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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네팔-Nepal

배낭메고 세계일주 - 031. 순백의 세계, 안나푸르나.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산에서의 날씨는 매 시간마다 바뀐다더니 어제의 눈보라는 새하얀 눈만 남기고 사라졌다. 

진형씨의 몸상태가 괜찮다길래 다시한번 ABC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방법은 리필이 되는 달밧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거다.
고기도 없는 묽은 카레가 뭐가 맛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난 달밧이 맛있다.
향신료 덕분인지 먹어도 안질리고 밥과 비벼먹는 그 맛은 지금도 또 먹고싶은 맛이다. 

ABC로 가려면 이쪽으로 가세요.
눈이 왔을 때를 대비해 표지판을 세워놓은 것 같은데 귀엽다. 

하지만 표지판이 있어도 눈이 쌓이니 어디가 길인지 모르겠다.

혼자왔다면 다른 사람을 기다렸다가 올라가야 하겠지만 포터도 있고 일행도 있으니 든든하다.

물론 내 신발은 전혀 든든하지 않다.

지금까지 멀리서만 보이던 그 설산들이 내 눈앞에 있다.

자신이 꿈꿔오던 모습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의 기분은 어떤 말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TV에서 새하얀 눈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저 아름다운 곳에 언젠가는 가볼 것이라 생각했던 그 산에 내가 올라와 있다.

맑은 하늘에 새하얀 눈으로 뒤덮힌 산이라 엄청 추울 것 같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MBC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추워서 벌벌 떨며 패딩을 껴입었는데 해가 비추자 따뜻해지 시작해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해서 아름답다는 말을 하며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별로 없다.
카메라의 화각도 좁고 실력도 부족해 내가 느낀 감동의 100분의 1만큼도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뷰파인더를 보려니 감으로 노출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진 실력이 부족한 내 탓이니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산을 많이 타본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와서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ABC코스는 지리산같고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는 설악산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설악산이면 어떻고 지리산이면 어떠리. 그저 아름다운 히말라야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 엄마 소원이 아들이랑 지리산종주 해보기라 2011년에 지리산을 가려다 설악산을 갔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더 늦기전에 지리산을 한번 가야겠다.

어제 MBC에서 자면서 계획했던 일정이 살짝 밀렸지만 오히려 이렇게 맑은 하늘아래 ABC를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언젠가는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최상의 날씨에 ABC를 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 사진이 그 사진처럼 느껴진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설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쉼없이 셔터를 누른 것은 맞지만 잘 보면 앞에 있던 사진에서 보이던 산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산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을 빼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꾸 아름답다는 말만 하는 내가 바보같을테지만 이날 산을 오르면서 다른 말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 생각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 앞에 서니 내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광각이 없어 파노라마를 몇장 찍었는데 필터를 뺀다는 것을 까먹었다.

역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하고 사진을 망친다.

멀리서만 보이던 마차푸차르가 눈앞에 있다.
올라오며 방향이 바뀌었는지 물고기 꼬리모양이 잘 안 보인다. 

드디어 ABC가 보인다.
가까워 보이지만 ABC가 보이는 시점부터 한 45분은 더 가야 ABC에 도착할 수 있다.
주변이 온통 새하얗다 보니 거리감각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 

마마님들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우리를 ABC까지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준 포터 기아누도 수고하셨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름이 어려워 키아누 리브스를 생각하며 이름을 외웠다.

새하얗다.

드디어 ABC의 눈을 내 손으로 만졌다.

만지기만 한게 아니라 먹기도 했다.

아무 곳의 눈을 퍼먹으려고 하니 기아누가 길 옆에 있는 눈은 누가 오줌을 눴을지도 모르니 퍼먹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진짜 높은 곳에 왔으니 셀카 한장.

수고했다. 최용민.

ABC 롯지 안에 들어가면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증명사진과 이야기를 써놨다.

날짜들을 보니 1달정도마다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 같았지만 기념이니 나도 한장 붙였다.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 글을 쓴 것을 발견했다.

이웃사촌님 반갑습니다.

박영석 대장은 세계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신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다.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뒤 히말라야 14대 거봉에 코리안루트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고 안나푸르나를 오르시다 2011년 10월,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영원히 안나푸르나의 품에 묻히셨다.

한국인에게만 기억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ABC를 오르면서 만난 몇몇 네팔사람들과 포터들도 미스터 박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ABC의 뒤편에 박영석 대장을 기리는 탑이 있다고 해 찾아갔지만 눈이 많이 쌓여 중간에 되돌아 왔다.

박영석, 강기석, 신동민. 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담으로 예전에 박영석 대장의 인터뷰를 봤었는데 박영석 대장이 북극점에 도착했을 때 엄청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그 때 운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기쁘거나 감격스러워서 운 것이 아니라 북극점에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북받쳤다고 한다.
다시한번 故 박영석 대장의 도전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내가 ABC를 오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신발이다.

마마님들은 한국에서 네팔로만 여행 온 거라 제대로 된 등산화들을 챙겨왔는데 아무리 눈 속을 헤치고 다녀도 물이 안 샌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내가 현지에서 구한 이름만 노스페이스인 신발은 눈을 밟기만 하면 물이 줄줄 들어온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부러웠다.

웅장한 히말라야를 담기에는 파노라마 기능도 부족하다.

가장 좋은 것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거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도 같이 뒹굴고 싶었지만 발가락이 시린 걸로 만족했다.

