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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독일-Germany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20. 맛있는 맥주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독일. (독일 - 함부르크, 베를린)

안녕하세요.


저번 이야기는 제가 읽어봐도 정말 재미없었기에


이번에는 신경도 많이 쓰고 분량도 늘렸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이번에도 재미없다면 


다음에는 더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날이라 새벽 6시에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몇시간 전만 해도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던 거리인데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름다웠던 운하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20kg짜리 배낭을 메고 40분을 걸어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5유로(한화 7,000원) 정도 하는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음료수와 요거트 하나를 샀다.

고작 5유로로 궁상을 떨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의 난 가난한 배낭여행 중이니 어쩔 수 없다.

직장인이 되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한번 유럽에 와서 맛집투어를 해야겠다.

오늘은 부자들의 교통수단인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


<네덜란드 여행 경비>


여행일 4일 - 지출액 185유로 (약 26만원)


숙박비와 교통비가 좀 비싸 하루에 5만원 이상 지출했다.

그래도 가장 보고 싶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한번에 가지는 않는다.

목적지인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와 버스의 최저가를 알아봤는데 4번의 경유를 통해 가는 기차가 가장 저렴하게 나왔다.

중간에 연착이 된다면 일이 꼬이겠지만 유럽의 선진 철도 시스템을 믿어보기로 했다.

2번째 환승을 하는데 새로운 철도 시스템 구축을 기념하며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받은 초콜릿을 들고 다른 기차로 걸어가는데 이쁜 누나가 초콜릿 하나를 더 준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하나 주면 정 없다'라는 말이 통하나 보다.

다행히 별 일 없이 4번의 경유를 통해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빨간색 기차들이 있어 그런지 기차역이 앙증맞아 보인다.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방과 시트가 깔끔해 기분이 좋다. 

우선 마트에서 마실 물과 샌드위치를 하나 샀는데 물이 탄산수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해 물을 살 때마다 탄산수가 아니길 기도하지만 꼭 탄산수를 사게 된다.

함부르크는 중앙역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데 구경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기로 했다.

맥주와 소시지의 나라인 독일에 왔으니 오늘은 돈 생각하지 않고 즐기려고 했는데 근처에 소시지를 파는 식당이 없다.

배는 고픈데 케밥가게만 보이길래 순간 내가 터키에 잘못 온 것처럼 느껴졌다.

1시간 정도 번화가로 생각되는 지역을 돌아보니 피자와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은 많은데 내가 원하는 정통 소시지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나 바는 보이지가 않는다.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억울해 호스텔로 돌아가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 곳을 물어보니 그냥 호스텔에 딸린 펍에서 먹으라고 한다.

내 여행철학 중 하나가 숙박업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곳에서는 밥을 먹지 않는 것이지만 독일의 소시지가 너무 간절했기에 그냥 펍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펍에서 파는 맥주가 하이네켄이다.

맥주의 나라인 독일에 왔는데 네덜란드 맥주를 먹자니 빈정이 상해 그냥 방으로 올라왔다.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호스텔이라 선호도가 높은 맥주를 파는 것이겠지만 독일에서 마시는 첫 맥주를 하이네켄으로 기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스텔에 주류반입도 금지길래 마음이 상해 그냥 굶고 잠이나 자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세상을 참 복잡하게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장기 여행자들에게는 그들만의 특색이 있고 나에겐 최씨 똥고집이 있다.

어제 못 먹은 맥주가 떠올라 아침부터 마트에서 맥주를 샀다.

건강을 생각해 샐러드와 닭고기를 안주로 마셨는데 독일에서 마시는 벡스는 참 맛있다.

역시 맥주는 그 나라의 맥주를 마셔야한다.

독일은 재활용쓰레기 관리에 철저해 캔이나 페트 병에 값을 추가로 매겨 놓고 빈 병을 반납하면 돈을 돌려주는 판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생긴 기계에 판트가 가능한 캔이나 페트 병을 넣으면 자동으로 바코드를 읽는다.

