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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쿠바-Cuba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 084. 멀고 험한 쿠바로 가는 길. (쿠바 - 아바나)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호텔에서 제공해준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두바이에서 호되게 당했기에 이륙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도 비행기를 놓쳤다.


어제 항공사 직원이 알려준 Copa 항공사에 가서 내 이름을 말했더니 시스템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다고 한다.

모든 곳을 체크해봐도 내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길래 원래 내가 표를 끊었던 Cubana 항공사를 찾으러 공항을 방황했는데 공항 내에 항공사 카운터가 없다.

Cubana 항공의 비행 스케쥴은 매주 토요일에 단 1편만 있기에 토요일에만 근무를 한다고 한다.

전화기를 빌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 연결이 안 된다.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항공사와 겨우 연락이 됐는데 자기들이 알려준 항공사는 Copa가 아니라 Avianca라며 아비앙카로 가보라고 한다.

아비앙카 카운터에 가니 내 비행기는 이륙 5분 전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제 Cubana 직원이 나에게 적어준 비행기 정보가 내 E티켓에 남아있다.

다시 Cubana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당신들 직원이 나에게 Copa 항공의 9시 비행기라고 적어준 증거가 있으니 발뺌할 생각하지 말고 당장 직원을 보내라고 하니 당황하며 알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진상을 피워야 제대로 진상을 피웠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고 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30분이 더 지나고 한 아줌마가 아들을 데리고 뛰어오더니 급하다면서 따질 시간도 없이 빨리 움직이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할 틈도 없이 미친듯한 속도로 출국 수속을 하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원래는 쿠바 아바나로 가는 직항 비행기였는데 남은 비행기는 파나마 경유밖에 없다고 한다.

사실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를 들어갔다 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시위가 격해져 많은 사람들이 죽고 방화와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해 쿠바를 가기로 했다.

난 체게바라보다 베네수엘라의 로라이마 산이 더 좋았지만 생명은 소중하니 어쩔 수 없다.

파나마에서 경유를 해 쿠바로 향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맥주를 마신다.

쿠바 공항에서 제대로 멘탈 붕괴를 겪고 겨우 숙소로 왔더니 한국인 정화 누님이 계셔 7년산 아바나 클럽으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술을 마셨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장하다.

쿠바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에서 멘탈 붕괴를 겪은 이유는 바로 이 도장 때문이다.

쿠바는 미국의 적성국이기에 쿠바에 입국한 사실이 있으면 미국 입국이 거부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쿠바 이민국에서는 여행자들에게 여행자 카드를 팔고 거기에 입국 및 출국 도장을 찍어 쿠바에 입국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제 입국심사대에서 내 여권에 도장을 찍으려 하길래 왜 찍냐고 물어보니 그게 자신의 임무이니 찍는다고 대답을 한다.

난 앞으로 미국에 가야한다고 사정을 말하며 원래 하던대로 여행자 카드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니 그럴 수 없다며 여권에 도장을 쾅하고 찍어버린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우선 이 상황이 나에게만 일어난 일인가를 파악하기 위해 공항에 있는 여행자들을 붙잡고 여권에 도장이 찍혔냐고 물어보니 50% 정도는 찍혔다며 나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배낭은 쿠바 공항으로 오지도 않아 멘탈 붕괴 2연타를 맞았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기에 우선 숙소로 와서 주소를 알려주니 새벽에 내 가방을 보내줬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시간을 되돌려보면 보고타에서 출발할 때, Cubana 직원이 가져온 비행기 표는 40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이미 카운터가 닫혔을 시간이기에 어떻게 할거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줌마에게 묻자 아줌마는 Copa 항공의 직원에게 보딩 패스만이라도 발권을 해달라며 부탁했고 직원은 짐까지는 어떻게 못 한다며 보딩 패스만 끊어줬다.

설마 70L짜리 가방을 가지고 타는 것인가 생각하며 출국장으로 가는데 내 가방 속에 들어있던 맥가이버 칼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기에 난 50달러짜리 맥가이버 칼을 두고는 못 떠난다고 하자 아줌마는 걱정말라며 우선 검색대를 통과하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대에서 직원이 내 가방을 열어보라고 한다.