원래 목표였던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또다시 꺾일 뻔 했던 마음을 잘 추슬렀다.

다시 한번 수고했다. 최용민.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한번만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

그러니 기다려다오.

언제라고 확실히 정하면 성격상 꼭 그 때 와야하니 날짜는 정하지 못하겠지만, 꼭 다시 오겠다.

그때는 체력도 키우고 확실히 준비해서 쏘롱라를 넘으러 다시 오마.

한라산 : 1,950m

설악산 대청봉 : 1,708m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 4,130m

쏘롱라 : 5,416m

해발 4,130m라고 하니 있어 보이지만 사실 ABC는 도전만 한다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코스다.

그래서 다음에는 그보다 높고 2주 정도 걸리는 쏘롱라를 넘겠다고 다짐을 하며 내려온다.
항상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어차피 ABC에서 바로 내려올 거라 MBC에 짐을 맡기고 최소한의 짐만 들고 ABC를 오르는데 기아누가 비닐을 챙겼었다.

설마 썰매를 탈거냐고 물어보니 해맑게 그렇다고 했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정말로 썰매를 탔다.

근데 눈사람을 만들 때 봤듯이 뭉쳐지는 눈이 아니어서 썰매도 잘 안 타진다.

잘 미끄러졌다면 재미있었을지 무서웠을지 모르겠는데 한가지 좋은 것은 앞으로 남은 것은 하산뿐이니 신이 난다.

나도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빠지는 성격은 아닌데 이 때는 발이 너무 시려서 썰매를 붙잡고 뒹굴거릴 정신이 아니었다.

MBC에 내려와 다시 한번 빅사이즈의 볶음밥을 먹었다.

근데 여행기를 쓰며 내가 대충 찍은 음식사진을 다시 봐도 배가 고파지는데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음식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건 정말 위장에 대한 테러가 맞는 것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디에 앉았었는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순백의 세계를 뒤로 하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산을 오를 때는 내가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확인하며 힘을 낸다고 했는데 안나푸르나에서의 하산길에서는 설산이 아쉬워 자꾸만 뒤를 보며 내려오게 된다.

여행을 얼마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취미생활을 뭐로 할까 고민했었다.

자전거는 손가락때문에 포기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이니 여행과 캠핑을 같이 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안나푸르나가 새로운 답을 줬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등산이라는 답을 줬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왜 산을 오르냐고 물으면 당연히 산이 좋아서 오른다고 할 것이다.

나는 산에 올랐더니 산이 좋아졌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도 포터들은 짐을 나른다.

짐을 나르는 포터를 본다면 산속에서 먹는 밥이 비싸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항상 불평하는데 시간을 쓰고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역시 생각하기는 쉽고 말하기도 쉬운데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역시 피는 못 속이나보다.

우리 엄마도 젊어서 산을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데 아들도 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무이와 산을 자주 가야겠다. 

하지만 취미는 취미로 끝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안그러면 '안녕하세요'에 나가야 할 테니까.

그래서 여행할 때는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신 나게 돌아다니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멋있는 일상생활을 할 거다.
공부도 열심히 할거고 결혼도 해서 알콩달콩하게 살거다. 

누누이 말하지만 꿈이었던 세계일주를 끝마치고 나면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딸내미가 제1목표다.
근데 과연 그게 쉬울지는 잘 모르겠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아침에는 맑았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진다.

그래도 우리가 앞에 펼쳐진 하산길은 맑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저녁에 MBC에서 본 야경과 오늘 아침에 오른 ABC의 맑은 모습은 산신령님이 도와주신 것 같다.

눈사태가 일어난 지역을 다시 지나가는데 여전히 무섭다.

기아누는 이번에도 눈사태~ 눈사태~ 한다.

안나푸르나씨.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정도로 아름다웠어요.

고마웠고 다음에 다시 올게요.

이제 눈으로 덮인 길은 사라지고 다시 흙길이 나온다.

앞으로 발이 시릴 일이 없다니 즐겁지만, 설산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아침에 ABC에 올라갔다 왔기에 많이 내려가지 못했다.

MBC에 올라가기 전에 묵었던 히말라야에 짐을 푼다.

그러나저러나 오늘 저녁도 역시 리필이 되는 달밧이다.

잠을 자기전에 마마님의 용안에 감자팩을 했다.

ABC에 올라갈 때 쌓인 눈에 반사된 태양빛이 강해 얼굴이 많이 달아오르셨다.

얼굴에 감자팩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식당에 가서 감자를 좀 얻어왔다.


여기서 마마님의 정체를 공개하자면 사실 마마님은 연예인이다.

KBS에서 방영된 탑밴드2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펠라스(FELLAS)에서 키보드를 맡고 계신다.

내가 인용하는 노래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도 평소에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데 밴드를 하는 사람과 같이 산을 오르다니 정말 신기했었다.

좋아하는 밴드들 이야기도 듣고 음악 하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번편을 보신 여러분 펠라스 음악 들어보세요. 두번들으세요.

그리고 마음에 드시면 음원 하나 구입해주세요.


7월 5일 오늘, 신곡 '사랑가'를 발매하고 7월 12일에는 '사랑가' 쇼케이스가 클럽 오뙤르에서 진행됩니다.
http://cafe.naver.com/clubauteur/8445
예매하시면 사랑가 사인 CD도 준다고 합니다.



<오늘의 생각>

취미를 등산으로 하고 라운딩을 하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