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뉴욕에 도착했기에 역시나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
자다가 추워서 잠에서 깼는데 창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천모드로 전환하고 뉴욕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뉴욕을 구석구석 보기 위해서는 교통카드가 필요하다.
교통카드를 자판기에서 사면 카드 발급비 1달러를 더 내야하지만 상점에 가서 사면 30달러만 내고 살 수 있다.
1달러도 소중하니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 상점에 가서 샀다.
그런데 고맙다고 말하는데 '그라시아스'가 입에 붙어 땡큐가 안 나온다.
원래 잘 못하던 영어에 스페인어까지 섞여버렸으니 큰 일이다.
드디어 뉴욕의 버스를 탔는데 표를 어떻게 넣는지 몰라하니 기사 아저씨가 성질을 낸다.
모르니까 여행을 오지 다 알고 있으면 뉴욕을 왜 왔겠습니까.
여행을 할 때 세밀하게 준비하는 사람과 대충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당연히 후자다.
많이 준비하면 여행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변명을 하지만 귀차니즘 때문인 것을 숨길 수 없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맨해튼 중심부로 들어간다.
뉴욕에 들어왔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나기 시작한다.
우선 짐을 맡기기 위해 한국인 거리로 왔는데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지 뉴욕에 있는지 모르겠다.
맨해튼에 있는 호스텔을 알아보니 1박에 50달러(한화 50,000원)이나 하지만 타임스퀘어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길래 타임스퀘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하루 45달러(45,000원)짜리 한인민박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미국은 팁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한인민박인데도 일찍 체크인을 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하고 가방이 2개여도 추가 요금을 내는 등 모든 것이 다 돈이었다.
그래서 대책을 찾아보니 한인 독서실이 그나마 저렴하길래 가방을 맡기고 뉴욕을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비가 내리니 뚝배기 설렁탕이 당기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먹기로 하고 지나친다.
거리를 걷는데 너무 추워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부산에 뺏긴 메이시스 백화점이었다.
전시되어 있는 옷들을 보니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다니는 내가 처량해보였다.
가격도 싸길래 청바지라도 하나 사볼까 하다가 청바지를 사면 맞춰 신을 운동화도 사야하고 운동화를 사면 티셔츠도 사고 싶어질테니 그냥 참기로 했다.
소비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겠다.
지금까지 잘만 다니다가 뉴욕에 왔다고 위축되다니 나도 역시 속물인가보다.
그런데 옷을 떠나 쏟아지는 비를 맞으니 발이 얼어붙어 죽을 것 같다.
카페베네가 뉴욕에 진출했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진짜였다.
미숫가루라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너무 추워 공짜로 줘도 먹기 싫었다.
생각해보니 공짜라면 마셨을 것 같다.
미국에 왔으니 그 동안 안 먹었던 맥도날드를 먹어야한다.
원래 미국에서의 계획은 맥도날드를 비롯해 버거킹, 피자헛, 도미노피자, KFC 등 유명한 미국의 패스트푸드를 다 먹어보려했지만 바로 취소했다.
빅맥 세트 하나를 시켰을 뿐인데 7달러(한화 7,000원)이나 해 다른 패스트푸드에 도전하기 무서워졌다.
맛은 그냥 햄버거 맛인데 오랜만에 먹었더니 맛있었다.
이제 맥도날드는 한국에 돌아가서 먹어야겠다.
맥도날드에서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기다려봤지만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차가운 비를 맞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뉴욕에 온 첫 날이니 다시 밖으로 나가 타임스퀘어로 갔다.
TV에서만 보던 타임스퀘어에 왔는데 카메라가 젖을까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타임스퀘어에 왔다.
싸이가 공연하고 NYPD가 지켜주는 뉴욕의 중심인 타임스퀘어에 왔다.
그런데 너무 추워 타임스퀘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조건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기에 뉴욕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알고보니 뉴욕 도서관도 유명하던데 어쩌다보니 들르게 됐다.
들어가서 공짜 와이파이를 당겨 쓰다 체크인 시간이 다 되서야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뉴욕지하철 시스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전혀 어렵지 않았다.
상행선은 Uptown, 하행선은 Downtown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노선도를 보고 방향만 잘 찾아타면 된다.
드디어 숙소에 체크 인을 하고 저녁을 해 먹었다.
첫 날이니 밖에 나가서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비가 지긋지긋하게 내려 그냥 간단히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미국에 왔으면 당연히 버드와이저를 마셔줘야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술은 현지 술을 마셔야 한다.
숙소에서 조식은 주지 않지만 쌀은 제공해줘서 아침은 달걀간장밥을 해먹기로 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으니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정말 다행히도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미를 여행하며 덥다고 투덜댔었는데 햇님의 소중함을 제대로 배웠다.
집 앞의 거리를 걷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뉴욕의 거리가 펼쳐진다.
이제 진짜 뉴욕을 느껴보러 갑시다.
오래된 지하철이라 그런지 음침한 분위기가 나긴 한다.
하지만 버스보다 지하철이 훨씬 좋으니 신경쓰지 않는다.
