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함께 먹는 빵이 아무리 맛있다지만 빵에는 역시 잼을 발라야한다.
전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와 같이 탄 아저씨의 암내가 너무 심해 낮에는 복도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운다.
편하게 기차를 타고 가면 여행이 재미없을까봐 이런 추억을 남겨주는 것 같다.
코가 고생하니 입이라도 즐거워야 한다.
러시아산 지렁이 젤리는 한국 왕꿈틀이 젤리보다 좀 더 질겼지만 씹는 맛이 좋았다.
이제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화장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화장실은 각 열차칸의 끝부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면대를 보면 가운데에 작은 레버가 있는데 이 레버를 밀면 그 사이로 물이 졸졸 나온다.
말 그대로 졸졸 나오기에 양치질을 겨우 할 정도고 세수를 할 경우에는 두손으로 요령껏 물을 받아 해야한다.
간혹 여행기를 보면 세면대의 배수구를 막은 뒤 물을 받아 머리를 감았다는 사람도 있는데 한정된 물을 다 같이 이용하는 시스템에서 그렇게까지 머리를 감고 싶으신 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변기는 이렇게 생겼는데 승무원 분들이 청소를 날마다 해 크게 더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물은 바로 선로로 쏟아지기에 역 정차 30분 전후로는 화장실 사용을 못하게 한다고 한다.
입이 심심할 때는 과자를 먹어줘야한다.
아마 세계여행을 하면서 외국에서 가장 자주 본 과자가 초코파이인 것 같은데 초코와 촉촉한 마시멜로의 조합은 정말 맛있다.
물을 아껴야한다는 핑계를 대며 점심에는 양치질 대신 껌을 씹어준다.
스도쿠도 적응이 돼서 그런지 한 판에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더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를 풀고 싶은데 시베리아 한 복판에서 새로운 스도쿠 책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계속 푼다.
러시아에는 다른 종류의 컵라면도 있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도시락이 딱이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은 한국라면을 따라올 수 없다.
저녁 식사를 한 뒤에는 화장실로 가 깨끗하게 씻는다.
얼굴만 씻을 수 있기에 발을 비롯한 다른 부분은 물티슈로 꺠끗하게 닦아주면 잠 잘 준비가 끝난다.
머리에 점점 기름기가 심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견딜만 하다.
해는 졌지만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아직 한 낮이기에 잠이 안온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그냥 바람이나 쐴 겸 잠시 정차한 역 밖으로 나갔는데 추워서 잠이 확 달아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바이칼 호수를 보고 싶었는데 이미 해가 지고 난 뒤라 창 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이칼 호수를 보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자다가 암내 때문에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바이칼 호수를 지나기 직전이다.
승무원에게 찾아가 여기가 바이칼이 맞냐고 물으니 바이칼이 맞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 밖을 보지만 역시나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냥 침대로 돌아간다.
오늘 아침 메뉴에는 참치가 추가됐다.
날마다 새로운 음식을 하나씩 추가해 먹는 게 재미있다.
낮에 바이칼 호수 근처를 지나갔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보니 설국열차를 실제로 탄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듯이 기차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려면 물을 잘 보급해줘야한다.
