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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인도-India

배낭메고 세계일주 - 026. 인도인과 흥정하기.


다즐링 뒤로 보이는 산은 칸첸중가이다.

칸첸중가는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높이 8586m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봉이다.

몇년전 오은선씨가 여성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반성공이 조작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일었던 그 칸첸중가이다.

이 칸첸중가의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다질링 근처의 높은 봉우리인 타이거힐로 간다.

나도 타이거힐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아침에 알람이 울려도 못 듣고 그냥 잤었는데 지금은 손목시계에서 나는 작은 소리로도 일어난다.
역시 군대는 안되는 것이 없다. 

어제 숙소에서 같이 술을 마신 3명과 타이거힐로 가는 지프정류장에 갔다가 한국인 2명을 더 만나 일행이 총 6명이 됐다.
인도에서 이동을 하는데 흥정을 안 할리가 없으니 이번에도 지프 기사들과 흥정이 시작됐다. 

원래 다질링에서 타이거힐까지 가는 적정가격은 80~120루피인데 지프 기사들이 처음엔 200을 부르고 150이 마지막이라며 배짱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인 커플도 원래 가격을 알면서 그냥 당하고 넘어갈 성격이 아니라 끝까지 싸웠다.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30루피(한화 600원)으로 싸우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특히 서양애들의 관점으로 보면 고작 1달러도 안 되는 30루피로 싸우는 한국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정가격이 있고 30루피가 10번 모이면 300루피가 되어 내 하루 생활비가 되기에 오늘도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지프 기사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나는 유흥이 아닌 여행을 하고 있고 돈을 뿌리고 다니면 다음에 오게 될 여행자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힘들게 흥정을 하게될 것을 알기에 끝까지 싸운다.
제발 모든 여행자들이 여행을 가서 그 나라 물가에 맞게 쓰고 다니면 좋겠다. 

다른 지프를 알아보려해도 자꾸 훼방을 놓으며 어차피 너넨 지프를 탈 수 밖에 없다고 버팅기길래 비웃으면서 그냥 동네 전망대로 향했다.
타이거힐이 아니어도 해는 뜬다.

어차피 우리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직접 올라갈거니 그렇게 아쉽지도 않다.
전에도 말했지만 불의에 굴복하기에는 나는 아직 어리다고 믿는다. 

그리도 내가 아는 또 다른 것은 얼굴이 잘생기지 않은 사람이 찍는 셀카의 기본예의는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춰주는 것이다.

다질링은 네팔쪽과 붙어있다보니 돼지고기도 판다.

저 고기를 구워먹으면 참 맛있을텐데.

식당을 찾다가 별로 당기는 곳이 없어서 어제 뚝바를 먹은 곳으로 다시 갔는데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한글로 메뉴판도 적혀져있다.

오늘은 양곱창탕이라는 것을 시켜봤는데 양도 많고 매운맛도 나지만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아마 입맛이 그나라에 적응을 하는지 인도에서 티벳음식을 먹으려니 맛이 없다.

아. 탈리 먹고싶다.

시장을 지나가는데 우유처럼 생긴 것을 팔길래 냉큼 샀는데 입안에서 지방이 느껴지는 고지방우유였다.
냉장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편의점에 진열된 바나나우유를 못 먹는 대신에 갓 짠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이런 것을 보면 과학문명의 발전이 무조건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보다 과학문명이 뒤쳐졌던 우리 부모님 세대도 행복했고, 우리 할아버지 세대도 행복했고, 그 전 조상님들도 행복했고, 나도 행복하다. 

다질링에 왔으니 다질링 마실을 나가기로 했다.

하늘도 이쁘고 건물도 이쁜데 저 표지판만 없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구도로 원하는 것만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안되니 사진찍기가 어려운거겠지.

밑을 보니 다질링이 해발 2000미터 이상에 있는 마을이 맞기는 맞나보다.

근데 마실을 나온 난 그 높은 마을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나중에 올라올 생각을 하니 내려가기 싫지만 마실을 나가기로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기 위해 내려간다.

이번 마실은 발길 닿는대로 걷는 것이 아니라 티베탄난민센터로 목적지를 정해 놓고 걸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출발했지만 입구부터 왠지 티벳의 향기가 난다.

우리나라도 중국에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안타까운 역사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티벳은 중국때문에 인도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있는 현실이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임시정부가 있는 맥그로드간즈에 있다는데 내가 달라이 라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난민들을 돕는다는 의미로 조금 비싼 가격이더라도 특별한 기념품이 있으면 사러갔는데 그저그런 것들 뿐이었다.

정말 기념품사기 참 힘들다.

입구에서 더 올라가면 실제로 티벳 난민들이 생활하는 마을이 있지만 티벳 사람들이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구경을 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아 그냥 나왔다.