맥주 1캔이 0.5유로(한화 700원)정도 하는데 캔 값이 0.25유로(한화 350원)정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지만 1유로라도 아끼자는 마음에 캔을 들고 다니다 환급을 받았다.

캔맥주를 마시면 캔을 찌그러트리는 버릇이 있는데 판트를 받으려면 바코드가 온전해야 하니 찌그러트리지 못해 아쉬웠다.

함부르크 중앙역 앞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산지 오래돼서 그런지 이제는 좀 바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을 내나 보다.

이 건물은 함부르크 시청사로 청록색 지붕이 참 예뻤는데 다른 건물들이 반대편에 있어 화각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운하가 있는 함부르크는 독일의 2번째 도시이자 독일 최대의 무역항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시인 것 같다.

거리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말없이 운하를 바라보고 계셨다.

철거하고 있는 건물에 추억이 있으신 것처럼 보여 흑백사진을 찍어봤는데 마음에 들게 찍혔다.

나도 시간이 지나 내가 살아온 삶을 추억했을 때, 후회하기 보다는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와보니 지금의 난 웃지도 않고

울지도 못하네 너를 만나고 너를 떠나

난 많이 변한걸까 저 거리 끝에

홀로 남겨진 니가 마중나와있는 듯해


이미 다 지나 시간 속에 잠겨진 채로

걷다 걷다보니 지나가야만 깨닫네

청춘이 가네 이젠 너를 잊으려 지샜던 밤들까지 모두 다


어쩌다 꿈결처럼 지나쳐버린

그때가 청춘이구나

어쩌다 천사같은 미소지었던

그대가 청춘이구나


모두 잊어버렸나

아무렇지도 않게 저 거릴 나서니..


어쩌다 꿈결처럼 지나쳐버린

그때가 청춘이구나

어쩌다 천사같은 미소지었던

그대가 청춘이구나


어쩌다 꿈결처럼 지나쳐버린

그때가 청춘이구나

어쩌다 천사같은 미소지었던

그대가 청춘이구나


모두 잊어버렸나

아무렇지도 않게 저 거릴 나서니


타바코쥬스 - 청춘


건물은 정말 아름다운데 구름도 많이 끼었고 구도도 나오지 않아 어떻게 사진을 찍을 방법이 없다.

쌓이던 외로움이 터졌는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흑백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유명하고 위대한 음악가인 브람스와 멘델스존이 함부르크 출신이라고 한다.

브람스 박물관에 들어가볼까 하다 끌리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난 박물관보다 미술관이 좋다.

왠지 독일은 깔끔할 것 같았는데 진짜로 건물들이 다른 유럽과는 다르게 깔끔한 아름다움이 있다.

알고보니 2차 세계대전 당시 함부르크는 연합군의 공격으로 초토화가 됐었는데 전후에 다시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함부르크의 명물 중 하나인 성 니콜라이 성당인데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성당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다는데 다음에 다시 오면 올라가 봐야겠다.

어떤 여행가는 다음에 다시 오기 위해 일부러 한 곳씩은 남겨놓고 여행을 한다는 것을 들었었는데 역시 여행자들은 다들 특색이 있다.

길을 걷는데 칠레하우스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칠레 영사관은 아닐텐데 왜 이름을 칠레하우스로 지은 것인지 궁금해 안내판을 보니 건물의 주인이 칠레에서 초석을 수입해 부를 쌓았다고 한다.

햄버거의 고장인 함부르크에 왔으니 원조 햄버거를 먹어봐야한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햄버거집인 Jim Block에 들어가 추천메뉴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건물이 꼭 토르의 망치처럼 생겼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건축가를 비롯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5정거장 정도 가는데 1.5유로(한화 2,100원)을 내야한다.

