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31. 아픈 역사를 가진 보스니아. (보스니아 - 모스타르, 사라예보)


호스텔에서 아침을 제공해 준다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조금 부실하게 나온다.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며 인터넷을 하다 밖으로 나왔다.

가지고 있는 보스니아 마르카가 없어 숙박비를 유로로 내고 잔돈을 마르카로 받았다.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가까워 그런지 유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환율을 따져보면 여행자에게는 마르카를 쓰는 것이 더 이득이다.

모스타르의 기차역은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 사라예보로 가는 기차표를 사러갔는데 마침 내가 찾아간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다.

설마 나 하나 탈 자리가 없을까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의 종교는 크게 이슬람, 세르비아정교, 가톨릭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이슬람인데 모스크를 보니 확실히 동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날이 더우니 물을 많이 마셔줘야한다.

사진을 보니 손이 많이 탔는데 까맣게 탄 손이 지금까지 지나온 여행의 흔적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다.

더울 때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도 좋다.

자연이 좋다지만 더위 앞에서는 문명을 찾게된다.

점심으로 간단하게 맥주나 한잔 하려고 안주를 사러갔는데 고래밥이 보였다.

보스니아에서 고래밥을 먹을 생각을 하며 봉지를 뜯었는데 내가 상상하던 고래밥이 아니었다.

짭쪼롬한 고래밥이 아닌 비스킷 종류인데다 밍밍한 맛만 나길래 맥주만 마셨다.

호스텔의 벽에는 유명한 도시를 그려놓은 벽화가 있었는데 파리, 시드니, 뉴욕, 모스타르가 그려져 있었다.

4도시를 모두 가봤기에 벽화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며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속세에 미련이 많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모스타르의 강물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자꾸 덥다고 말하면 읽는 사람도 진이 빠질텐데 더운건 더운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물가가 싼 나라에 왔으니 이제 밥을 사먹을 차례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이 파스타만 먹으며 여행할 수는 없다.

조명이 없어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검은 부분이 체바삐라는 음식이다.

웨이터에게 보스니아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보스니아에 왔으면 체바삐를 먹어봐야한다며 추천해줬다.

우리나라의 떡갈비 같은 음식이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 음식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길래 팁을 어느 정도 두고 나왔다. 

돌로된 길에 조명이 은은하게 반사되니 정말 아름답다.

말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길을 말을 타고 달려보고 싶다.

보스니아도 내전으로 인한 슬픔이 있는 나라다.

19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는 민족 분쟁이 일어나 1995년 11월까지 3년이 넘는 시간동안 20만 명의 사망자와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도 아니고 서로간의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화내지 말고 달콤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지내면 좋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대단하면서 슬프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도미토리를 쓰고 있던 세르비아 애들이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나가버렸다.

리셉션에 말을 하니 우선 좀 기다려보자고 해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봤지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주인이 와 문을 부쉈다.

그렇게 보안이 중요하다면 싱글룸을 쓰지 다 같이 쓰는 도미토리 문을 왜 잠그고 나가는지 모르겠다.

찌질하고 재미있게 여행하는게 목표인데 드디어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1년이 넘도록 찌질하게 다니니 이렇게 알아봐주는 사람도 생기고 기분이 좋다.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역으로 갔다.

물가가 저렴한 곳으로 왔다고 좋아했는데 기차의 질도 많이 떨어졌다.

찌질해서 그런지 비싸고 깨끗한 기차보다 저렴하고 더러운 기차가 더 좋다.

모스타르는 조용하고 작은 도시였는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아침을 안 먹었기에 배가 고파 뭔가 먹을 것을 찾다가 빵집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프다고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하니 빵 같은 것을 주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 음식은 뷰렉이라 부르는 것인데 길게 만든 만두를 돌돌 말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에는 고기가 들어있고 얇은 만두피 같은 것으로 싸여있는데 기름진 맛이 정말 일품이다.

숙소를 찾아 걸어가는데 정말 멋진 서점을 발견했다.

낡았지만 세련된 네온사인 간판이 정말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남기려고 여러장을 찍어봤지만 내가 눈으로 본 것보다 못하다.

