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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칠레-Chile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067. 지옥의 푸콘 화산 트레킹.



안녕하세요.

여행기와 현실의 시간을 적당히 맞추기 위해

이번 주에는 2편의 여행기가 올라갑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아무리 부실하더라도 조식을 주는 숙소가 제일 좋다.

엘 칼라파테에서 묵은 숙소는 친절하게 식빵까지 미리 구워놓아 먹기 편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사람들이 빤쵸를 먹는다고 해 나도 사러갔는데 지금까지 먹던 빤쵸와는 다른 고급 빤쵸였다.

9가지 소스 중에 3가지를 골라서 넣을 수 있고 그 위에 감자칩을 얹어준다.

가격은 콜라 하나를 합해 35페소(한화 3,500원)정도 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래도 소시지는 호주에서 7개월 동안 먹은 걸로 만족하니 그만 먹고 싶다.
초록색 코카콜라는 처음 봤는데 뭔가 자연의 맛이 났다. 

엘 칼라파테에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많이 있는데 노스페이스 매장에 들어가 두꺼운 장갑을 보니 1,000페소(한화 100,000원)이 넘는다.

역시 어디를 가도 브랜드 제품은 비싸다.

또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이번에 갈 곳은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바릴로체인데 엘 칼라파테에서 버스로 30시간을 가야한다.

이번에도 파타고니아의 여행관문인 리오 가셰오스에 들러 경유한다.

이번으로 3번째 방문하는 것인데 주위에 볼 것이 하나도 없기에 버스 정류장에만 있는다.

아르헨티나에서 버스를 타면서 짐을 맡기면 버스터미널에서 일하는 포터가 짐을 싣어주는 대신 팁을 줘야한다.

짐은 내가 실어도 되는 것인데 무조건 짐을 맡겨야하니 팁으로 주는 돈이 아까웠었는데 오늘 이 포터를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우리들은 추위를 견디고 있는데 포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길래 평소에는 2~5페소를 주다 이번에는 10페소를 줬다.

팁 문화가 없던 곳에 살았기에 팁 개념이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이니 인정하고 서비스를 받았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배가 고파 언제 밥을 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밥을 준다.

양이 좀 적었는데 앞에 앉은 사람은 승무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하나를 더 먹는다.

스페인어를 잘 해야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아르헨티나에는 수배자가 많은지 곳곳에서 검문을 한다.

군인이 버스 안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지만 난 확실한 동양인이라 그런지 내 여권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은 누나가 감탄사를 내뱉길래 창 밖을 보니 쌍무지개가 떴다.

그냥 무지개만 떠도 기분이 좋은데 쌍무지개를 보니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오늘도 와인과 함께 한다.

무지개를 안주 삼아 술병을 기울이니 이태백이 된 기분이다.

이번에 탄 버스는 까마등급인데 밥은 전혀 까마스럽지가 않았다.

밥에 대해 불평은 해도 맛있게 먹는다.

이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우수아이아까지 50시간 동안 버스를 타봤기에 장거리 이동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에 탄 버스는 좀 힘들었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고작 30시간 버스를 탄다고 몸이 힘들다고 한다.

바릴로체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길래 그냥 버스터미널 근처의 호스텔에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 빈 방이 없다고 한다.

숙소에 빈 방이 없으면 시내로 들어가면 된다.

바릴로체의 버스는 무조건 교통카드만 써야하는데 저번에 우수아이아에서 만난 분이 바릴로체 버스카드를 주셔서 걱정 없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다.

시내에 도착해 3시간이 넘도록 숙소를 돌아다녔는데 바릴로체에 있는 모든 호스텔에 빈 방이 없다고 한다.

이제는 기도 안 차서 그냥 버스터미널로 돌아가 노숙을 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 자신이 처량해 보였다.

남미에서 노숙만 하는 것 같아 욱 하는 마음에 그냥 호텔에 가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500페소(한화 50,000원)짜리 호텔들도 방이 없다고 한다.

