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에서 묵은 호스텔은 무료 맥주뿐만 아니라 아침에는 간단한 조식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조식으로 나온 씨리얼은 너무 눅눅하고 우유는 너무 밍밍한데다 양도 적었는데 더 준다고 해도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기에 버스를 기다리며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했다.
어제도 느낀 것이지만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큰 피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조각이 피자 한 판의 4분의 1 크기인데 맛도 좋고 가격은 9쿠나(한화 1,600원)밖에 안 한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자그레브에서 2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와야하는데 버스 안에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안 가져왔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려 30분 정도 기다려봤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점심에 먹으려고 한 조각을 더 사왔는데 비가 오니 손을 가볍게 하기 위해 미리 점심을 먹어버리기로 했다.
피자를 다 먹었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아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110쿠나(한화 20,000원)인데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국제학생증이 있어 할인을 받은 가격인데 만약 성인요금을 그대로 냈다면 180쿠나(한화 32,500원)을 내야한다.
페루에서 12달러를 내고 만들어서 지금까지 쓰고있는 국제학생증이 정말 사랑스럽다.
역시 여행은 젊을 때 해야 힘든 것도 모르고 조금이나마 싸게 할 수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는 여러 개의 코스가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난 가장 긴 코스를 가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우선 국립공원의 다른 입구로 가야 한다.
국립공원의 두 입구 사이에는 셔틀버스가 운행 중인데 입장권이 있으면 무료로 탈 수 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따라가 보니 푸른빛의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나 보다.
드디어 푸른빛의 호수와 녹빛의 나무들이 펼쳐내는 장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랜만에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유럽을 오래 여행하다보니 날것의 자연이 그리웠는데 정말 오랜만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니 설렌다.
위에서 내려다 본 플리트비체 호수의 모습은 꼭 신들의 정원처럼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보인다.
역시 나는 건물보다 자연을 봐야 심장이 뛴다.
어서 밑으로 내려가 가까이에서 호수를 보고 싶다.
사람이 만든 것보다 자연이 좋다니 이러다 출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레는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하는듯 빗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플리트비체 호수의 푸른빛은 석회에 의한 것이다.
호수는 석회암과 백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끼나 조류에 의해 생긴 탄산칼슘이 물속에 침전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리들이 이 물고기를 못 잡아먹는 것인지 안 잡아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천에 널려있는 물고기를 보고 있는 오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국립공원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길이 있어 산책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놨다.
빗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플리트비체 호수는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호수는 폭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폭포를 제대로 보려면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 된다.
등산이나 여행을 하다보면 힘이 들어 그만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더 힘들면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믿기에 다시 힘을 내서 계속하게 된다.
우리 삶도 이와 같아서 힘든 것을 참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여행이나 등산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취미이며 단기적인 것이지만 인생은 길고 싫다고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난 지금 힘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말보다 어차피 힘든 인생이면 자신이 진짜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 아니다.
청춘은 찬란하게 빛나고 신나야 한다.
물 흐르는 소리가 아름다워 괜히 사진을 찍어본다.
사진에 주변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기능도 있는 세상이라지만 나만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왠지 사진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몇번 말했지만 난 여행을 하며 각 도시나 나라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지만 최소한으로 기대하고 준비하는 것은 있다.
바로 각 대륙별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하는 것인데 처음 아시아 지역을 여행할 때는 네팔의 히말라야가 정말 가고 싶었고 남미에서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가고 싶었다.
유럽으로 넘어오면서는 프랑스의 몽생미셸을 가고 싶었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싶었다.
그 뒤로는 크로아티아를 정말 오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보다 시리즈에서 김희애 누나가 크로아티아를 왔기 때문은 아니다.
아무리 플리트비체 호수가 아름답다지만 이 호수때문에 크로아티아에 오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바로 크로아티아의 피아니스트인 막심 므라비차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CF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기에 막심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그의 피아노 연주는 한번씩 들어봤을 것 같다.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막심은 9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가 15살 때, 크로아티아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을 피해 지하실에 숨어 피아노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 뒤, 자그레브 콩쿨에서 우승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를 접했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어 크로스오버의 여러 음악을 듣다 막심을 알게됐었다.
그 뒤로 막심의 앨범을 모으다 결국 클래식 데뷔 앨범까지 크로아티아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구매할 정도로 빠졌었기에 언젠가는 꼭 크로아티아를 가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왔다.
그렇기에 기회가 된다면 크로아티아에서 막심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크로아티아에 머무는 동안에는 막심의 스케줄이 없었다.