독일의 대학은 무료 등록금으로 유명한데 독일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숙사와 대중교통 등 대부분의 생활이 무료라고 한다.


교육은 국민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돈을 내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낸 독일은 1970년부터 모든 대학교의 등록금을 폐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의 재정악화로 35년만인 2005년에 대학교 등록금이 다시 부활했는데 이때의 등록금은 우리나라의 등록금보다 80% 정도 저렴한 500유로(한화 70만원)를 책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이에 불만을 가진 대학생 27만 명을 비롯한 국민들이 배움에는 돈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시위를 했고 각종 기간시설과 대학을 점거했다고 한다.

대학 측은 강의실은 강의에만 사용할 수 있다며 대학생들을 불법점거라며 해산을 명령하자 그럼 시위가 끝날 때까지 강의를 하겠다며 교수들이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이를 비난하지 않고 교육은 세대간의 계약이라며 학생들과 함께 해줬고 위기감을 느낀 정치인들은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를 지켰다고 한다.


독일의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독일의 국민성과 정치인들이 정말 부러웠었지만 우리나라도 1980년 대에 국민들이 이뤄낸 민주화가 있기에 우리나라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에 바뻐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잃고 너무 이기적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깝게는 총리인선부터 멀게는 세월호를 비롯해 반값등록금 공약까지 모든 것이 꽉 막혀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남을 탓하기보다 내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기왕이면 다 같이 변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말해주세요 왜 우리들이 이래야 하는지 정말

말해주세요 언제까지나 이래야 하는지 정말


관심도 없는 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캠퍼스를 누비다

어느새 즐거움을 배우기 위해

화려한 조명속에 내 모습을 보았었죠


말해주세요 왜 우리들이 이래야 하는지 정말

말해주세요 언제까지나 이래야 하는지 정말


4년이라는 시간들을 위해서 지내왔던 지난 12년

하지만 그들에게 남는 건 오직

하얀색 졸업장과 꽃다발이 전부였죠


우린 반년이 지나갈때마다 비싼 간판을 따내기 위해

부자 나라에 돈을 내야했죠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채 말예요


말해주세요 왜 우리들이 이래야 하는지 정말

말해주세요 언제까지나 이래야 하는지 정말


4년이라는 시간들을 위해서 지내왔던 지난 12년

하지만 그들에게 남는 건 오직

하얀색 졸업장과 꽃다발이 전부였죠


우린 반년이 지나갈때마다 비싼 간판을 따내기 위해

부자 나라에 돈을 내야했죠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채 말예요

언제쯤이면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건가요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를때도 대학을 위해 이래야만 하는지 말예요


장연주 - 대통령 아저씨께


월드컵 단체응원을 위해 현대 기아 자동차에서 독일 곳곳에 팬 아레나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시청 앞 응원이 독일에도 적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었다. 

자동차 강국이라 그런지 독인은 경찰차도 멋있고 빠르게 생겼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소시지를 먹게 됐다.

원래 함부르크는 거칠 생각이 없었는데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친구가 한국에 귀국하기 전에 잠시 함부르크에 들린다고 해 만나러왔다.

얼굴을 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즐거웠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만나기로 하고 건배를 했다.

친구도 만났으니 이제 이동을 해야한다.

누가 독일이 아니라할까봐 버스도 벤츠다.

아무리 차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벤츠와 BMW는 알고 있다.

이번 호스텔도 아침을 주지 않기에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운다.

함부르크를 떠난지 4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이다.

아파트도 예쁘고 하늘도 예쁘니 베를린의 첫인상은 참 마음에 든다.

첫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지만 오늘은 귀찮으니 그냥 여행기나 쓰기로 했다.

베를린의 한인민박은 25유로(한화 35,000원)이기에 그냥 호스텔로 가려했는데 친구가 자꾸 한인민박을 추천해 속는 셈 치고 찾아갔다.

석식은 포함이 안 되어 있는데 사장님께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셨다.