열차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를 꼽으라면 노블레스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유투브에는 올라온 음악이 없어 같이 들을 수는 없지만 가사가 정말 마음에 들어 생각이 날 때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home 아주 먼길을 난 홀로 걸어왔네
I'll come back home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란걸
얼마나 왔을까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남았나 잘 걸어왔었나
내 길이 맞는가 내 편은 누군가 질문만 가득해 난 진실했었나
난 꿈을 꾸는가 몽상을 하는가 망상을 하는가 해답을 얻기위해 여기까지왔네
끝없이 펼쳐진 이 길 위에서 목이 말라 잠시 가던길을 멈췄네
뒤돌아봤을땐 아무도 없었네 그때 깨달았다네 여기까지라는것을
숨 고를 겨를 틈도 없었나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되도록
그토록 원했던것은 다 가졌는가 가지고나니 행복한가
부족하다고만 난 투덜거렸지 욕심만 많았지 고마운걸 모르는 철부지 애같았지
home 아주 먼길을 난 홀로 걸어왔네
채우기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비우기 위해 사는것이 삶이란걸
I'll come back home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란걸
나 이제 돌아갈래 여긴 너무 추워 따뜻한 내 집이 그리워
난 틀에 박힌 책같은 삶이 싫었지 사람들은 쳇바퀴같이 굴렀지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인생에 정답은 없단걸 알게된거지 내 생각만 옳았었지
이런사람 저런사람 각자 나름대로 삶의 이유와 방식이 다르다는것을
내 생각과 니 생각이 같을수만은 없다는것을 혼자서는 살수없단것을
교과서에 적어놓은게 맞을때가 많아 인생의 선배가 말한게 옳을때가 많아
올라갈땐 보지 못했던걸 내려올때 비로소 보고만거지 내가좀 늦었지
깜박거리는 신호등에도 이젠 뛰어가지않아
기다리지 뭐 조금 더 빨리간다고 빨리 가진않아 출발점과 도착점은 점을 찍기나름
home 아주 먼길을 난 홀로 걸어왔네
세상의 주인은 없다는것을 세상의 주인공은 모두라는것을
I'll come back home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란걸
나 이제 돌아갈래 여긴 너무 추워 따뜻한 내 집이 그리워
영원한 1류도 영원한 3류도 누군가의 아류도 생각의 오류도
정해진건 없다네 내 것은 없다네 돌아갈땐 다 내려놓고 가는법
가져갈수 있는것은 단지 추억뿐 모든것은 빌려쓰는것뿐이라네
세상이라는 집에 똑같은 세입자 인생이라는 길을 같이걷는 동반자
home 내가 쉴 곳은 여기뿐이란걸
웃었던 날들이 더 많았다는걸로 세상은 아직 살만한곳이란걸
I'll come back home 그저 모든게 감사해...
집 밥이 그리워 날 기다리는 모든게 그리워
이제는 알았네 내가 지켜왔던게 나만알고 나만믿고 나만생각했던게
모든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란걸 버릴수록 내가 행복해진다는것을
천금 같았네 그 모든 시간들이 많은것을 알게해준 긴 여정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준거겠지 내 출발점과 도착점은 같았던거지
노블레스 - 집으로 가는 길
너무 도시락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으니 몸을 생각해 사과를 하나 샀다.
황량한 시베리아에서 살아가려면 다양한 농산물들을 다른 지역에서 가져와야할텐데 만약 기차가 없었더라면 작은 규모의 도시나 마을 사람들의 삶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복도를 어슬렁 거리다가 만난 러시아 형아들이 보드카가 있다길래 한 잔 얻어마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보드카를 한 1L 정도 사서 기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모스크바의 호스텔에서 들으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음주는 금지된지 오래라고 한다.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걸리면 벌금을 내야하는데 난 외국인이라 말도 통하지 않으니 술을 가지고 기차에 오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 빈 손으로 기차에 올랐다.
할줄 아는 말은 한국인이라는 뜻의 "까레이스키"와 보드카밖에 없지만 해독능력이 뛰어난 간이 있어 잘 마실 수 있었다
기차를 탄 이후로 한 두잔 씩 얻어먹긴 했지만 이 형들처럼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보드카를 몇 병씩 마신 적은 처음이었는데 이 좋은 술을 기차에서 합법적으로 마시려면 식당칸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수 밖에 없다니 아쉬웠다.
술은 마셨어도 세수는 하고 자야한다.
오늘 아침은 감자범벅과 베이크드 빈이다.
처음 베이크드 빈을 먹었을 때는 이상한 식감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여행하다 받은 한국인의 대표 커피 맥심으로 후식을 즐긴다.
창 밖의 풍경은 거의 비슷해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만 달라진다.