내 몸은 젖어도 되지만 카메라는 젖으면 안 된다.
카메라나 핸드폰이 방수가 된다면 자연을 좀 더 가깝게 즐길 수 있을텐데 아쉽다.
어서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비가 와도 전자제품 걱정없이 비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우와. 고기다. 고기.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막상 키워보면 웬수라지만 나도 어서 내 자식을 키워보고 싶다.
비가 그치고 하늘도 조금씩 맑아지고 있는데 아직은 빛이 좀 많이 아쉽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날씨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처음에는 세게 내리던 비가 잔잔해진 것만으로도 고맙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선착장이 나오고 화장실과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도시락으로 싸온 피자를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피자는 이미 내 뱃속에 있다.
선착장에서는 무료 셔틀보트를 운행하고 있다.
입장료를 냈으니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게 좋다.
그런데 아름다운 곳이라 그런지 다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왔다.
하나도 부럽지 않다.
진짜다.
진짜 진짜 하나도 부럽지 않다.
예쁘게 다듬어진 것도 좋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좋다.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서 그런지 폭포소리도 시원하다.
날씨가 흐린 것이 아쉬워 카메라의 노출을 맞춰보려 애를 써봤지만 역부족이다.
자연을 컨트롤할 수 없으니 자연이 주는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이 주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게 삶이듯이 원하는 날씨가 아니라면 기다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된다.
갑자기 자연은 그대로인데 변하는 것은 사람 마음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직은 속세에 미련이 많은데 자꾸 절에 들어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머리깎고 절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전에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까지 오는 버스는 편도 100쿠나(한화 18,000원)인데 플리트비체에 도착해서 돌아가는 버스표를 미리 사놓는 것이 좋다.
좌석버스인데 배차간격이 30분~1시간이라 호수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몰리는 오후 시간대에는 표를 구하기 힘들다.
크로아티아의 물가에 대해 감을 잡았으니 이제 다시 환전을 할 때다.
환전을 할 때는 환율도 중요하지만 수수료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난 술을 좋아해서 아마 절에는 못 들어갈 것 같다.
원래 맥주는 술이 아니지만 자몽 맥주를 마시니 달달한 음료수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맥주를 마시며 거리 구경을 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이름이 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대성당 앞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해서 한국도 있나 찾아봤는데 Korea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거리 한쪽에서 말을 탄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뭔가 행사가 있을 것 같아 행렬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군악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성당 앞에 정렬을 하기 시작한다.
맥주를 안 마셨다면 거리 구경도 안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 행사도 못 봤을텐데 역시 맥주는 은총이 넘치는 술이다.
그런데 왼쪽에 있는 말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침을 흘린다.
밖에서는 정렬만 하고 가만히 있길래 혹시 성당 안에 뭔가 특별한 행사가 있나 들어가봤는데 그냥 평범한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성당 앞에는 마리아상이 있는 광장이 있는데 날이 더울 때 맥주 한잔하기 딱 좋은 공원이었다.
마리아님 앞에서 술 마실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불경스러운 것 같다.
시내 구경이나 할 생각에 아무 길이나 따라 들어갔는데 식당가가 나왔다.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나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딱히 내 마음에 드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 식당에 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상하게 숙소에서는 분위기를 찾지 않는데 술집은 맥주 한잔을 마시더라도 분위기를 찾게 된다.
이곳은 스톤게이트인데 1731년,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이 탔지만 안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찾아간 날도 한 분이 정말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계시길래 옆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자그레브 시내 중심에는 반 옐라치치 동상이 있다.
반 옐라치치 백작은 헝가리제국의 침입을 막은 크로아티아의 영웅이라고 한다.
영웅의 옆에는 행사 리허설이 진행중이었는데 예쁜 누나들이 보였다.
역시 영웅은 미녀를 차지하나보다.
게임관련 행사였는데 각국의 누나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자그레브 곳곳에는 자그레브의 모든 유적지를 다 표시 해놓은 것 같은 표지판들이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어디를 가도 다 유적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었다.
어쩌다보니 자꾸 피자만 먹고 있는데 정말 맛있긴 맛있다.
호스텔로 돌아와 오늘도 프리 비어를 마신다.
공짜로 맥주를 주는 것은 좋지만 도미토리가 창문도 열리지 않는 옥탑방이라 너무 덥다.
그래서 최대한 밖에서 놀다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더위를 느끼기 전에 잠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도 나름 재미있다.
여행을 다녀보니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그 고생이 재미있어서 여행을 계속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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