중간에 길을 헤메 1시간 정도 계속해서 걷다보니 사라예보의 시내가 나왔다.

수도라 그런지 확실히 모스타르보다 활기찬 분위기에 사람들도 많다.

이래서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나보다.

순수한 오렌지 주스가 2마르카(한화 1,500원)밖에 안 한다.

안정적이고 착하고 저렴한 보스니아의 물가가 정말 사랑스럽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으니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침대에 드러누워 타고난 날씨운에 감탄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착하게 살면 하늘이 알아서 도와주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비가 그쳤길래 밖으로 나왔다.

내리는 비는 언젠가는 그치게 되어있는데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니 문제다.

돈을 환전하러 갔는데 뭔가 쪽지가 붙어있다.

보스니아어는 모르지만 눈치껏 알아보자면 7월 27일 날은 4시에 문을 닫고 7월 28일 날은 영업을 안 한다는 것 같다.

언어를 몰라 여행떠나기를 주저하시는 분들에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눈치와 손짓 발짓은 통하니 걱정하지 말고 떠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깃발이 보인다.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은 아름다운데 종교적 이념이 들어가면 서로 죽이고 싸우게 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들의 전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어찌해서 이런 모습을 지켜만 보고 계시는 것일까.

사람들이 환전소에 줄을 서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아까 내가 추리한 내용이 맞는 것 같다.

모스타르에 있으면서 보스니아의 물가에 적응했으니 적당한 금액을 에상해 환전한다.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골목길이 나온다.

사나이는 큰 길로만 다니는 것이라 배웠는데 골목길이 좋은 것을 보니 난 대장군은 못 될 운명인가 보다.

대장군이나 졸병이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 호스텔에서 추천해준 식당으로 간다.

사라예보에서 가장 유명한 체바삐 집이라는데 정말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와 양파를 곁들여 먹으니 느끼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잔에 들어 있는 것은 요거트인데 첨가물이 안 들어서 그런지 순수하게 시큼한 맛이길래 설탕을 타 마셨다. 

이 다리는 라틴 다리인데 이 다리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을 당했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됐다.

좋은 일만 기념하며 살면 좋겠지만 역사는 역사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다 건너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를 역사로 보고 있지 않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연인간의 사랑을 떠나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맹세하는 자물쇠가 있으면 좋겠다.

서로 싸우지 말고, 죽이지 말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라예보의 거리를 걷다 보니 전쟁의 상처를 보여주는 흔적이 건물 곳곳에 남아있었다.

총탄 자국을 보니 예전 한국 여행을 하다 전남 도청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곳곳에 남아 있던 총탄 자국들을 보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다.

사라예보에는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위해 불을 피워 놓은 영원의 불꽃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명복을 빌며 기도를 올리는 것밖에 없지만 부디 다음 생에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는다.

한 스쿱에 1~2마르카 밖에 하지 않으니 자꾸 먹게 된다.

이 건물은 국립대학도서관인데 과거에는 시청으로 썼다고 한다.

외벽이 신기해 가까이 가서 구경했는데 안에는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아 밖에서만 구경했다.

외곽부분에 있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올라가다보니 공동묘지가 보이는데 비석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오싹하다.

언덕을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공동묘지가 더 잘 보인다.

언젠가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죽음을 기리는 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속세에 미련이 많아서 그런지 내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많이 남기고 싶은데 욕심인지 본능인지 모르겠다.

언덕에 올라온 이유는 바로 이 대포때문이다.

보스니아는 이슬람 국가기에 금식기간인 라마단이 있다.

마침 내가 보스니아를 여행하던 때가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라마단 기간 동안 이슬람 신자들은 해가 뜰 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해가 지면 그 때서야 음식을 먹는다.

해가 지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언덕에서 대포를 쏘는데 대포 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언덕에 올라왔다.

어찌보면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대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하자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어린이는 그 나라의 미래인 것 같다.

대포를 쏘고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하고 내려가는데 좁은 도로에서 서로 안 비키려고 해 길이 막혀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조금만 양보하고 신경쓰면 될텐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보다. 