모든 건물들이 큼직큼직하다.
역시 국방비로만 1,000조를 쓰는 천조국은 다르다.
모든 것이 다 영화에 나오던 것들이다.
영화의 단골소재인 스쿨버스도 흔하게 보인다.
뉴욕에는 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하루에 한 곳씩은 가보기로 했다.
제일 처음 가기로 한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인데 입구부터 엄청 크다.
뉴욕에 있는 박물관들의 입장료는 보통 15달러정도 하지만 기부금 제도를 잘 활용하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카운터로 가 기부금 제도로 입장하고 싶다며 자기가 내고 싶은 금액을 내면 된다.
얼굴에 철판을 딱 깔고 1달러를 낸다고 하니 입장권을 준다.
1달러를 내려니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나는 가난한 학생 여행자이니 괜찮다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지금은 1달러만 내지만 많이 보고 배워서 베풀며 살테니 이해해주세요.
입구부터 스케일이 다르다.
거대한 코끼리 가족들이 어서오라고 반겨준다.
1달러 내고 들어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보수가 바로바로 되지는 않고 있어 보였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문화와 자연, 동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는 작지만 한국도 있다.
이 곳은 빅뱅이 시작된 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한 걸음당 4,500만년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규모도 크고 정말 재미있었다.
인간의 역사가 짧은 것은 알았지만 손톱 정도의 길이밖에 안 되는 것을 보니 정말 티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티끌만한 역사를 지닌 인간이 엄청나게 광활한 우주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는 것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가장 신기하고 부러웠던 것은 바로 이 Ice Core(빙핵)였다.
멀리서 빛나는 봉이 보이길래 설마하고 다가갔더니 진짜 빙핵이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빙핵을 26살 먹고 처음으로 실물을 봤다.
한국의 박물관에서도 빙핵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전시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미국의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니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테고 과학자들이 많으니 과학기술도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라에서 인재양성에 투자하면서 이런 박물관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박제인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모형이라고 한다.
옆에는 모형 만드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놨는데 예술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섬세하게 작업을 한다.
박물관을 보고 있을 뿐인데 미국의 스케일이 정말 크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트리케라톱스를 보러 공룡관으로 갔다.
정말 듬직하고 멋있는데 생긴 것과는 다르게 초식공룡이다.
박치기 공룡의 머리뼈도 만져볼 수 있는데 박물관을 볼수록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정말 대단하고 부럽다.
기념품 가게에 갔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저렇게 못생긴 티라노사우르스가 1,000달러나 한다니 과연 저걸 사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렇게 늠름한 티라노사우르스를 너무 망쳐놨다.
그런데 티라노사우르스가 털복숭이었다는 설도 있던데 티라노사우르스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 가설이 틀렸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박물관을 구경했더니 밥 먹을 시간을 놓쳐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쿠바를 여행하다 만난 지영씨가 뉴욕에 가면 할랄가이를 꼭 먹어봐야 한다길래 가보니 줄이 엄청 길다.
내 차례가 와서 양고기와 닭고기를 반반시켰는데 맛도 있지만 양이 엄청 많아 사랑스러웠다.
밑에는 밥이 깔려있고 샐러드와 고기를 듬뿍 넣어주는데 6달러 밖에 안 한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먹었는데도 반 정도 먹으니 배가 불러 집으로 싸가야 할 정도로 푸짐했다.
단돈 6달러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았으니 뉴욕에 있는 동안 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숙소가 브로드웨이 바로 근처기에 잠시 쉬다가 위키드 로터리에 도전하러 갔다.
뮤지컬 위키드는 로터리라는 제도가 있어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16명 정도 추첨을 하는데 당첨이 되면 제일 앞자리 표를 30달러에 살 수 있다.
이름을 써서 제출하고 기다리면 통에 넣고 추첨을 하는데 2번째로 내 이름을 부른다
신분증 검사를 하고 돈을 내니 축하한다며 표를 준다.
사실 오늘은 머리가 아파 안 가려다 어떤식으로 추첨을 하는지 분위기 파악만 하러 간건데 당첨이 되버려 기쁘면서도 두통때문에 제대로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너무 많은 지식을 받아들였는지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프다.
우선 약을 먹고 남은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니 완벽하게 낫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괜찮아져 극장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며 티켓을 보여줄 때마다 로터리에 당첨되서 축하한다는 말을 해준다.
얇은 지갑때문에 싸게 보려고 도전한 로터리인데 무시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축하를 해준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보러와 위키드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의 이야기였는데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쉬운 영어라 못 알아들은 부분도 없었고 제일 앞 자리라 배우들의 침 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어 계속 감탄하며 공연을 봤다.
물론 주인공 누나도 정말 예뻤다.
뉴욕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김이 나오는 하수구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견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사진에 잘 나오진 않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을 보니 신기했다.
뉴욕에 오기 전에는 재미가 없을까봐 걱정했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모든 것이 엄청 재미있고 즐겁다.
역시 문화가 바뀌면 여행이 재미있어진다.
오늘도 그냥 잘 수는 없으니 남은 밥과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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