아까 들렀던 호텔에 300페소짜리 방이 있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다시 찾아 갔더니 로비에서 엘 칼라파테에서 만났던 한국인 누나를 만났다.

우리가 인사하는 것을 보고 직원이 둘이 같이 쓰면 130페소만 내면 된다했지만 미안해서 300페소짜리 방에서 잔다고 하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자기가 잘못말했다면서 600페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방을 같이 쓰겠다고 하니 같이 쓰는 값이 300페소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따졌지만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하고 있기에 그냥 300페소에 같이 자기로 했다.


숙소를 찾느라 진이 빠져 바릴로체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기에 바로 바릴로체를 떠나려하는 날 보고 누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성수기라 방이 없는 것이지, 바릴로체는 잘못이 없다며 바릴로체를 즐기고 떠나라는 조언을 해주신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기에 숙소를 찾아보는데 오늘도 방이 빈 곳이 없다.

원래 성수기인데 달력을 보니 금요일이라 아르헨티나 애들도 많이 놀러와 방이 없는 것 같았다.

성수기에는 숙소를 예약하고 다녀야하지만 이 넓은 바릴로체에 내 한 몸 누일 숙소가 없겠냐는 오기를 부렸다가 된통 당했다.

결국 바릴로체를 그냥 떠나기로 하고 비싼 숙소에서 바릴로체 호수를 본다.

그런데 딱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모습이 스위스의 모습과 닮았다면 스위스가 전혀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호텔이라고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 요거트가 나온다.

비싼 돈을 내고 먹는 아침이니 열심히 먹는다.

설탕이 담긴 종지가 깨져있다.

한국이라면 깨진 그릇을 쓰면 재수가 없다고 바꿨겠지만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깨진 그릇을 보다보니 문화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그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방이 없으니 떠날 수 밖에 없어 터미널로 버스표를 끊으러 가는데 버스가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마치 바릴로체를 즐기지 못하고 떠나는 나를 위로해주듯 언덕에서 바릴로체의 전경을 보여준다.

생각지도 않았던 바릴로체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누님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내가 안일하게 생각해서 일어난 일인데 애꿎은 바릴로체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었다.

바릴로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남기기 보다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로 넘어가는 버스가 1시에 있다길래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원래 혼자 쓸 수 있던 방을 내어준 것이 고마워 숙소로 돌아가 누님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과 여행에 대한 여러 조언을 들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조언을 들었을 때 내 고집을 내세우기려 하기보다는 감사함을 알고, 나에게 필요한 부분은 고쳐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바릴로체를 떠나게 되어 페소가 좀 남길래 누님께 깜비오(환전)을 해드리고 남은 돈으로 식량을 샀다.

버스 시간이 애매해 점심을 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점심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마요네즈를 좋아하는지 항상 마요네즈가 같이 나오는데 난 마요네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건강을 생각해 먹지 않는다.

칠레 국경을 넘는데 이번에는 모든 짐을 꺼내놓고 탐지견이 냄새를 맡는다.

전에 말했듯이 과일과 치즈, 고기와 같은 것을 가지고 칠레에 입국하려다 걸리면 벌금을 낼 수도 있기에 점심용으로 사 놓은 샌드위치가 있다고 자수를 했다.

우수아이아를 갈 때 지났던 국경에서는 작은 것들은 그냥 봐줬었는데 이번에는 다 먹던가 버리라고 한다.

우선 입국심사를 받고 먹겠다고 말을 해놓고 다시 봉지에 넣어놨는데 탐지견이 내 샌드위치 냄새를 못 맡았다.

탐지견이 냄새를 맡은 짐을 가진 사람들은 조사를 받아야하는데 난 걸리지 않았기에 눈치를 살피다 그냥 세관통과를 했다.

배가 불러 샌드위치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걱정했었는데 운이 좋았다.

마약도 아니고 고작 25페소(한화 2,500원)짜리 샌드위치인데 걸릴까봐 버스에 다시 탈 때까지 조마조마했다.

