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사막의 밤은 그렇게 춥지 않았는데 북쪽으로 많이 올라와서 그런지 홉스골의 저녁은 꽤 추웠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구스다운 침낭과 함께라면 추운 밤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온 영양식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부드러운 식빵이 없어 아쉽지만 소시지와 참치, 치즈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주인 아저씨가 정말 친절하시고 방도 마음에 들지만 주변 환경과 시설이 너무 열악해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샤워도 불가능하고 슈퍼마켓이나 식당이 너무 머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20분 정도 걸어 큰 길가로 나왔는데 여기서도 꽤 걸어가야 다른 숙소가 나온다.
계속 걷다보니 우리가 눈여겨 봐두었던 숙소가 나온다.
이 곳은 따뜻한 샤워도 항시 가능하고 식당과 슈퍼와도 근접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오늘은 뭘 해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다 호수 구경을 하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께 유람선 시간을 물어보니 지금 가면 탈 수 있다며 자신의 친구를 불러 무료로 선착장까지 차를 태워다 주신다.
이런 작은 배려가 사람을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1인당 2만 투그륵(한화 12,000원) 정도의 뱃삯을 내고 선착장에 들어가니 군함이 보인다.
몽골에는 바다가 없지만 해군은 있다고 하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이 군함들은 아마 러시아에서 육로를 이용해 수송해 온 것 같은데 실제로 운항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의 상태였다.
군함을 지나치니 우리가 탈 유람선이 보인다.
배에서 마시려고 맥주를 사려다가 요즘 알코올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무알콜 맥주를 사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맥주는 알콜이 들어있을 때가 맛있지 무알콜은 주스 맛 밖에 나지 않는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선수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냥 배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배를 타니 해군에서 군생활 하던 생각이 난다.
바다로 출동을 나가면 저녁을 먹은 뒤 잠시 쉬는 시간에 보는 일몰과 달빛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그 모습이 그립다.
물론 그 풍경이 그리울 뿐이지 다시 군대를 가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2년 동안 나라를 지켰으니 이제는 다른 장병들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살면 된다.
50분 정도 지나니 앞에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착장에서 고속보트를 타면 섬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유람선을 탄 우리는 그저 섬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홉스골로 돌아간다.
그래도 그냥 돌아가기 아쉬우니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여행을 하면 남는게 사진 뿐이라는데 내 카메라에 들어있는 사진의 99%는 풍경사진이다.
푸른 호수를 구경하니 기분은 좋지만 2만 투그륵의 뱃삯은 좀 비싼 것 같다.
그래도 이미 돈을 냈으니 계속 사진을 찍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선착장 근처에 작은 섬이 보이는데 아무래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아까 큰 섬은 못 갔지만 홉스골에 있는 동안 시간을 내서 작은 섬이라도 가봐야겠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 기분 좋게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나니 커플이 찍혔다.
절대 부러워서 하는 말은 아닌데 그냥 날도 더우니 좀 떨어져서 걸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에게는 고기님이 계시니 괜찮다.
1,500투그륵(한화 900원) 정도에 샤슬릭을 팔길래 하나 사 먹었는데 고기가 살짝 질겼지만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 구경을 갔는데 꽤 퀄리티가 좋아보이는 아이스크림이 보였다.
생김새만큼 가격도 비쌌지만 비싼 값을 하는 맛이었다.
게르에서 잠시 쉬다보니 나가기 귀찮아져 게스트 하우스에서 파는 밥을 먹어볼까 고민했지만 밥은 식당에서 먹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왠지 모르게 숙소와 식당을 같이 하는 곳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식당에 들어가니 메뉴판이 있는데 까만 것이 글씨라는 것 밖에 모르니 직원에게 추천 받아 음식을 시켰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외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음료수를 준다.
안에 땅콩이 들어있는 달콤한 음료수였는데 우리나라의 식혜 비슷한 음료인 것 같았다.
밥도 맛있고 서비스도 받았으니 내일 또 와야겠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여행자들에게 게르를 빌려주고 샤워나 식당은 다른 건물을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시설이 꽤 좋았다.
빨래를 널고 싶어 슈퍼에서 빨랫줄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길래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테이프를 샀다.
테이프를 말아 빨랫줄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대단한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도구를 쓸 줄 알아야한다.
저녁이 되니 직원이 돌면서 게르마다 불을 피워준다.
게르 안에는 장작이 쌓여있어 추우면 더 넣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불을 피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게르 안이 한증막으로 변했다.
밀폐가 너무 잘 되었는지 열이 빠져나가지 않아 안에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덥길래 밖으로 대피했다.
밖에서 열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난로 덕분에 조금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다 잠자리에 들었다.
방값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길래 간단한 토스트를 줄거라 생각했는데 소시지와 달걀도 준다.
달걀만 줘도 고급 식단인데 소시지까지 주니 황홀하다.
오늘은 드디어 말을 타는 날이다.
