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분위기가 다들 저녁을 먹는 분위기였다.
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바람을 쐬고 있는데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녁이 공짜인데 왜 안 먹냐고 물어본다.
공짜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난 무료인지 몰랐다고 하니 식당에 데리고 들어가 이야기를 하는데 쿠폰이 있어야한다며 버스표를 살때 못 받았냐고 물어본다.
난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버스 기사 아저씨를 불러와 왜 난 쿠폰이 없냐고 대신 물어봤는데 내 표는 일반표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버스표를 사면서 학생할인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표를 샀었는데 할인되면서 식권도 빠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것이 먹는 걸로 차별하는 것이라는데 남들은 다 주고 나만 안 주니 살짝 서러워졌지만 버스표를 싸게 샀다는 것으로 위안삼았다.
12시간 정도 걸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에서 50시간짜리 버스를 탄 뒤로 12시간 정도 타는 버스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일테니 불가리아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에서 가장 큰 도미토리를 신청했더니 다락방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깔끔한 호텔도 좋지만 이렇게 최소한의 침대만 있는 곳도 좋다.
내가 극단적인 것인지 모르겠는데 뭐든지 애매하기보단 한쪽으로 치우친 것에 끌린다.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본 골목길인데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이 왠지 느낌이 좋다.
배가 고파 시장에 갔는데 직접 짠 생과일 주스들을 팔고 있었다.
당근 주스가 먹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해 당근 사진을 보여주니 웃으며 당근 주스를 준다.
여행을 하기 위해 꿀피부가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피부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폼클렌징과 수분크림은 바르고 있다.
가지고 있는 화장품이 다 떨어져가고 있어 마케도니아에서부터 화장품 가게를 들르고 있는데 가격이 비싸 미루다보니 불가리아까지 오게됐다.
무슨 브랜드를 살까 고민하다 인도에서 썼던 히말라야 수분크림이 떠올라 히말라야 제품으로 구매했다.
절대 33% Extra Free라는 말에 혹해서 산 것이 아니다.
쇼핑도 했으니 배를 채워야하는데 시장에서 볶음밥을 팔고 있길래 고기와 밥을 샀다.
오랜만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밥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역시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한다.
밥을 먹었으면 맥주를 먹는 것도 당연하다.
Cold Edge라 써있는 곳이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불가리아어는 모르지만 맥주 맛은 아는데 맥주 맛이 참 좋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디저트 가게가 보여 들어갔는데 다양한 스윗들을 팔고 있다.
뭘 먹어야할지 몰라 푸딩을 추천받았는데 달콤하니 정말 맛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가리아가 친근하더니 물가도 저렴하고 음식도 맛있을 것을 예상했나보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씨리얼은 정말 사랑스럽다.
요즘은 한국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아침을 밥 대신 토스트나 씨리얼로 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외국 여행자들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이지만 한국인의 밥 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호스텔에서 받은 지도에는 소피아에도 한강과 같은 강이 있었는데 물은 보이지 않고 포크레인만 보인다.
강가에 있는 포크레인을 보니 불가리아에서도 명박각하가 떠오르는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공사 중이라 지나갈 수 없으니 지하로 우회해야한다.
지나가면서 역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깔끔했다.
소피아의 대부분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지하철은 구경만 하기로 했다.
어제는 실내 시장을 갔으니 오늘은 야외 시장을 가기로 했다.
각종 과일들을 팔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어져 작은 수박 한 통을 샀다.
수박을 사고 나서야 호스텔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 수박을 들고 다녀야한다는 것이 떠올랐는데 이미 산 수박이니 어쩔 수 없다.
불가리아에는 불가리아정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기에 당연히 모스크가 있다.
소피아의 중심에는 세르디카 유적지가 있다.
3세기경 로마인들에 의해 성벽들과 다양한 건물들이 지어졌었는데 지하도 공사를 하다 그 당시의 유적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세르디카는 소피아의 옛 이름인데 14세기에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물을 받고 있는데 뜨거운 김이 나오고 있었다.
온천수를 왜 사람들이 받아가는지 물어보니 마실 수 있는 온천수라고 한다.
마실 수 있는 온천수는 처음 들어봐 한 잔 마셔볼까 하다 내 위장을 위해 참았다.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을 가졌다고 자만하다 인도에서 호되게 당한 이후로 물만은 꼭 생수를 사 마신다.
음란마귀가 끼었는지 이런 사진을 찍게된다.
날도 덥고 수박도 무거워 우선 호스텔로 돌아왔다.
역시 집이 제일 편하고 집 나가면 고생인데 집을 나가는게 재미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 다시 밖으로 나온다.
불가리아 여행관련 사진에 항상 등장하는 소피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에 왔다.
알렉산더 네프스키는 러시아의 대공인데 몽골 지배시절에 북서 러시아를 지켜낸 러시아의 영웅이라고 한다.
파스텔 톤의 지붕이 구름 몇점 떠 있는 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내부는 촬영 금지라 사진은 없지만 성당 안에 들어가 세계평화를 빌고 나왔다.
여행을 하려면 이런 단어를 읽을 줄 알고 사용할 줄 알아야할텐데 아직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근위병들이 있어 우선 사진을 찍고 봤는데 알고보니 대통령 궁이었다.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다보면 경호가 허술한 대통령 궁들을 볼 수 있는데 일반적인 관념과 다른 상황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이 트램이다.