버스에 한국인이 있길래 대화를 하다가 바릴로체에서 잠만 잤다며 어젯밤의 이야기를 했더니 바릴로체의 초콜렛도 못 먹어봤냐며 초콜릿 한 통을 꺼내 주신다.

엄청 맛있어서 많이 샀으니 걱정말고 먹어보라고 하시는데 정말 고마웠다.

역시 한국인의 정은 최고다.

<아르헨티나 여행 경비>

여행일 23일 - 지출액1150USD (약 120만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암환전을 이용해 1USD 당 10페소 정도로 바꿔서 총 11,500 페소를 썼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싼 밥을 몇 번 먹었고 버스비가 꽤 비쌌다.
하지만 와인의 가격이 싸 항상 마시면서 다녀도 부담이 되지 않아 즐거웠다.

처음 남미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하루 45,000원 정도를 잡았었는데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만약 암환전이 없었다면 비싸서 여행을 할 엄두가 안 났을 것 같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칠레의 국경마을인 오소르노에 도착했다.
오소르노에서 내 다음 목적지인 푸콘까지 가는 마지막 버스는 내가 도착하기 15분 전에 떠났다고 한다.
어차피 푸콘에서 하루를 묵나, 오소르노에서 하루를 묵나 똑같기에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도시라 그런지 숙소가 몇 없어 1인실을 10,000페소(한화 20,000원)에 잡았는데 칠레의 무서운 물가가 실감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뽑아야한다.
칠레의 은행은 외국인이 돈을 뽑을 때 엄청난 수수료를 물리기로 유명하기에 수수료가 없는 은행을 찾아봤지만 오소르노에는 없는 것 같았다.
결국 200,000페소를 뽑는데 4,000페소의 수수료를 냈다.
40만원 뽑는데 8천원의 수수료를 떼가고, 한국에서는 별도로 6천원 정도의 수수료가 나가니 가슴이 아프다.
더이상의 인출없이 지금 뽑은 돈으로 칠레 여행을 끝마치는 것이 목표다. 

마트를 구경하고 있는데 낯익은 제품이 보여 가보니 한국의 게맛살이다.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한국의 게맛살을 만나다니 반가워 사고 싶엇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점심으로 먹으려던 아르헨티나산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으로 저녁을 때운다.
칠레도 맥주를 사면 병 보증금을 내야하길래 400페소를 병 보증금으로 냈다.
맥주를 다 마신뒤 마트로 돌아가 병을 반납하고 요거트를 골랐더니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충 눈치로 스페인어를 들어보니 액체류만 된다길래 다시 콜라를 가져왔더니 이것도 안된다고 한다.
용량이 문제인 것 같아 1L짜리 콜라로 바꿔왔는데도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답답해 하고 있으니 영어를 할줄 아는 직원이 와서 설명을 해주는데 병 보증금으로 낸 돈은 환불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오직 다음에 병 음료를 살 때에 한해 병 보증금을 안 내도 된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난 내일 다른 도시로 떠날 거라고 이야기 하니 보증금은 못 돌려주지만 내가 원한다면 빈 맥주병을 돌려줄 수 있으니 그 곳에 가서 쓰라고 하길래 그냥 괜찮다고 말을 하고 나왔다.
앞으로 칠레에서는 와인만 마셔야겠다. 

아침부터 크림 소스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다.
매번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다가 칠레에 넘어오니 크림소스를 팔길래 신이 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2인분의 면을 삶아 먹었는데 햄을 넣었더니 행복했다.

아침을 챙겨 먹었으니 다시 버스를 타고 내가 원래 가려했던 푸콘으로 이동한다.
시간이 촉박했다면 어제 버스를 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웠겠지만 난 넘치는게 시간이니 전혀 아쉽지 않다.
역시 여행은 돈보다는 기간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도 나처럼 시간만 넉넉한 것보다는 돈도 조금 균형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드디어 목적지인 푸콘에 도착했다.
푸콘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가 사람들이 화산트래킹을 할 수 있다길래 푸콘을 들렀는데 마을에서 화산이 보인다.
저런 산을 올라간다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왜 난 눈 덮힌 산을 직접 밟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까.
내가 생각해도 참 유치한 것 같지만 눈으로 보기보다는 직접 밟는 것이 훨씬 좋다. 