밑으로 내려오니 크로아티아에서 보이던 Konzum 슈퍼마켓이 보인다.

목이 말라 맥주나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이슬람 신자가 운영하는 슈퍼인지 술이 보이지 않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했으니 아쉽지만 스프라이트를 하나 사서 나온다.


제 여행기가 재미있으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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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징검다리 휴일..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당^^ㅎㅎ

  2.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나라입니다만 아름답네요.
    비싼 패키지 여행만 하는 뉴요커는 신경쓰지 마세요.
    사람들 마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고 여행하는 방식이 있는 것일 뿐이죠.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거죠.
    하여간 글자만으로는 소통이 잘 안되는 온라인의 안 좋은 속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여행기를 처음 쓸 때에는 악플에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요즘은 그냥 웃고 넘기게 되더라구요.
      아마 조금은 내공이 쌓인 것 같아요. ㅎㅎㅎ

  3. 슬픈역서는 어디나 있는거 같아요~ 어느나라든 어느 도시든 무언가를 얻기위해 누군가를 뭉게는게 사람의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
    광주는 엄청 슬픈역사가 있죠~ 심지어 어떤 할아버지들이 광주에와서 매직으로 글을써놓고가기도 한답니다 빨갱이라고...
    엄청나게 소름끼치더라구요~


    아................무조건 해가지고나면 맥주가 있어야 맛인데 ㅋㅋ 아쉬웠었겠네요~

    • 여행을 다녀보니 세상에 나쁜 사람도 많지만 착한사람이 더 많더라구요.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참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인 것 같아요.

  4. 모스타르..여전히 좋아보이는 군요. 겉으로는요 ㅎㅎ

  5. 언덕길과 골목길의 바닥돌들이 이쁘고 잘어울리네요

    슬픈역사때문인지 길들도 다 사연있는 듯하네요

    불빛에 비친 바닥길이 우리의 옛 골목을 회상하게 하네요

    •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들도 생각보다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인데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로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과거를 잊으면 안 될텐데 자꾸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6. 군인을 위한 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군요!

    • 우리나라의 현충원이나 광화문에도 이런 불꽃이 있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신 분들을 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7.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두 나라의 돌 바닥이 그냥 시멘트나 아스팔트 바닥보다 왠지 더 좋아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왠지 발이 덜 피곤할 것 같기도하고 보기에도 더 좋아보여서일까요?
    여하튼 보스니아라는 나라는 뉴스에서 사라예보 사건 정도로만 들어봐서 잘 모르는 곳이었는데 블로그를 보면서 조금씩 배웁니다.
    여행을 하면서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참 좋더라고요.
    앞의 유럽 여행기보다 계속 될 여행기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을 것 같아 왠지 다행이라는 기분이드네요~

    • 알게 모르게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어서 시멘트보다는 돌 바닥에 더 끌리는 것이 아닐까요??
      물가가 싼 나라로 갈수록 먹는 음식의 양이 늘어나고 제 행복도도 늘어납니다~ ㅎㅎ

  8. 이제 용민님은 여행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음이 여실히 보입니다
    저같으면 모르는 언어, 글자에 두려움이 먼저 들었을텐데, 용민님은 이미 그 문맥까지 눈치로 파악하는군요...
    역시 여러번 겪는 경험이 두려움이 아닌 즐기는 마음을 만들어내나 봅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tv에서나 들어봤을 곳을 볼수 있다니 어색하진 않지만, 여행지로는 낯선곳이라 기분이 이상합니다. ㅎㅎ
    점점 사람사는 느낌이 더 나는것 같은게, 남미를 보는 느낌이 다시 드는군요

    • 틀린다고 해서 누가 뭐라하는 것도 아니니 괜히 눈치로 맞춰보게 되더라구요.
      저도 보스니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로 사라예보에 갔는데 의외로 아늑하고 마음에 쏙 들었어요.
      역시 전 저렴한 나라 체질인가 봅니다. ㅎㅎ

  9.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라틴다리가 실제로 보면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더라고 다녀온 언니가
    제게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다시 봐도 역시 그러하네요.
    전공이 역사인지라 서양근대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서
    유독 유심히 본 사진이었는데
    역사는 찰나의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좋은 사진들, 재치넘치는 글들 잘 봤어요.