그런데 보안 직원의 눈치를 보니 칼이 아니라 의료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가위가 걸린 분위기였다.

칼은 없는 척을 하며 가위를 꺼내주니 이 가위를 가지고는 보안구역을 통과할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가위는 천 원이면 사기에 알았다며 바쁜데 이만 가도 되냐고 물으니 가보라고 한다.

운이 좋았다며 생각하면서 나의 눈치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출국 게이트로 가는데 아줌마가 뛰어오더니 어서 가방을 열라고 한다.

왜 그러냐며 가방을 여니 아까 반납한 그 가위를 넣어준다.

아무래도 보안요원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나에게 돌려준다고 말하고 받아 온 것 같은데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다는 듯이 게이트에 있는 직원을 부르더니 화물칸을 열어 내 가방을 넣어달라고 말을 하니 화물칸이 열린다.

짐에 태그까지 붙여주면서 가방은 쿠바에서 찾으면 된다며 걱정하지 말고 여행을 잘하라며 나를 배웅해주는데 이 아줌마가 보통 직원이 아니라 Cubana 항공에서 보낸 제대로 된 해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엄마는 대단하다.


짐을 늦게 보냈기에 파나마를 경유하면서 문제가 생겼던 것 같은데 잘 찾았으니 다행이다.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을 타개하려면 두뇌회전에 필요한 당분이 필요하니 아침을 잘 먹어야한다.

아침을 먹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어제 저녁부터 여권에 찍힌 도장만 생각하고 있기에 쿠바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인터넷 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쿠바에 있는 동안은 인터넷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긴급상황이니 호텔에 있는 인터넷 카페로 갔다.

30분에 6달러(한화 6,0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쿠바 도장이 찍힌 여권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미친듯이 검색했다.

어제 저녁에 택시를 타고 숙소로 올 때부터 이 상황을 해결할 계획은 어느정도 세웠지만 여러가지 정보가 필요했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여권을 버리는 것이었다.

우선 콜롬비아로 돌아가 여권을 재발급 받으면 미국에서는 내가 쿠바에 들어갔다 나온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내 여권에 찍힌 세계일주의 흔적들이 아쉬웠지만 미국행 비행기와 예약해둔 미국의 숙소, 미국에서 나가는 비행기 값을 계산해보니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면 버려야하는 돈이 100만 원 이상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계속 나를 쫓아다닐 미국 입국심사에 거절당했다는 꼬리표를 생각하면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바로 다음 주 비행기를 타고 콜롬비아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나만 도장이 찍힌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모르는 정책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특히 작년 넬슨 만델라의 추도식에서 오바마와 카스트로가 악수를 했었다는 기사를 봤었기에 희망이 들었었다.

검색을 해보니 최근부터 도장을 찍기 시작했고 나처럼 당황한 여행자들이 질문한 글들이 심심치않게 보였다.

답변들을 보니 캐나다에서 육로로 입국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와 자신은 이미 많은 쿠바 도장이 있지만 괜찮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무엇보다 쿠바 입국도장으로 인해 미국 입국이 거절당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의 법조항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충 찾아보니 미국의 법에는 미국국적의 국민이 쿠바에서 쿠바에 경제적인 이득을 주는 활동을 할 수 없으나 의료목적의 봉사활동은 허가된다고 써있었다.

여기서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지칭을 발견했기에 한국인인 나에게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하기위해 2003년도부터 2013년에 이르는 론리플래닛 쿠바편들을 찾아 비자 관련된 부분을 보니 확실히 미국 여권에 한해서만 쿠바 입국도장을 주의하라고 써 있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인 이스라엘의 입국 도장에 대해 찾아보니 특정 국가의 여권을 지칭하지 않고 모든 여행자들은 이스라엘 입국도장을 조심해야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입국할 수 있다고 써있었다.


