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 동안 한편, 한편 정리해온 세계일주 여행기가
175번 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그 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 있을 때는 장갑을 낄 정도로 춥진 않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니 날씨가 확 바뀌었다.
날씨가 추우니 제대로 된 러시아 여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다시 여객선 터미널로 찾아가 내일 배가 뜰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으니 내일 출항이 결정됐다고 한다.
뱃삯은 달러와 루블 중 골라서 낼 수 있는데 내가 여행할 당시에는 러시아의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던 때라 학생요금에 루블화를 이용했더니 약 40% 정도 저렴한 가격에 배를 탈 수있었다.
도로는 제설작업을 제대로 하는데 인도는 제설작업을 잘 하지 않아 빙판길이 됐다.
집에 돌아가기 전 날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다치면 큰일이니 조심조심 걷는다.
블라디보스톡을 구경하기 전에 우선 밥을 먹기로 했다.
매번 새로운 메뉴를 원하는만큼 적당한 가격에 먹을 수 있으니 계속 한 식당만 오게된다.
디저트로 카카오 75%짜리 다크 초콜릿을 샀다.
초콜릿의 크기가 크기에 속에 금박으로 포장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큰 포장을 뜯으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형아들은 이 정도 초콜릿은 그냥 한번에 드시나보다.
우리나라의 화장품 업체들의 외국 진출이 활발하다던데 여행을 다녀보니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러시아어로 블라디보스토크의 뜻은 '동방을 지배하라'라고 한다.
극지방에 위치한 러시아는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했고 그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항구도시가 블라디보스토크라고 한다.
물론 항구가 얼지 않을 뿐이지 바닷 바람이 불어 정말 추웠다.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다.
걷다보니 러시아 정교회도 보인다.
종교 그 자체는 분명히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종교적 이념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로수가 정말 아름답게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해질 녘에 걸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시장이 보이길래 들어가봤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김밥, 김밥'하고 외친다.
설마 하고 아줌마를 쳐다보니 이번에는 '김치'를 외친다.
신기해서 다가가보니 김밥과 김치 등 여러가지 반찬들을 팔고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김밥을 보다니 정말 신기했다.
러시아 아줌마가 싼 김밥은 무슨 맛일지 궁금해 한 줄 사봤는데 안에 생선이 들어있는데 비린맛은 나지 않고 회와 함께 김밥을 먹는 것 같아 맛있었다.
고려인들의 영향인 것 같은데 고기나 햄 대신 생선을 넣은게 정말 신기하면서 재밌었다.
이왕 김밥을 먹었으니 제대로 기분을 내기 위해 한국 음료수도 샀다.
통조림은 황도 통조림이 가장 맛있고 음료수는 봉봉과 코코팜이 가장 맛있다.
아직 내가 가기로 한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걷는다.
2시간 반 정도 걸은 결과 드디어 내가 찾던 곳에 도착했다.
이 3개의 돌 기둥처럼 보이는 것은 연해주 신한촌 기념비다.
일제강점기에 러시아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는 권업회, 대한광복군 정부 등이 있었고 많은 독립운동들이 계획됐었다고 한다.
3.1 독립운동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을 기리고 고려인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기념비를 과거 신한촌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나도 블라디보스톡에 와서야 이 기념비의 존재를 알았는데 직접 가보니 공원처럼 조성된 것이 아니라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안타깝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추우니 카페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이기로 했다.
여름이었다면 당연히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셨겠지만 블라디보스톡은 너무 추우니 초콜릿 음료를 시켰다.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하던 분이 500루블(한화 1만원)짜리 지폐를 주우셨다고 하시며 커피를 사주신다고 했었는데 알고보니 가짜돈이었다.
카페 직원이 웃으며 우리가 외국인이라 잘 모를 수도 있다며 진짜와 가짜를 비교해 보라고 하는데 두 개를 같이 놓고 비교해보니 가짜 돈은 확실히 티가 났다.
내가 묵은 호스텔은 다 좋은데 방에도 CCTV가 달려있었다.
CCTV가 있으면 생활하기 불편할 법도 하지만 어차피 남자만 쓰는 방이고 누가 볼 것도 아니니 그냥 편하게 지냈다.
저녁도 역시나 똑같은 식당에서 먹는다.
나도 언젠가는 맛집 투어를 다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은 아닌 것 같다.
여행하면서 홍시는 본 적이 별로 없는데 과일가게에 있길래 자두 몇 알과 함께 집어왔다.
홍시는 어느 나라에서 먹어도 달콤하다.
남아 있는 마지막 발포 비타민까지 맛있게 챙겨먹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신변정리를 제대로 해야한다.
꺠끗하게 씻고 나니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하지만 아직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강원도 도시 중의 하나인 동해 선착장의 위치가 궁금해 구글맵에 검색을 해보니 일본해로 나온다.