우리 동네 뒷산은 푸른데 이 동네 뒷산은 항상 하얀 설산이다.

하지만 푸른 산을 알아야 설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테니 뭐든지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 

그리고 무언가를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할텐데 머리로는 아는 것을 몸으로도 알기가 참 힘들다.

다시 올라가려니 막막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 전지훈련을 왔다고 생각하며 다시 올라간다.

그새 구름이 껴서 칸첸중가가 사라졌다.

이런 부끄럼쟁이.

숙소에서 사진을 찍고 다니시는 한국 형님을 한분 만났다.

사진을 엄청 잘 찍으시는데 같이 탈리를 먹으러 가다가 하늘을 보니 일몰직후의 골든아워였다.

타이밍이 조금 늦었지만 이리저리 구도를 잡으며 재미있게 찍었다.

근데 길가를 가는 인도사람들은 외국인 두명이 작은 삼각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시 인도에선 탈리를 먹어야한다. 

오랜만에 먹는 탈리라 조금 비싼 탈리를 시켰더니 꽤 푸짐하게 나왔다.
입에 착착 달라붙고 손으로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오늘의 생각>

배짱싸움을 하다가 타이거힐에 못 갔는데 별로 아쉽지는 않다.

탈리가 입맛에 맞는걸 보니 현지화에 성공한 것 같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뒷산인 칸첸중가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은 어제 사놓은 빵과 시장에서 파는 우유로 때운다.

작은빵을 사면 배가 고플까봐 큰 빵을 샀는데 먹다보니 너무 커 작은 것을 살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든다.
역시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이 눈 앞에 닥치자 깨닫는다. 

공원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기 시작한다. 

인도에서 태권도를 보니 신기해서 계속 보는데 발차기도 잘하고 잠시 뒤에는 겨루기도 하는데 정말 잘한다.

태권도를 배운지 10년이 넘었으니 괜히 끼어들었다가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구경만 했다.

거리로 나왔는데 북적이던 거리가 텅텅비었다.

이 사진에 붙어 있는 벽보에 내가 아침부터 빵을 먹은 이유가 있다.

오늘은 다질링에서 파업이 있는 날이라는 정보를 어제 저녁에 입수했다.

모든 가게가 다 닫고 교통수단도 다 멈추는 파업이라는데 차마 숙소의 밥을 돈 내고 먹을 수가 없어서 빵을 사놨다.

딱히 할일도 없으니 다질링 시내를 크게 한바퀴 돌았다.

날씨가 맑으면 어디서든 칸첸중가가 보이니 전망하나는 끝내준다.

인도에는 도미노피자가 있다.

심지어 다질링에도 있다.

가격은 라지사이즈 한판에 500루피(한화 10000원)도 안한다.

하지만 난 안 먹는다.

눈 앞에 피자가 돌아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간판을 보고 피자가 그리울 정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피자는 이탈리아에 가서 제대로 먹을 거다. 한판 시켜서 혼자 다 먹을 거다.

파업의 제대로 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신문을 샀다.

아마 살면서 내가 스스로 산 신문은 처음인 것 같다.

짧은 영어로 읽어보니 여행산업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파업을 했다고 한다.

비수기라서 관광객이 얼마 없어 타격이 크지 않으니 파업을 한 것으로 알았는데 성수기에도 몇번씩 한다고 한다.

방에서 시간을 죽이다 일몰을 보기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구름이 심해 하나도 안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에 기도를 하길래 나도 따라서 기도를 했다.

밥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고 있는데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역시 중국 저리 가라할만한 나라라 통이 커서 그런지 촛불집회가 아닌 횃불집회를 연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눈치로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뭉쳐야 하고 정부는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라는 항의의 연설이었다. 

외국에서 처음 접하는 상황이라 신기해서 계속해서 사진을 찍는데 주로 쓰는 번들렌즈로는 셔터속도 확보가 안 되길래 단렌즈를 꺼냈다.

평소에 인물사진은 안 찍어봤는데 50mm 단렌즈를 끼니 화각이 안나와 그냥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진지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니 2008년 대한민국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그냥 사는 것이 아닌 내 삶에 대해 철학이 있고 가치관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신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집회가 끝났다.
그제야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는데 문을 연 식당이나 노점이 거의 없어 다질링 시내를 기웃거렸다..

한 곳의 노점이 열어서 현지인들도 줄을 서서 먹길래 따라 시킨 에그롤이 꽤 맛이 있어 초면도 한 접시 시켜 먹었다.

오늘이 다질링에서의 마지막날이라 맥주를 한잔씩 하자고 한다.

술 좋아하는 내가 빠질 일은 없는데 아무래도 킹피셔는 도저히 못 먹겠어서 블랙라벨이라는 맥주를 샀다.

