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려면 전날 아침을 주문 해놓는게 좋을 것 같아 어제 저녁에 볶음밥을 주문했었다.
아침을 일찍 준비해달라고 부탁하기 미안해 가장 빨리 나온다는 볶음밥을 시켰는데도 내가 원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나왔다.
방 값도 안냈으니 고마워서 차까지 한잔 시켜 배를 든든하게 하고 출발한다.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다음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다른 트레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제 나보다 한 칸씩 빨리 출발한 사람들일텐데 대부분의 속도는 비슷할테니 앞으로 자주 만나겠군요. 잘 부탁 드립니다.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승마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해보고 싶은게 참 많아지는데 예전에 동생님과 한 대화가 떠오른다.
동생님께서 자기는 딱히 해보고 싶은게 없다고 나보고 왜이렇게 하고 싶은게 많으며 그것들이 어디서 떠오르냐고 물었었다.
난 그냥 길가다가 뭔가를 보면 생각난다고 대답하며 다른 사람은 안 그러냐고 물어봤었다.
아마 내가 특이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열등하거나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앞만 보며 달리도록 교육받았기에 여유를 가지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유는 억지로 가지려고 한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에 여행을 떠난 이유도 있는데 누가 잘났고 못났는지 따지지말고 다같이 열심히 재미있고 행복하게 삽시다.
마지막으로 내 몫까지 열공하고 있는 동생님아. 힘내세요.
그리고 말을 지나갈 때는 뒷발길 질을 할까 봐 무서워서 멀리 돌아갔다.
ABC코스는 중간에 갈림길이 몇군데 있다지만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는 안나푸르나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이기에 딱히 갈림길이 없다.
갈림길에서는 무조건 마낭(manang)만 찾아가면 된다.
우리나라 산에서도 리본으로 표식을 해놓듯이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길을 표시해 놓는다.
인간은 참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런 산 속에 집을 짓고 살며 산을 깎아 밭을 만드는 모습은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이긴 하지만 다르게 보면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니 정말 대단하다.
산에서 짐을 운송해주는 사람을 포터라고 부른다.
이 포터들을 처음으로 봤는데 큰 배낭 2개를 포개서 메고 다닌다.
포터들의 가방에는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과 각종 기호품들이 들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트레킹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런 길을 찾아내고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을까.
정말 인간은 대단하다.
염소들이 떼로 달려들기에 무서워서 피했다.
책에서 낭떠러지 쪽으로 피하면 밀려서 떨어질수도 있으니 절벽쪽으로 붙으라고 읽었던 기억이 나 얼른 절벽에 붙었다.
참 겁이 많긴 많다.
중간에 쉬는데 가게에서 스프라이트가 날 유혹했다.
난 까만 콜라는 맛이 없어서 싫다. 내 마음처럼 투명한 사이다가 좋다.
위로 올라가면 비싸질테니 밑에서 먹어두자는 생각에 한병 샀는데 시내보다 3배정도 비싼 가격이었다.
신기한 식물도 있다.속에 동굴이 있었다면 들어가 볼까 말까 고민했을 것 같다.
겁은 많은데 호기심도 많아서 걱정이다.
앞에 주민들이 걸어가는데 속도가 엄청 빠르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난 나의 페이스대로 걸어가다보니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거대한 자연앞에 서면 그 대단한 인간도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하지만 항상 그런 거대한 자연옆에 인간은 살고 있다.
자연앞의 인간은 별 것 아니지만 끊임없이 발전하고 생존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살아가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지만 우린 다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기에 항상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른다.
가난한 여행을 하는 나에게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이다.
때문에 항상 more와 big size를 입에 달고 산다.
근데 히말라야에서 내 여행 최고의 BIG size를 만났다.
사진으로 봐도 엄청 커보이지만 실제로는 약 3인분의 크기였다.
밥이 비싸길래 초면을 시키면서 양을 적게 줄까봐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주인 아줌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초면을 억지로 겨우겨우 다 먹었다.
마르샹디강의 물이 참 이쁘게 흘러간다.
저런 물 색깔은 제주도에서만 본 것 같은데 가뜩이나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환상적이다.