한국어로 검색했는데도 일본해(동해로도 알려져 있음)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다.
국제관계에서는 국력이 약한 것이 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늘은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내가 세계일주를 하며 외국 땅에 발을 붙이고 먹는 마지막 식사이니 푸짐하게 먹고 디저트까지 시켰다.
조금은 마음이 심란할만도 하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게 맛있게 밥을 먹는 것을 보니 난 타고난 여행체질인 것 같다.
티켓을 발권 받으니 설레는데 이 설렘은 집에 간다는 설렘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가기 위해 이동 수단을 끊어서 설레는 게 맞는 것 같다.
드디어 내가 한국에서 떠나며 정했던 마지막 교통수단인 블라디보스톡-동해 페리를 탄다.
여행의 구체적인 일정은 전혀 정하지 않고 떠났지만 마지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됐다.
역시 사람은 꿈을 꾸다보면 그걸 이루고 있다.
내가 끊은 자리는 이코노미석이기에 여러개의 벙커베드가 이어진 큰 방이다.
그래도 시트가 깔끔하고 침대도 안락해 기분이 좋다.
여객선이라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는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술집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근데 난 미남이 아니라 못 들어갈 것 같다.
블라디보스톡의 명물인 다리라고 하는데 웅장한 멋이 있었다.
자연이 정말 대단하지만 그 자연에 맞춰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도 대단하다.
배를 타니 해군에서 군생활 하던 것이 떠오르는데 군대 이야기를 하자면 한 두 페이지로 끝날 것이 아니니 내 마음속으로만 추억을 꺼내본다.
도대체 이 공룡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길래 배의 갑판에 있는지 모르겠다.
출항한 배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향해 떠난다.
<러시아 여행 경비>
여행일 16일 - 지출액 550달러 (약 60만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인스턴트 음식 위주로 생활해 지출이 별로 없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루블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여행을 하기에는 좋았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다 시계를 보니 해가 질 시간이라 밖으로 나왔다.
군복무할 때 저녁을 먹고 군함 위에서 바라보는 밤 바다가 정말 아름다웠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바다에서의 일몰이 참 좋다.
배에서 먹는 밥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배를 타기 전에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샀었다.
배 멀미가 있으면 밥을 못 먹어 빈속으로 있는 경우가 있는데 뱃속에 음식이 들어있어야 멀미를 덜 한다.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한국분께서 젊은 사람이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면 안 된다며 남는 식권을 주셨다.
어차피 일행에 멀미가 심한 사람들이 있어 식권을 다 못쓰니 걱정말고 먹으라며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사우나도 이용 가능해 들어가봤는데 시설이 꽤 깨끗하고 좋았다.
탕도 있었는데 배의 움직임에 따라 물에 파도가 생겨 잠시 있다 샤워만 하고 나왔다.
간 밤에 파도가 좀 거셌지만 군대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잘 자고 일어나 어제 받은 식권을 가지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반찬의 가짓 수는 많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먹는 김치와 밥 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다.
그 어떤 음식도 다 맛있게 먹는 나는 참 축복 받은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배가 계속 꿀렁거리길래 갑판으로 나와보니 눈이 살짝 쌓여있었다.
일행도 없어 배에서 떨어져도 알아차릴 사람이 없으니 조심조심 움직였다.
파도 치는 바다가 힘들기도 하지만 보고 있으면 참 좋다.
예전에는 물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물이 부른다는 소리를 무서운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군대에서 바다를 자주 보다보니 한번은 바다가 정말 아름답고 날 부르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더 조심해서 다녔었는데 망망대해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이렇게 해가 뜨거나 달이 뜨면 더 아름답다.
드디어 세관신고서를 작성한다.
다른 나라에 입국할 때는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방문 국가의 수를 일부러 한 두개만 썼었는데 우리나라에 돌아가는 것이니 그냥 제대로 써봤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드디어 783일 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 땅을 밟았지만 아직은 한국에 온 것이 실감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여행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나라를 가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돈을 찾는 일이다.
세종대왕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배에서 프랑스 커플을 만났는데 홍대로 간다길래 내가 서울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도 동해 여객선 터미널은 와본적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쉽게 버스터미널을 찾아갈 수 있었다.
역시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
운이 좋게도 10분 뒤에 떠나는 버스가 있었다.
머리를 길게 기른 동양인이 외국애들과 같이 다니니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뭘 먹을거냐 물어보니 신기한 음식이 많다고 말하길래 호두과자를 사서 몇개 나눠주니 정말 맛있어 한다.
다시 배를 타러 동해로 와야하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꼭 호두과자를 사 먹어야겠다고 하길래 몇개를 더 줬다.
역시 휴게소의 꽃은 이 호두과자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해 홍대로 가는 지하철까지 안내해주고 난 드디어 집으로 간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릴 에필로그 편으로
제 세계일주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내용이나 질문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에필로그에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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