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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마무리-Epilogue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176. 못다한 이야기이자 마지막 이야기.

길고도 길었던 여행기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783일간의 여행이 175편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내가 겪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고 작은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제 여행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썼지만 10년, 20년이 지났을 때, 스스로 제 여행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여행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가장 처음 여행기를 쓰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기는 끝까지 쓰며, 될 수 있으면 펑크를 내는 일도 없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예약 전송 시스템을 이용해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에서도 여행기를 업로드 했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로 몇 번의 펑크를 냈습니다.

시험 기간이라는 핑계로, 학교 생활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펑크를 내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그렇기에 제 여행이 100점 만점이라면 제 여행기는 85점 밖에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여행기를 읽으시며 재미있다고 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여행기를 끝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에필로그는 원래 저번 주에 올렸어야했지만 제 세계일주 여행기의 마지막 이야기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진솔한 이야기를 올리고 싶어 몇 번을 지우다 이제야 업로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계일주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군대에서 읽은 최인호 선생님의 ‘길 없는 길’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그 전부터 막연하게 세계일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 떠나야할지는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길 없는 길’을 읽으며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세계일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언제 여행을 떠나야 좋을지 고민한 결과, 30대가 되어 취직을 하면 잃어버릴 직장이 있을 것이고, 40대가 된다면 가정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50대가 될 때까지 꿈을 이루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삶이 불쌍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잃어버릴 것은 청춘과 시간밖에 없는 20대가 긴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을 것이란 생각에 군 제대 후 바로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제대하자마자 부모님께 제 계획을 말씀드리고 약 8개월 동안 여행자금을 모으며 여행계획을 세웠습니다.

여행 자금이 적었기에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여행할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정했고 하나씩 장비를 마련해 나갔습니다.

여행 출발일은 제 생일인 10월 13일로 정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2012년 10월 13일 세계일주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중국 청도에서 시작한 여행은 너무 빨리 찾아온 부상 때문에 일찍 막을 내렸습니다.

무섭고 무뚝뚝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중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 달 간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기세등등하게 떠났기에 금방 한국에 돌아온 것이 부끄러워 집과 병원만 다니다 배낭을 메고 태국으로 다시 떠났습니다.

처음 국제선을 타고 도착한 태국을 거쳐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한 뒤에는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베트남에서 겪은 장사꾼들의 사기덕분에 인도에서는 크게 짜증을 내지 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대하던 네팔에서 만난 히말라야는 세상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자연의 위대함도 알려주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인도에서 ‘인도는 모르겠지만 인도인은 정말 싫다.’라는 감상을 남긴 채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부족한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거쳐 호주로 떠났습니다.

호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기에 호주에서 백수로 2달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습니다.

백수로 지낸지 1달이 넘어가자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결국 세계일주를 포기하고 남은 돈으로 물가가 저렴한 인도로 돌아가 1년 정도 지낼 생각을 한 뒤, 집 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말을 한 날 중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중국친구였는데 자신은 중국인이라 나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지만 제 여행기를 재미있게 보고 있고 꼭 끝까지 여행을 마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메시지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여행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후, 바로 집 주인을 다시 찾아가 방을 빼기로 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호주에 뼈를 묻기로 한 뒤, 계속해서 구직활동을 했고 스스로와 타협해 직장도 구했습니다.

호주에서 나보다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보다 돈을 조금 쓴 사람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돈을 아끼다 보니 금세 다시 여행을 떠날 자금이 모였습니다.