블랙라벨의 맛은 달았다. 여기서 달다는 말은 어떠한 의미도 없는 문자 그대로 달다는 뜻이다.

인도사람들에게 비싸면서 맛없는 맥주를 만들게 한 하늘에게 감사한다.

<오늘의 생각>


인도인들은 참 맥주를 못만든다. 다행이다.

 

오늘 다질링을 떠나는 날이니 타이거힐에 다시 가보기로 하고 또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전에 같이 도전한 한국인 커플은 일기예보에 습도가 높게나왔다며 안 간다고 해서 외국인을 포함해 다시 3명이 뭉쳤다.
나와 같이 도미토리를 쓰던 양놈이 우리가 뭉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껴달라 해 알았다고 했더니 자기 친구가 다른 호텔에 있는데 아침에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알았다고 숙소 앞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지프승차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런데 양놈이 먼저 도착하면 흥정을 잘 못할 것 같아 같이 가자니까 그건 싫다고 한다.

어쩔 수 없어서 먼저 도착하면 절대 120루피 이상으로는 협상을 하지 말라했더니 걱정말라면서 혹시나 지프에 3자리만 남아있으면 자기들은 먼저 갈테니 찾지 말라고 한다.

이 양놈이 전형적인 개인주의에 찌든 양놈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구나.


지프승차장에 가니 이 양놈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자기가 1인당 지프를 150에 잡아놨으니 타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내가 120이상 주지 말라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자기가 여행을 해봐서 아는데 10~20루피는 그냥 더 줘도 된다고 한다.

아 이 양놈이 내 고운 입에서 욕을 나오게 하지만 우선은 참았다.

기사에게 가서 우리가 시세보다 비싸게 150씩 내니 옆에 있는 일본인 한명까지 끼워서 딱 7명만 타고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가는길에 인도인 2명을 더 끼워 태우려길래 지프기사에게 뭐라고 하니 원래 10명을 태울 수 있는 지프에 7명만 타는 것은 낭비라고 한다.

너랑 내가 약속하지 않았냐고 해도 씨알도 안먹힌다.

그럼 난 안가겠다고 다시 돌아가자고 싸우니까 양놈이 여기서 지프승차장까지는 멀지 않으니 걸어가고 될 것 같다고 불을 지른다.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 올리는 글이라 욕을 못쓰는 점이 참 안타깝다.

양놈, 양놈, 양놈, 양놈, 이 빌어먹을 양놈아.

빌어먹을 양놈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셨다.

칸첸중가가 아주 꽁꽁 잘도 숨었다.

역시 하늘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다 보고 계신다.

산신령님 사랑합니다.

지프에서 내려 동네 전망대로 혼자 올라갔는데 새벽 5시도 안된 시간이라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조금 무서워서 가로등 밑에 있다가 짜이를 한잔 사 마셨는데 옆에 있던 인도 아저씨가 자기도 일출 사진을 같이 찍으러 가자길래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안 좋은 상상을 해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어지럽기 시작했다.

구름도 많이 껴 해도 안뜰 것 같아 돌아간다고 하니 이 아저씨도 돌아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내가 정중하게 거절해도 쫓아오길래 방향을 반대로 바꿨더니 그래도 쫓아온다.

순간 소름이 돋아서 빨리 걷는데 머리가 계속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일도 없었는데 기분탓이었는지 진짜로 뭔 일이 일어나려고 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해도 떴고 어지럼증도 가라앉아서 짐을 챙긴 뒤 사람들과 숙소를 나왔다.

오늘이 음력 설날이라 아침으로 밥을 먹으려했지만 사람이 많아 한 식당에 다 들어가기는 무리라 가위바위보로 팀을 나눴고 난 졌다.

그래서 초면을 먹으러 갔는데 일행이 매운거 잘 먹는다고 하자 아저씨가 보란듯이 고추를 팍팍 넣어서 엄청 맵고 맛있었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다질링에서 실리구리로 내려와서 다마스같은 작은 차에 몸을 구겨 넣고 다시 이동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흥정을 하지만 수 많은 차량들이 완벽하게 담합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 

사실 우리는 다음에도 버스를 타야해 시간이 촉박했지만 절대로 급한 티를 내지 않고 흥정을 했다.
옛말에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다.

저 문은 어디로 가는 문일까.

가자, 신들의 나라 네팔로.

<오늘의 생각>

역시 양놈들은 믿으면 안된다.
일출은 히말라야에서 봐야겠다. 

 

<인도 여행 경비>

여행일 20일 - 지출액 7500루피 (약 15만원)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고 싼 음식만 먹었더니 돈을 별로 안 썼다.
처음에는 인도 물가가 비싼 것 같았지만 알고보니 적절한 물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