조사를 해보니 이 정도면 미국 입국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외국인이 북한에 다녀왔다고 우리나라에서 입국을 거부하지는 않으니 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이 도대체 뭐라고 여권까지 버려야하냐는 오기까지 생겨 계획대로 쿠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만약 미국에서 입국 거절을 하면 진상을 제대로 피우고 반미운동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자 그 놈의 미국이 뭐길래 내가 못하는 영어로 구글을 검색하고 미국 법조문까지 찾아본 내가 웃겨 웃음이 났다.

결정을 내렸으면 털어버려야 한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불안감은 마음 한 구석에 밀어 넣고 아바나 구경을 시작한다.

어디를 가도 체 게바라 형님과 카스트로 형님의 사진이 걸려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호기심과 체 게바라에 대한 동경심,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나라에 대한 궁금함으로 쿠바를 찾는다던데 난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 상태로 쿠바에 왔다.

그래도 오기 전에 체 게바라 평전을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전자책을 구했는데 중간까지만 읽다 말았다.

헤밍웨이의 책들은 어릴 때 읽었었지만 나이를 먹고 읽은 적이 없어 보고타에서 노인과 바다만 다시 읽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쿠바에 대해 기대하고 있던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하늘과 구름이다.

쿠바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하늘이 엄청 아름다웠었고 그런 하늘을 보고 싶어 쿠바를 왔다.

여행을 즐기려면 많든 적든 그 나라의 돈이 있어야한다.

쿠바 또한 미국을 적대국으로 생각하기에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한다는 미국의 달러가 쿠바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미국 달러를 환전하면 10%의 수수료를 떼고 돌려줘 여행자들은 캐나다 달러나 유로화를 가져가야한다.

물론 찾으면 달러를 환전해주는 브로커도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약간의 수수료를 내야하니 난 콜롬비아에서 페소를 인출한 뒤 유로화로 바꿔갔다.

쿠바에는 여행자화폐인 CUC(쿡)과 현지인화폐인 CUP(쿱)이라 불리는 2종류의 화폐가 있다.

예전에는 두 화폐의 경계가 철저했는데 요즘은 여행자도 CUP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CUC은 1달러의 환율을 가져 약 1,000원 정도이다.


또 1CUC은 24CUP인데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은 주로 CUP을 쓰며 쿱이라 말하기보다는 모네다라고 부른다.

모네다를 쓸수록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기에 20쿡을 모네다로 바꿨더니 한 뭉치의 돈을 준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니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다이끼리를 한 잔 마시러 갔다.

칵테일 한 잔에 1.5쿡(한화 1,500원)이니 확실히 남미보다는 물가가 싼 것 같다.

쿡을 쓰는 레스토랑에 갔더니 닭 반마리가 6쿡(한화 6,000원)정도 한다.

맛은 그냥 치느님의 맛이었다.

맥주를 싸게 마실 수 있다기에 찾아갔는데 미지근한 것 밖에 없다길래 탄산음료를 하나 시켰다.

가격은 10모네다(한화 400원)인데 환타 맛과 비슷했다.

쿠바도 지중해에 위치했기에 날씨가 덥다.

정화 누님이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알려줘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는데 이 것도 10모네다밖에 안 한다.

처음에는 두가지 화폐라길래 걱정했는데 직접 돈을 써보니 대충 물가 개념이 잡히기 시작한다.

쿠바의 거리는 전혀 깨끗하지 않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곳곳에서 찌린내가 난다.

마치 인도의 조금 깨끗한 도시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이 너무 더워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는데 주인 할머니네 손녀로 보이는 애가 보여 같이 놀았는데 정말 귀여웠다.

쑥스러운지 말은 잘 안 했는데 귀엽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것이 커서 남자를 꽤 울릴 것 같았다.

해가 지고 또 다이끼리를 마시러 나갔다.

이번에 간 곳은 헤밍웨이 형님이 다이끼리를 마시던 바인데 맛은 있지만 한 잔에 6쿡이나 한다.

헤밍웨이 형님을 보러 제가 쿠바까지 왔으니 한 잔 드시죠. 형님.

술을 마셨더니 배가 출출해져 10모네다짜리 햄버거를 하나 사먹는다.