그런데 칠레에 들어와 난관에 봉착했다.
나라가 깔끔하기는 하지만 물가가 너무 비싸다.
식당을 가기에는 비싸고 길거리에는 파는 음식이 없어 어떻게 해야 고민하다가 그냥 마트에서 파는 조리식품을 먹기로 했다.
닭다리가 자꾸 유혹하길래 하나를 고르고 대형 엠빠나다를 골랐는데 약 2,000페소(한화 4,000원) 정도 나왔다.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돈의 단위는 페소를 쓰지만 돈은 다르다.
칠레 페소의 가치를 한국 돈으로 바꿀 때는 그냥 곱하기 2를 하면 편하다.

내일 푸콘 화산을 올라가는 트레킹을 예약해 놓고 마을을 둘러본다.
여행객들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호수가 있다길래 가보니 다들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한국의 해변과 마찬가지로 돈을 받고 파라솔을 빌려주고 있었는데 파라솔 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자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니 어디서 이상한 문양이 보였다.
아놔, 이것들이 장난하나.
태어나서 밀러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마실 일이 없을 것 같다.
최근에는 일본이 가미카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던데 원래 정상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갈 줄은 몰랐다.
참 웃기는 세상이다. 

저녁은 역시나 스파게티다.
난 정말 밥을 해먹기가 싫은데 비싼 물가가 나를 울린다.
그래도 내일 화산 트래킹을 해야하니 고기를 듬뿍 넣어 먹는다.

내 사랑 아보카도를 샀는데 남미는 호주처럼 부드러운 아보카도를 안 먹는 것 같다.
단단해서 포크로 으깨서 먹는데 올리브가 없어 20%정도 부족한 맛이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밴을 타고 30분정도 가면 비야리카 화산의 초입에 도달한다.
비야리카 화산 트래킹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가 오면 트래킹은 취소된다.
그래서 엘 칼라파테에서부터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하며 일정을 조절한 결과, 화창한 날에 오를 수 있었다. 

초반부분에는 리프트가 있는데 8,000페소(한화 16,000원)이다.
화산 트래킹 가격만 35,000페소(한화 70,000원)이기에 지출이 커 그냥 걷기로 했다. 
어차피 1시간만 걸어가면 8,000페소를 아낄 수 있으니 내 다리를 믿으며 걸어 올라간다. 

하지만 1시간 정도 길을 올라오면서 리프트를 왜 안 탔는지 정말 후회했다.
일반적인 산이 아니라 화산이기에 능선이 없이 가파르고, 모래로 이루어진 길이라 걸을 때마다 미끄러져 힘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가이드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며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결국 리프트가 끝나는 곳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는데 엘 칼라파테에서 했던 빅아이스 투어의 가이드들이 그리워졌다.

비야리카 화산은 예전에 스키장으로 이용됐었는데 몇 년 전에 일어난 화산폭발로 인해 스키장은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눈이 있는 곳에 들어서자 피켈의 사용법과 경사에서 미끄러질 때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일부러 미끄러진 뒤, 제동을 거는 법을 실습했는데 실전에서 써먹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이젠을 낄 정도는 아니라며 피켈만 들고 산을 올라간다.
남미에 와서 눈이나 얼을음 밟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한 적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빙하를 밟고 이제는 또 눈을 밟고 있다.

꼭대기가 보이는데 이제 겨우 반 정도 온 것 같다.

눈 길에 접어든 뒤부터는 다행히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을 취한다.
약 50분 정도 올라가고 10분 정도 쉬는데 배가 고프길래 아르헨티나에서 사온 비스킷을 먹는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찍길래 나도 오랜만에 셀카를 한장 찍었다.