시내 구경은 나가지 않아도 마트 구경은 가야한다.

맥주 한 병에 1유로(한화 1,400원)도 안하는 여기가 천국이다.

베를린에 왔으니 베를리너를 먹으며 여행기를 쓴다.

친구가 말한대로 조식 반찬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이 뒤로도 고기반찬이 계속 나왔는데 양도 많고 맛있었다.

이모님이 디저트도 주셨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요거트는 언제 먹어도 사랑스럽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드디어 샌달이 또 뜯어졌다.

이번에는 밑창이 좀 심하게 들렸는데 나에겐 스페인에서 산 슈퍼 글루가 있으니 문제없다.

오늘 날씨도 참 좋다.

하늘이 맑으니 오늘은 많이 걸어야겠다.

민박집이 외곽에 있어 시내로 나가려면 지하철을 타야한다.

베를린에서는 표를 끊었다고 바로 열차를 타면 안 되고 꼭 검표기에 표를 넣어 탑승시간을 찍어야한다.

어제 민박집을 찾아올 때는 그 것을 모르고 검표기에 체크를 안 했는데 검표원이 표검사를 했었다.

다행히 내가 큰 배낭을 메고 있어 바로 베를린에 온 것으로 보였는지 손으로 탑승시간을 기록하고 봐줬는데 운이 없었으면 무임승차로 걸릴 뻔 했다. 

베를린에도 운하가 있었다.

운하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사대강이 떠올라 씁쓸하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U-Bahn과 S-Bahn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반'과 '에스반'이라고 부르면 된다.

U반은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같은 개념이고 S반은 시외곽의 지역까지 운영하는 국철이라고 하는데 딱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두 노선 사이에는 환승이 되지만 역이 따로 있어 환승을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 다른 입구로 다시 들어가야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는데 지리상으로 베를린은 소련이 통치하는 동독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진영은 서 베를린을 포함한 서독에서 화폐개혁을 실행했고 소련은 이에 대항해 서 베를린을 포함한 베를린 전체를 봉쇄했다고 한다.

그러다 서독과 동독의 정부가 베를린에 수립되면서 양 쪽의 수도역할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의 흔적으로 체크포인트를 남겨두었는데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판문점을 이렇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냉전시대 베를린의 모습과 베를린 장벽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내가 태어난 1989년에 붕괴된 베를린 장벽이라 그런지 뭔지 모를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자전거와 꽃은 중국의 설치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를 위해 전시중이라고 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예술가 중 하나인데 중국정부는 이에 대항해 그의 블로그를 폐쇄하고 스튜디오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는 여권을 압수 당한 채 중국에 있는 집에 가택 연금 중이라고 한다.

이 곳은 베를린의 중심가인 포츠담 광장이다.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장벽과 너무 가까워 베를린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리된 뒤 방치되어 있었는데 통일 이후 개발을 통해 베를린 교통의 교차지점이자 상업, 주거 및 문화 복합지구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과거에는 절대 넘을 수 없었던 벽이 이제는 허물어져 전시되고 있다.

공사 중인 건물의 외벽을 통째로 광고판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광고 규모가 정말 대단했다.

이 곳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인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얼마 전에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방문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비난하며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 했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거꾸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아시아에서 학살을 일삼던 일본이 나치를 비난하다니 어이가 없다. 

예쁜 건물이 있길래 다가가보니 미국 대사관이었다.

독일과 미국의 친교를 상징하는 버디 베어가 있길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독일을 상징하는 테디베어와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조합한 센스가 멋졌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 부르크 문을 보러 왔는데 여기에는 현대 팬 파크가 조성되어 있었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응원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관광객인 나에겐 월드컵보다 관광지가 중요한데 이건 보이지도 않는다.

이 문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짓게 한 것인데 1989년 동독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순간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은 이 문을 통해 걸어가 동독의 총리 한스 모드로우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시청 앞에 이런 광고를 기획하다니 대단하긴 하다.