내가 탈 말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말에 오른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몽골의 초원에서 말을 타는 날이기에 동생님께 기념사진을 한장 찍어 달라 했더니 노출이 전혀 맞지 않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는 말을 타봤다고 하니 그냥 고삐를 나에게 주고 동생과 카렌의 고삐는 마부 아저씨가 잡아준다.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몽골에 대해 내가 기대한 것은 황량한 고비사막과 푸른 초원에서 하는 승마뿐이었는데 이제 두 가지 모두 이루게 됐다.
처음에는 살살 걷다가 초원을 달리기 시작하니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신이 났다.
승마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 어설프지만 말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니 정말 즐거웠다.
이래서 다그닥 훅만 알면 된다는 말이 나왔나보다.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보이면 고삐를 당겨 천천히 둘러보면 된다.
통신이나 편의 시설등은 도시보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렇게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난 계속 달려도 상관 없는데 마부 아저씨께서 자신이 아는 곳이라며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 보는 전통 음료수를 주는데 맛이 조금 이상해 한 잔만 마셨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애매모호하면서 이상한 맛이 났다.
음식의 맛을 맛있다와 맛없다, 이상하다 정도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아쉽다.
그래도 버터바른 빵과 함께 먹으니 괜찮았다.
지붕 위에는 고체 요거트인 아로스를 건조시키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지만 시큼한 맛이 내 입맛에는 딱 맞는다.
오늘 도시락은 베이컨 통조림과 야채 병조림이다.
고기를 찾고 말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홉스골에 있는 모든 슈퍼를 돌다보니 베이컨 통조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정말 맛있었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다시 달릴 때다.
마부 아저씨의 눈에서만 벗어나지 않을 정도에서는 마음껏 달려도 된다.
그런데 내가 달리면 동생이 탄 말도 나를 따라 달려와 동생을 힘들게 한다.
오르막 길은 말을 타고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길은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말을 끌고 가야한다고 한다.
풍경이 아름다우니 충분히 걸어갈만 하다.
내리막길을 지나 다시 말을 타고 오는데 사고가 터졌다.
반대쪽에서 갑자기 흥분한 말이 달려오니 우리가 타고 있던 말들이 겁을 먹고 날뛰려고 하길래 말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는데 다행히 마부 아저씨께서 우리들을 재빠르게 내려주셨다.
그런데 마부 아저씨가 달려오는 말을 잡으러 간 사이 카렌의 말이 날뛰었고 고삐를 잡고 있던 카렌의 손이 피가 날 정도로 쓸렸다.
마부 아저씨는 계속 미안하다 하셨지만 아저씨 덕분에 큰 사고 없이 넘길 수 있었으니 괜찮다며 우리가 고맙다고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돌진한 말은 다른 팀에서 도망친 말이라길래 원래 주인에게 넘겨주고 다시 말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호숫가를 따라 가는 길인데 고요하고 한적해서 천천히 걷기에 좋았다.
돌아가는 길에는 어제 배를 타고 지나가다 본 작은 섬도 지나갈 수 있었다.
홉스골 마을에 가까워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길래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홉스골에서 말을 1주일 정도 탈 생각으로 왔는데 직접 말을 타보니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나는 초원에서 말을 빌려 게르에서 게르를 이동하는 방식으로 말을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거리 코스는 산을 거치는 코스가 주를 이루고 잠은 게르나 텐트에서 잔다고 한다.
말을 타고 산을 이동하면 달리기보다는 주로 걷는 코스가 많다고 하는데 이는 내가 생각했던 몽골의 승마가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하루에 5시간 정도만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어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골반이나 다른 곳이 아프지 않았는데 동생은 말을 타고 나니 다리와 배도 아프다고 해 말을 계속 탈지 말지 고민하다 아쉽지만 승마는 그만하기로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여러가지를 고려해야하지만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는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야한다.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고 미리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도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으로 가 전에 먹었던 쌀밥 사진을 보여주며 주문을 하니 고기 볶음이 나와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항상 행복하시고 제 여행기가 재미있으셨다면
하트클릭 한번과 댓글 하나만 남겨주세요.
'Another Travel > 몽골 - Mongol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11. 60시간 만에 베이징으로 가는 방법. (몽골 - 울란바토르) (17) | 2016.11.14 |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9. 푸른 하늘과 나담 축제. (몽골 - 므릉, 홉스골) (8) | 2016.10.31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8. 고비사막 여행의 끝. (몽골 - 울란바토르, 므릉) (4) | 2016.10.24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7. 지쳐가는 고비사막 여행. (몽골 - 고비사막) (19) | 2016.10.17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6. 내가 꿈꾸던 고비사막. (몽골 - 고비사막) (9) | 2016.10.10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5. 몽골의 전통축제, 나담 이야기 (몽골 - 고비사막) (18) | 2016.10.04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4. 고비사막에서 만난 얼음계곡. (몽골 - 고비사막) (31) | 2016.09.26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3. 야생동물과 함께 하는 몽골여행. (몽골 - 고비사막) (25) | 2016.09.19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2. 고비사막 여행의 첫째 날. (몽골 - 고비사막) (30) | 2016.09.12 |
두 형제의 몽골 여행기 - 01. 푸른 초원과 하늘이 있는 몽골. (몽골 - 울란바토르) (28) | 2016.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