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시는 펑크를 내지 않겠다고 말을 했었는데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저번주에 다시 펑크를 내버렸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여행기도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용두사미처럼 끝이 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버터에서 기름기가 많이 느껴지는데 그마저도 맛있게 느껴진다.
역시 입맛이 저렴하니 웬만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행복하게 먹을 수 있다.
열심히 빵을 먹고 있는데 타락죽 같은 것이 나온다.
밥이 나올거라 생각도 안 했는데 맛있는 죽이 나오니 기분이 좋아진다.
호로그에서 산 신발을 이제야 꺼낸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등산을 몇 번은 할 것 같아 신발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었다.
원래 신고 다니던 샌달을 신고 산을 올라갈 순 없겠고 트래킹화를 신고 올라가자니 많이 힘들 것 같아 고민하다 중고 신발을 사기로 했다.
호로그에 시장을 뒤져 세컨 핸드샵을 찾아 신발을 고르는데 내 발에 맞으면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깎고 깎아 40소모니(한화 9,000원)에 샀다.
일행들에게 신발을 자랑했더니 등산화와 워커로 유명한 울버린에서 나온 신발인데 잘 골라왔다며 축하해줬었다.
새 신발을 신었으니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마을에 나있는 돌담길을 통과해서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등산을 할 때는 제일 마지막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늙어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아직은 체력이 괜찮아 사진을 찍으면서도 잘 따라갈 수 있다.
바위도 많고 경사도 심해 오르기가 힘이 든다.
바위에 글과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과거에 그려진 암각화인지 동네 꼬마들의 장난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림들이 신기해 우리끼리 이야기를 상상하며 계속 올라간다.
살짝 힘이 들지만 하늘이 아름다우니 괜찮다.
하늘에 큰 새가 날아다니길래 독수리냐고 물어보니 랄프가 벌쳐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벌쳐(Vulture)나 이글(Eagle) 모두 독수리라는 뜻인데 벌쳐는 동물의 시체를 먹는 종이고 이글은 직접 사냥을 해 먹는 종이라고 한다.
산은 그냥 오르고 오르다보면 어느샌가 올라와 있어 좋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가면 산맥이 잘 보일 것 같아 저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길을 찾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보니 봉우리 사이에는 꽤 깊은 절벽이 있었다.
절벽을 건너는 것은 너무 무모해 보였기에 다른 길을 찾는데 우리와 좀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려가서 반대편 산기슭으로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늦은 것 같아 우리도 저 사람들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높은 경사의 황무지 길을 올라가다보니 호빗-뜻밖의 여정의 OST가 떠오른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영화를 봤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특히 아르켄스톤을 찾아 산맥을 타고 넘어갈 때 나온 이 OST는 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와닿았었는데 산을 오르다보니 영화 속의 장면과 내가 있는 풍경이 오버랩 되며 머리속에 호빗의 OST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산 길을 트래킹화나 샌달을 신고 올라왔더라면 큰 일 날뻔 했다.
여행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준비성과 생존력은 증가하는 것 같다.
올라가다보니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인 것 같은데 정말 인간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대단하더라도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내가 꿈꾸던 파미르 고원에 자전거를 타고 오지는 못했지만 배낭여행을 왔기에 이런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엔 하나의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길을 따라 갈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볼지 이야기를 해봤는데 만장일치로 더 올라가보기로 결정했다.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지만 다들 통하는 부분이 많아 참 즐겁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길래 카메라를 드니 순식간에 포즈를 취한다.
나도 빠질 수 없으니 내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경사가 가팔라도 풍경이 아름다우니 계속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다.
아름다워도 너무 아름답다.
물이 흐르는 도랑이 보이길래 이번엔 길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뒤로 산과 사랑에 빠졌고 그 뒤로 많은 자연풍경을 봤지만 파미르 산맥처럼 웅장하면서 날카로운 기세는 처음 느껴본다.
만약 어제 지프 기사와 싸워 오늘 등산을 하지 않고 그냥 바로 이동했다면 이런 멋진 모습을 못봤을 것이라 생각하니 돈을 더 주고서라도 하루를 더 쉬기를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호빗 속의 장면이 떠오른다.
혹시 여기에 호빗 영화를 본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 하이디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며 대답을 한다.
자신도 산을 오르면서 호빗의 OST를 생각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맞냐고 물어본다.
내가 대답 대신 휴대폰에 들어있는 OST를 트니 정말 듣고 싶었다고 말을 한다.
빨리 갈 필요가 없으니 쉬엄쉬엄 계속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걷는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나올테니 그 끝까지 걸어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다보니 분기점이 나오길래 아쉽지만 그만 가기로 했다.
마음같아서는 더 가보고 싶지만 산에서는 해도 빨리지고 체력도 생각해야하니 어쩔 수 없다.
랄프의 시계는 고도도 표시된다는데 정확하지 않아 300m 정도 더해야한다고 한다.
안나푸르나에서는 해발 4000여 m에 있는 ABC에 가기 위해 정말 많이 걸었는데 파미르에서는 지프를 타고 조금만 산을 오르면 금새 해발 3800m에 오를 수 있다.
높은 곳에서는 역시 뭔가를 먹어줘야한다.
예전에는 몸을 생각해 과일을 자주 먹었었는데 요즘은 잘 안 먹고 있는 것 같다.
내 몸은 내가 챙기는 것이니 앞으로는 과일도 자주 먹어줘야겠다.
남은 여행도 무사히 안전하게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나친다.
사진으로 봐도 웅장하고 멋있지만 실제로 봤을 때의 그 감정은 어떻게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파미르 고원도 멀리 보이는 설산처럼 눈으로 뒤덮인다는데 그 모습은 얼마나 멋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다.
이제는 내려갈 시간이다.
다들 체력을 많이 소모했으니 조금 힘들더라도 하산은 최단코스로 가로질러 내려가기로 했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을 겉핥기로만 즐기는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도 파미르 산맥에 있을 날은 많이 남아있으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달래며 산을 내려간다.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무작정 내려가다보니 위험한 지역도 몇번 마주치게 된다.
물론 너무 위험한 곳은 우회해야겠지만 이번에는 암벽만 조금 조심히 내려가면 편하게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들 조심히 내려가보기로 했다.
안전장치가 없어 무서웠지만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내려가니 다들 무사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지친 발걸음으로 힘들게 내려오다보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전압기가 보인다.
전압기를 발견하자마자 드디어 문명세계로 돌아왔다고 외치니 다들 웃는다.
고생을 했으니 상을 줘야한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로 걸어가는데 슈퍼같은 곳이 보이길래 들어가 혹시 맥주가 있냐고 물어보니 부모님 대신 가게를 보고 있던 아이가 웃으며 맥주를 꺼내준다.
저녁에 함께 마시기로 하고 5캔을 샀더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하며 많은 종류의 문을 봤지만 이렇게 획기적이고 감성이 넘치는 문은 처음 봤다.
어떻게 자동차 문을 이용할 생각을 했는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 터벅터벅 걸어가니 하이디가 계속 응원을 해준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하니 돌아가서 마실 맥주를 생각하며 걸으라고 말을 한다.
사람들이 나를 너무 쉽게 파악하는 것 같다고 말을 하니 맥주를 찾았을 때의 나의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었다고 한다.
겨우 숙소에 돌아와 설정샷을 찍는다.
힘들어 죽겠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사진을 찍어주는 앤서니가 자꾸 웃어 나도 미소를 지어버렸다.
에피타이저로 맥주를 마시고 본 요리인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파미르에 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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