지도를 얻기 위해 관광안내센터에 갔는데 무료 지도는 이런 지도밖에 없다고 한다.

대략적인 위치라도 알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지도가 작아도 너무 작다.

공사 중인 곳에 파이프를 위로 빼내어 설치해놨는데 이게 가스관인지 수도관인지 모르겠다.

수분 보충을 위해 간단히 마실 것을 사러 마트에 들어갔는데 가성비를 따지다보니 큰 병을 사버렸다.

기업에서는 사람들의 쇼핑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난 정말 파악하기 쉬운 남자인 것 같다. 

아파트 베란다에 발코니를 설치해 놓은 모습이 정말 여유롭고 귀여워보였다.

나도 어서 내 집을 가지고 싶다.

아직은 젊어 집도 없고 차도 없으니 열심히 걸어야한다.

이 시계는 세계 주요도시의 시간을 알려주는 세계시계인데 평양과 도쿄와 서울이 표시되어 있다.

베를린의 상징 중 하나인 TV타워를 찾아갔는데 올라가려면 당연히 입장료를 내야하니 난 당연히 밑에서만 구경했다.

건물을 짓는 크레인들이 멋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들어 헬리캠을 하나 들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번에는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베를린 대성당을 찾아갔다.

베를린 대성당도 입장료가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밖에서만 볼 수는 없으니 안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나도 지붕을 돔 형태로 만든 집에 살고 싶다.

이 열쇠가 대성당의 열쇠라는데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열쇠 하나만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천사님, 농담이니 화내시면 안돼요.

옥상에 올라가면 베를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딱히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는 않았다.

지하에는 프로이센 왕과 독일제국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인 호엔츨레 왕가의 묘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묻힌 왕들은 세월이 흘러 자신들이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해봤을지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베를린 돔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밖으로 나와 제대로 된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현재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폭격을 받아 본래의 화려함을 거의 소실하고 아주 단순하게 바뀐 것이라고 한다.

살 물건이 있어 베를린의 한인마트를 찾아가 봤는데 외국인들도 꽤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베를린 시내관광이 끝나 집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보니 또 파이프가 보이는데 이 파이프는 아무리 봐도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파이프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 말고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분홍색 파이프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니 설치미술이라는 설과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을 표시한다는 설, 실제로 가스를 운반하는 관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베를린이라는 지명이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37년인데 베를린(Berlin)의 어원을 따져보면 'Berl'은 습지를 의미하고 'in'은 도시를 뜻한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베를린은 습지에 위치한 도시를 의미하는데 베를린에는 지하수가 지표면 가까이에 흐르고 있어 도시를 건설하고 건물을 지으면 도심에 물이 넘치게 되니 그 물을 빼내기 위해 만든 것이 이 분홍색 관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나만 궁금해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니 왠지 재미있다.

아까 받은 지도에는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의 지역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방향만 믿고 길을 걷는데 집이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민박집 근처에 있던 지하철 역의 위치를 물어 물어 길을 걷는데 인적이 뜸해지니 살짝 무서워진다.

다행히 번화가를 찾았는데 한인식당이 보인다.

가격이 궁금해 메뉴판을 봤는데 값이 꽤 비쌌다.

암벽 등반도 해보고 싶은데 난 고소공포증이 있으니 아마 평생 안 할 것 같다.

민박집 근처의 케밥집이 유명하다길래 가봤는데 4유로(한화 5,600원)정도에 엄청 푸짐한 양을 준다.

케밥집이 너무 많아 내가 독일에 온 것인지 터키에 온 것인지 헷갈리지만 케밥은 맛있었다.

물론 독일 맥주도 맛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무엇이든 하나만 주면 정이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디저트로 크롬바커 맥주를 마시며 여행기를 쓰며 하루를 마감한다.



제 여행기가 재미있으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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