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을 맛있게 먹지만 어떻게 서양 사람들은 아침에 달걀과 빵 몇조각으로 배를 채우는지 궁금하다.
침낭 밖은 위험하다고 배웠으니 아침을 먹고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쌀쌀할 때는 침낭 속에 포옥 들어가 꼼지락 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하루 종일 침낭 속에 있고 싶었지만 랄프가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단골이 되어버린 찻집에 갔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앞에서 샤슬릭을 굽고 계셨다.
고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주문을 했는데 고기는 언제나 옳다.
샤슬릭 옆에는 내장과 꼬치구이를 팔고 있어 몸보신을 위해 같이 시켰는데 고기는 언제나 옳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랄프는 초콜릿을 정말 좋아했는데 슈퍼에 갈때마다 나와 함께 먹는다는 핑계로 하이디의 허락을 받아냈다.
역시 사람은 당을 자주 섭취해줘야한다.
밥도 먹고 차도 마셨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돌아오니 주인집 아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엄청 개구장이처럼 생겼는데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쑥쓰러워서 그런지 조용했다.
별관을 하나 더 짓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정말 친절해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처음 CBT에서 민박집을 고를때 다른 집들과 다르게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깨끗하다며 추천해줬었는데 이 집으로 오길 참 잘했다.
놀고 먹는데는 술이 빠질 수 없다.
1.5리터짜리 피쳐를 한 병 사서 마시다보면 시간이 금방간다.
술을 마시다가 랄프가 조심스럽게 영어를 가르켜줘도 되겠냐고 묻길래 난 정말 좋다고 했다.
딱히 공부를 하기보다 앞으로 대화를 하는 도중에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기로 했다.
회화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그냥 알고 있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먼저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니 정말 고마웠다.주인 아주머니는 요리도 잘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종류를 말하면 다 가능하다고 하신다.
저녁에는 라그만을 시켰는데 우동면발 같은 면을 이용해 정말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데 난 모든 음식이 맛있으니 여행이 항상 즐거운 것 같다.
샤워를 하고 침낭에 들어가 여행기를 쓰려고보니 넷북에서 나사가 빠지기 시작한다.
아직 한국에 가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라고 부탁하며 여행기를 썼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도 좀 해봐야 할텐데 난 여행을 하며 너무 잘 먹는 것 같다.
오늘은 동네 뒷산에 올라가보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멋쟁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도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보고 싶은데 언제쯤 몽골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몽골의 초원에서 말을 타보고 싶다고 하니 하이디는 나중에 당나귀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당나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당나귀를 보면 짐을 나르기 싫어 꾀를 부리던 동화가 떠올라 게으른 이미지만 떠오른다.
뒷산에 작은 폭포가 있다길래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올라가다 자전거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만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코렉스 자전거였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길을 따라 산을 조금 오르다보니 폭포가 보인다.
작은 규모일 것이라 예상했었기에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폭포를 지나 계속해서 산을 올라간다.
산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호두나무 숲이 나온다.
저번에 말했듯이 아슬란 밥은 호두로 유명한 지역이다.
땅에 떨어진 호두를 주워 먹으며 산을 올라간다.
거대한 호두나무 숲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로 큰 규모일 줄은 몰랐었는데 산 전체가 호두나무 밭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길을 걷다보니 조용한 시골 마을에 온 것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초코바를 하나씩 먹고 낮잠을 좀 자다 내려가기로 했다.
러시아어는 아예 감도 잡히지 않아 그냥 눈치로 알아 맞춘다.
러시아어를 할줄 안다면 중앙아시아 여행이 정말 편하고 재미있을텐데 아쉽게도 우리들 중 러시아어를 할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계속 걷다보니 산을 넘어 다른 마을 쪽으로 와버렸다.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걸어가는데 지나가는 아저씨께서 차를 세우더니 마을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신다.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계속해서 타고 가라고 말씀해주셔서 차를 얻어타고 편하게 마을로 돌아왔다.
