하자
할아버지 曰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이, 자식의 자식이 언젠가는 옮길것이다.'
그러자 산신령이 무서워서 옥황상제한테 이르고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줬다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본 뜻은 쉬지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 뜻을 이룬다는 아주 뜻깊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놈의 산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만 들고
우공이산 이야기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다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요것이 손등.
요것이 손바닥.뽀얗던 내 손이 깜쉬깜쉬가 됐다. 내가 살면서 터널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배추를 가득 싣은 트럭들이 지나가도 산을 관통해서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처음 알았다.
진짜 인간문명 만세다. 사랑합니다. 터널
근데 경상북도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하는건가? 터널을 지나오니 내리막길이 시작이다.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앞에 산들이 안보이긴 하는데... 원래 영주까지 가려했지만 너무 힘이 들고 시간도 늦어서 봉화에서 잠자기로 결정. 8km만 가자. 내리막길에 짧은 터널이라 후미등 안키고 논스톱으로 가려다가 방심하는 사이에 훅가니까 후미등을 켜고 달렸다. 봉화에서 자려다가 도로도 계속 내리막길이고 마을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업힐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냥 영주까지 달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업힐만 탔으니 진짜 징그럽다.
알고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백두대간을 넘어온 길이였는데 솔직히 서울~강릉보다 힘들었던 것 같고 삼척~울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힘들었다.
영주에 도착해 텐트 칠 곳을 찾다가 둑방길을 발견하고 취사는 안된다기에 슈퍼에 빵을 사러갔다.
가면서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 딸기잼 듬뿍 든 고급빵과 바나나 우유를 마셔야지' 했는데 빵이 다 나가고 운명처럼 꿀호떡만 남아있길래 그냥 '내팔자가 그렇지 뭐.'하면서 당연하게 쿨피스도 집고 나왔다. 그런데 옆 가게에 계신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하나로 또다시 인연이 시작됐다.
'너 누군데 나한테 인사하냐. 나 아냐?'
'아니요. 그냥 눈 마주쳐서 인사했어요.'
'너 그래가지고 어디가냐?'
'저기 둑방길에 텐트치고 자려구요.'
'혼자 여행다니는 거냐? 밥은 먹었냐?'
'취사 안된다기에 그냥 빵 사다 먹으려구요.'
'아저씨가 빵 사줄게 안에 들어와서 쉬다 가라.'
'이미 빵 사서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밥 사줄테니 들어와서 먹고 가라.'
'감사합니다.' 하며 냉큼 들어 갔더니 뭐 먹을거냐고 물으셔서 아무거나 괜찮다니까 그럼 만두랑 라면이랑 먹으라며 직접 김치넣어서 라면을 2개나 끓여 주시고 만두도 2판이나 까주시며 다 먹고 남는거 싸가라고 하시는데 정말 인사 하나로 밥도 얻어 먹다니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얼었던 몸에 따뜻한 라면이 들어가니 몸이 쏴 풀리는데 정말 최고였다.
밥을 먹는 동안 아저씨가 슈퍼에 가셔서 비싸서 내가 안샀던 빵, 오렌지 쥬스 1.5L, 프링글스 등등을 사다 주시며 챙겨 먹으라고 하시는데 감동이었다. 다 먹어갈 때 쯤 도착하신 사장님.
내가 무전여행은 아니고 거지여행을 한다고 하니 여행하는 애들이 더 잘 챙겨먹어야 한다며 자두 한봉지, 햇반, 라면 등등을 챙겨주시고 남은 만두 1팩을 싸주시는데 받는 내가 얼떨떨할 정도로 고마웠다. 옆에 계시던 직원분.
사진 찍자 하니까 에이 뭐 하시더니 포즈 잡으신다.ㅋㅋㅋ 다른 직원분.
지금까지 영주 하면 예전에 영주역앞에서 먹은 굴국밥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이분들이 떠오를 것 같다.
백두대간 넘는 내내 욕도 하고 뒷통수만 친다고 뭐라 했는데 이런 선물로 다시 뒷통수를 치다니 한 없는 오르막도, 한 없는 내리막도 없는게 사람 사는 것이 맞는가 보다.
다음날 아침에 영주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기로 하고 나와 내가 원래 자려던 곳에 가니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계셨다.
30분정도 돌아다녀도 그 자리가 최적의 자리기에 돌아갔는데 3명이던 아주머니들이 10여명으로 불어나 있어 다른 곳을 찾다 종합체육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들었다.
<오늘의 생각>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도와주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다.
누군가가 선뜻 손을 내밀었을 때 선뜻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가고 있다.
그 사람의 속마음을 의심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믿고 고마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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