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오니 호스텔에서 조식을 챙겨줘 너무 행복하다.
무염버터에 소금을 솔솔 뿌려 빵에 발라먹으면 살도 찌고 맛도 좋다.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묵었던 호스텔은 MIR 호스텔인데 시설도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호스텔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지도였는데 상트페테르부트크의 주요 포인트들이 잘 표시되어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큰 번화가인 넵스키대로를 걸어가다 도로 가운데서 사진을 찍으면 멋있을 것 같아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가보기로 했다.
다른 구소련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지하철 속도는 꽤 빠르고 소음이 조금 나지만 러시아스러워서 재미있다.
러시아의 지하철역사는 마치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하다.
우리나라도 경복궁역과 같은 몇몇 역은 주제가 있게 꾸며져 있는데 이런 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내가 가려한 박물관을 찾아가는데 자꾸 외진 곳으로 간다.
설상가상이라고 눈도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조금은 겁이 나지만 우선은 지도를 따라간다.
지도를 믿고 계속 걸었더니 내가 찾던 철도 박물관이 나왔다.
역시 지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철도박물관에는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각종 열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트크는 1837년 러시아 최초로 철도가 놓여진 곳이며 유럽으로 향하는 철도가 있는 곳이기에 선박으로 들어온 물품을 철도로 수송시킬 수 있는 중요한 무역항이다.
열차 앞에는 각 열차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영어로 적혀있는데 우리나라의 새마을호처럼 생긴 이 열차는 198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눈이 내려 조심히 걷고 있는데 누군가 얼음에서 미끄러진 흔적이 보인다.
나도 얼음에서 미끄러져 카메라가 고장나 본 적이 있어 괜히 남 일 같지가 않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한다.
내가 철도 박물관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열차 때문이다.
이 열차는 냉전시대에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열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뭘 봐야 잘봤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중 핵미사일 발사 열차가 전시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철도 박물관으로 왔다.
밀리터리 덕후까지는 아니여도 미사일에 대해 작은 관심은 있기에 이 곳을 찾아왔는데 비록 모형일지라도 핵미사일을 직접보니 정말 즐거웠다.
열사 발사 차량의 길이는 23.6m인데 23m짜리 미사일이 들어간다고 한다.
게다가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1만km 가까이 된다니 정말 신기했다.
화끈한 러시아답게 대구경 포를 탑재한 열차도 있었는데 열차나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열차박물관에 오면 재밌게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물관의 입구쪽에 호스텔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인적이 드문 곳이라 밤에 숙소 밖으로 나가면 위험할 것만 같았다.
역시 숙소는 번화가에 잡는 것이 치안이나 접근성면에서 좋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거리를 걷는데 정말 유럽스럽다.
마치 겨울의 유럽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이삭 성당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오늘이 정기 휴관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거리를 걷다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런치 코스요리를 팔고 있길래 들어갔다.
우선은 전채요리부터 시작한다.
다음은 죽과 스프를 섞어 놓은듯한 음식이었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메인 요리는 중앙아시아에서 먹었던 라그만과 비슷한 요리였다.
런치메뉴라 그런지 적당한 가격에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배도 채웠으니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향한다.
마침 수요일엔 저녁 9시까지 개장을 하기에 오늘은 러시아 작품에 푹 빠져보기로 했다.
외부 온도가 1도라고 하지만 난 이제 1년 365일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유지 중인 박물관으로 들어갈 것이니 괜찮다.
국제학생증으로 학생할인을 받아 입장권과 사진촬영권을 샀다.
에르미따주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촬영권을 따로 사야하니 주의해야한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잘 통하므로 추가 요금을 내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린다.
그래도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한국어로 녹음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웨딩촬영을 하러 온 것 같은데 미술관에서 촬영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참신한 것 같다.
이런 미술관에서 찍은 웨딩 화보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처럼 시작부에 웅장한 계단과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시작부터 기대가 된다.
입구에는 자수 작품부터 시작이 되는데 아무리 도안이 있다지만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예술은 신기하다.
이 작품은 금으로 만든 시계인데 정각마다 움직이고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 작품은 누구나 다 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표현한 작품인데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져 잠시 기도를 올렸다.
제발 세상에 종교로 싸우는 사람이 없고 항상 평화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 작품도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너무 유명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종교화를 볼 때마다 가톨릭 신자들이 부럽다.
무교지만 불교적 깨달음이 마음에 들어 불경은 조금 읽어봤지만 성경은 다가가기 어려워 유명한 사건 밖에 모르는 것이 아쉽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성모 마리아와 아이라는 작품인데 성모 마리아의 표정이 너무 따뜻해 사진을 찍었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의 음악의 신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내기를 나타낸 작품이다.
