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쯤 밖으로 나오니 마을 사람들이 빵집 앞에 줄을 서있다.
만약 우리나라도 주식이 빵이었다면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아침마다 빵을 배달시켜 먹었을 것 같다.
작고 고요한 마을에서 딱히 한 것은 없지만 행복하게 지내다 간다.
저번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 라쉬트 버스정류장으로 나가야한다.
이른 아침이기에 마을의 입구로 나가 택시를 기다리니 잠시 후 택시가 오고 사람들과 합승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이동을 많이 해야하기에 사람이 안 오면 혼자라도 탈 생각이었는데 다행이다.
이게 바로 산유국 이란의 기름값이다.
15리터에 15만 토만(한화 5,000원)이니 1L당 330원 꼴이다.
기름이 이렇게 싸니 택시비도 저렴해 자꾸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30km를 10만 토만(한화 3,300원)에 탄 뒤로 이란에서는 택시를 애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물가가 저렴한 여러 나라에서도 될 수 있으면 걸어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이란의 환상적인 택시비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란의 버스시스템은 운영회사마다 승차장과 매표소가 달라 버스표를 알아보려면 일일이 다 돌아다녀야 한다.
라쉬트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다음 목적지인 하마단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았는데 하마단으로 가는 버스는 아침에 한대, 오후에 한대 있지만 이미 매진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으니 우선 밥이나 먹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란은 외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식당보다는 간단한 패스트푸드를 파는 곳이 많다.
물론 식당보다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이마저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정말 부실해보이지만 쿠바에서 먹은 음식들보다는 조금 나았다.
라쉬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버스를 탈지, 테헤란을 거쳐서 갈지 고민하다 라쉬트 시내까지 나갔다 다시 돌아오기가 귀찮아 그냥 테헤란을 경유하기로 했다.
버스가 휴게소에 들렀는데 딱히 배가 안 고파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홍차에 신기한 것을 타 먹길래 나도 시켜봤다.
혹시 꿀이려나 하는 기대감에 맛을 봤는데 설탕을 막대에 굳혀 놓은 것이었다.
이란산 치토스와 함께 먹으니 적절한 맛이 났다.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창밖에는 황무지뿐이다.
더운 나라를 피하고 싶은데 자꾸 더운 나라로 가게 된다.
테헤란에 도착하자마자 하마단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표에 적힌 정보 중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페르시아어로 적힌 표의 가격과 좌석 번호뿐이다.
23,000토만(한화 8,000원)인 것을 보니 왠지 버스가 좋을 것 같다.
플랫폼을 물어 버스를 찾아가니 예상대로 고급버스였다.
일반 버스는 반 값인 12,000토만(한화 4,000원) 정도 하는데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늙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돈을 조금 더 내고 고급 버스를 타고 싶어진다.
여행을 시작할 떄는 젊었는데 이제는 몸이 예전같지가 않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시원한 음료수와 과자를 준다.
고급버스라 시원한 음료수를 주는 것인가 하고 신기해하다 느낌이 이상해 우선은 음료수를 뜯지 않았는데 역시나 잡상인이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몸은 예전같지 않지만 눈치는 예전보다 늘었다.
잠시 뒤, 차장이 와서 진짜 다과를 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했는데 내가 여행할 때에는 미국과 핵협상이 타결되기 전이라 그에 관한 내용은 못 물어봤던 것이 좀 아쉽다.
버스는 하마단을 경유하는 것이라 도로 중간에 내려줬는데 그 곳에도 역시나 택시가 대기중이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방을 잡았다.
이란에는 호스텔은 별로 없고 미니 호텔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보통 싱글 룸이나 트윈 룸을 운영하고 화장실의 포함 유무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내가 하마단에서 잡은 숙소는 5만 토만(한화 17,000원)짜리였는데 교통비와 비교하니 너무 비싸게 다가왔다.
하지만 보통 숙소의 시세가 4만~5만 토만이니 별 수 없다.
짐을 풀고 드디어 쌀밥인 베렌제와 닭고기를 시켰다.
이왕 먹는 것이니 샐러드도 시켜서 푸짐하게 먹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노란색 밥알은 고급 향신료로 유명한 샤프란을 써서 그렇다고 한다.
맛잇게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당근 주스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오직 당근만 갈아 넣은 주스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넣어 팔길래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꾸 당근주스를 리필해줘 배가 터질뻔 했다.
이 호텔도 역시 조식을 제공했는데 치즈와 버터, 홍차가 제공된다.
거기에 마술레에서 산 꿀까지 있으니 진수성찬이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정말 더운데 차도르까지 두르고 다니려면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남자라 반팔티만 입어도 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는데 아마 내가 여자였다면 이란에 안 왔을 것 같다.
한여름에 머리카락을 가리고 긴팔을 입어야한다면 더워 죽을 것 같다.
하마단에서 나가는 버스 표를 예약하러 갔는데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직원들이 서로 쑥쓰럽다고 미루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와서 표를 끊었다.
그런데 표를 끊으며 필요한 단어는 내가 갈 목적지와 날짜밖에 없고 목적지는 페르시아어이고 날짜는 달력을 보고 손으로 가르켜 영어는 필요도 없었다.
날이 너무 더우니 우선은 에어컨이 나오는 사랑스러운 내 방에서 낮잠을 잤다.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미련한 일이다.
거리에 가게가 많길래 구경을 하는데 옷과 생필품들을 팔고 있어 딱히 구경할 것은 없었다.
시장을 구경하면 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시장 구경을 하면 먹을거리가 많아서 좋다.