산을 탔더니 따뜻한 국물이 당겨 도시락을 끓여 먹었다.
작은 마을의 슈퍼에서도 도시락을 팔고 있는 것을 보니 중앙아시아에서 정말 유명한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께 저녁메뉴로 혹시 샤슬릭도 되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너무도 친절하고 좋은 키르기스스탄의 민박시스템과 사랑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은 터지지 않지만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리미리 여행기를 써둔다.
여행을 다닐 때는 여행기가 밀리는 일이 없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여러가지 바쁜 일이 많아 여행기를 몇번 펑크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타지키스탄에서 한국의 특별한 나이 세는 법을 이야기하다 내 생일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일 축하를 해준다.
내가 술을 좋아하니 맥주 병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이용해 생일 카드를 만들어줬는데 잊지 않고 챙겨줘 정말 고마웠다.
10월 13일은 내 생일이자 내가 세계일주를 떠난 날이다.
벌써 한국을 떠난지 2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지만 뒤돌아보면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던 2년이었다.
오늘 못 먹은 미역국은 남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먹어야겠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이제는 반팔과 반바지를 못 입을 것 같아 깨끗하게 빨아 침대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여행은 짐을 비우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난 2년이나 지나서야 가방을 조금씩 비우는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오늘은 아슬란밥을 떠나기로 했는데 버스를 타려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큰 도시로 가야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직 버스에 빈자리가 많아 출발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전세계 어디를 가든 버스 정류장에는 먹을 것을 파는 가게가 있다.
튀김을 몇개 사 랄프와 나눠먹다보니 버스가 꽉 차 출발할 때가 됐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다 큰 터미널에 도착해 다른 버스로 갈아탄다.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 목적지만 말해주면 버스를 갈아타야할 곳에 도착하면 알려준다.
또 1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가다 다음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내렸는데 우리가 가기로 한 마을은 정말 작은 마을이라 이미 버스가 끊겼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어느정도 예상했었기에 택시를 잡으려고 흥정을 하는데 아저씨들이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른다.
여차하면 그냥 여기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어필하며 흥정을 했다.
황무지처럼 생겼어도 중앙아시아의 도로는 봐도 봐도 아름답다.
해질 무렵 양떼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일상이기에 아무도 차가 막힌다며 성질을 내지 않는다.
빨리빨리도 좋지만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2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우리가 오고 싶었던 아킷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도 랄프를 만나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곳인데 정말 작고 조용한 마을이라 마음에 들었다.
마실 물이 없기에 마을에 하나 있는 슈퍼마켓에 갔는데 물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맥주가 없었다.
랄프와 하이디가 한 방을 쓰고 내가 혼자 3인실을 쓰기로 했다.
방이 넓으면 편하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빈 침대가 무섭게도 느껴진다.
축하주도 없이 생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짐을 풀고 나니 하이디가 생일선물이라며 맥주와 팝콘을 준다.
한국의 술집을 이야기하며 한국에서는 술집에 가면 기본 안주로 팝콘이나 스낵이 나온다고 말했었는데 아까 시장에서 팝콘을 보고 그 말이 떠올라 맥주와 팝콘을 샀다고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생일 선물을 줘서 고맙다며 랄프와 한 잔씩 나눠마셨는데 술 맛이 정말 달았다.
팝콘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녁이 나왔다.
감자와 고기를 함께 요리한 음식이었는데 고기도 부드럽고 양념된 감자가 맛있었다.
방을 구할 때 뜨거운 물이 나오는지 물어봤었는데 온수기는 없지만 정말 좋은 사우나가 있다고 했었다.
직접 불을 때는 재래식 사우나였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장작을 넣고 계곡에서 물을 길어다 주셨다.
여기서도 랄프와 하이디가 오늘은 내 생일이니 가장 먼저 사우나를 즐기라고 배려해줘 오랜만에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여행 2주년이자 26번째 생일을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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