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온 호스텔은 조식 뷔페를 운영하고 있다.
뷔페라고 한번에 많이 덜어오지 말고 조금씩 덜어다 여러번 먹어야 지적으로 보인다.
아침을 먹고 밖을 보니 날씨가 맑은 것을 넘어 태양이 살갗을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아침부터 나가 진을 빼느니 잠을 더 자기로 하고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역시 여행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맛에 한다.
5시간이 넘도록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밖에 나오니 이제야 살 것 같은 날씨다.
영화에서 본 폴란드는 항상 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의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폴란드에 와서 보니 더워도 너무 덥다.
알고보면 따사로운 나라인데 두번의 세계대전 중 폴란드가 겪었던 상황이 폴란드를 항상 추운 나라로 인식하게 만든 것 같다.
쨍쨍한 하늘 아래 있는 가로수의 모습이 아름다워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어봤는데 내가 느꼈던 쨍한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역시 사진은 어렵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는 Nowy Swiat 거리이다.
Nowy Swiat은 신 세계라는 뜻인데 18세기부터 노비 쉬아트 거리라 이름을 붙였고 19세기부터 바르샤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성 십자가 교회인데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는 교회로 유명하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은 음악 공부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해 살고 있던 중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 의해 분할 지배당하던 폴란드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 뒤, 쇼팽은 독립운동을 위해 폴란드로 돌아가려했는데 그의 영향력을 무서워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정부에 의해 입국이 거부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외국에 머물며 연주회로 얻은 수익을 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지하던 쇼팽의 폴란드 입국 금지는 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풀리지 않았고 바르샤바를 통치하고 있던 러시아는 그의 시신조차 입국을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에게 자신의 심장만은 폴란드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쇼팽은 1849년에 숨을 거뒀는데 시신은 프랑스에 묻혔고 그의 심장은 누나가 몰래 폴란드로 가져와 이 교회 지하에 묻어줬다고 한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데 죽어서도 가지 못하는 쇼팽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먹먹해진 내 마음을 대변해주듯이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숙소로 돌아갈지 고민하다 조금만 더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입구가 보이길래 가까이 가보니 바르샤바 대학교의 정문이었다.
내부가 궁금해 들어가봤는데 딱히 볼 것은 없는 작은 규모의 캠퍼스였다.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교에 볼거리를 찾으러 다니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
하늘이 꾸리꾸리하더니 걱정하던대로 비가 내렸다.
괜찮은 펍이 있으면 빗소리를 안주삼아 맥주나 한잔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문을 연 펍이 없길래 그냥 빌딩 밑에서 비를 피했다.
30분 정도 소나기가 내렸는데 이 비로 인해 내일은 좀 선선했으면 좋겠다.
바르샤바에 와서 케밥만 먹고 있는 것 같다.
호스텔 주위에 딱히 먹을 것이 없기도 하지만 주인 아저씨도 재미있고 케밥도 맛있어서 자꾸 가게된다.
여행을 하는 지역에 따라 빨래를 하는 방법도 다르다.
아시아 지역을 여행할 때는 큰 통을 빌려 손 빨래를 했었고, 남미에서는 빨래방이나 욕실에서 손 빨래를 했었다.
유럽은 빨래방도 비싸고 통을 빌릴 수도 없어 좀 넓은 욕실을 가거나 가끔씩 돈을 내고 호스텔의 세탁기를 이용했었는데 이번 호스텔은 세탁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가지고 다니던 모든 옷을 다 빨고나니 개운하다.
니가 취하고 비틀대고 방황하고 실수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아 누구나 한번쯤은 바닥치니
죽는단 말대신 웃는단 얘길해봐
고장난 시계도 시간은 흘러가지
앙상한 가지도 봄이오면 꽃이피지
청소해 더럽게 어지러운 니방부터
청소해 축축히 우울해진 머릿속을
괜찮아 괜찮아 잘될거야
오늘은 살아있네
고장난 시계가 멈췄어도
오늘은 살아있네
같이걷고 같이널어 햇볕에
우울한 빨래를 짜내버려
단 한번만이라도 내 인생을
선택해 세탁해 삶은
삶은 세탁이다
크라잉 넛 - 5분 세탁
여행을 하며 여러 과일을 봤지만 납작한 복숭아는 유럽에 와서 처음봤다.
영국에서 처음 봤을 때는 약과처럼 생긴 모습이 신기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 못 사먹었는데 폴란드에 와서야 먹게됐다.
맛은 복숭아 맛인데 납작해서 입에 묻지 않아 먹기 편했다.
비도 그쳤고 해도 졌으니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이번 여행기 주제가 더위로 잡힌 것처럼 느껴지는데 실제로 정말 더워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시원해서 그런지 낮보다 야경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인도에 있을 때도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길래 시원한 북쪽으로 도망갔었는데 이번에는 자꾸 러시아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러시아로 올라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에는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니 차선책인 시원한 맥주로 내 몸을 달래줘야겠다.
늦게 일어났더니 조식뷔페를 마감하고 있길래 푸짐하게 한 접시를 담아왔다.
오이에서 비린내가 느껴져 못 먹는 사람들도 있던데 난 아삭하고 시원한 오이가 정말 좋다.
단선된 노트북 충전기를 고쳐보려고 절연테이프 사진을 들고 시내를 돌고 돌아 철물점을 찾았다.
단선된 부분의 피복을 벗겨내고 전선을 잘라 다시 연결해주면 간단하게 수리가 끝난다.
