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웠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이란을 떠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행기를 타면서 기내식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맥주는 기대했었다.
이란에서 맥주를 못 마시면서 했던 상상 중 하나는 비행기에서 이란을 내려다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실 생각이었는데 비행기에 맥주가 없다고 한다.
아쉽지만 몇 시간만 있으면 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당황하지 않고 콜라를 시켰다.
석양이 지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이런 모습을 보기위해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창가쪽으로 자리를 부탁하게 된다.
비행기는 짧은 비행을 마치고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 줄이 길어 조금 오래 기다렸지만 이란에서 받아 온 비자가 있었기에 입국허가는 금방 떨어졌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둠이 깔렸기에 미리 알아둔 호스텔까지 7달러 정도 내고 택시를 타고 갔다.
역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달러만 있다면 걱정이 없다.
어제 숙소에 도착해 인사를 하다보니 오늘 파미르 퍼밋을 받으러 간다는 친구들이 있어 같이 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쉬고 싶었지만 퍼밋을 잘 안 준다는 소문이 돌길래 우선 퍼밋부터 받고 쉬기로 하고 타지키스탄 구경을 나섰다.
신청 서류를 작성하니 은행에 가서 돈을 내고 오라고 해 은행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전이 돼 수납이 안 된다며 기다리라고 해 30분 정도 기다리니 은행 직원이 대신 서류를 작성해줘 돈을 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밥을 먹자고 해 식당에 갔다.
밥보다는 맥주가 고팠기에 맥주가 있냐고 먼저 물어보니 시원한 맥주가 있는 냉장고를 보여준다.
오랜만에 먹는 맥주이니 안주를 조금만 먹을 수 없어 고기를 듬뿍 고르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그저 술을 사랑하는 알콜 러버일 뿐인데 여행기를 쓰다보니 알콜 홀릭처럼 보인다.
아파트를 호스텔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어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안에 불이 안 들어오길래 그냥 걸어다녔다.
운동을 하기 위해 걸어다닌 것이지 절대로 귀신이 나올까봐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봉고차를 개조해 만든 버스를 타니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몸이 힘든 여행을 해야 재미있는 것을 보니 변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뭔가를 먹고 있길래 따라서 하나 시켜보니 요거트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내가 할줄 아는 러시아어는 한국인을 뜻하는 까레이와 기본적인 인사 몇가지 뿐이라 한국어로 맛있다고 말을 하니 즐거워 한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길가에서 이번엔 만두를 팔고 있다.
우선 3개를 시켰는데 육즙과 고기의 맛이 정말 맛있었다.
화덕에서 뭔가를 꺼내 팔기에 살펴보니 맛있어보여 하나를 주문했는데 빵 속에 들어있는 속이 촉촉하고 맛있었다.
길거리 음식이 많은 나라는 항상 사랑스럽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파미르 퍼밋이다.
중앙아시아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미르 고원 지역을 가려면 이 허가증이 있어야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나 안전문제 등으로 퍼밋을 못 받는 경우도 많은데 내가 타지키스탄에 도착하기 1주일 전에는 테러 위험이 있다며 퍼밋을 발급해주지 않았었다고 한다.
난 다행히 퍼밋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중앙아시아의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랜만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니 복숭아 통조림과 함께 여행기를 쓴다.
두샨베에 있는 대부분의 숙소에는 인터넷 사용이 안 되는데 이번에 내가 온 곳은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인터넷이 자주 끊기긴 하지만 사용할 수는 있다.
이제 두샨베에서 며칠동안 쉬며 잉여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 퍼밋을 같이 받은 친구들이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묻는다.
타지키스탄에서의 이동은 주로 지프를 이용해야하는데 보통 6명 정도 함께 돈을 모아 지프를 빌려야한다.
두샨베에 좀더 있으며 다음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생각이었는데 사람을 모으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으로 먹으려고 오트밀처럼 보이는 것을 사왔는데 전혀 오트밀의 맛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곡물 맛만 나길래 전자레인지에 데워봤지만 그대로길래 그냥 주방에 두고 나왔다.
어쩌다보니 급하게 이동을 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됐지만 우선은 파미르 여행의 시작지인 호로그까지 함께 가보기로 했다.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으니 간단한 빵을 몇개 사먹는다.
지프를 타고 가다보면 경찰이 자꾸만 차를 검문한다.
검문은 핑계일뿐이고 뇌물을 받기 위한 것인데 매번 차에서 내려 경찰과 악수를 하며 돈을 건네줘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주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1소모니(한화 200원)정도 준다고 해 차라리 톨게이트처럼 한 경찰에게 한 20소모니를 내고 쉬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니 다들 웃는다.
두샨베 도시 밖으로 나오니 드디어 내가 원하던 자연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중앙아시아에 들어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타지키스탄의 식당은 뷔페처럼 접시에 원하는 음식을 담고 음식의 종류에 따라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물가가 저렴하니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된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는데 구조가 많이 이상했다.
큰 일을 치루려면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게끔 화장실을 만들어 놨는데 여행하며 얼굴에 철판은 많이 깔았기에 아무렇지 않은듯이 거사를 치뤘다.
밥을 먹었으니 뇌물을 줄 차례다.