네팔에서 산 장갑인데 정말 따뜻하다.
혹시나 쓸 일이 있을까봐 일부러 비싼 장갑을 사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쓸 일이 자주 있다. 

호주에서 엄마에게 공수받은 선크림도 계속 바른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가이드들이 태양이 엄청 강하니 선크림을 꼭 덧바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날 처음, 새 선크림을 뜯어서 발랐는데 나중에 숙소에 돌아가서 보니 없었는데 정말 아까웠다. 

바릴로체에서 만났던 분이 주신 초콜릿을 이제야 먹는다.
달달하니 정말 맛있다.
바릴로체에서 초콜릿을 못 먹어봤다니 초콜릿 한개를 통째로 주신 천사같은 분, 정말 감사합니다.

정상을 약 30분 정도 남겨놨는데 양쪽 무릎이 아프다.
마치 쥐가 난 것처럼 다리가 안 움직여진다.
사람들이 다들 정상을 향해 가길래 참고 가보려했지만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결국 가이드를 불러 도저히 못 가겠다고 잠시만 쉬었다 가자고 말을 했다.
가이드도 이제 30분만 가면 되니 힘내라고 하고, 눈 앞에 정상이 있는데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기에 다리를 미친듯이 때렸다.
한 5분정도 마사지를 하니 움직일 수 있길래 천천히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분 정도 걸어가니 또 다리가 안 움직여 다시 쉬었다가 출발했다.
내 체력이 줄어든 것인지, 초반에 무리를 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엄청 당황스러웠다.

쉬엄쉬엄 올라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다리는 괜찮은데 신경을 많이 썼더니 이제는 목에 담이 와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정상에 도착했으니 구경은 해야한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에도 백록담도 있지만 물이 차있어 온전한 분화구를 본 적이 없어 이번 비야리카 화산을 엄청 기대했었다.
그런데 가스가 계속 올라오고 완전한 속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었다.

가스의 분출 정도에 따라 화산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내가 간 날은 가스가 많이 분출되지 않아 딱히 시간을 정해주지는 않았다. 

한 바퀴를 돌며 근처의 산들을 소개시켜주는데 주변에 화산이 꽤 많다.
그리고 화산의 높이도 꽤 높은데 가이드들은 산을 돌아가면서 투어를 진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산들의 이름은 듣자마자 다 까먹었다. 

가스가 올라와 버프를 썼는데 별 효과가 없다.
그래도 군대에서 했던 화생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기에 그냥 기침만 하고 만다.

거대한데 용암이 없다.
5년 정도 전에는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보였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아, 빙하도 보고, 설산도 봤는데 용암이 정말 보고 싶다.
마그마를 어디선가 볼 수 있겠지. 

열심히 올라온 당신, 썰매를 타고 내려가라.
투어비 35,000페소에는 겉옷과 등산화, 배낭, 피켈, 썰매 등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있다.
특히 바지와 엉덩이 보호대가 있어 경사가 심한 곳은 썰매없이 그냥 엉덩이로 내려간다. 

약 1시간 정도를 계속해서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마치 봅슬레이를 타는 기분으로 썰매를 타는데 정말 신났다.
그런데 정상에서부터 아프던 머리가 계속 아팠는데 만약 썰매가 없이 올라온 길을 그대로 내려와야했다면 정말 쓰러졌을 것 같다.
태어나서 이렇게 긴 썰매는 처음 타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비야리카 화산에 올라가는 이유는 분화구의 모습을 보러 가는 것보다 이 썰매를 즐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올라갈 때는 푹푹 꺼지면서 나를 힘들게 하던 초반 길이 내려갈 때는 정말 편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올라올 때는 다리가 아파 꼴지로 올라갔었으니 내려갈 때까지 꼴지로 내려 갈 수 없어 열심히 미끄러졌더니 다행히 꼴지는 면했다.

고생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어 레스토랑에 가서 고기를 썰려했는데 도미토리에 한국인이 들어와 같이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런데 다리가 아픈 것이 계속 신경쓰이는데 부디 괜찮아야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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