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들렀다.
스페인어로 Fresa는 딸기를 뜻하는데 열대과일 맛에 딸기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재미있어 사봤다.
딸기맛이 났다면 정말 재미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여러과일 맛이 났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무리 체력과 노숙에 자신이 있다지만 이틀 연속으로 야간 버스를 탔더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터키에서 이스탄불 다음으로 유명한 괴레메다.
괴레메는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마을인데 암석에 지어진 집들과 벌룬투어가 유명하다.
내 몸의 세포들이 지금은 너무 피곤하니 빨리 밥을 먹고 잠을 재워달라고 한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한식당을 갈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다.
괜찮은 식당이 있나 찾아보는데 관광도시라 그런지 저렴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외곽으로 나가니 작은 식당이 하나 보인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아무거나 하나 시켰는데 얇은 전병 속에 고기와 치즈가 들어 있는 요리가 나왔다.
동유럽 지역에서 먹은 뷰렉이 떠오르는 맛이었는데 좀 더 담백한 맛이 났다.
서유럽에서 많이 보이던 Dia 슈퍼마켓이 괴레메에도 있다.
유럽여행을 시작하며 스페인에 있는 Dia에서 파스타 재료를 사서 저녁을 만들어 먹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터키에 와 있다.
밥을 먹었으니 후식을 마실 차례인데 오늘은 맥주를 참기로 했다.
터키의 맥주인 Efes가 내 입맛에 안 맞는 것도 있지만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오늘은 맥주대신 음료수를 마시기로 했다.
씻고 14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니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됐다.
괴레메의 호스텔도 아침이 제공되는데 역시나 정갈하게 나온다.
앞에서 말했듯이 괴뢰메는 암석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지은 곳으로 유명한데 내가 묵은 호스텔 역시 암석을 이용해 만든 집이었다.
터키도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 마당에만 나가도 엄청 더운데 방 안에 들어오면 에어컨이 없어도 서늘해 쾌적하다.
아침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다 밖으로 나왔다.
멀리 카파도키아 지역의 풍경이 보인다.
어제 갔던 식당이 마음에 들어 오늘 또 찾아갔다.
메뉴판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요리인지 모르겠으니 오늘도 주인 아저씨께 추천받은 요리를 시켰다.
고기가 들어간 콩 스프가 나왔는데 콩이 부드러워 빵과 함께 먹으니 꽤 맛있었다.
어릴 때는 콩을 먹기 싫어 물로 삼켰었는데 지금은 밥 대신 콩을 먹고 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문화인답게 차이 한 잔을 즐기는 여유를 보여줘야한다.
아무 음식이나 시켜놓고 잘 먹는 내가 신기한지 아저씨가 정말 맛있냐고 물어본다.
난 모든 음식이 정말 맛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보다.
잠도 푹 잤고 배도 부르니 이제 카파도키아를 즐기러 갈 시간이다.
태양은 뜨겁지만 즐겁게 걸어간다.
괴레메에는 계곡별로 트래킹 코스가 나뉘어져 있는데 오늘은 가장 유명한 로즈 밸리를 가보기로 했다.
트래킹 지도는 따로 없는 대신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이런 표식을 따라가면 된다.
카파도키아의 암석들을 향해 걸어가는데 메마른 밭에 식물이 자라고 있다.
수박인지 호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나다니 생명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진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ATV가 지나간다.
내 두 발로 카파도키아를 느끼고 싶어 걸어왔는데 날이 더우니 ATV가 부러워진다.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다시 걸어가는데 차량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방금 지나간 ATV를 즐기던 사람들은 여기로 지나가지 않았겠지.
모래로 된 언덕길을 샌들을 신고 올라가려니 자꾸 미끄러진다.
모래 투성이가 되는 발을 생각하면 샌들이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털기만 하면 모래가 다 빠져나가는 것은 참 편하다.
무언가를 마주할 때,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부분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니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부분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 면을 살펴보는 사람이 좋은 것이라며 사람에 대한 한 부분을 정하는 것 같다.
그냥 느낀대로 살아가야겠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이런 곳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술을 좋아해 풍경이 좋은 곳에 가면 술 생각이 나듯이 좋은 곳에서 담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꽁초를 버리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오래 보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텐데 자신은 이미 봤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갈림길마다 나타나는 화살표만 따라가면 계곡에서 길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다.
계곡에는 예전 사람들이 암석을 파서 생활하던 집들이 많이 남아있다.
돌산 하나를 통째로 건물로 만든 집이 보였는데 마치 성처럼 보인다.
괴레메 지역의 암굴들은 과거 기독교가 박해당하던 시절 신도들이 이주해 와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가진 종교는 없지만 종교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참 많이 느끼게 된다.
암굴의 내부는 이런 식으로 생겨있는데 각 구역들이 잘 나눠져 있었다.
제민이가 괴레메에서는 노숙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추천해줬었는데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배낭을 메고 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노숙이 가능한 자전거 여행이 참 부럽다.
그래도 배낭여행자는 배낭여행만의 매력이 있으니 열심히 걸어간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니 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안 보이고 길도 좁아지니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이왕 나선 길이니 계속해서 걸어가는데 뭔가 의미심장한 글이 보인다.
'Do not enter'까지는 알아보겠는데 아래 써 있는 단어를 못 알아보겠다.
들어가지 말라는 글을 보니 괜히 무서워지기 시작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걸어가다보니 길이 끊기길래 다시 되돌아 나와 근처의 높은 봉우리로 올라갔다.
사람이 없어 고요한 것은 좋지만 너무 적막하니 무섭기도 하다.
미국의 블루 존 캐니언에서 사고를 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127시간'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조심 조심 돌아가야겠다.
돌아가는 길에 일몰을 즐기고 있는 누나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역시 자연도 좋지만 사람이 있어야 자연이 더 살아난다.
누군가는 걸어오고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
아직은 오토바이보다 내 힘으로 나가는 자전거가 더 좋은데 나중에 나이가 들면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해보고 싶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착실하게 지키고 있으니 늙어서는 편안하게 돌아다녀도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mp3에서 '사노라면'이 흘러 나온다.
2012년에 한국을 떠나기 1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간 락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가 들국화였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은 새파랗게 젊으니 더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 새면 해가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한
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좍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한숨일랑 쉬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들국화 - 사노라면
감성이 넘치는 날에는 알코올이 빠질 수 없다.
맥주 한 캔과 음악만 있으면 어딜가든 행복하다.
아침을 먹으며 여행기를 쓴다.
어제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다시 푹 쉴 차례다.
점심도 굶고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휴학신청을 안 한 것이 떠올랐다.
휴학을 1년 단위로만 할 수 있어 연장 신청을 해야하는데 까먹고 휴학신청 기간을 넘겨버렸다.
휴학처리가 안 된다고 해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일은 절대 없지만 좋은게 좋은 것이니 늦었지만 휴학신청을 했다.
저녁을 먹을 떄가 되서야 밖으로 나왔다.
여행을 하다보니 잉여롭게 사는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든다.
오늘은 휴식의 날이니 카파도키아의 명물인 항아리 케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다들 한글로 광고를 하고 있어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김태희 씨가 들렀었다길래 이 곳으로 정했다.
사실 난 김태희 씨보다 박신혜 씨가 더 좋다.
얼굴도 아름답지만 광주에서 태어나 기아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신혜 씨가 좋다.
항아리 케밥은 항아리 처럼 생긴 용기에 조리되어 나오고 즉석에서 뚜껑을 깨뜨려주는 요리인데 신기했다.
비싼 돈을 낸 만큼 맛은 역시나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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