난 순수한 사람이 뇌물이 뭔지 모르겠는데 먹으면 맛있는 건가 보다.
사진에서 본 파미르 고원의 아름다운 산들과 그 사이에 난 길들이 정말 아름다워서 꼭 중앙아시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 도로 위에 있다.
두샨베에서 호로그까지 가는 길은 파미르 지역이 아니지만 파미르 퍼밋이 없는 사람은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다고 한다.
만약 파미르 퍼밋을 발급받지 못했다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발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정보도 들었는데 경제가 안 좋다보니 뇌물이 횡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달리던 우리의 붕붕이의 바퀴에 펑크가 났다.
교체용 타이어가 있기에 그 자리에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다시 달린다.
이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펑크가 안나면 그 게 이상할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다른 지프들과 만났는데 여행자들은 보이지 않고 다들 지역 주민들이었다.
보통 두샨베에서 호로그까지 7명이 지프에 탑승하고 1인당 300소모니(한화 60,000원)를 내는데 우리는 5명이서 지프를 빌렸기에 1인당 400소모니(한화 80,000원)을 냈다.
타지키스탄의 바로 옆은 아프가니스탄인데 눈 앞에 보이는 다리만 건너가면 된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프가니스탄 여행이 금지되어 있으니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야한다.
염소들이 길을 막아도 그저 웃으며 기다린다.
궁전처럼 보이는 곳은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별장인데 밤에는 조명도 들어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렇게 생긴 별장이 전국 곳곳에 있다고 한다.
길이 머니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하고 방을 잡았다.
마을에 식당이 하나밖에 없는데 영업시간이 끝나가고 있어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중앙아시아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기에 술을 마시면 실례가 될 수도 있어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조용히 마시면 괜찮다고 해 숙소에서 조촐한 맥주 파티를 열었다.
두샨베에서 대낮부터 맥주를 찾던 내 모습이 인상깊었는지 나에게 자꾸 술을 권하길래 넙죽넙죽 받아마시며 너희들도 이란에 갔다오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푹 자고 일어나니 날이 밝았다.
방값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 기다리니 달걀과 소시지가 나왔다.
이것만 먹어서는 배가 부르지 않으니 열심히 빵을 먹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계곡을 보는 것 같아 닭백숙이 먹고 싶어졌다.
지프가 준비되는 동안 마을 한바퀴를 돌았는데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중앙아시아가 자꾸만 기대된다.
내가 계속해서 창문밖으로 사진을 찍으니 애들이 웃으며 그렇게 좋냐고 묻는다.
거의 2년 전, 여행을 떠나던 때부터 파미르 고원을 꼭 와보고 싶었다고 말을 하니 실제로 온 것을 축하한다고 한다.
비포장도로이기에 반대편에서 차가 지나가면 재빠르게 창문을 닫아야한다.
두샨베에서 호로그까지는 16~20시간 정도 걸리기에 보통 야간에 이동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밤에 왔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못봤을테니 1인당 100소모니씩 더 내고라도 지프를 빌리기 참 잘한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도로를 가로등도 없이 밤에 지나간다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았다.
화물을 싣고 오는 트럭이 가끔씩 보였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오는 트럭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옛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곳을 다시 경제권 안에 두려고 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는 중국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잠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스니커즈를 팔길래 다같이 하나씩 사먹었다.
이런 도로를 어떻게 운전하는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지프는 계속 달리고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됐다.
이번엔 염소 고기를 시켜봤는데 역시나 맛있다.
중앙아시아의 음식이 나랑 잘 맞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식당 앞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아름다워 사진을 잘 찍어보고 싶었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밥을 먹었으니 이제 또 달릴 시간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계속 보면 질릴만 하지만 오랜 시간 기대했던 풍경이라 그런지 봐도봐도 아름답다.
자전거 여행자를 보니 자전거로 겨울의 파미르 고원을 넘은 제민이가 떠오른다.
만약 내가 다치지 않았었더라면 과연 어디까지 갔었을까 궁금해진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기다리는데 아까 본 자전거 여행자가 떠오르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과거는 추억으로 남겨두고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현재를 즐겨야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단이 바뀌었을 뿐 내 꿈이던 세계일주는 변하지 않았고 난 그 꿈을 이루고 있으니 부러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다른 차에 가보니 정말 귀여운 아기가 있어 잠시 놀다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아기가 귀여워지면 결혼할 때가 된 것이라던데 난 10년 전부터 아이들이 귀여웠는데 결혼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나에겐 나를 품어주는 자연이 있으니 괜찮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호로그에 거의 다 도착했다며 가기 전에 신기한 물을 마시고 가자고 한다.
철분이 많이 함유된 물이었는데 영양분이 부족한 내 몸을 생각해 여러 잔 마셨다.
드디어 1박 2일이 걸려 호로그에 도착했다.
미리 알아두었던 숙소에 짐을 다 내리고 남은 비용을 정산하려고 하니 갑자기 기사 아저씨의 말이 바뀐다.
즐겁게 여기까지 와서 돈을 더 달라는 말에 화가 났지만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좋게 말로 해결했다.
호로그에 온 것을 기념하며 오늘도 맥주와 함께 밥을 먹는다.
폴과 안토니도 술을 좋아해 같이 먹으니 술이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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