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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보스니아-Bosnia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31. 아픈 역사를 가진 보스니아. (보스니아 - 모스타르, 사라예보)


호스텔에서 아침을 제공해 준다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조금 부실하게 나온다.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며 인터넷을 하다 밖으로 나왔다.

가지고 있는 보스니아 마르카가 없어 숙박비를 유로로 내고 잔돈을 마르카로 받았다.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가까워 그런지 유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환율을 따져보면 여행자에게는 마르카를 쓰는 것이 더 이득이다.

모스타르의 기차역은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 사라예보로 가는 기차표를 사러갔는데 마침 내가 찾아간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다.

설마 나 하나 탈 자리가 없을까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의 종교는 크게 이슬람, 세르비아정교, 가톨릭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이슬람인데 모스크를 보니 확실히 동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날이 더우니 물을 많이 마셔줘야한다.

사진을 보니 손이 많이 탔는데 까맣게 탄 손이 지금까지 지나온 여행의 흔적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다.

더울 때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도 좋다.

자연이 좋다지만 더위 앞에서는 문명을 찾게된다.

점심으로 간단하게 맥주나 한잔 하려고 안주를 사러갔는데 고래밥이 보였다.

보스니아에서 고래밥을 먹을 생각을 하며 봉지를 뜯었는데 내가 상상하던 고래밥이 아니었다.

짭쪼롬한 고래밥이 아닌 비스킷 종류인데다 밍밍한 맛만 나길래 맥주만 마셨다.

호스텔의 벽에는 유명한 도시를 그려놓은 벽화가 있었는데 파리, 시드니, 뉴욕, 모스타르가 그려져 있었다.

4도시를 모두 가봤기에 벽화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며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속세에 미련이 많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모스타르의 강물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자꾸 덥다고 말하면 읽는 사람도 진이 빠질텐데 더운건 더운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물가가 싼 나라에 왔으니 이제 밥을 사먹을 차례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이 파스타만 먹으며 여행할 수는 없다.

조명이 없어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검은 부분이 체바삐라는 음식이다.

웨이터에게 보스니아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보스니아에 왔으면 체바삐를 먹어봐야한다며 추천해줬다.

우리나라의 떡갈비 같은 음식이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 음식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길래 팁을 어느 정도 두고 나왔다. 

돌로된 길에 조명이 은은하게 반사되니 정말 아름답다.

말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길을 말을 타고 달려보고 싶다.

보스니아도 내전으로 인한 슬픔이 있는 나라다.

19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는 민족 분쟁이 일어나 1995년 11월까지 3년이 넘는 시간동안 20만 명의 사망자와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도 아니고 서로간의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화내지 말고 달콤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지내면 좋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대단하면서 슬프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도미토리를 쓰고 있던 세르비아 애들이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나가버렸다.

리셉션에 말을 하니 우선 좀 기다려보자고 해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봤지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주인이 와 문을 부쉈다.

그렇게 보안이 중요하다면 싱글룸을 쓰지 다 같이 쓰는 도미토리 문을 왜 잠그고 나가는지 모르겠다.

찌질하고 재미있게 여행하는게 목표인데 드디어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1년이 넘도록 찌질하게 다니니 이렇게 알아봐주는 사람도 생기고 기분이 좋다.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역으로 갔다.

물가가 저렴한 곳으로 왔다고 좋아했는데 기차의 질도 많이 떨어졌다.

찌질해서 그런지 비싸고 깨끗한 기차보다 저렴하고 더러운 기차가 더 좋다.

모스타르는 조용하고 작은 도시였는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아침을 안 먹었기에 배가 고파 뭔가 먹을 것을 찾다가 빵집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프다고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하니 빵 같은 것을 주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 음식은 뷰렉이라 부르는 것인데 길게 만든 만두를 돌돌 말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에는 고기가 들어있고 얇은 만두피 같은 것으로 싸여있는데 기름진 맛이 정말 일품이다.

숙소를 찾아 걸어가는데 정말 멋진 서점을 발견했다.

낡았지만 세련된 네온사인 간판이 정말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남기려고 여러장을 찍어봤지만 내가 눈으로 본 것보다 못하다.

중간에 길을 헤메 1시간 정도 계속해서 걷다보니 사라예보의 시내가 나왔다.