돈까스같은 튀김이 들어있는데 정말 맛있었다.

몸에 안 좋을 것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만 맛은 최고였다.

쿠바에서 나오는 채소와 과일들은 다 유기농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파파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단것 같다.


쿠바에는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라는 개념이 없다.

대신 까사라는 개념의 민박집이 있는데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집에 한해서 민박을 할 수 있고 수익의 대부분은 세금으로 걷어간다고 한다.

그 대신 까사에서는 밥을 팔아 돈을 번다고 한다.

아침을 먹었으니 또 밖으로 나간다.

똑같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지만 남미와는 다른 분위기가 난다.

콜롬비아에는 없던 차이나타운이 쿠바에는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중국인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낡은 건물들과 푸른 하늘이 쿠바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정화 누님께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새우볶음밥이 맛있는 곳을 안다길래 따라왔는데 정말 시원하다.

볶음밥은 좀 짜고 맥주는 보통의 맛이었지만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쌀쌀하던 보고타에서 와서 그런지 쿠바의 날씨가 유독 덥게 느껴진다.

볶음밥을 먹고 바로 먹는 것 같아 보이지만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한 잠 자고 다시 나온 길이다.

이번에는 15모네다(600원)짜리 스파게티를 먹었다.

싸구려 햄과 치즈로 만든 스파게티의 맛은 그저 그랬지만 난 음식맛에 연연하지 않기에 끝까지 다 먹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많은 것이 부족해 일회용품들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길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접시에 담아주는 음식을 받아 길가에 서서 먹고 다시 그릇을 돌려줘야 한다.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말레꼰 해변으로 마실을 나왔다.

말레꼰 해변은 소지섭씨가 소니 카메라 CF를 찍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파도치는 모습은 여행자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고 한다.

파도 구경을 제대로 하려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를 피해 건물 밑에서 파도를 구경하다가 괜찮게 나올 것 같아 흑백사진을 찍어봤는데 별 느낌이 안 난다.

쿠바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즐겨마신다고 한다.

점심은 내가 묵고 있는 건물의 1층에서 배달 시켰는데 갈비처럼 생긴 고기가 왔다.

25모네다(한화 1,000원)면 한 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물가가 정말 싸다.

더러운 것만 인도를 닮은 줄 알았는데 물가도 인도를 닮았다.

쿠바에 오니 자꾸 흑백사진이 찍고 싶어진다.

민규 형님이 콜롬비아에서 물려주신 커피주전자로 콜롬비아 커피를 내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효근씨와 수다를 떨었다.

쿠바커피도 맛있다고 하지만 콜롬비아 커피가 더 맛있다.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한국인들을 만나 말레꼰 구경을 가기로 했다.

오늘은 빛내림도 내려주고 있었다.

거기다 파도도 높게 쳐서 도로까지 파도가 올라온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던 진짜 말레꼰인 것 같다.

파도치는 말레꼰을 따라 걸으니 드디어 진짜 아바나에 온 것 같다.

이번 흑백사진은 조금 마음에 든다.

필름카메라도 써보고 싶은데 실력이 없으니 디지털카메라로나 잘 찍어야겠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뽀요 튀김을 시켰더니 치킨까스가 나왔다.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 정말 일품인데 45모네다(한화 1,800원)밖에 안한다.

거기다 엄청 상큼한 레모네이드는 단돈 10모네다(한화 400원)이니 여기가 천국에 있는 레스토랑인가 보다.

밥을 먹었으니 술을 마실 차례다.

쿠바하면 떠오르는 칵테일인 모히토를 마시러 갔는데 맛이 없다.

어떻게 원조인 쿠바보다 한국에 있는 모히토가 훨씬 맛있을 수가 있을까.

이어서 쿠바리브레를 한 잔 더 시켰는데 럼에 콜라와 라임을 탄 것이기에 딱히 특별한 맛은 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달을 보려고 하늘을 봤는데 달빛이 정말 예뻤다.

달님, 앞으로도 예쁜 쿠바의 하늘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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