투명한 물보다는 하늘색 빛깔이 멤도는 강물이 참 아름답다.
이런 마르샹디강을 벗삼아 계속해서 올라간다.
계속해서 걸어가도 끝이 없다.
그래도 첫날이니 힘들지는 않다.
어서 빨리 설산을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길을 걸어가는데 표지판이 보인다.웨이 투 뷰티풀. 옛길이니 당연히 더 힘들테지만 아름답다니 무조건 옛길로 간다.
작은 냇물도 흐르고 다리도 건너간다.
산을 오를 때는 앞밖에 안보이고 앞은 항상 힘들게만 보인다.
그럴 때는 잠시 뒤를 돌아 내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 다시 힘이 난다.
헥헥거리면서도 어느 사이에 내가 이만큼 올라왔다는 것이 보이니 대견하다.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별로 아름답지는 않고 힘은 들었다.
그래도 트레킹 코스 중간 중간에 힘이 들만한 지점마다 마을이 있어 언제든지 쉴 수 있다.
계속해서 마르샹디강을 따라 올라가는데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색깔인지 신기하다. 문제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마르샹디강을 지켜만 보지 않고 건너도 가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중이라지만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반대편 도로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는지 포크레인이 열심히 느린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길래 나처럼 걸어다니지 왜 지프를 타서 몇 시간을 기약없이 기다리고 있니.
보는 곳마다 기암괴석이라 자꾸만 사진을 찍는다.18mm로 아무리 찍어봐도 내 눈으로 본 웅장한 모습은 안 나온다.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어서 만나고 싶다.
한국에서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눈내린 모습을 TV에서 볼 때마다 가보고 싶었다.
자전거 여행에서는 네팔을 안거칠 것이었기에 배낭여행으로 바꾸면서 내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 중 하나가 안나푸르나였다.
그것도 새하얀 눈이 있는 안나푸르나를 만나고 싶어서 겨울이 끝나기 전에 네팔로 들어왔다.
그 곳을 드디어 만나러 간다.
오늘 묵을 곳은 딸이라는 마을인데 약 10시간정도를 걸었다.
마을로 가려면 높은 동산을 하나 넘어야하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다섯 걸음 움직이고 한번 쉬고, 세 걸음 움직이고 한번 쉬다보니 결국엔 입구에 도착했다.
앞에는 흰 모래사장이 있고 옆에는 마르샹디강이 있으며 뒤에는 설산이 있는 딸 마을은 아름답다는 말을 언제 써야하는지 알려줬다.
이번에도 몇군데 숙소를 돈 결과 저녁과 아침을 먹는 조건으로 공짜로 자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에 먹은 초면이 체했는지 속이 메스꺼워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방을 무료로 잡았으니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차마 달밧은 못먹겠어서 모모와 콜라를 같이 시켜먹었다.
속이 계속 더부룩해서 뜨거운 물을 한잔 시켜 포카라에서 사간 민트티를 만들어 먹었더니 조금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원래는 상비약으로 꽤 많은 종류의 약을 들고다니고 심지어 알콜거즈와 화상약까지 들고 다니는데 산에서 쓸일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다른 것은 다챙기고 소화제를 안챙겼었다.
역시 사람은 한치 앞을 못보는 동물이다.
속이 안좋은 것은 안좋은 것이고 오늘도 수고한 내 다리를 위해 파스를 뿌린다.
산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배운건데 자기전에 파스를 뿌려주면 근육통 예방에 좋다고 한다.
<오늘의 생각>
딸을 구경하러 가는데 힘들어 딸도 못 낳고 줄을뻔 했는데 딸이 엄청 아름다워 딸을 낳고 싶어졌다
아침이면 괜찮아질 것 같던 몸상태가 오히려 더 안좋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시켜놓은 카레를 취소하고 결국 갈릭스프를 시켰다.
방도 공짜로 잤으면서 싼 음식을 시키려니 미안해 죽을 것 같았지만 여기서 억지로 밥을 먹었다가는 진짜로 죽을 것 같았다.