간단하게 수리가 끝날 줄 알았는데 콘센트를 꽂아보니 충전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그냥 수리점을 가면 된다.
알파벳을 쓰는 문화권은 언어를 몰라도 대충 유추할 수 있어서 좋다.
가격이 많이 비싸면 중고 충전기를 하나 사려고 했는데 50즈와티(한화 15,000원)이라길래 그냥 수리를 해달라고 했다.
수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해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하늘에 구름이 껴 있어 오늘은 많이 덥지도 않고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날씨다.
특이하게 생긴 이 건물은 문화과학궁전인데 과거 소련시절 세워진 건물이라고 한다.
소비에트는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를 모델로 한 대학교를 세우려고 했었는데 폴란드가 문화와 과학 센터를 더 원해 대학교 디자인을 가진 문화과학궁전이 세워졌다고 한다.
소비에트 지배시절을 나타내는 건축물이 시내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상황인데 폴란드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이 건물을 보고 바르샤바를 떠올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소련의 영향으로 폴란드에는 성냥갑처럼 생긴 건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노란색 페인트와 발코니로 이루어진 건물은 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건물들도 있지만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회색빛의 성냥갑처럼 생긴 건물들이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독일에 의해 80%이상이 파괴된 바르샤바는 소련의 통치 하에 도시 재건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 지금처럼 획일화된 건물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획일화된 건물들을 보니 우리나라도 노태우 정권 시절, 분당과 일산 지역에 주택 200만 호를 건설하면서 거의 찍어내다시피 건설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저번에 맛보기로 지나갔던 신세계 거리를 이번에는 처음부터 지나가 보기로 했다.
폴란드에서는 길거리에 있는 꽃집을 자주 볼 수 있다.
폴란드 사람들은 꽃을 사랑하는데 연인 사이에도 많이 주고 받지만 상대방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에도 꽃을 들고 간다고 한다.
신세계 거리는 한국의 명동같은 곳이라고 하는데 직접 와보니 명동보다는 가로수길과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았다.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식사나 한번 해보려했는데 가격도 우리나라 가로수길과 비슷한 가격이길래 그냥 구경만 했다.
바르샤바의 거리에는 특이한 의자들이 있는데 바로 쇼팽의 의자다.
의자에 앉아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피아노 곡이 흘러나온다.
바르샤바 공항의 이름도 쇼팽 공항이라는데 바르샤바 사람들의 쇼팽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신세계 거리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바르샤바의 구시가지가 나온다.
구시가지의 앞부분에는 잠코비 광장이 있는데 광장에는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있다.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의 수도를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이전한 폴란드의 국왕인데 스웨덴 국왕도 겸직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스웨덴 국왕인 요한 3세였고 어머니는 당시 폴란드 국왕인 지그문트 1세의 딸 카타리나였다고 하니 제대로 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간단히 피에로기를 먹으러 갔다.
이번에는 시금치 피에로기였는데 사워크림 소스와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아직 동유럽의 초입이라 그런지 물가가 많이 싸지는 않아 식당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기에는 조금 부담이 된다.
아까 말했듯이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의 대부분은 폭격으로 무너졌고 구시가지 또한 폭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폴란드 정부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진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복원하기로 하고 전쟁 전에 시가지가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청사진을 만든 뒤 그에 맞춰 모든 것을 복원했다고 한다.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이곳은 바르바칸이라 불리는 곳인데 성의 외벽 요새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그림을 바탕으로 복원해서 그런지 동화 속에 나오는 골목길처럼 생겼다.
종교는 없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부디 이 세상 모든 곳에 빛을 주셨으면 좋겠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길래 성벽에 걸터앉아 음악을 들었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즐겨들었더라면 쇼팽의 음악을 들었겠지만 내 이어폰에서는 밴드 음악이 나온다.
그림을 보고 복원한 구시가지이기에 바르샤바의 기념품은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그린 그림들이다.
여행을 마치기 전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보이지가 않는다.
아마 짐을 만들기 싫은 내 무의식이 일부러 하나씩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림과 사람들의 기억을 이용했다지만 모든 것을 실제에 기초를 두고 복원했기에 1980년에 유네스코에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바르샤바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곳에 평화가 가득해 무너진 도시를 다시 복원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맡겨두었던 충전기를 찾아왔다.
잘 작동이 되는 기념으로 캔맥주를 하나 마시며 여행기를 한 편 쓴다.
앞으로는 아프지 말고 집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버텨주면 좋겠다.
여행기를 쓰는 동안 또 비가 왔었나보다.
유럽의 여름은 습하지 않아서 좋은데 너무 쨍하다.
폴란드의 맥주를 다 먹고 싶은데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바르샤바에 와서는 케밥만 먹는 것 같은데 지금 먹는 케밥 맛을 잘 기억해뒀다가 터키에 가서 비교해봐야겠다.
일때문에 바르샤바에 온 폴란드 친구인데 나보고 폴란드의 뭐가 좋냐길래 Piwo(맥주)라고 하니 한참을 웃는다.
폴란드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봤는데 폴란드도 경제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한다.
이 호스텔에서는 도미토리에 묵어도 수건도 제공해주는데 자꾸 누가 내 수건을 쓴다.
리셉션에 말하면 새 수건을 줄텐데 오늘은 내 수건으로 샤워도 했길래 그냥 리셉션에 말하고 새 수건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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