날이 더우니 아이스크림이 당겨 하나를 샀는데 5,000리알(한화 180원)밖에 안 한다.
숙식비는 비싼데 군것질거리와 교통비가 저렴하니 물가를 종잡을 수가 없다.
론리플래닛을 보니 하마단에 유적지가 있다길래 구경을 하러 갔는데 입장료가 조금 비싸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요금이 다른 것 같은데 외국인은 15,000토만(한화 5,000원)이라길래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밖에서 살펴보니 유적터인 것 같은데 내가 아는 것도 없고 흥미도 없으니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난 자연이 좋다.
하마단 구경을 잘 했으니 이제 다시 숙소로 갈 시간이다.
한동안 더위를 피한줄 알았는데 이란에 오니 더워도 너무 덥다.
숙소를 살펴보니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길래 올라가보니 하마단 시내가 잘 보인다.
노란색 택시들이 많길래 미니어쳐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보니 꼬마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처럼 아기자기하게 찍혔다.
왠지 황량한 모습이 하마단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과거 하마단은 비옥한 농경지의 중심을 이루는 상공업도시로서 번영했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른 것인지 백과사전이 틀린지 모르겠다.
사진찍기 좋은 구도를 찾다가 요단강을 건널 뻔했다.
처음 옥상에 올라왔을 때부터 난간이 없는 것을 봤기에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바닥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목숨은 하나 뿐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데 가끔씩 까먹는 것 같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시장에 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골목길 사이로 시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옥상에 올라오니 눈에 들어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나 보다.
모스크 한 쪽에서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일을 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는데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아마 모스크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배가 고프다하면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처럼 밥을 줄 것 같다.
아까 옥상에서 본 시장을 구경하러 가 사진을 찍는데 시장에서 봉지를 파는 애가 손을 흔든다.
사진을 찍고 말을 거니 뭘 사려고 시장에 왔냐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하길래 망고라고 말하니 자기가 아는 가게에 데려다준다.
테헤란보다 가격이 저렴하길래 몇 알을 사고 계속 구경을 하는데 비료를 별로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과일들이 동그랗지는 않았다.
미국과 적대적인 나라인 쿠바와 이란을 여행해보니 확실히 미국의 힘이 대단하기는 한 것 같은데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본능이 이끌리는 대로 걸었더니 어느 순간 내 앞에는 고기 볶음집이 있었다.
향이 너무 좋아 먹으려고 쌀밥이 있냐 물어보니 아쉽게도 베렌제는 안 판다고 한다.
아쉽지만 어제 먹은 베렌제가 너무 맛있었기에 그냥 뒤돌아 나왔다.
어제 찾은 식당에 다시왔는데 밥을 수북히 줘서 행복하다.
옆 테이블을 보니 무알콜맥주를 마시고 있길래 따라서 주문해봤는데 역시나 내 입맛에는 안 맞았다.
고기를 썰어 먹으려고 혹시 나이프가 없냐고 물었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나이프가 없다며 사시미 칼을 가져다 줬다.
그런데 황당하기보다 내가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져 고맙고 괜찮다며 사시미 칼로 열심히 식사를 했다.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이슬람 신자들이 전혀 나쁘지 않은데 일부 테러단체 때문에 전반적인 인식이 부정적으로 박힌 것 같아 아쉽다.
지구는 둥근데 사람 마음은 둥글어지기 힘든가 보다.
이게 내가 묵은 호텔의 샤워시설인데 한 층에 한 개씩 있는데 이란 사람들은 샤워를 별로 안 하는지 나와 겹친 적은 없었다.
자꾸 열악한 시설만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란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에게 현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자꾸 올리게 된다.
물론 이런 시설은 저같은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게 될 시설이니 좋은 곳에 묵으실 분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원하게 샤워를 했으니 망고를 먹을 차례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망고를 잘 찾아볼 수 있다지만 가격이 비싸니 마음껏 먹을 수가 없다.
이란 사람들은 이 이름 모르는 얇은 빵을 자주 먹는 것 같은데 부드러우면서 적당한 식감도 있어 정말 맛있었다.
홍차를 한 주전자 마시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또 다시 버스를 탈 시간이다.
버스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모녀가 반찬통을 열고 맛있게 점심을 먹다가 나에게도 하나를 권한다.
얇은 빵 안에 감자 으깬 것을 넣어 주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 사람 사이의 정은 음식을 나눠먹는데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페르시아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스파한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폴란드에서 온 아저씨가 같이 택시를 타자고 해 함께 움직이다보니 숙소를 함께 잡았다.
밖으로 나오니 인터넷 카페가 보인다.
넷북을 들고 다녀 인터넷 카페에 갈 일은 없지만 네온 불빛이 끌려 사진을 찍었다.
이란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아닌 그저 발전이 조금 덜 된 나라일 뿐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란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는게 안타깝다.
이란을 여행할수록 북한도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은데 내가 너무 늙기 전에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염소의 두개골 부위를 시켰더니 다른 부위는 안 먹냐고 물어보길래 어디가 있냐고 물어보니 주방장 아저씨가 자신의 다리를 가르키며 계속 맛있다고 추천을 해 같이 시켰다.
어떻게 먹는 것인지 옆테이블을 보니 사발에 들어있는 육수에 빵을 찍어 고기와 함께 먹길래 따라서 먹었는데 꽤 맛있었다.
육수가 많이 느끼하긴 했지만 고기가 정말 부드러워 좀 더 먹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다들 입구에 앉아 와이파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로비 부분에서만 와이파이 신호가 잡혀 다들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인터넷을 해야하는데 이런게 배낭 여행하는 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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