  10. 글 잘읽었어요. 멋지십니다. ^____^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30. 감수성이 깨어나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어제 성벽투어를 했기에 일정이 촉박하지 않아 늦게까지 잠을 자다 일어났다.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었으니 가급적 밀가루 음식은 자제하기로 하고 마트 조리코너에서 볶음밥과 치킨을 사왔다.

물론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는 없으니 맥주도 한 캔 샀다.

에어컨이 빵빵하니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는 에어컨이 없어도 잘만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에어컨만 보면 신이 난다.

체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작 다시 열악한 나라로 여행을 가게되면 또 잘 적응할 것 같다.

계속 방에서 빈둥거리다 밖으로 나왔는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오늘의 목적지는 산 위에 보이는 첨탑이 있는 전망대다.

어릴 때는 높은 곳을 보면 '언제 저기를 올라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요즘에는 '걷다 보면 언젠가 올라갈 수 있겠지'라는 여유로운 생각이 든다.

걷는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 극한의 난이도가 아니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앞에 가던 차가 번호판을 떨어뜨리고 간다.

급하게 주워서 흔들어봤지만 보지 못했는지 그냥 가길래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다.

폴란드에서 여행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 다시 번호판을 찾아가 남은 여행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도를 봐도 전망대로 가는 대략적인 길만 나와있어 그냥 감을 믿고 걸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산 위에 있으니 높은 곳으로만 가면 길이 나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올라가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태양 형아가 너무 강하다.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구시가지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전망대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100쿠나(한화 18,000원)정도 하기에 그냥 걷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부분만 숲길이고 그 뒤로는 다 황무지 길이라 그늘이 하나도 없다.

덥고 힘들어 잠시 쉬어가고 싶지만 마땅히 쉴 곳도 없어 계속 걸어간다.

1991년,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가 통치하는 유고슬라비아를 이룩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즉시 독립을 선언했고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유고슬라비아군은 크로아티아에서 인종청소를 하기 시작했으며 전쟁은 1995년 크로아티아가 과거의 모든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와 전쟁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지만 앞으로의 역사에서 전쟁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덥지만 오르고 오르다보니 어느새 꼭대기의 성벽까지 올라왔다.

1시간이 넘도록 산을 올랐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을 한명도 못 만났다.

만약 나보고 다음에 다시 이곳을 올라가라고 한다면 그 때는 그냥 케이블카를 타겠다.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쓸 때는 써야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긴 하지만 구도가 살짝 아쉬워 케이블카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다시 사진을 찍었더니 이제 마음에 든다.

오렌지색이 참 잘 어울리는 지상 위에 있는 천국이다.

ATV를 타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이 보였는데 내려가는 중이라 별로 부럽지 않았다.

만약 힘들게 걸어 올라오고 있는데 뒤에서 신나게 ATV를 타고 올라갔다면 엄청 부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탈 것을 타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없다.

내리쬐는 햇살이 정말 찬란하게 눈부시다.

비록 날은 덥지만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니 정말 행복하다.

크로아티아에 오니 잠자고 있던 감수성이 깨어나는 것 같다.

자꾸 빛에 대해 생각하며 사진을 찍게 된다.

뙤약볕에 산을 올라야하기에 물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서 나왔는데 바보같이 물을 사는 것을 까먹고 그냥 산을 올라갔었다.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았기에 내려와 처음 보인 슈퍼에 들러 물을 사서 그 자리에서 반 이상을 마셨다.

배고픈 것은 어느 정도 참으면 되지만 목이 마른 것은 참다가는 큰 일 날 수도 있으니 자주 물을 마셔줘야한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식사를 하기위해 레스토랑을 찾아가는데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식욕이 돋지 않는다.

아무 음식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는데 억지로 먹고 싶지 않아 그냥 길이나 걷기로 했다.