마르시아스가 입을 대기만 해도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피리를 주운 뒤 자신이 아폴론 보다 더 뛰어난 음악을 연주한다는 소문을 내고 돌아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찾아가 누구의 음악이 뛰어난지 겨뤄보자고 했고 내기에서 진 사람의 가죽을 벗기기로 했다.
심판을 맡은 9명의 뮤즈들은 아폴론의 음악이 더 좋다고 했고 오직 미다스 왕만 마르시아스의 손을 들어줘 아폴론의 승리로 내기가 끝났다.
그 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의 가죽을 산 채로 벗겼고 자신의 음악을 못 알아 본 미다스 왕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다음 전시관으로 가기 위해 황금빛으로 빛나는 회랑을 걷는데 찬란하게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진정한 예술이자 건축처럼 느껴져 한참을 구경했다.
계속해서 관람을 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화가인 Carlo Dolci의 그림이었는데 그림 속의 부인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림을 보다보니 뉴욕에서 처음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떠올랐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네덜란드 헤이그 여행기 - http://gooddjl.com/270 를 읽어주세요.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 미술관을 걷기만 해도 힘이 든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잠시 의자에 앉아 쉬다 관람을 계속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화풍이길래 다가가 보니 역시나 렘브란트의 작품이었다.
유럽 여행을 하며 렘브란트의 작품을 많이 봐서 그런지 렘브란트의 그림은 멀리서 봐도 확 티가 나는 것 같다.
어떻게 붓으로 이런 빛 표현을 했는지 정말 대단하다.
그림도 아름답지만 그림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뒷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봤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지레 겁을 먹고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 하기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에 가 다양한 그림을 보는 것이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인 것 같다.
나도 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미술관에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여행을 하며 다양한 미술관에 들어가보니 작품을 보는 재미를 조금이나마 알게됐다.
역시 여행은 참 좋은 것 같다.
이 그림은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을 다룬 기독교 작품인데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그의 가족이 이집트로 도피하자 노한 헤롯 왕이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아를 죽이라고 했었다고 한다.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도 인간이고 가장 악한 마음을 가진 것도 인간인 것 같다.
이 전시실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알렉산드르 전시실이라고 한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았던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전시실이었다.
이 그림도 유명한 그리스 신화인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키프로스 섬의 타락한 여자들을 혐오하던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형을 조각했는데 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한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자신의 조각상에 생명을 넣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를 올리고 그 기도를 들은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피그말리온은 살아난 조각상에게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결혼해 파포스라는 딸을 낳고 살았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손재주가 좋아야 미녀를 만날 수 있나보다.
난 손재주가 좋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조각상이나 감상해야겠다.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생각한 모습을 그대로 조각한 조각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든다.
크고 특별한 방에는 웬만하면 다 금칠이 되어 있다.
지금은 전구로 불을 밝히고 있지만 과거에 촛불로 불을 밝히고 있었을 이 방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런 서재가 있다면 나도 열심히 공부할텐데 이렇게 멋진 서재가 없어 공부를 안하게 된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옥으로 만든 기둥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각을 짜 맞추어 만든 기둥이었다.
기둥도 아름다웠지만 무엇이든 멀리서 대충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직접 가까이 대면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은 역사상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 중 한명인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기 위한 방이다.
이 전시실은 1812년의 갤러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역시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갤러리이다.
갤러리의 벽에 걸려있는 초상화들은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했던 장군들과 귀족들의 초상화들이라고 한다.
낮에 들어가 아름다운 작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저녁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미술관 내부에 있는 작품들도 아름다웠지만 조명이 켜진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참 아름답다.
계속 구경하느라 힘이 들었으니 저녁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첫번째 접시만 사진을 찍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맛있었다.
숙소에 돌아가 맡겨뒀던 가방을 찾고 지하철을 환승하는데 지하철 승강장에 철문이 있었다.
설마 스크린 도어인가 하고 지켜보니 진짜 스크린 도어였다.
쇠로 만든 스크린 도어를 달다니 불곰국이라 불리는 화끈한 러시아다웠다.
배낭을 메고 간 곳은 모스크바역이다.
러시아의 기차역 이름은 특이한데 이름을 지을 때 역이 있는 지명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할 곳의 지명을 붙인다고 한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갈 것이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한다.
기차역 내부에는 러시아의 기차 노선도가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것 같았다.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모스크바로 떠날 기차가 들어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는 러시아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다.
6인 침대칸을 예약했는데 자리가 좁긴하지만 푹신한 베개와 따뜻한 이불이 있으니 괜찮다.
이제 자고 나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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