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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2012년-생존력 강화훈련

04. 한 번 주면 정 없다. (~day 08)

전날 잠잘 곳을 찾다 영주시민운동장 구석 위쪽에 정자가 있어 어두운 밤에 몰래 텐트 치느라 힘들었다.

늘 그렇듯이 6시에 일어나 씻으려 하는데 아침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나온 어르신들이 꽤 많아 신경쓰였다.
어제 남은 만두 1판을 다 먹고 럭셔리하게 모닝 오렌지주스를 마셨더니 포만감 100%가 됐다.
텐트를 말리고 씻고 하다보니 8시 40분이 다 되서 정리가 끝났다.  

땅을 협찬해주신 영주시에 감사인사 하고.

어제 그 분들을 다시 뵈러 갔는데 아직 출근을 안하셔서 짧게 편지 써놓고 문경으로 출발.

잠을 잔 체육관 옆쪽에 불상조각이 있어서 세계평화를 기도했다.
문경쪽 길 상황을 잘 몰라서 주유소에 들러 물어보니 점심먹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듣고 활기차게 출발했다. 

처음에는 기차, 그 다음에는 자전거, 이제 다음에는 무엇을 타고 올지 기대하며 영주를 떠난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사랑합시다.

남들 다 찍는 셀카도 한번 찍었는데 사진에 잘 보면 뒤쪽에 태양광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찜질방에 들르는 바람에 사용할 타이밍이 늦춰졌는데 다 쓴 AA충전지 4알이 생겨 처음으로 장착했다. 

포만감이 급속도로 차는만큼 급속도로 배가 꺼지는 만두를 먹었기에 중간에 보급을 한다.
어제 아저씨가 사주신 2400원이지만 589kcal 밖에 안해서 살 엄두도 못 냈던 빵인데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거의 1달이 넘는 유통기한을 가진 빵인데 진공포장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맛은 좀 별로였다. 

앞에 산도 없고 정말 달릴맛 난다.

어느새 문경에 들어왔고 정말로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가지고 있는 비상식량이 많기에 점심은 패스하고 그냥 달리기로 한다.

4대강 길을 찾다가 gps에 물가가 잡히길래 따라 올라갔더니 건너편이 자전거길이라 2km정도 되돌아와 자전거길을 탄다.

이 빨간 아스팔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를거다.
꼭 한강 자전거길이 떠오르고 고향생각이 난다. 

자두를 하나 먹으려고 자전거를 세웠더니 비가 떨어지길래 태양광충전기는 철수시키고 자장구도 방수모드로 전환했다.

안쓰는 국도나 농로를 국토종주 자전거길로 만들어서 차량이 거의 없어 자전거 타기에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는 버스타고 왔었던 문경새재 입구를 자장구로 돌파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해가 너무 쨍쨍해 굴다리 밑에서 프링글스를 먹었다. 이또한 나라면 절대 사먹지 않을 고급과자라 다시 한번 아저씨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행중에 배가 고플 때마다 항상 식량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가정해 일부러 1시간정도 참다가 먹는 훈련을 계속 했는데 나중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난 또 굽이굽이길을 올라갈텐데 저기는 다리가 있네.
에헤라 디야 끌고가자. 남는게 시간인데 촉박해해서 뭐하리. 이리 오너라 자장구야. 천천히 가다보면 올라갈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야 거북이 이 땅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라

우리는 바다에선 조금은 빠르긴 하지만

땅 위에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아

급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게으르지 않죠

그렇게 수 억년을 잘 살아왔죠

뒤집지 말아요 일어 설 수가 없잖아요

그냥 우릴 바라봐 줘요

빨리 가면 시간 남고 할 일도 많은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좋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빨리 달려가자

거북 거북이야 좀더 힘을 내 달려가자

하지만 거북아 토끼를 따라 잡지 못해

거북이 머리는 언제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집에 빨리 갈 필요가 없죠

집 걱정 없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우리는 정말 빠른 거북이랍니다

타카피-거북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고갯길인 이화령을 넘으면서 타카피의 거북이라는 노래를 수십 번은 더 불렀다.
그런데 국토종주 길이 진행될 수록 개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급격한 커브는 물론이고 도로 귀퉁이에 페인트만 칠해 놓아서 노면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이화령을 오르는 경사도 너무 가팔라서 100m 끌고 올라가 한숨 쉬고 다시 100m 전진하는 거북이 행군을 했다. 

오르고 오르다보니 이화령 정상에 다왔다.

너무 흥분해서 안내소를 뒤엎어 버렸다.

드디어 영남의 관문을 통과해서 충청도에 입성했다.

참 저렇게 뚱뚱한 자장구를 끌고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화령 꼭대기에서 갑자기 오기가 발동해 마지막 훈련으로 집까지 하루만에 가기로 정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는 훼이크고 신나게 내려오니까 소조령이 날 기다리고 있네.