수도라 그런지 확실히 모스타르보다 활기찬 분위기에 사람들도 많다.

이래서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나보다.

순수한 오렌지 주스가 2마르카(한화 1,500원)밖에 안 한다.

안정적이고 착하고 저렴한 보스니아의 물가가 정말 사랑스럽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으니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침대에 드러누워 타고난 날씨운에 감탄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착하게 살면 하늘이 알아서 도와주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비가 그쳤길래 밖으로 나왔다.

내리는 비는 언젠가는 그치게 되어있는데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니 문제다.

돈을 환전하러 갔는데 뭔가 쪽지가 붙어있다.

보스니아어는 모르지만 눈치껏 알아보자면 7월 27일 날은 4시에 문을 닫고 7월 28일 날은 영업을 안 한다는 것 같다.

언어를 몰라 여행떠나기를 주저하시는 분들에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눈치와 손짓 발짓은 통하니 걱정하지 말고 떠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깃발이 보인다.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은 아름다운데 종교적 이념이 들어가면 서로 죽이고 싸우게 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들의 전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어찌해서 이런 모습을 지켜만 보고 계시는 것일까.

사람들이 환전소에 줄을 서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아까 내가 추리한 내용이 맞는 것 같다.

모스타르에 있으면서 보스니아의 물가에 적응했으니 적당한 금액을 에상해 환전한다.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골목길이 나온다.

사나이는 큰 길로만 다니는 것이라 배웠는데 골목길이 좋은 것을 보니 난 대장군은 못 될 운명인가 보다.

대장군이나 졸병이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 호스텔에서 추천해준 식당으로 간다.

사라예보에서 가장 유명한 체바삐 집이라는데 정말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와 양파를 곁들여 먹으니 느끼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잔에 들어 있는 것은 요거트인데 첨가물이 안 들어서 그런지 순수하게 시큼한 맛이길래 설탕을 타 마셨다. 

이 다리는 라틴 다리인데 이 다리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을 당했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됐다.

좋은 일만 기념하며 살면 좋겠지만 역사는 역사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다 건너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를 역사로 보고 있지 않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연인간의 사랑을 떠나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맹세하는 자물쇠가 있으면 좋겠다.

서로 싸우지 말고, 죽이지 말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라예보의 거리를 걷다 보니 전쟁의 상처를 보여주는 흔적이 건물 곳곳에 남아있었다.

총탄 자국을 보니 예전 한국 여행을 하다 전남 도청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곳곳에 남아 있던 총탄 자국들을 보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다.

사라예보에는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위해 불을 피워 놓은 영원의 불꽃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명복을 빌며 기도를 올리는 것밖에 없지만 부디 다음 생에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는다.

한 스쿱에 1~2마르카 밖에 하지 않으니 자꾸 먹게 된다.

이 건물은 국립대학도서관인데 과거에는 시청으로 썼다고 한다.

외벽이 신기해 가까이 가서 구경했는데 안에는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아 밖에서만 구경했다.

외곽부분에 있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올라가다보니 공동묘지가 보이는데 비석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오싹하다.

언덕을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공동묘지가 더 잘 보인다.

언젠가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죽음을 기리는 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속세에 미련이 많아서 그런지 내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많이 남기고 싶은데 욕심인지 본능인지 모르겠다.

언덕에 올라온 이유는 바로 이 대포때문이다.

보스니아는 이슬람 국가기에 금식기간인 라마단이 있다.

마침 내가 보스니아를 여행하던 때가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라마단 기간 동안 이슬람 신자들은 해가 뜰 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해가 지면 그 때서야 음식을 먹는다.

해가 지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언덕에서 대포를 쏘는데 대포 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언덕에 올라왔다.

어찌보면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대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하자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어린이는 그 나라의 미래인 것 같다.

대포를 쏘고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하고 내려가는데 좁은 도로에서 서로 안 비키려고 해 길이 막혀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조금만 양보하고 신경쓰면 될텐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보다. 

밑으로 내려오니 크로아티아에서 보이던 Konzum 슈퍼마켓이 보인다.

목이 말라 맥주나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이슬람 신자가 운영하는 슈퍼인지 술이 보이지 않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했으니 아쉽지만 스프라이트를 하나 사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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