할게 없으니 누워서 빈둥대며 과자를 먹고 잠을 자고 책을 읽고 다시 잠을 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게으른 사람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도시락이 러시아에 수출되기 전에는 과연 뭘 먹으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을지 궁금해진다.
아마 그 때는 음주가 불법이 아니었을테니 보드카를 마시면서 탔을 것 같다.
나에게 도시락과 보드카 중 하나만 고르라 한다면 난 주저없이 보드카를 고를텐데 아쉽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복도에는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었는데 가끔 유쾌한 러시아 형들은 멀티탭을 연결해 자기 방까지 전기를 끌어다 쓰기도 했다.
그럴 때는 그냥 웃으면서 방문을 노크하고 나도 충전 좀 하자고 하면 미안하다며 보드카도 한잔씩 주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스도쿠를 풀다 모비딕을 읽다 잠을 잔다.
처음에는 신기했던 모든 것이 일상처럼 느껴질 때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자극은 달달한 복숭아 통조림이다.
어쩜 이리 달콤한지 정말 맛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6일째가 되니 카메라의 피부보정 효과를 뚫고 초췌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역시 어디를 가나 예술혼이 불타는 사람은 존재한다.
나도 이런 손을 가지고 있다면 참 좋을텐데 내 머릿 속의 모든 회로는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필수품 중 하나는 바로 이 물티슈다.
제대로 씻을 수 없기에 몸의 청결을 책임져주는 아주 소중한 아이템인데 내 앞에 앉은 암내 아저씨는 절대 씻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또한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했기에 이제는 그냥 냄새가 나면 그러려니 한다.
오늘 아침은 감자범벅 두개와 참치캔이다.
통조림이 이렇게 유용한 보관방법인지 몸으로 느낀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눈
점심은 언제나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매번 똑같은 일상이지만 홍차 한 잔의 여유는 즐길 줄 알아야한다.
기차의 연결 부분에서는 흡연이 가능한데 기관실 쪽에서는 당연히 금연이다.
연결 부분은 난방이 되지 않아 시원하기에 가끔씩 바람을 쐬러가면 담배를 피고 있던 러시아 형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열차가 블라디보스톡에 다가갈수록 기차에는 남은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7일 동안 지냈던 칸도 이제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지저분하지만 7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이런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니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어 기념촬영을 할 새도 없이 숙소를 찾아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었지만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인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문명사회로 들어온 기념으로 샤워를 했는데 샤워가 이렇게 시원하고 행복한 건지 처음 알았다.
과거 원시인들은 이런 기분을 못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그들이 불쌍해졌다.
푹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어제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해있다.
이런 맛에 러시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눈보라를 헤치고 간 곳은 한국 동해로 들어가는 페리 선착장이다.
그런데 표는 팔고 있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있어 배가 언제 뜰지는 모르니 내일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
여행이 하루 늘어 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어차피 기약없이 떠나온 여행이기에 하루 정도 늦어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다양한 한국 제품이 러시아에 들어온 것은 알고 있지만 레쓰비도 들어온지는 몰랐다.
다음에는 T.O.P도 진출했으면 좋겠다.
호스텔에서 추천받은 식당에 찾아왔는데 진열된 음식 중에서 먹을 음식을 고르고 계산하는 내가 좋아하는 시스템이었다.
푸짐하게 음식을 고르고 디저트까지 골랐다.
밥을 맛있게 먹었으니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잘 시간이다.
기차에서의 생활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포근하고 넓은 침대가 더 좋다.
호스텔에 한국에서 여행오신 분이 계시길래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레스토랑에 가 연어요리를 시켰는데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요리라 그런지 꽤 맛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음식값이 맞지 않아 매니저를 부르니 주문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우리가 가격이 오르기 전 메뉴판을 보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으니 자신의 권한으로는 값을 깎아줄 수 없다며 정말 미안하다며 대신 맥주를 챙겨준다고 해 알았다고 했다.
흑맥주가 꽤 맛있었고 서비스도 좋았기에 서로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빵집이 보이길래 디저트로 베이비 슈를 사와 맥주 한잔을 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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