속이 안좋아 스프라이트를 계속 먹고 억지로 트림을 하니 좀 살 것 같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컨디션은 안좋지만 마르샹디강은 참 좋다.
근데 저 멀리 구름이 심상치가 않다.
오늘 저 구름을 뚫고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
이제 다리를 건너는 것도 어느정도 적응이 됐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생각도 못했던 고소공포증 극복이 되고 있다.
속은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 차마 음식은 못먹겠어서 포카라에서 유일하게 사간 비상식량인 에너지바를 먹었다.
올라오기 전에는 사탕도 한봉지 살까 고민했었는데 안사기를 참 잘했다.
고수분께서 내 가방을 들어보고 무겁다고 하셨던 것이 이해가 된다.
몸상태가 안 좋으니 포터를 고용해서 오르는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설상가상으로 길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몇 명의 유럽애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말을 걸어보니 윗쪽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3일정도 기다리다가 내려온다며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여기도 눈이 왔었나보다.
잘 피해서 걸어가다가 제대로 빠졌다.
다행히 진흙이라 물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신발이 젖어버렸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에는 물을 정수해서 저렴하게 파는 지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사람들이 페트병에 담긴 물을 사마시고 잘 버리면 될텐데 아무곳에나 버리니 환경이 오염되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립시다.
아침에 본 구름이 성을 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고어텍스 자켓덕분에 상체는 괜찮았지만 바지와 신발, 장갑이 다 젖어버렸다.
특히 신발은 길에 물이 넘쳐 물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가는 곳들이 몇번 나와 완전히 젖었다.
중간 마을인 띠망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하며 가장 급한 젖은 신발을 불가에 말렸다.
내 앞에 가던 프랑스 커플을 만났는데 준비가 엄청 철저했다, 특히 완벽한 방수가 되는 신발이 제일 부러웠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달라했더니 초점도 안맞고 흔들리게 찍어 내 영혼이 붕괴되고 있음을 잘 표현해줬다.구름형아 비 좀 그만 내려주세요.
근데 구름형아는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비를 맞으면서 움직여야지 별 수 있나.
오늘의 목적지인 차메에 다가갈수록 비가 눈으로 바뀐다.
내 따뜻했던 발과 손도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장갑을 껴도 소용없고 겨드랑이에 비벼도 소용없다.
이미 장갑 자체가 물을 제대로 먹어버려 손이 얼어가는 것 같았다.
차메를 약 30분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눈보라를 뚫고 가다가 내려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위의 상황이 궁금해 말을 걸어보니 한국사람이었는데 나보고 더이상 가는건 무모하다고 내려가라고 하신다.
차메 위로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지금 내 상황과 장비로는 못 올라간다며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하신다.
그런데 난 이미 중국에서 한번 포기를 했고 다시 포기한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쉽게 결정을 못 내렸다.
고민을 하다가 비가 내리는 것도 못막아주는 장비로 눈을 헤치고 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결정을 내리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생각>
내가 히말라야를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올라올 때 내가 무시했던 지프를 타고 베시사하르까지 내려왔다.
역시 사람은 한치 앞을 못본다.
우선은 밥을 먹고 같이 내려온 아저씨는 카트만두로, 나는 다시 포카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쉽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날 체해서 컨디션이 안좋았기에 제대로 된 결정을 못 내린 것이 아닌가.
내 장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아닌가.
이런식으로 어려운 것이 나올 때마다 포기를 한다면 이 여행을 계속 해나가도 되는 것인가.
난 결국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가.
끝없이 자책을 하다 보니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에도 비가 심하게 내리는데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그냥 비를 맞으며 1시간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산촌다람쥐로 가 복귀인사를 했다.
아마 위로를 듣고 싶어서 갔는지도 모른다.
밥을 시키니 털어버리라며 술을 주신다.
내가 원했던 위로를 받았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우선은 몸을 재정비하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기로 했다.
안좋은 몸상태로는 안좋은 생각만 하게되니 우선은 쉬기로 했다.
정말 씁쓸하고 힘든 밤이다.
한번 굽히면 두번 굽히기 쉽다.
그래서 구부러지기 전에 바로 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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