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이란 여행을 준비하고 이란이라는 나라에 적응하는 기간이였다면 오늘부터는 진짜 이란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출근시간에 이동을 해야해 택시를 탈까 고민했지만 5000리알(한화 180원)짜리 대중교통을 포기하기 아쉬워 우선 지하철 역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터미널 방향의 열차는 한산해 마음놓고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여성전용칸에 남자들이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어제 버스표를 끊으며 봐두었던 터미널의 식당에 가서 밥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똑같은 것을 달라고 했더니 쌀밥은 점심에만 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토마토 오믈렛을 시켰는데 어제부터 오늘은 꼭 먹으리라 기대했던 쌀밥을 못 먹어 아쉬웠다.
그런데 쌀을 갈구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옆에서 밥을 먹던 친구가 나한테 말을 건다.
자신은 테헤란 대학교에서 공부중이라며 이란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한국의 대학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물어보길래 서로 대화를 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이란에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라길래 이란에는 식당이 별로 없냐고 물어봤더니 이란에서는 외식문화가 별로 발달하지 않아 번화가가 아니면 식당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럼 '쌀밥을 주세요'는 페르시아어로 어떻게 말하냐고 하니까 친절하게 메모장에 적어준다.
쌀은 페르시아어로 '베렌제'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웠으니 이제 쌀밥을 굶을 일은 없다.
전에도 말했듯이 새로운 나라를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인삿말을 비롯한 아주 기본적인 말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란도 마찬가지로 안녕하세요란 뜻의 살라말레이쿰이나 고맙다라는 메르씨 정도는 알고, 숫자를 세는 법도 외웠지만 처음 접하는 페르시아어는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 포기했다.
이럴때는 그냥 내가 가야할 목적지와 버스표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한데 이란 사람들은 서로 나를 도와주려고 해 정말 고마웠다.
이란의 버스에서도 다과를 준다.
이란에서는 여자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주머니께서 조수석에 앉아 계시다가 기사아저씨와 교대로 운전을 하셨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이란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모습이 신기하게 보인다.
내가 이번에 갈 곳은 마술레라는 이란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이란 사람들이 즐겨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마술레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우선은 근처의 도시인 라쉬트까지 온 뒤 다시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 정류장까지는 택시를 타야한다.
테헤란에서 라쉬트까지 5시간이 걸렸고 버스비는 12,000토만(한화 4,000원)이었는데 라쉬트 버스터미널에서 10정도 거리에 있는 푸만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택시비가 10,000토만(한화 3,300원)을 달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보면 많이 비싼 것이지만 시세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푸만으로 가기 전에 배가 고프니 우선 밥부터 먹어야겠다.
정이 넘치는 나라들이 그렇듯이 라쉬트에서 푸만까지 가는 버스도 사람이 다 차야 운행하는 버스여서 가방을 실어두고 그늘에서 놀고 있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푸만에 가냐고 물어본다.
푸만에 가는 것은 맞지만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했더니 버스비와 같은 값을 받고 합승택시에 태워준다길래 얼른 택시에 옮겨탔다.
내가 생각해도 나란 남자는 정말 쉬운 남자인 것 같다.
푸만에 도착해 마술레에 간다고 하니 정류장까지 이동해야한다길래 또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버스는 예전에 출발했다길래 택시기사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아저씨들이 방금 구운 빵을 가져다 줬는데 속에 달콤한 앙금이 들어있는데다 따뜻해 정말 맛있었다.
1시간 동안 택시에 합승할 사람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길래 아저씨와 흥정해 혼자 10,000토만(한화 3,300원)을 내기로 했는데 거리가 30km 정도 떨어져있었다.
30km 떨어진 곳까지 단돈 3,300원으로 택시를 탈 수 있다니 택시 탈 맛이 난다.
앞으로 남은 이란여행에서는 돈을 아끼지말고 택시를 타야겠다.
마술레에는 전문적인 숙박시설도 있지만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민박집을 이용하기로 했다.
마술레에 도착하면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민박집을 구하기 쉽다고 들었는데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지기 시작하길래 근처의 상점에 들어가 잠자는 시늉을 했더니 기다리라며 민박집을 소개시켜준다.
방이 깨끗하고 마음에 들어 하루에 40,000토만(한화 13,000원)에 지내기로 흥정을 했다.
방에 부엌도 있었지만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서 밥을 해먹는 것은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당연히 사먹기로 했다.
닭고기 케밥을 시켰는데 구운 토마토와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술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이란에 와서는 맥주대신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이란 여행이 끝나면 간이 건강해져있을 것 같다.
조명이 켜진 가게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방에 침구류가 있었는데 더러움에 면역이 생긴 내가 보기에도 많이 더러워 보였다.