마침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던 가족을 시드니로 불러 즐거운 가족여행을 마치고 새해가 밝는 2015년 1월 1일, 가족들은 한국으로, 저는 아르헨티나로 떠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남미 여행에서는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었고 환상적인 자연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방심한 덕분에 에콰도르에서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했지만 한번쯤은 사고를 당할 것이라 생각했었고 사진은 대부분 건질 수 있었기에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힘겹게 입국한 쿠바에서 다양한 일을 겪은 뒤, 미국에 입국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미국의 입국심사관은 정말 친절했고 영화에서만 보던 뉴욕의 풍경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미술과 예술은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만난 박물관과 미술관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짧은 미국 여행을 마친 뒤 , 다음에 꼭 미국 대륙횡단을 하겠다는 다짐을 남긴 채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이 현실이 되니 즐거웠지만 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도시보다 자연이 그리웠고 어서 빨리 중앙아시아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란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도착해 제가 꿈꾸던 파미르 고원을 봤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여행을 끝을 향해 달려가던 중 처음 여행을 떠날 때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핀란드에 들러 황홀한 오로라도 만났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며 마무리는 꼭 시베리아횡단열차로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모스크바에서 시작하는 7일 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2014년 12월 4일, 세계일주를 마치고 동해로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3달 동안은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지내다 2015년에는 복학을 해 방학에도 계절학기를 들으며 그 동안 미뤄 두었던 공부를 하며 지냈습니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나서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전혀 없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후유증이 찾아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인 세계일주를 26살에 이루고 나니 삶의 목표가 사라져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뭔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삶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야 하는데 딱히 도전할 것이 없으니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었습니다.

마음이 이렇다보니 여행기도 의무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세상 모든 일이 재미없게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여행을 마치고 나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경쟁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가치관이 생겼기에 삶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겉으로는 평범한 학생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속은 곪을대로 곪아가는 시간이 계속되었고 인생노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렇게 2015년을 많은 고민으로 보내고 나니 그제야 삶이 항상 특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재미를 찾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대로 살다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다시 한 번 불타오르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 여행은 제가 한국에 돌아온 날 끝난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이 정리된 날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아직 제 여행은 끝이 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약간은 길었던 제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고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겠습니다.

가장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은 여행 경비에 대한 부분일텐데 중간에 호주에서 생활하며 쓴 비용을 빼면 여행하는데 든 총 비용은 2800만원 정도 사용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기 전까지 제가 한 3500만원 정도는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계산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이 저렴한 여행을 한 것 같아 저 스스로도 신기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전 항상 네팔의 히말라야, 아르헨티나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 핀란드의 오로라를 꼽습니다.

다른 의미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하는 베트남과 호주에서 겪은 백수 생활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와는 또 다른 의미로는 고생하며 지낸 인도도 그립습니다. 인도에 있을 때는 인도를 욕을 하지만 인도를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진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에 달라진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이 아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식인종만 없다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어디를 가도 먹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여행을 하며 길러왔던 긴 머리는 1주일 정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배낭을 내려놓으니 긴 머리가 어울리지 않길래 바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먹은 것은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었고 가장 먼저 마신 술은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여행은 여행기에서 가끔 말했듯이 한국의 설산이 보고 싶어 겨울의 한라산을 올라갔었고 딱 한 곳만 여행을 가라고 한다면 솔직히 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중국도 제대로 즐겨보고 싶고, 아프리카 대륙도 가봐야 하고, 미국 동서횡단도 해보고 싶고, 남극과 북극도 가보고 싶고, 치가 떨리지만 그리운 인도도 가보고 싶고, 달나라도 가보고 싶고, 화성도 가보고 싶습니다.

여행을 함께 해준 넷북은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 해 하드 디스크만 꺼내 새로운 노트북에 장착해 사용 중이고 카메라는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인 인생의 동반자는 아직 못 만났습니다. 이상형은 귀엽고 착한 여자인데 아마 앞으로도 못 만날 것 같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게 끝내고 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우선 세계일주 여행기가 끝난 지금, 앞으로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글 쓰는 것이 아직은 재미있기에 블로그 생활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고민해봤지만 학생 신분이다 보니 제 전공인 건축과 제가 잘하는 국내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습니다.

블로그의 글 또한 매주 포스팅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이번에는 포스팅하는 시간을 금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꿀 계획입니다. 세계일주 여행기는 한 주를 마무리 하며 보셨다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은 한 주를 시작하며 봐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 새 포스팅은 다음 주는 쉬고 그 다음 주인 5월 23일부터 시작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대발표를 하자면 제 세계 여행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올 여름, 새롭고 스펙타클한 여행을 보여드릴 계획이니 그 동안 포스팅 되는 국내 이야기도 재미있게 즐겨주시고 여름부터 시작 될 새로운 여행기를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동안 감수성이 부족한 순도 100% 공대생 남자의 입장에서 써온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또 감사했습니다.

여행에 대한 질문이나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언제든지 yongdduck@gmail.com이나 카카오톡 yongdduck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