힘들어서 축 내려온 새재로 표지판.
이화령+소조령 콤보가 힘든단 것을 알고 있구나.
내려와서 텐트칠 곳을 찾다가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집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된다고 해서 갔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 지붕이 있는 곳을 찾기로 하고 좀 더 가야겠다고 인사를 드리니 복숭아를 씻어다 주시고 물 2L짜리를 주셔서 다시 한번 식량창고를 채우고 출발했다.
가는데 비가 한두 방울 씩 떨어져 마음이 더 촉박해졌다.
충주 탄금대까지 달려 탄금대 공원에서 자려고 했지만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텐트를 못치고 밖을 배회하는데 자전거 여행자가 보여 인사를 했더니 텐트 칠만한 곳이 없다며 같이 여관에 가자해 저녁을 먹고 돈을 아까워하며 여관에 갔다. 

<오늘의 생각>
옛말에 한 번 주면 정 없다는 말이 있다.
백두대간도 한 번 넘으면 정 없으니 두번 넘자. 
한국인은 정이니까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두번 넘자. 
초코파이도 情 

1인용 코펠에 라면 2개를 끓이려니 넘쳐흐른다. ㅠㅠ

둘이 먹다 둘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생겼다.

나도 내가 못생긴것을 알기에 초점을 배경에 잡았다.

군대가기전에 서울~부산 국토종주 중이라는데 미니벨로로 이화령고개 길을 잘 넘어 갔을지 걱정된다.

세계무술축제 덕분에 좋은 방에서 잤다.

이제 집까지 달려보는거야. 힘내라 자장구.
뒤에 달린 가방은 물 2L와 오렌지 쥬스, 빵, 과자 등이 담긴 식량창고 주머니다.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서울까지 이어져있다면 오늘 목표인 집까지 가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여행하는 동안 그토록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먹는데 적당히 말캉거리는 최고의 복숭아였다.
사실 정신없이 먹다가 인증샷이 떠올라 절반은 먹고 뒤집어서 찍은 사진이다. 

팔당까지 85km만 가면 서울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비가 많이 내려서 사진도 안찍고 그냥 달리기만 했다.
가장 기억나는 코스는 강천보인데 다른 길들은 '그래도 4대강 자전거길이 있어서 편하게 왔네'라고 생각했지만 강천보만큼은 올라가자마자 이명박 카카의 욕을 했다.
비가 내려 사진은 못찍었지만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이 있었고 오르기 쉬우라고 턱이 낮은 계단형식으로 만들어놔서 45kg짜리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다 올라가고 나니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바퀴가 더이상 못가게 하는 스토퍼를 몇줄로 도배를 해놔서 자전거를 들어서 옮기는데 안전상의 이유인 것은 알겠지만 자전거도로라고 이름만 붙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전거가 원활하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4대강 자전거길에서 내가 느낀 불편하고 위험한 부분들이 꽤 되지만 여행기이므로 '소비자고발-4대강자전거길의 위험'을 시청하길 추천한다. 
충주에서 시작해 145km 정도를 달려 팔당에 도착했을 즈음 어깨부터 손목까지의 근육이 안움직여질 정도로 통증이 왔다.
150km정도면 많이 달렸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점프할까라는 생각을 5번정도 했지만 세계일주를 생존력강화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출발한 여행에서 마지막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싶지 않아 근성으로 달렸다.

결국 충주~팔당까지는 평속 18km/h정도로 달리다가 중랑천에 다다라서는 페달만 굴리면 집에 도착한다는 안도감때문에 10km/h 정도의 속도로 달렸고 집에 도착하니 8시였다.
총 173km를 11시간에 걸쳐 달렸는데 점심, 저녁은 안먹고 꿀호떡 8조각+과자 1개+복숭아 2개만 먹고 비를 맞으며 하루 최대치를 달려보았는데 하루에 보통 100km정도씩 달려 누적된 피로에 계속해서 내리는 비, 최소한의 식량으로 달린 마지막 날은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동안 물을 많이 마실 줄 알고 중간 보급을 안하기 위해 5L의 물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빗물을 마시고 피부로 빗물을 흡수해서인지 500ml밖에 안 먹는 신기로운 일이 발생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배가 터지도록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사진을 한 번 보여주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오늘의 생각>
외국에서 물 구하기 힘들 때 빗물을 받아 먹으면 어떨까?
그 해답은 서울대 빗물연구소장 한무영 교수의 '빗물과 당신'이라는 책에...

그래도 내 몸은 보물 1호니까 될 수 있으면 얻어먹거나 사먹어야지. 

처음에는 2주정도 예상을 하고 출발한 여행이 이런 저런 일들도 많이 겪었고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기에나머지는 실전에서 겪기로 하고 8일만에 끝났다.
이 글을 쓴 현재 중국으로 출발하기까지 21일이 남아 있는데 여행을 하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우고 마지막까지 준비해서 10월 13일에 출발한 다음에는 직접 부딪히고 즐기는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