이럴 때를 위해 침낭을 가지고 다닌다.
호주 이후로는 쓴 적이 없었지만 날씨를 보니 앞으로는 종종 꺼내게 될 것 같다.
샤워를 한 뒤에 푹신한 침낭에 들어가는 행복한 기분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잠을 자기 전에 문을 잠그려고 보니 자물쇠가 잠기지 않아 주인 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와서 살펴보시더니 미안한데 가스통으로 문을 막고 자도 안전하다고 말을 한다.
걱정이 될만한데 침낭에 누우니 바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아침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셨다.
이란 사람들은 오믈렛을 좋아하는지 마술레 사람들도 오믈렛을 먹고 있길래 나도 오믈렛을 시켰다.
왜 오믈렛이 빨간색인지 만드는 과정을 보니 중간에 케찹 분말을 넣고 오믈렛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도 맛있게 먹었으니 이제 마술레 마을을 구경할 시간이다.
이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은 어느정도 많았지만 분위기는 조용해 마음에 들었다.
절벽에 이런 2층 집을 짓고 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파도를 구경하며 술을 마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마술레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지 테라스에 화분을 많이 놓고 있었는데 황토빛 집들과 빨간 꽃들이 잘 어울렸다.
내가 상상하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져 기분이 좋다.
별로 볼 것은 없어도 조용한 분위기에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어 마음에 든다.
마술레는 지붕위에 길을 내고 그 길 옆에 다시 집을 지은 구조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렇기에 남의 집 지붕에 돗자리를 깔고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지붕을 잘 살펴보면 연통이 너무 많다.
하나의 연통이 막히면 뚫기보다는 새로운 연통을 설치하는지 한 집에 연통이 10개가 넘게 달려있다.
마을의 반대편 입구쪽으로 가보니 차들이 많길래 사람구경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반대편 산을 보니 텐트 두개가 보인다.
저런 곳에서 야영을 하는 맛을 아는 것보니 제대로 된 여행자들인 것 같다.
길을 따라가다보니 작은 폭포가 나오고 사람들이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폭포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을 보니 이게 문화차이인 것 같았다.
가족여행을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길을 걷다 눈이 마주쳐서 웃었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 그럼 나도 내 카메라로 찍어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지나가다 눈이 마주쳤다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라고 한다면 100장도 더 찍어줄텐데 그럴 일이 없어 아쉽다.
관광지라 여러가지 군것질거리를 팔고 있었는데 내 눈에 꿀이 들어왔다.
이란의 꿀 맛이 궁금해 시식만 해보려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9,000토만(한화 3,000원)어치 꿀을 사버렸다.
벌집을 잘라서 꿀을 뿌려주는데 모습만 봐도 황홀했다.
포장하는 것을 보는데 한글이 보여 꼬레이라고 하니 진짜냐고 신기해한다.
이란에도 한류가 대단하다는데 이제는 비닐 랩도 Made in Korea라니 대단하다.
아까 마술레의 집은 지붕위에 길을 내고 그 뒤로 또 집을 만든 구조라고 말했는데 이 사진을 보면 그 구조를 잘 알 수 있다.
과거에 좁고 경사진 지역에 집을 지으려다보니 이런 구조를 만든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이란에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으니 선조들의 지혜는 참 대단하다.
집에 들어가려고 하니 내 집 앞 마당에서 전통사진을 찍고 있었다.
옷을 대여해서 사진을 찍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관광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인터넷을 기대하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니 가지고 다니던 영화를 한편본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혼자 잘 노는 것 같다.
저녁시간이 되어 밖에 나왔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장에 딱히 신기한 물건은 없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저것 많이들 사고 있었다.
그냥 발 길 닿는대로 걷다보니 빵집이 나왔다.
전통적인 화덕에 굽는 빵집이라 신기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포즈를 취해준다.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려 하나 샀는데 뒤에 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기가 정말 귀여워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저런 토끼같은 딸래미를 낳고 싶은데 여우같은 마누라가 없으니 큰 일이다.
이번에도 우리집 앞마당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곳이 핫플레이스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이쁜 누나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나도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다 늑대고 나도 늑대고 여러분의 아빠도 늑대입니다.
빵을 사왔으니 아까 산 꿀을 개봉했다.
이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운 꿀을 3천원에 샀다니 역시 여행할 맛이 나는 물가다.
갓 구운 빵에 꿀을 찍어 먹으니 행복할 정도로 달콤했다.
맛있어서 꿀을 퍼먹다보니 목이 말랐다.
이란은 이슬람력을 써 1년이 354일~355일이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날짜와는 전혀 다르게 계산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그냥 괜찮겠지 하고 먹을 수 밖에 없겠지만 난 나의 위장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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