많이 봐서 질릴만도 하지만 트램이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어디서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전생에 기차를 못 타보고 죽었는지 이상하게 철도가 좋다.
중고 서적을 팔고 있는 곳에서 낯익은 단어가 보인다.
불가리에서는 돈 걱정하지 않고 식도락을 즐기기로 했기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 인터넷에서 소피아 맛집을 찾아냈다.
'종로 맛집'이나 '이태원 맛집'도 아닌 '소피아 맛집'을 검색해서 알아낼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이 음식은 싸츠라는 불가리아 전통음식인데 닭고기와 치즈, 크림소스가 어우러진 맛이 최고였다.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남자들도 많다는데 크림소스와 올리브 오일을 사랑하는 나는 상남자가 아닌가보다.
뒤에 보이는 맥주잔과 비교해보면 크기가 대충 짐작이 갈텐데 여자분들은 2~3명이서 싸츠 한판과 샐러드 하나를 드신다고 하는데 난 혼자 다 먹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중간에 배가 불렀지만 음식은 남기는 것이 아니니 끝까지 맛있게 다 먹었다.
맥주와 함께 먹은 거대한 싸츠가 15.9레바(한화 11,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이러니 불가리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배트맨은 고담시를 지키는 줄 알았는데 소피아에도 있었다.
저작권 허락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트램을 이런식으로 꾸민 것은 재미있는 시도인 것 같다.
서울에도 타요버스가 유행이었다던데 개인적으로 락 음악이 흘러나오는 지하철을 한번 타보고 싶다.
밥도 배부르게 먹었으니 숙소로 돌아와 여행기를 쓴다.
배가 고파야 창작을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난 작가가 아니라 그런지 배가 불러야 글이 잘 써진다.
호스텔 라운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길래 수박을 썰었다.
딱히 주방이 없어 화장실에서 수박을 썰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다들 맛있게 먹는다.
역시 음식은 나눠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조식 씨리얼은 언제나 듬뿍 듬뿍 먹는다.
불가리아의 거리는 아르헨티나의 거리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 발달된 모습 속에 있는 정감가는 길들이 참 좋다.
길을 가는데 오렌지 주스를 시음해보라고 나눠주고 있었다.
원래 맛있는 것인지 공짜라 맛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새콤한 맛이 좋았다.
길을 걸어가는데 단체로 배낭여행을 온 사람들이 보인다.
여행은 혼자와도 좋고 같이와도 좋다지만 이번 여행이 끝난다면 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
만약 나에게 그림에 관련된 재능이 딱 한가지 생긴다면 벽화를 배우고 싶다.
빈 벽에 그림을 그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싶다.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불가리아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오이와 토마토, 치즈로 만든 숍스카 샐러드인데 올리브 오일을 찍은 빵과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식도락 투어를 하나보다.
소피아에는 세인트 페트카 지하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불가리아를 지배하던 14세기에 지어졌는데 투르크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하에 지었다고 한다.
종교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트램은 사랑이다.
다음 나라에서 쓸 돈을 미리 환전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주 약간만 환전을 했다.
환전 금액이 적기에 아무 곳에서나 해도 되지만 소피아 시내를 돌며 가장 환율이 좋은 곳을 찾아갔다.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조금 더 걷더라도 10원을 아끼고 싶어진다.
일행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불가리아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덥다는 말이 안 나오는데 온도계는 32도를 나타내고 있다.
역시 사람은 마음 먹기 나름인 것 같다.
실제로는 와이파이가 있지만 호스텔 아저씨의 이런 센스도 마음에 든다.
전파의 숲에서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도 재미있다.
소피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재미없게 끝날 수도 있었던 유럽 여행의 후반부가 불가리아를 만나 정말 행복해졌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대왕 피자를 먹기로 했다.
한국의 피자가 토핑도 많고 치즈도 많아 맛있긴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길에서 사먹는 피자도 충분히 맛있다.
저녁을 먹었으니 디저트를 먹어야한다.
소피아에 온 첫 날부터 눈여겨 보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가격은살짝 비쌌지만 인테리어도 세련됐고 아이스크림의 맛도 좋았다.
불가리아 여행의 마지막을 달콤하게 마무리 하는 것 같아 행복해진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돈이 조금 남아 사과 당근 쥬스를 한 병 샀다.
생으로 먹는 당근도 맛있지만 당근은 쥬스로 내려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는데 당근 맛이 참 좋다.
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왔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가 들린다.
잘 들어보니 심수봉 씨의 '백만송이 장미'였는데 한국의 트로트를 불법 복제한 것처럼 가사만 다르고 멜로디가 거의 비슷했다.
신기해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듣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변에 말이 통할만한 사람이 없어 그냥 내 버스에 탔다.
검색해보니 원곡이 러시아의 국민가수인 알라 푸가초바의 노래가 원곡이고 우리나라의 이지심 작사가가 번안을 했다고 한다.
원곡의 내용은 한 여자를 사랑하던 가난한 화가가 여자에게 고백하기 위해 장미 백만송이를 이용해 여자의 집 앞을 꾸몄고 여자는 화가의 마음을 받아줬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떠나갔고 남자는 홀로 죽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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