우리가 유럽의 골목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서양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북촌한옥마을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누가 잘났는지 따지지 말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은은한 등불이 참 포근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집을 사게된다면 은은한 조명으로 집을 꾸미고 싶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계속 감탄한 적은 많았지만 도시를 보고 계속 감탄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두브로브니크는 정말 아름답다.

분명히 사람은 많은데 시끌벅적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조용한 골목길 계단에 가만히 걸터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유럽을 떠나오며 흥미를 잃었던 유럽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내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땀을 많이 흘려 살짝 투통이 오길래 포도당 알약을 먹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여행할 때는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가지고 다니며 물에 타 마셨었는데 이제는 간단한 알약 2알이면 충분하다.

언젠가는 음식대신 모든 영양소를 알약으로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올텐데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난 아직 식욕을 조절할 수 없으니 피자를 먹어야겠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근처에는 식당이 하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또 피자를 샀다.

시간이 지나고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마을과 맛있는 피자가 떠오를 것 같다.

밥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술이라도 배터지게 먹기로 했다.

먹고 싶던 아이스크림과 0.5L가 추가로 들어있는 맥주, 감자칩을 샀다.

개인 숙소를 잡으면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어제 마트에 간 김에 오늘 먹을 아침으로 씨리얼과 우유를 사 왔다.

그릇 대신 코펠을 가지고 다니지만 설거지하기가 귀찮아 그냥 우유팩에 씨리얼을 타 먹었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까지 하늘이 화창하다.

숙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한 4km 정도면 갈 것 같아 걸어가기로 했는데 날이 정말 덥다.

그늘도 없어 힘들었지만 이미 걷기 시작한 길이니 계속 걷는다.

무언가를 하면서 쉽게 포기해도 안 되지만 힘든 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도 안 좋다고 하던데 난 최씨 똥고집이 있어 한번 고른 길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라 걱정이다.

버스터미널에 달려있는 온도계가 32도를 가리키고 있다.

더워서 그런지 1년 전에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봤던 온도계가 생각난다.


1년 전, 무더웠던 인도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시크교는 시크하지 않다 - http://gooddjl.com/178 를 읽어주세요.


버스에 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겨준다.

이제 더 동쪽으로 떠날 시간이다.


<크로아티아 여행 경비>


여행일 6일 - 지출액 1850쿠나 (약 33만원)

 

물가가 비싼 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피자를 자주 먹어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물가에 비해 숙박료가 조금 비쌌지만 아이스크림이 싸고 맛있어 즐거웠다.


지금까지 온 동유럽은 냉전시대의 사상을 기준으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지리적으로도 동유럽이라 부를 수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에 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1990년대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전쟁 도중에 독립했다고 한다.

나라 이름이 언뜻 보면 두개의 나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하나의 나라이다.

Vita를 보니 생명에 관련된 것 같기도 한데 도대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서 창 안쪽의 가게를 보니 약국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약국을 다닌 적은 베트남에서 피부병이 걸렸을 때를 빼고는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내 몸이지만 참 튼튼하긴 튼튼하다.

크로아티아까지는 유럽의 향기가 많이 났었는데 보스니아에 오니 유럽보다는 이슬람 문화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문화권이 바뀌니 신난다.

보스니아 여행의 시작이 시작된 이곳은 모스타르라는 도시다.

다리의 파수꾼들이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의 상징은 당연히 사진에 보이는 아치형의 다리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에 올라 잔잔히 흐르는 네레트바강의 푸른 물을 보고 있다.

강의 상류로 가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기로 했다. 

피곤할 때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줘야한다.

정말 맛있는데 한 스쿱에 1.5마르카(한화 1,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드디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는 나라에 온 것 같다.

날도 덥고 배도 안 고프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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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것. 그 아무나를 박수로 응원합니다~~♡^^

  3.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 슬퍼서 더 아름다웠던 사라예보!! 아직 여행 중이시죠?? 당신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저도 1년 10개월의 여행 끝에 귀국했는데요.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한다는 말,,, 정말 공감갑니다~~

  4. 2016년도에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예습시켜 주신것 같아 넘 감사 합니다.

  5. 드브로니크 성곽부근만 맴돌다 왔는데 케이블카 정상에서 본 경치 잘 보았습니다.

