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ld Travel/크로아티아-Croatia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30. 감수성이 깨어나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어제 성벽투어를 했기에 일정이 촉박하지 않아 늦게까지 잠을 자다 일어났다.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었으니 가급적 밀가루 음식은 자제하기로 하고 마트 조리코너에서 볶음밥과 치킨을 사왔다.

물론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는 없으니 맥주도 한 캔 샀다.

에어컨이 빵빵하니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는 에어컨이 없어도 잘만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에어컨만 보면 신이 난다.

체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작 다시 열악한 나라로 여행을 가게되면 또 잘 적응할 것 같다.

계속 방에서 빈둥거리다 밖으로 나왔는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오늘의 목적지는 산 위에 보이는 첨탑이 있는 전망대다.

어릴 때는 높은 곳을 보면 '언제 저기를 올라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요즘에는 '걷다 보면 언젠가 올라갈 수 있겠지'라는 여유로운 생각이 든다.

걷는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 극한의 난이도가 아니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앞에 가던 차가 번호판을 떨어뜨리고 간다.

급하게 주워서 흔들어봤지만 보지 못했는지 그냥 가길래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다.

폴란드에서 여행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 다시 번호판을 찾아가 남은 여행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도를 봐도 전망대로 가는 대략적인 길만 나와있어 그냥 감을 믿고 걸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산 위에 있으니 높은 곳으로만 가면 길이 나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올라가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태양 형아가 너무 강하다.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구시가지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전망대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100쿠나(한화 18,000원)정도 하기에 그냥 걷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부분만 숲길이고 그 뒤로는 다 황무지 길이라 그늘이 하나도 없다.

덥고 힘들어 잠시 쉬어가고 싶지만 마땅히 쉴 곳도 없어 계속 걸어간다.

1991년,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가 통치하는 유고슬라비아를 이룩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즉시 독립을 선언했고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유고슬라비아군은 크로아티아에서 인종청소를 하기 시작했으며 전쟁은 1995년 크로아티아가 과거의 모든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와 전쟁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지만 앞으로의 역사에서 전쟁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덥지만 오르고 오르다보니 어느새 꼭대기의 성벽까지 올라왔다.

1시간이 넘도록 산을 올랐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을 한명도 못 만났다.

만약 나보고 다음에 다시 이곳을 올라가라고 한다면 그 때는 그냥 케이블카를 타겠다.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쓸 때는 써야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긴 하지만 구도가 살짝 아쉬워 케이블카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다시 사진을 찍었더니 이제 마음에 든다.

오렌지색이 참 잘 어울리는 지상 위에 있는 천국이다.

ATV를 타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이 보였는데 내려가는 중이라 별로 부럽지 않았다.

만약 힘들게 걸어 올라오고 있는데 뒤에서 신나게 ATV를 타고 올라갔다면 엄청 부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탈 것을 타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없다.

내리쬐는 햇살이 정말 찬란하게 눈부시다.

비록 날은 덥지만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니 정말 행복하다.

크로아티아에 오니 잠자고 있던 감수성이 깨어나는 것 같다.

자꾸 빛에 대해 생각하며 사진을 찍게 된다.

뙤약볕에 산을 올라야하기에 물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서 나왔는데 바보같이 물을 사는 것을 까먹고 그냥 산을 올라갔었다.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았기에 내려와 처음 보인 슈퍼에 들러 물을 사서 그 자리에서 반 이상을 마셨다.

배고픈 것은 어느 정도 참으면 되지만 목이 마른 것은 참다가는 큰 일 날 수도 있으니 자주 물을 마셔줘야한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식사를 하기위해 레스토랑을 찾아가는데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식욕이 돋지 않는다.

아무 음식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는데 억지로 먹고 싶지 않아 그냥 길이나 걷기로 했다.

우리가 유럽의 골목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서양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북촌한옥마을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누가 잘났는지 따지지 말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은은한 등불이 참 포근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집을 사게된다면 은은한 조명으로 집을 꾸미고 싶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계속 감탄한 적은 많았지만 도시를 보고 계속 감탄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두브로브니크는 정말 아름답다.

분명히 사람은 많은데 시끌벅적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조용한 골목길 계단에 가만히 걸터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유럽을 떠나오며 흥미를 잃었던 유럽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내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땀을 많이 흘려 살짝 투통이 오길래 포도당 알약을 먹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여행할 때는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가지고 다니며 물에 타 마셨었는데 이제는 간단한 알약 2알이면 충분하다.

언젠가는 음식대신 모든 영양소를 알약으로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올텐데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난 아직 식욕을 조절할 수 없으니 피자를 먹어야겠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근처에는 식당이 하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또 피자를 샀다.

시간이 지나고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마을과 맛있는 피자가 떠오를 것 같다.

밥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술이라도 배터지게 먹기로 했다.

먹고 싶던 아이스크림과 0.5L가 추가로 들어있는 맥주, 감자칩을 샀다.

개인 숙소를 잡으면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어제 마트에 간 김에 오늘 먹을 아침으로 씨리얼과 우유를 사 왔다.

그릇 대신 코펠을 가지고 다니지만 설거지하기가 귀찮아 그냥 우유팩에 씨리얼을 타 먹었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까지 하늘이 화창하다.

숙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한 4km 정도면 갈 것 같아 걸어가기로 했는데 날이 정말 덥다.

그늘도 없어 힘들었지만 이미 걷기 시작한 길이니 계속 걷는다.

무언가를 하면서 쉽게 포기해도 안 되지만 힘든 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도 안 좋다고 하던데 난 최씨 똥고집이 있어 한번 고른 길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라 걱정이다.

버스터미널에 달려있는 온도계가 32도를 가리키고 있다.

더워서 그런지 1년 전에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봤던 온도계가 생각난다.


1년 전, 무더웠던 인도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시크교는 시크하지 않다 - http://gooddjl.com/178 를 읽어주세요.


버스에 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겨준다.

이제 더 동쪽으로 떠날 시간이다.


<크로아티아 여행 경비>


여행일 6일 - 지출액 1850쿠나 (약 33만원)

 

물가가 비싼 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피자를 자주 먹어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물가에 비해 숙박료가 조금 비쌌지만 아이스크림이 싸고 맛있어 즐거웠다.


지금까지 온 동유럽은 냉전시대의 사상을 기준으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지리적으로도 동유럽이라 부를 수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에 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1990년대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전쟁 도중에 독립했다고 한다.

나라 이름이 언뜻 보면 두개의 나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하나의 나라이다.

Vita를 보니 생명에 관련된 것 같기도 한데 도대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서 창 안쪽의 가게를 보니 약국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약국을 다닌 적은 베트남에서 피부병이 걸렸을 때를 빼고는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내 몸이지만 참 튼튼하긴 튼튼하다.

크로아티아까지는 유럽의 향기가 많이 났었는데 보스니아에 오니 유럽보다는 이슬람 문화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문화권이 바뀌니 신난다.

보스니아 여행의 시작이 시작된 이곳은 모스타르라는 도시다.

다리의 파수꾼들이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의 상징은 당연히 사진에 보이는 아치형의 다리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에 올라 잔잔히 흐르는 네레트바강의 푸른 물을 보고 있다.

강의 상류로 가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기로 했다. 

피곤할 때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줘야한다.

정말 맛있는데 한 스쿱에 1.5마르카(한화 1,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드디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는 나라에 온 것 같다.

날도 덥고 배도 안 고프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제 여행기가 재미있으셨다면


하트 클릭 한번과 댓글 하나만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