  6.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이거땜에 티스토리 가입도 했네요ㅋㅋ 글이랑 사진 분위기 전부 너무 좋아요

  7. 님의 여행기를 보며 저도 언젠가는 자유롭게 여행하기를 기대해봅니다

  8. 작년 딱 이맘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여행했는데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나네요~전망대에서 본 두브로브니크와 성벽투어 그립네요^^

  9. 낯선 나라를 아침부터 다녀옵니다
    언어의 장벽이 두려워 배낭여행은 꿈도 못꾸고 패키지로 다녀오면서 늘 아쉬워하는데 또 배낭여행을 꿈꾸게 하셨어요. 60고개를 접어드는 지금......

    • 걱정되는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지만 실제로 떠나보시면 의외로 할만 하실 거에요.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직접 계획한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10. 비밀댓글입니다

  11. 이쁜사진들 보니 꼭 가보고싶네요

  12.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 꼭!^^

  13. 저희아들꿈이 여행작가인데 책으로 나오면 읽어보라고하고프네요^^

  14. 짤막하지만 진심이 담긴 멘트가 참 좋네요 :-) 응원합니다!!

  15. 재미있었어요
    그립다 여행~~

  16. 실수로 클릭했다가(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네요. 무덤덤한 듯 써내려간 간결한 글이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나봐요. 물론 사진도요. 공대생이라 그런가 싶다가 이런 글투가 마음에 드는 걸 보니 난 다시 태어나도 또 공대생과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웃었네요^^

    뉴욕에 사는 아줌만데 용민군이 워낙 애국, 개념 청년이라 자본주의의 메카인 뉴욕이 거슬리진 않을까 조마조마 하면서 뉴욕편을 읽었는데 좋은 인상을 가지셔서 내심 안심했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라 용민군 어머니에 빙의^^된 듯 읽었어요. 치안이 안 좋은 곳에선 무슨 일 당하지 않을까, 돈 걱정에 먹고싶은 거, 하고싶은 거 못 한 에피소드에선 맘 이파하면서요 ㅠㅠ

    건축공학과라면 civil engineering 을 말하나요? 우리 아인 architecture 공부하고 있는데 세계여행을 보내고 싶은데 딸아이라 걱정이 되네요. 혹시 용민군 같은 오빠가 동행을 해주면 모를까...^^

    남은 여행기도 기대할게요. 한 10년쯤 뒤에 멋진 인물이 되어 세상을 놀래킬 일도요.

    P.S. 잘생겼으니 못생겼단 말 하지 마세요. 엄마가 서운해 하셔요!

    • 공대생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요. ㅎㅎ
      여행을 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도 했었는데 좋던 싫던 자본주의는 필요하겠더라구요.
      뉴욕은 기대를 별로 안했던 곳이였는데 예상외로 정말 재미있었고 마음에 들었던 곳이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미국에서는 어떻게 분류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과는 architecture engineering으로 분류되고 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위험하지도 않고 여행을 하면서 건축쪽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깊이가 깊어지니 따님에게 한번 권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세요~

  17.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여행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18. 크로아티아 다음 여행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군요.
    여행기로 접해보지 않아서 어떤 곳일지 참 궁금해지네요~
    그것보다 매번 여행기에 빠지지 않는 사진이 맥주인 것 같은데,
    술을 잘 못 마시는 저로서는 참 신기하고 부러운 사진이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함께하는 여행이면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하게됩니다.

  19. good

  20.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는 말이 안 나올만큼 멋져요.
    용민군 사진찍는 기술이 더 좋아져서 그런가요? ^^
    모스타르의 아치형 다리도 기가 막히네요. 대단대단~~

  21. 사진을 두브로브니크가 아담한 동네같아 보인다. 작은 동네같은데 케이블카가 있네. 관광객을 위한 시설인가? 근데 용민님이 건축공학 전공이군요. 우리 아이도 건축과에 다녔었다. 그러다가 의대수업을 받는다고 고생 많이 했을 거 같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지만 ㅡ 님이 부럽고 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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